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이
잠자기 위해서
옷을 벗을 때
펜은
단단히 결심했다
죽은 듯이 자겠다고
불을 모두 끄고
그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타고난 완강한 성격 때문에
세상의 어떤 힘보다도
펜의 척추에 내재한 힘이
가장 강하리라
그것은
부러지기는 할지언정
굽히지는 않는다
펜은
결코 물결이나 머리카락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는 않으리라
오로지
부동자세로 서 있는
병사나
관棺을
꿈꾼다
그의
내부에 있는 본연의
올곧은 마음이다
나머지는
구부러진 것이다
잘 자시오
청년 시절에는 별을 찍어내던 나의 펜이 이제는 땅에 떨어진 쌀 한 톨을 찍어내기 바쁘다. 단단하던 펜의 척추가 디스크에 걸린 지 오래다. 오늘 밤에는 나의 오래된 만년필 펜촉을 유심히 본다. 참 반듯하게 빛난다. 가끔 쌀이 별이 되기도 하고…. 저 올곧은 모습을 오래 간직하고자 한다. 펜은 꿈을 찍어 현실을 만든다. ─ 원재훈 시인
잠자기 위해서
옷을 벗을 때
펜은
단단히 결심했다
죽은 듯이 자겠다고
불을 모두 끄고
그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타고난 완강한 성격 때문에
세상의 어떤 힘보다도
펜의 척추에 내재한 힘이
가장 강하리라
그것은
부러지기는 할지언정
굽히지는 않는다
펜은
결코 물결이나 머리카락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는 않으리라
오로지
부동자세로 서 있는
병사나
관棺을
꿈꾼다
그의
내부에 있는 본연의
올곧은 마음이다
나머지는
구부러진 것이다
잘 자시오
청년 시절에는 별을 찍어내던 나의 펜이 이제는 땅에 떨어진 쌀 한 톨을 찍어내기 바쁘다. 단단하던 펜의 척추가 디스크에 걸린 지 오래다. 오늘 밤에는 나의 오래된 만년필 펜촉을 유심히 본다. 참 반듯하게 빛난다. 가끔 쌀이 별이 되기도 하고…. 저 올곧은 모습을 오래 간직하고자 한다. 펜은 꿈을 찍어 현실을 만든다. ─ 원재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