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정희 ‘세한도’의 ‘歲寒圖’ 글씨. 2 ‘그림1’에서 ‘歲’ ‘圖’자 개칠 전후 비교. 3 ‘호운대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書’ 자 개칠 전후 비교. 4 김정희의 가짜 ‘당나라 시인 사공도의 시’. 5 ‘그림4’에서 ‘異’ 자 개칠 전후 비교.
이는 존경받는 컬렉터인 수정 박병래(1903~74)가 자신의 골동품 수집 40년을 정리한 ‘도자여적’이란 책에서 밝힌 내용이다. 일제강점기가 미술품 감정에서도 암흑기였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짚어주는 대목이다. 박병래는 ‘도자여적’에서 1930년대 ‘돈속에도 아주 밝은 수집가’ 창랑 장택상(1893~1969)이 진위에 상관없이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 값을 어떻게 올렸는지를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나라 서화 값을 올리는 데는 창랑이 단단히 한몫을 하였다. 어떤 경매에서 추사의 대련(對聯)이 나왔는데 당시 100원대에 머무르던 물건을 창랑은 2400원에 낙찰시켰다. 그 자리에서는 모두 어리둥절하였다. 심한 경쟁자도 없는데 그런 값을 부를 필요가 있을까 하고. 그러나 다음부터는 그게 바로 시세가 되어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의 값에 활발한 거래를 시작하였다. 물론 창랑이 가지고 있던 모든 추사의 글씨도 몇 배의 값이 나가게 되었다.”
세한도 ‘歲’‘圖’ 개칠…창작의도 맞게 보충
작가의 예술세계를 올바로 알려면 작품 가치나 가격을 논하기 전에 작품 진위부터 밝혀야 한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싶다면 작가의 창작습관은 물론, 그에게서 배운 사람들의 작품과도 비교해 차이점을 밝혀야 한다.
필자는 수업시간에 한 학생으로부터 “김정희 글씨에서 개칠(덧칠)한 흔적이 있으면 가짜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떤 책에서 “누구보다 당신의 작품에 엄격하셨고 서(書)의 도리와 이론에 밝으셨던 추사가 어찌 이런 덧칠을 자신의 작품에 하셨다는 말인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말이다. 하지만 김정희도 아주 드물지만 개칠을 했다. 따라서 개칠했다고 무조건 가짜는 아니다. 개칠한 글씨 가운데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1844년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의 ‘歲寒圖’(그림1) 세 글자에서 ‘歲’ ‘圖’ 두 글자에 개칠을 했다(그림2). 1856년 김정희가 쓴 ‘호운대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書(서)’ 자를 보면 개칠이 됐다(그림3). 두 작품 모두 추사체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개칠이 순식간에 힘 있게 이뤄졌다.
6 철종의 ‘정종대왕 성유비 탁본’. 7 경기 과천시가 소장한 김유제의 ‘편지’. 8 ‘완당간첩’ 중 봉투 필사. 9 ‘완당척독’ 중 봉투 모음.
충남 예산군에 있는 김정희 종가가 소장한 보물 제547호 예산김정희종가유물에서 ‘당나라 시인 사공도의 시’(그림4)는 개칠이 심하게 돼 원래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다. 당연히 김정희의 글씨가 아니다. 위조자는 특정 느낌의 추사체에 가깝게 보이게 하려고 원래 필획에 두껍게 개칠했다. 개칠 이전 글씨를 복원해 개칠된 현재 글씨와 비교하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 수 있다(그림5).
10 ‘완당간첩’ 중 1842년 음력 11월 15일자 김정희 편지 필사본. 11 ‘완당척독’ 중 1842년 음력 1월 10일자 김정희 편지.
추사 가문 사람들의 글씨처럼 ‘본래 위조할 목적 없이 김정희의 글씨를 베낀 필사본’이 그의 작품으로 둔갑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를 찾으려면 옛날에 만들어진 필사본과 진짜 글씨를 비교해 그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완당간첩’은 위조 아닌 모사한 필사본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완당간첩’은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 가서 아우에게 쓴 편지 5통을 베낀 서첩이다. ‘완당간첩’ 한 면에 편지 봉투 2통을 필사한 ‘그림8’을 선문대박물관이 소장한 ‘완당척독’ 가운데 여러 편지 봉투를 모은 ‘그림9’와 비교하면, ‘완당간첩’은 그의 글씨를 모사한 필사본으로, 위조한 것이 아니다. ‘완당간첩’ 가운데 1842년 음력 11월 15일자 김정희 편지 필사본(그림10)과 선문대박물관이 소장한 ‘완당척독’ 가운데 1842년 음력 1월 10일자 김정희 편지(그림11)를 비교하면, ‘김정희의 추사체’와 다르게 발전한 ‘필사자의 추사체’가 분명하게 보인다.
요즘 필자는 주변에서 “감정 노하우를 너무 많이 공개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듣는다. 위조자나 사기꾼도 이 글을 읽고 참고할 게 분명하다는 우려에서다.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말이 있다. 나쁜 마음은 옳은 마음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이 땅에 미술품 감정학의 여명이 밝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