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기춘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원영 고용복지수석, 윤창번 미래전략수석, 홍경식 민정수석, 박준우 정무수석.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8월 5일 청와대 인선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책 드라이브’와 ‘새로운 출발’을 인선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이 이 두 가지 목표 하에서 이뤄졌다는 것.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기간에 인선 문제를 고민했다고 알려졌을 때는 두 달 넘게 공석인 정무수석 자리를 채우는 인사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박 대통령은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을 포함해 청와대 참모진 절반을 바꿔 2기 참모진을 전격 출범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발표 1시간 전에야 들었다. 그만큼 보안을 유지한, 예상치 못한 인사였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청와대 인사는 한 번 중용하면 끝까지 함께하고, 대체로 그 분야에서 경험 있는 무난한 전문가형 인사를 발탁하는 ‘박근혜 인사스타일’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언론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 인적쇄신을 통해 국정운영 고삐를 다시 죄겠다는 박 대통령의 각오를 보여주는 인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자질 논란에 휩싸였던 이들이 대거 교체된 점을 보면 사실상 문책성 경질인 셈이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은 박근혜 청와대가 야심차게 도입한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맡았지만 새 정부 초반 계속된 인사 낙마로 체면을 구겼고, 6월에는 산하기관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관치(官治) 논란’도 나왔다. 5월 대통령 방미 기간에 벌어진 ‘윤창중 사태’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아 이후 대통령이 사과하는 상황이 생긴 점도, 홍익표 전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귀태 발언’과 국정원 국정조사 등 정국 현안에 대해 온건한 자세를 보인 점도 강한 추진력을 강조한 박 대통령의 철학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내년 6월 지방선거도 염두
곽상도 전 민정수석비서관과 최순홍 전 미래전략수석비서관, 최성재 전 고용복지수석비서관도 마찬가지다. 곽 전 수석은 인사 검증 책임자로서 새 정부 초반 장관 후보자들의 잇단 낙마를 불러왔다. 특히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됐다가 해외 비자금 계좌 문제로 중도 하차한 한만수 후보자와 중소기업청장 내정 후 주식 백지신탁 문제로 사퇴한 황철주 후보자의 경우가 대표적 부실 검증 사례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 출신으로 발탁 당시 화제를 모은 최순홍 전 수석은 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최성재 전 수석 역시 지난달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지적에 대해 개선 방안을 추진했을 텐데도 위반사항과 지적사항이 줄지 않아 참 답답하다”고 지적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책 집행 능력을 의심받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문책성 경질 인사라고 단정할 수 없고,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과 8·5 청와대 2기 참모진 출범 전체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더욱이 외교관 출신 인사인 박준우 전 주벨기에 유럽연합(EU) 대사를 정무수석비서관으로 발탁한 점은 파격에 가깝다.
이를 두고 청와대 안팎에선 이번 인사가 10개월도 채 남지 않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포석이란 얘기가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물론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내년 6월 지방선거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대통령 임기 1년 반을 평가받는 주요 선거 아닌가. 만약 여당에서 대통령의 심증이 담긴 후보를 내세웠는데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면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 시기는 박 대통령이 뭔가를 보여줘야 할 시기와도 겹치는 시점이다. 그래서 지방선거 전에 국민이 가장 빨리 체감할 수 있는 복지, 고용 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하고, 이번 인사도 그런 이유가 컸던 것으로 안다.”
그의 말대로 최성재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내놓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설계를 주도했고, 대통령선거 때는 선거대책위원회의 ‘편안한 삶 추진단’ 단장을 맡은 인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에는 기초연금 등 새 정부의 주요 복지정책 설계사로 참여한 측근 중 측근이다. 하지만 최 전 수석은 교수 출신이어서 부처 장악력과 집행, 갈등조정 능력에 한계를 보였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으로선 내년 지방선거 직후인 2014년 7월부터 기초연금 20만 원을 지급한다는 계획을 입법과정을 거쳐 적극 실행할 수 있는 강한 추진력을 가진 수석이 필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순홍 전 수석 역시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에 대한 명확한 구상을 내놓지 못했고, 오랜 미국 생활로 한국말이 서툴러 창조경제 전도사 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반면 최원영 신임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은 복지부에서 장애인제도과장과 연금정책관, 보험연금정책본부장 등 요직을 거쳤고, 부처 장악력이 뛰어나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뭔가를 내놓을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전언이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며칠 전 최경환 원내대표가 ‘창조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대통령직속 창조경제위원회 설치를 제안할 정도였다. 창조경제를 통해 경제와 고용을 활성화하고 이를 선거에 활용해야 하는데, 국민은 아직 모르고 있다. 국민이 체감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연금 같은 복지와 일자리, 경제 아닌가.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최대한 빨리 박근혜 정부의 주요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 인사를 한 거 아닌가.”
“강력한 김기춘 실장 더 적격”
지방선거를 앞두고 ‘PK(부산·경남) 민심 달래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이 경남 거제 출신이고, 홍경식 민정수석비서관(경남 마산)과 최원영 고용복지수석비서관(경남 창녕)도 PK 출신이다. 정홍원 국무총리(경남 하동)와 박흥렬 대통령경호실장(부산),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부산)도 PK 출신.
따지고 보면 PK지역 가운데 경남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 도지사가 탄생했고, 부산은 문재인 의원(부산 사상)이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39.9%를 득표한 곳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부활과 신공항 건설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부산 시민들의 염원인 신공항 건설은 현 정부의 지방공약가계부에서 빠졌으며 해양수산부 청사 입지는 세종시로 확정됐다. 만약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십자포화가 예상되는 PK지역을 내줄 경우 ‘민심 이반’과 국정운영 동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허태열 전 비서실장은 이미 인사검증 실패와 ‘윤창중 사태’, 공공기관장 인사 ‘관치 논란’이 잇달아 터지자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전한 것으로 ‘주간동아’ 취재 결과 확인됐다. 언론은 ‘깜짝 인사’라고 평가하지만 청와대는 이미 한 달여 전부터 비서실장 교체로 가닥을 잡았고, 인선 작업을 거쳤다는 게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허 전 비서실장 교체를 두고 부산시장 출마설, 권력투쟁 패배설, 건강 이상설 등 여러 설이 나돌았지만 전혀 맞지 않은 낭설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을 자신이 떠안고 물러난다고 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청와대가 추진하는 주요 국정과제의 고삐를 죄면서 박 대통령의 민생 공약을 지휘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더 강해질 야당의 공격 강도에 대비하려면 온화한 허 전 비서실장보다 추진력 강한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이 더 적격”이란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