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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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왜 상법 개정안 쌍심지서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세계적 추세…경영 투명성 증가 오히려 기업가치 증대

  • 이지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미국변호사 jisoolee@cgcg.or.kr

    입력2013-09-02 0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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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계는 왜 상법 개정안 쌍심지서나

    2012년 12월 26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가운데)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방문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겠다며 법무부가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이며, 그 방안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는 지배주주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한 집행임원제도 도입과 이사회의 감독기능 강화(감사위원 분리 선출 포함), 둘째는 집중투표제도 일부 의무화, 셋째는 전자투표제 일부 의무화, 넷째는 다중대표소송 도입이다.

    개정안이 예고되자마자 그동안 침묵하던 재계의 여러 단체가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포문을 열고 있다. 재계 주장의 요지는 ‘일률적인 지배구조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며, 상법 개정안을 도입할 경우 경영권에 심대한 위협을 초래해 경영활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원인 제공자는 총수 일가

    우리나라의 기업 지배구조가 아시아에서조차 바닥권이라고 평가받는 가운데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요구를 수용해 법무부가 상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고, 이는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공약과도 맞물린다. 그럼에도 재계는 상법 개정안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외환위기까지 겪었던 우리가 왜 또다시 이 지경까지 왔는지를 다시 한 번 성찰해봐야 한다. 이 모든 사태를 촉발한 책임은 기업 경영에서 전횡을 일삼는 총수 일가, 그리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한 이사회에서 찾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한국 경제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성장했지만, 국민이 그것을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그 이유는 기업이 거둬들인 막대한 이익이 국민에게 이전되지 않고 총수 일가의 부만 더 늘려줬기 때문이다. 대기업 총수가 연루된 몇천억 원 단위의 횡령, 배임, 탈세 사건이 몇 달에 한 번씩 신문지상을 장식하는데도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 해당 기업의 이사들은 국민이나 주주에게 사과 한 마디 없다.



    지배주주 일가의 배를 불려주려고 계열사 간 일감을 몰아주고, 회사가 응당 누려야 할 이익을 지배주주 일가에게 양보해도 이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 등기이사라고는 하지만 총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경영을 감시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번에 도입하기로 한 다중대표소송도 비상장회사를 통한 총수들의 사익 추구를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현재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재계는 특히 감사위원 분리 선출에 대해 극렬히 반대한다. 한마디로 총수의 통제를 받지 않는 인사가 회사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는 것이 싫다는 뜻이다. 마치 총수 말을 듣지 않는 인물이 감사위원이 되면 당장 회사를 말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야단법석들이다.

    재계는 왜 상법 개정안 쌍심지서나

    8월 22일 박찬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T빌딩에서 열린 상법 개정안 반대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마디로 주주를 무시하는 발상이다.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국민이나 주주라면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국적을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총수의 전횡과 사익 추구 행위를 방지함으로써 회사를 투명하게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감사위원회와 사외이사제도의 목적이다. 총수의 통제를 받지 않는 외부인사가 들어와 회사 내부를 감사하면 안 될 떳떳하지 못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재계는 자기들끼리만 숨어서 기업 운명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리던 시대가 이미 지났음을 알아야 한다.

    회사를 상장해 주권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순간 기업은 시장의 감시와 통제를 받겠다고 약속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회사법 개정은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뿐 아니라, 여러 아시아 나라에서 이미 진행돼온 일이다. 미국은 회사법 조문을 직접 개정하지는 않았지만 법원 판례와 증권거래위원회(SEC)을 중심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 비용 줄이는 효과도

    재계는 일률적인 지배구조를 강요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기업 지배구조가 우리보다 상당히 앞선 선진국조차 꾸준히 개선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는 실정이다. 똑같은 법조문은 없지만 지배구조를 관통하는 몇 가지 흐름은 어느 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 내용은 이사회의 독립성 제고, 소액주주의 권리 향상과 지속적인 견제 세력 육성으로 집약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최근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종합국가경쟁력은 60개국 가운데 22위로 3년째 같지만 회계투명성을 포함한 기업효율성 부문에서는 25위에서 34위로 추락했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가 기업의 사외이사, 감사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돼 회계투명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업의 대형 비리나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엄청난 비용을 반복적으로 지불해왔다. 이번 상법 개정안을 통해 지배구조가 조금이나마 개선된다면 기업 감시를 내부화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재계 단체들은 총수가 아닌 기업을 실질적으로 대변하는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할 경우 기업의 경영 투명성이 증가할 테고, 이는 결국 기업가치 증대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에 기업 처지에선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다.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그것이 아무리 선한 자에 의해 향유된다 해도 타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도 너무 늦기 전에 상장회사로서 책무를 다하고 주식회사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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