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위한 행동’이 전국 동물원을 현장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여름이다. 여름과 겨울, 아이들의 소풍기간이 주요 조사 기간이었다. 동물원은 세계 각지의 다양한 생태조건에서 살던 야생동물을 일정 공간에서 관리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열대지방 동물에게는 겨울이, 극지방 동물에게는 여름이 가장 살기에 열악할 수 있는 기간이다. 또 아이들의 소풍기간은 관람객이 모여드는 시기로 관람객 태도가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좁은 공간 이상행동 다반사
2012년 7월부터 올 5월까지 전국 동물원 8곳을 현장 점검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물이 사는 전시공간이 거의 대부분 좁다. 둘째, 동물이 자신의 본래 생태적 습성을 훼손하지 않은 조건에서 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러다 보니 극단적인 경우 이상행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동물원 동물의 이상행동을 특정해 ‘정형행동(stereotyped behaviour)’이라고 한다. 곰과 동물의 경우 몸을 흔들거나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돌거나 자신의 배설물을 먹는다. 호랑이, 재규어, 사자 등 고양잇과 동물과 늑대 같은 갯과 동물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한다.
이런 행동들을 우리나라 동물원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다. 저빌은 벽을 긁고 있었고, 라쿤은 좁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반복적 행동을 보였다. 기린은 철창 우리를 핥았고, 코끼리는 몸을 흔들었으며, 참수리는 강박적으로 수도꼭지를 부리로 쪼아댔다. 정형행동은 일종의 강박적 행동으로, 사람의 경우 자폐아동에게서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한다.
동물원이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노아의 방주’ 같은 공간이라는 이야기는 신화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야생동물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무분별한 밀렵으로 씨가 말랐고, 이후 산업화로 인한 개발, 생태계 파괴로 해마다 멸종위기에 처하는 동물 종수가 증가한다. 노아의 방주처럼 동물을 보호하는 차원이라면 우리나라 토종 야생동물에게 자리를 내줘야 옳다.
실효성에는 논란 여지가 있지만, 반달가슴곰과 여우 등 일부 종에 대해 복원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제한적이고 한계도 많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동물원 환경이 토종동물 위주가 아닌 사자, 호랑이, 기린 등 외래동물에 맞게 설계돼 있다. 사람들이 이런 동물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원에서 우리나라 토종 멸종위기 동물의 사육조건은 열악했다. 그렇다고 사자와 호랑이의 사육조건이 좋다고 볼 수도 없다. 서울대공원 사건은 좁은 공간에서 호랑이 25마리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 호랑이 25마리는 대부분 종 보전 가치가 없다. 근친교배를 통해 태어났거나 뱅갈호랑이와 시베리아호랑이가 섞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많은 동물이 잉여의 삶을 살게 된 이유는 과학적 근거와 철저한 계획에 의해 종을 증식한 것이 아니라 예쁜 아기호랑이를 찾는 관람객의 심리에 부응한 결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동물원 존립 근거로 ‘동물을 위한 노아의 방주론’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대중을 위한 오락 기능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동물원의 오락 기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동물쇼와 동물체험관이다. 동물원이 동물쇼를 열고 체험관을 짓는 이유는 오직 오락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만족감을 주고 이를 통해 관람료 징수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동물 묘기의 난이도와 내용은 각각 다르지만, 동물쇼의 본질적 문제는 동물의 본래 생태와 행동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학대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동물원 측 주장은 동물쇼의 등장, 그 근본적 이유와 본질을 은폐한다.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도 하지만, 이 의견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동물쇼가 아이들에게 생태교육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합의를 이룬 사회는 여태까지 없다. 오히려 동물쇼는 유럽에서 거의 사라져간다.
동물쇼에 등장하는 동물은 100% 고등동물이다. 머리가 좋아야 인간이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잘 따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머리가 좋은 만큼 훈련에 무의식적으로 반응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은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절망, 분노, 좌절,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3년간 방에 갇혀 지낸 오랑우탄
서울대공원의 열악한 실내관. 비좁고 지저분한 시설에서 기린들이 사료를 먹고 있다.
동물쇼의 또 다른 문제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갖가지 수단을 동원한다는 점이다. 동물쇼는 시간과 장소의 한계 탓에 동물이 본래 자연에서 하는 행동을 그대로 재현하기 어렵고, 최대한 자극적인 묘기를 보여준다. 관람객을 끌려고 동물이 사람 옷을 입고 등장하거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도록 연출하기도 한다. 영장류 등 사람과 유사한 동물이 등장할 때 웃음은 더욱 커진다.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존재를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묘한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는 영장류를 쇼와 미디어에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영장류의 경우 자라면서 제어하기 힘들어지고, 사람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은 야생동물의 보존가치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실제 2004년 한 동물원에서 쇼를 하기 시작한 오랑우탄 ‘우탄’이는 2009년부터 쇼를 거부하고 사육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몸집이 커 제어하기 어려워지자 작은 방에 갇혀 3년간 한 번도 나오지 못했다.
