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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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과 권리 침해 한쪽 눈으로도 잘 보여요”

공익재단 동천 소속 김예원 변호사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3-12-09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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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인권과 권리 침해 한쪽 눈으로도 잘 보여요”
    김예원 변호사(31·사진)의 첫인상은 소녀 같았다. 앳된 얼굴 가득 수줍은 미소가 담겨 있어 나이보다 더 어려 보였다.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하자 딴 사람이 됐다.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빨라졌다. 하나하나 쟁점을 짚어가며 설명하는 모습이 ‘이래서 변호사구나’ 싶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재단 동천 소속으로, 장애인 권리 옹호 활동을 주로 하는 김 변호사는 장애인 사이에서도 ‘두 얼굴의 변호사’로 통한다. 장애인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보다 많이 안타까워하고 피해자들과 따뜻하게 공감하지만, 재판 과정에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의료 사고로 한쪽 눈 실명 아픔

    현재 김 변호사가 관심을 기울이는 사건은 지난해 발생한 강원 원주 장애인시설 원생 학대 사건 항소심. 장애인 수십 명을 친자녀처럼 키우는 ‘천사 목사’로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됐던 한 남성이 실은 비인가시설을 세워놓고 장애인 몫으로 나오는 수급비를 개인적으로 유용했으며, 수시로 장애인을 폭행하고, 심지어 사체를 유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다. 가해자 장모 씨는 지난해 12월 상해·사기·사문서위조·폭행·사체유기·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 법원은 7월 장씨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김 변호사는 이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고 말한다.

    “최근 의붓딸에게 ‘소금밥’을 먹여 사망하게 한 계모가 10년형을 받았잖아요. 장씨는 수십 년간 수십 명의 장애인을 학대했고, 그중 상당수가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장애인 21명을 자기 호적에 올려 여전히 법적으로 그들의 ‘아버지’ 상태예요. 감옥에서 나오면 또다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릅니다.”

    김 변호사는 장씨가 죗값을 치르도록 항소심 소송을 지원하면서, 그와 동시에 피해 장애인들을 대리해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친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 등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수시로 피해자들을 만난다. 이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뒤 시설에서 ‘구출’된 이들은 현재 시민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다른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다. 김 변호사는 휴대전화를 꺼내 이들과 나란히 앉아 활짝 웃음 짓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면서 “길게는 30년 동안 학대받아 공포와 무력감에 시달리던 이들이 요즘 차츰 웃음을 되찾고 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강원 홍천에서 역시 목사를 자처한 남성이 장애인시설을 세운 뒤 수용자를 학대하고 후원금을 유용한 사건 피해자들도 돕고 있다. 그가 진행 중인 장애인 관련 소송만 7개. 프로젝트 연구와 입법운동, 연대활동까지 포함하면 관여하는 업무는 20개가 넘는다. 김 변호사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법이 사회를 빠르고 안전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는 생각에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변호사가 돼 조금이나마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가 법률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사춘기 무렵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김 변호사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어릴 때부터 한쪽 눈밖에 보이지 않아 그렇게 태어난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뒤늦게 자신의 장애가 출산 과정에서 일어난 의료사고 때문임을 알게 된 것. 게다가 의사가 적절한 처치를 하지 않아 피해를 키우고, 결국 시력을 전부 잃게 만들었음에도 손해배상은커녕 변변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김 변호사는 “그때 나는 꼭 법률가가 돼 다시는 나처럼 무력하게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탓에 사법시험 준비 시절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해야 했지만 이런 ‘꿈’이 있어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변호사가 됐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판사 임관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인 법관으로 화제를 모은 최영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와 연수원 동기다. 최 판사는 대학재학 중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양쪽 시력을 잃었다. 김 변호사는 “‘영이 오빠’와 비교하면 내 장애는 ‘새발의 피’ 정도”라며 “나는 한쪽 눈이 잘 보여 공부하거나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장애인이 수시로 직면하게 되는 편견과 불편에 대해 조금은 알기 때문에 장애인 관련 문제에 더 많이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장애인 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문제

    “장애인 인권과 권리 침해 한쪽 눈으로도 잘 보여요”

    지난해 11월 열린 ‘발달장애인 인권침해 사례 해결과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김예원 변호사(오른쪽).

    그가 사법연수원 재학 중이던 2011년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러 갔다 겪은 일도 그중 하나다. 대학 시절 2종 보통면허를 취득한 김 변호사는 일정 기간 무사고 경력을 쌓으면 면허를 1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면허시험장을 찾아 서류를 접수했다. 그런데 담당직원은 그가 보는 앞에서 아무 설명도 없이 서류를 찢어버렸다. 당황스러워 제대로 항의도 못 하는 그에게 퉁명스럽게 “당신은 안 돼요” 했을 뿐이다. 알고 보니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45조 1항 1호에 ‘1종 보통면허를 따려면 두 눈을 동시에 뜨고 잰 시력이 0.8 이상이고, 양쪽 눈의 시력이 각각 0.5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김 변호사는 아무리 오랜 기간 무사고운전을 해도 1종 보통면허를 받을 수 없는 셈이다. 그는 깜짝 놀랐다.

    “일정 크기 이상의 승합차를 운전하려면 1종 면허가 필요하잖아요. 경찰관이나 소방관 시험에 응시할 때도 1종 면허가 필요하고요. 단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직업선택의 자유와 공무담임권을 제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개별적으로 운전능력을 측정해 1종 면허를 받을 자격이 있는 이에게는 면허를 발급해야 한다는 게 김 변호사의 의견이다. 알아보니 미국, 호주 등 해외에서는 한눈 시각장애인에게 면허를 발급해주고 있었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모아 입법운동을 벌였고, 마침내 8월 진선미 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14명이 공동으로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김 변호사는 지금은 장애인을 위한 ‘P&A (Protection and Advocacy·보호와 옹호) 시스템’ 입법 활동에 힘을 쏟는다. 장애인 인권보호 선진국인 미국처럼 지역마다 P·A 기관을 만들어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및 유기(방임), 또는 권리 침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즉각 개입해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또 내년으로 예정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우리나라에 대한 ‘장애인권리협약(CRPD)’ 이행 검사를 앞두고 시민사회 차원의 보고서를 만드는 데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세상에 수많은 이슈가 있고,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이들 또한 수없이 많음에도 우리가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장애인 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애는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몰라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우리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장애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애인이 우리와 더불어 오순도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건 곧 우리 자신을 위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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