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향후 북한 행보다. 격렬한 권력투쟁을 거친 평양이 앞으로도 과연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정권 2인자이자 후견인으로 불리던 인물을 제거한 후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권력은 과연 강화될 것인가, 흔들릴 것인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흐름이 대남 군사도발로 이어질 개연성이다. 일각의 분석대로 최근 상황이 그간 수세에 몰렸던 군부 세력의 대대적 반격의 결과물이라면, 따라서 향후 평양 이너서클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커진다면, 남북한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소지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은 제1비서가 내부의 권력 갈등이 빚어낸 갖가지 문제를 전쟁 분위기 고조 등 외부와의 갈등으로 돌파하며 체제 결속을 시도할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다.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정부당국자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2~4월 위기 국면 능가
향후 평양의 행보를 사전에 엿볼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데이터 가운데 하나는 최고지도자의 활동 내용이다. 현지시찰 동선과 수행인원 구성 비율을 분석해 특정 기간에 어떤 분야의 활동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것.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살아 있는 동안 관영언론을 통해 공개된 그의 동선은 북한의 돌발적인 군사행동이나 도발을 사전에 엿보고자 하는 각국 정보기관의 중요한 가늠자 중 하나였다. 어느 것 하나 확신하기 쉽지 않은 북한 체제의 특성상 명확한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보판단 근거이기도 하다.
예컨대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와 10월 첫 번째 핵실험을 앞두고, 김 전 위원장은 그 주무대였던 강원도 깃대령 인근과 함경북도 일원을 집중적으로 시찰한 바 있다. 그해 5월 30일부터 9월 15일 사이 40여 일 잠적기간을 뺀 두 달 보름 동안 가진 총 30회의 공개시찰 가운데 20여 회를 동부 및 함경도 해안지역 군부대 시찰에 집중했던 것. 통상 북한 관영언론은 최고지도자의 동선을 보도하며 그 정확한 일자를 공개하지 않지만, 앞뒤 맥락을 분석해보면 게재 시점과 촬영일자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주간동아’는 같은 방식으로 2013년 한 해 동안 공개된 김정은 제1비서의 활동을 전수 조사했다. 1월 1일부터 12월 11일 현재까지 ‘조선중앙통신’이 전한 총 236회의 활동 내용과 동선이 분석 대상이다(그래프 참조). 이 월별로 재구성한 결과는 매우 비관적이다. 장성택 실각을 앞두고 평양 내부가 한창 요동쳤을 10월과 11월 김 제1비서의 군사 분야 활동이 전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1 12월 8일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한 ‘비판 토론’에 나선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2 이날 회의 연단에는 김정은 제1비서 옆에 사실상 2인자로 떠오른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김정은 오른쪽)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이 나란히 앉았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당연히 북측이 군부대 시찰과 관련 회의로 분류하는 영역이지만, 정책지침이나 명령에도 군사 분야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2월 15일 보도된 ‘조선인민군 지휘성원들에게 군사칭호 명령’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1월부터 11월까지 김정은 제1비서는 총 23회 군부대를 현지시찰했고, 역시 23회에 걸쳐 회의 등 군사활동을 벌였다. 여기에 각종 명령 등을 합해 총 군사 관련 활동 횟수는 53회. 평균으로 따지면 매달 4~5차례 군사활동에 임한 셈이다.
군사활동이 가장 집중된 시기는 3차 핵실험 등으로 긴장이 정점에 달했던 2월(7회)과 3월(11회)이었다. 4월 이후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군사활동은 10월 들어 7회로 급증했고, 11월에는 모두 9차례나 이뤄졌다. 화격타격훈련 참석(10월 30일), 해군 790부대 용사 묘 방문(11월 1일), 항공 및 반항공군 부대 방문(11월 30일) 등이 그것이다. 더욱 눈여겨볼 대목은 이 시기 김정은 제1비서의 전체 공개활동 횟수가 감소 추세에 있었다는 점이다. 7월 29회로 정점을 찍었던 노출빈도는 꾸준히 감소해 11월 19회로 줄었다. 그럼에도 유독 군사 분야 활동만 크게 증가한 것이다.
