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다. 이제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도시가 더욱 빛날 시간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미국 네바다 주 최대 도시이자 세계적인 관광과 도박의 도시다. 스페인어로 ‘초원’이라는 뜻을 지닌 이 도시는 19세기 말까지 광업과 축산업이 주된 산업이었지만, 1905년 남캘리포니아와 솔트레이크시티를 잇는 철도가 완공되면서 현대적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11년 시로 승격했다.
1936년 당시 세계 최대 댐이던 후버 댐이 완공돼 물과 전기 공급이 충분해진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장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곧 관광 중심지로 변모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박의 도시로, 1년에 4500만여 명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가 됐다. 미국인도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꿈의 도시다.
‘술김에 결혼했다 이혼하는 곳’
유명 도시를 콘셉트로 한 건축물들.
라스베이거스는 ‘술김에 결혼했다 아침에 이혼하는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결혼과 이혼이 수없이 이뤄지는 아이러니한 곳이다. 유명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연간 15만 쌍 이상이 이곳에서 결혼하는데, 결혼하려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패키지 상품도 인기가 높다. 그 어느 주보다 결혼과 이혼 수속이 간단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뭘까. 그 궁금증이 이곳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TV 광고를 보다 풀렸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꽤 유명한 여배우가 한 호텔의 카지노 광고에서 이런 말을 했다.
“라스베이거스는 미국 사람도 한 번은 와야 하는 도시입니다. 모든 게 가능한,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니까요. 누구나 긴장을 푸는 이 도시에서 공연을 즐기며 행운도 가져가세요. 지금, 당장!”
즉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에 가는 이유는 호텔과 쇼 구경, 그리고 카지노 때문인 것이다. 사실 이것들을 빼면 이 도시에 대해 할 얘기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호텔과 쇼 이야기를 하려 한다. 카지노는 이것들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생략한다. 수없이 많은 쇼와 호텔 가운데 지극히 주관적으로 몇 개를 골라봤다.
호텔, 카지노 그리고 지상 최고의 쇼
라스베이거스를 상징하는 조형물(위). 최첨단 전구쇼인 ‘프리몬트 스트리트 익스피어리언스’.
강렬한 음향과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을 표현한 미라지(Mirage) 호텔의 화산쇼도 유명하다. 미라지 호텔에서는 해적쇼도 보여주는데, 성수기에는 쇼를 보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인기 있다.
다음으로 우리에겐 LG전자의 발광다이오드(LED)로 만든 최첨단 전구쇼로 좀 더 친근한 다운타운의 ‘프리몬트 스트리트 익스피어리언스(The Fremont Street Experience)’를 들 수 있다. 거리를 덮은 거대한 LED 천장인 ‘비바 비전’에 마치 하늘에서 각양각색의 불빛이 춤추는 것 같은 풍경이 연출되며, 그 아래 거리에서는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다운타운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는 쇼는 웅장함과 디테일, 그리고 질적인 면에서 다른 쇼들과 확연하게 비교될 만큼 흥미롭다. 특히 라스베이거스의 3대 쇼는 싼값이 아님에도 두 번 이상 보는 관광객이 많을 정도로 유명하다.
먼저 벨라지오 호텔에서 볼 수 있는 ‘오쇼(The ‘O’ Show)’는 20만 원이나 하지만 공연마다 만석일 만큼 인기가 좋다. 물속에서 펼쳐지는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와 함께 장면이 바뀔 때마다 무대에 물이 차기도 하고, 바닥이 되기도 하며,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도 한다. 스토리가 탄탄할뿐더러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발레 같은 무용이 조화를 이루는 환상적인 쇼다.
MGM 그랜드에서 펼쳐지는 ‘카쇼(Ka Show)’는 일단 무대 제작비만 2000억 원이 넘는 대작이다. 다양하고 기발한 무대 변화와 함께 90분 동안 펼쳐지는 서커스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오쇼’가 물을 이용한 몽환적인 쇼라면 ‘카쇼’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재미가 가득한 쇼다.
그리고 이 두 쇼를 합친 듯한 쇼가 ‘르레브쇼(Le Reve Show)’다. ‘꿈속에서 살고 싶어라’는 제목답게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고 무대에서도 몇 겹으로 물이 뿜어져 나오는 등 관객들 눈을 사로잡는다. 마술, 서커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다이빙 등 물과 관련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개성 강한 호텔 테마 여행
라스베이거스에는 개성적인 건축미와 인테리어로 유명한 일명 럭셔리 호텔이 많다. 300여 개의 크고 작은 호텔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호텔 20위 안에 이름을 올린 호텔만도 10곳이나 된다. 규모면에서도 객실 5000실, 8000실 등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데, 개성 강하고 독특한 외관이나 내부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일종의 테마 여행도 흥미롭다.
호텔은 대부분 중심거리인 스트립의 양옆에 늘어서 있는데, 에펠탑을 절반으로 축소한 패리스(Paris) 호텔, 이탈리아 베네치아 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베네치안 리조트(Venetian Resort) 호텔,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을 재현한 뉴욕뉴욕(Newyork Newyork), 1층에서 사자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엠지엠 그랜드(MGM Grand), 화산쇼로 유명한 미라지 호텔, 카리브 해 해적선을 모방한 트레저아일랜드(Treasure Island), 영화 ‘벅시’로 유명해진 플라밍고(Flamingo) 호텔, 분수쇼로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 로마제국을 재현한 시저스팰리스(Caesars Palace) 호텔이 대표적이다. 아름답고 독특한 이들 유명 호텔은 모두 카지노와 클럽으로 연결된다. ‘돈’을 쓰게 하려고 엄청난 ‘돈’을 투자한 것이다.
라스베이거스 여행은 익히 들었던 도박의 도시라는 수식어나, 욕망의 종착역이라는 말을 확인하는 여행은 아니었다. 오히려 독특한 상상력과 자본이 모여 만들어진 역동적인 인공 도시에서 희망과 기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겠다는 사실을 발견한 여행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중심거리인 스트립(Strip). 6.8km 길이의 도로를 따라 호화롭고 거대한 호텔들이 화려함을 뽐내며 늘어서 있다. 밤에 보는 거리 모습이 특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