영장류와 코끼리, 돌고래를 쇼에 이용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영장류와 코끼리, 돌고래는 자의식이 있는 동물이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의식이 있는 만큼, 인위적이고 목적 없는 반복 훈련에 정신적 고통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체험관 역시 동물원의 주요 수입원이다. 아이들이 직접 먹이를 주고 만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최근 성행하기 시작했다. 멀리서보다 가까이에서 보는 것, 보는 것보다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 성향을 감안할 때 체험관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가장 잘 만족시켜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위험이 있다. 체험관에 있는 동물 가운데 파충류는 인간에게 살모넬라균을 옮길 수 있다. 다른 동물도 예외는 아니다. 200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는 동물이 인간에게 옮길 수 있는 질병 75가지를 게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동물 체험관에 다녀온 아이가 대장균에 감염된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도 동물 체험관에 미국 공중위생수의사협회의 지침에 따라 손 씻는 시설을 설치했는데도 체험자가 대장균에 감염된 사례를 밝힌 바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동물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Humane Society)’는 근본적으로 전염을 막으려면 동물을 직접 만지지 말 것을 권유한다.
동물 체험관은 비교육적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쳐주지 않고 일시적으로 만지는 행사를 통해 호기심을 길러주면 아이는 그 동물을 소유하는 데만 집중하게 마련이다. 개와 고양이가 아닌 동물에게까지 먹이를 주면 그 혼란은 더 가중된다. 먹이를 주고 돌봐주는 동물은 자신의 반려동물에 한정돼야 한다. 원숭이, 코아티(긴꼬리미국너구리붙이) 등 야생동물에 속하는 동물에게까지 체험전을 확대하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동물원의 대명제에 어긋나는 일이다.
체험관만 문제가 아니다. 일반 관람시설에서도 소풍 때 어린이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돌아간 뒤 배탈이나 만성설사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동물이 꽤 많다. 애초 동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도록 설계해놓은 탓이다. 동물원 인력의 한계를 감안할 때 관람객이 동물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것을 100% 막기는 어렵다. 전시장을 변화시켜야 한다. 또 동물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도 있다. 동물원 동물은 근본적으로 야생동물이다. 그런 사실이 동물원이라는 공간에서 자주 망각된다.
최근 사고가 일어난 서울대공원 호랑이사 전경. 3년생 수컷 시베리아호랑이에게 물린 사육사는 끝내 사망했다.
환경부가 관리감독 기관인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대표적인 법이다. 이 법의 주된 대상은 자연에 사는 동물이며, 동물원 동물의 경우 수출입 조건과 곰 사육 등 특정 상황에 관한 조항만 있지 관리와 보호에 관한 기준이 없다. 농림수산식품부가 관장하는 ‘동물보호법’도 마찬가지다. 이 법이 실제 규정하는 동물은 반려동물, 실험동물, 농장동물이다. 결국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한 법은 전무한 셈이다.
동물에게 행복한 공간일까
그나마 2012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에 의해 멸종위기 동물에 한해 사육시설 기준을 마련하게 하는 법규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동물원 설립부터 운영까지 일정 기준을 만들고 잔인한 동물쇼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사각지대에 있던 동물원 동물의 생태와 처우, 관리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서울대공원은 이번 사육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동물원 운영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중요한 원칙은 잃지 않기를 바란다. 곤충관에서 25년간 일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맹수관으로 발령하는 과정에서 인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또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 매뉴얼에 있는 △사고방지를 위해 2인이 항상 함께 움직이고 △도구를 이용해 먹이를 주며 △전화기, 스프레이 등을 소지하고 △1년에 한 번 위급상황대처 훈련을 실시하는 등 지극히 단순하고 상식에 가까운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일단 동물을 직접 관리하는 사육사에게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절실하다.
물론 동물원 체질을 바꾸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서울대공원의 경우에도 각 전시장을 치밀한 계획에 따라 만든 것이 아니라서 리모델링을 하는 데만도 막대한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 예산을 마련하기 힘들면 입장료만이라도 현실화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동물원 입장료는 1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엇보다 우리나라 동물원에 대해 근본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동물원은 사람에게 안전하고 동물에게 행복한 공간일까. 사람이 살면서 가장 먼저 동물을 접하는 공간은 대부분 동물원이다. 우리 아이가 생명의 존엄성은 물론, 사람과 동물의 올바른 공존을 배우려면 동물원의 변화가 필요하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서울시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로, 2012년 동물원 동물의 복지와 동물쇼 반대 운동을 목적으로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