최룡해·황병서·김원홍 주목
그 결과, 공개된 총 활동에서 군부대 시찰과 관련 회의 등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보면 10월은 30.4%, 11월은 47.4%에 달한다. 11월 한 달 동안 그의 동선 절반 가까이가 군사 분야에 집중됐다는 뜻이다. 이는 3차 핵실험을 전후해 북한이 ‘말 폭탄’을 쏟아내던 2월(33%)과 3월(42%)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다시 말해 11월이 김정은 집권 이래 군사 분야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한 안보부처 핵심 당국자는 “최근 김정은의 군사 분야 활동 증가는 정보당국에서도 예의 주시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장성택 실각을 전후해 흔들리기 쉬운 권력 주변을 다잡고, 전체 인민 차원에서도 긴장 분위기를 고조하려는 속내가 읽힌다는 것. 또 다른 정부당국자는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 역시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 이후 권력 주변이 어수선할 때 빚어진 사건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조짐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공개활동 내용을 분석해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정보는 최근 김정은 제1비서 주변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조직이나 인물의 면면이다. 현지시찰이나 회의 등에 동행해 함께 ‘1호 사진’에 찍힌 이들의 소속과 신분을 따져 통계로 분석하는 작업이 주로 활용된다. 다시 말해 장성택 실각을 앞두고 어느 기관이나 인물이 김 제1비서의 ‘귀’를 붙들고 있었는지를 따져보는 일이다. 물론 이는 장성택 실각 이후 평양에서 누가 가장 크게 주도권을 행사하게 될 것인지 예측하는 근거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10~11월 김정은 제1비서의 대외활동에 동행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두 달 모두 60% 이상의 동행 비율을 기록했다. 이 시기 김 제1비서 동선의 상당 부분을 군사 분야가 차지했음을 감안하면 인민군의 최고실력자인 그의 절대적인 동행 비율은 자못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와 함께 황병서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의 동행 비율이 11월 들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0월에는 10%대에 머물던 비율이 11월 75%까지 뛰어오른 것. 1949년생으로 조선인민군 중장 계급을 갖고 있는 황 부부장은 2005년 5월 현재 직위에 임명된 이래 조직지도부에서 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다음으로 동행 비율이 높은 인물은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10월에는 20%대, 11월에는 40%대를 유지하는 등 꾸준히 김정은 제1비서의 지근거리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그간 여러 차례 보도된 바와 같이 장성택 전 부위원장은 10월과 11월 김 제1비서의 공개활동에 단 한 차례도 동행하지 않았고, 김 제1비서의 부인인 이설주 역시 10월 16일 동평양대극장에서 러시아 21세기관현악단 공연을 함께 관람한 이후로는 동행 소식이 공개된 바 없다.
이렇듯 동행 비율을 기관별로 분석해보면, 군부와 당 조직지도부, 국가안전보위부가 최근 두 달 사이 김정은 제1비서의 주변에 머무른 핵심 기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장성택 실각과 관련해 최근 국내외 전문가들은 국가안전보위부와 조직지도부 두 조직이 이 사건을 기획, 주도한 중심축일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동행 비율 분석 역시 두 조직이 ‘장성택 실각 이후 파워 엘리트’로 부상할 것이라는 예측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김원홍 부장과 조연준, 김경옥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장 전 부위원장을 축출한 12월 8일 당 정치국 확대회의 주석단에 착석하기도 했다. 다른 기관의 경우 대표자 1인만이 주석단에 앉은 것에 비해 조직지도부는 제1부부장 2명이 함께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조선노동당 조직 지도부 임무 부각
그간의 맥락을 따져봐도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는 장 전 부위원장과는 ‘상극’일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김 전 위원장 집권 시기 장 전 부위원장은 1995년부터 10년 가까이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앉아 권력의 핵심 노릇을 한 바 있다. 조직지도부는 이 무렵 ‘당 속의 당’이라고 부를 만큼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다. 전통적으로 조직지도부장은 공석으로 남겨지는데 이는 최고지도자 본인이 조직지도부장을 겸임한다는 취지의 상징적 조치로 해석돼왔다.
그러나 2004년 실각했던 장성택은 2007년 복귀한 뒤 당 행정부장을 맡았고, 이후 원래 조직지도부 소관이던 인민보안부와 인민내무군 등 무력 사용이 가능한 조직의 관할권이 상당 부분 행정부로 이관됐다. 쉽게 말해 경찰과 상비병력 등 인민군 정규무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총과 칼’이 행정부로 넘어가게 된 셈. 이로 인해 권한이 크게 축소됐던 조직지도부는 장성택 실각과 이용하 행정부 제1부부장,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 처형 과정에서 행정부 조직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선봉 구실을 맡았고, 이제 예전의 위상과 권위를 되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어질 평양의 파워게임에서 조직지도부의 입지가 크게 부각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