주간동아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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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말한다, ‘신뢰 회복’을

세월호 해법에서 ‘신뢰’마저 침몰하면 대한민국은 더 어려워져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jcbae@randr.co.kr

    입력2014-08-25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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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은 말한다, ‘신뢰 회복’을

    8월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36일째를 맞은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교황 이한 즈음 가진 입장 표명 기자회견에 참석해 47kg까지 여윈 앙상한 몸을 보여주고 있다.

    2011년 3월 지구상의 많은 사람이 일본발(發) 뉴스 때문에 충격에 휩싸였다. 지진으로 엄청난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지방을 휩쓸면서 사망 및 실종자 수가 2만5000여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대지진 여파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원전)가 폭발해 방사성 물질이 일본 동해로 유출된 것.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을 자랑하던 일본이지만 대형 재난 앞에선 안전제일국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고 직후 일본 정부의 대응은 무능했고, 원전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급기야 집권 민주당의 간 나오토 총리가 사퇴해야 했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킨 민주당의 운명이 동반 침몰하는 순간이었다. 중요한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수많은 주민이 고향을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됐다는 점이다. 그들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먼저”

    여론은 말한다, ‘신뢰 회복’을
    한국 사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세월호 사고가 있은 지 4개월이 됐지만 여전히 해결책은 표류 중이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특별법 등 해결책 마련에 나섰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세월호 사고 해결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단순히 정치적 또는 제도적으로 타결됐다고 해서 근본적인 해법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는 인재(人災)인 만큼 정부와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에 대한 책임 및 진상규명 요구는 당연하다. 허술한 안전대책을 제대로 세우는 일도 시급하다.

    이른바 ‘세월호 솔루션’을 두고 여야 정치권은 엇박자를 냈지만, 국민 여론은 한결같다. 먼저 세월호 사고 해결에 있어 책임 및 진상규명이 먼저여야 한다는 점이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거론됐지만, 결국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별다른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모노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은 유가족 지원 보상과 국가 안전대책 수립 이전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먼저라고 본다(그래프1 참조). 사고 발생 4개월이 지났지만,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유병언 스캔들’만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진상규명 목소리가 큰 데는 경찰과 검찰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는 풍토도 한몫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되더라도 기초적인 수사와 진상규명 열쇠는 검경이 쥐고 있다.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검사가 임용되더라도, 수사를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과 검찰에 대한 깊은 불신은 향후 세월호 사고 해결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런 불신은 대통령선거(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 상실이 그 시발점이다. 세월호 사고 책임이 큰 해양경찰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컸고, 청해진해운의 배후로 지목된 유 전 회장의 수사와 관련해 오락가락하는 검찰 모습이 불신의 싹을 더 키웠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검경의 발표마저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그래프2 참조). 검경은 법과 원칙의 최전선이자 최후 보루다. 신뢰의 상징적 존재가 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세월호 사고 해결을 위해서는 경찰과 검찰의 신뢰 회복이 먼저다.

    2005년 9월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사고와 2009년 2월 사상 최악의 호주 빅토리아 산불 사고 역시 진상규명과 관련해 검경의 신뢰 문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허리케인과 산불이 마을을 강타하고 덮쳤을 당시 수사가 미진해 결국 진상위원회가 꾸려진 것도 경찰과 검찰의 신뢰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여야 국민 설득하고 신뢰 확보해야

    여론은 말한다, ‘신뢰 회복’을

    임정혁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7월 21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수사 경과를 발표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은 정치권의 신뢰 회복에 달렸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을 비롯해 사고 발생부터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정치권의 수습과 대응은 미덥지 않았다. 사고 직후 지방선거가 있었지만 세월호 사고 해결을 위한 어떤 계기도 되지 못했다. 사고 발생 시점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4개월여 동안 ‘유병언 버라이어티쇼’를 언론에서 집중 보도했고 정치권은 방조했다는 비아냥거림마저 들린다. 세월호 사고 해결은 인사 논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올라 있다.

    최근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가 ‘국민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을 묻는 질문에 우리 국민은 자신, 국민을 가장 믿을 수 있다고 꼽았다. 정치인, 법조인에 대한 조사 결과는 내놓기가 부끄러울 정도다(그래프3 참조). 이를 단순한 조사 결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세월호 사고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권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유가족은 제대로 초대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을 따듯하게 위로한 것은 100일 이상을 세월호 사고와 함께했던 정치권이 아니라 고작 100시간을 머물렀던 교황 프란치스코였다. 세월호 사고가 앞으로 어떤 해결 방안을 내놓든 여야 정치권이 국민을 설득하고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는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특별법으로 세월호 사고 해결은 한 걸음 더 내딛게 됐다. 하지만 그 해법은 ‘신뢰 회복’에 달렸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우리의 신뢰마저 침몰한다면 해결은 요원하다. 한국 영화의 흥행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명량’의 마지막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이순신 장군의 아들 회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명량의 소용돌이 파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이순신 장군은 담담하게 “천행(天幸)이었고 그것은 백성에 대한 믿음이었다”고 대답한다. 우리 역시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여러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신뢰 회복’이다. 대통령, 여야 정치권, 유가족, 국민 모두 이제는 세월호 사고를 오롯이 수습하고 ‘안전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믿음과 소통’이 샘솟는 천행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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