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이 격리된 나요양소에 국경도 없이 차별도 없이
또 세균학도 없이
뇌파에 흐흐 느끼어 온다.
지금 나는 옛날 성하던 계절에 서 있고
지금의 나는 여기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수없이
떠내려온 운명의 하류에서
불시 나는 나의 현실을 차버린다.
두 조각 세 조각 산산이 깨어진다.
지금
모든 것이 깨어졌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만이
영원으로 가는 것이다.
이젠 쓰지도 않는 말, 문둥이… 시인 한하운. 그가 차이콥스키를 듣고 있다. 썩어 문드러진 세상에서 음악은 썩어 문드러질 몸이 없어 영원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병든 몸이 있는 가혹한 시인의 운명에 ‘흐흐 느끼어 오는’ 숭고한 한 순간이 일으켜 세우는 러시아 음악가의 절창. 겨울엔 누구나 한 번쯤 ‘비창’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병든 인생이 깊어가는데, 세월은 참 빠르다. ─ 원재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