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 전문점 점주들과 가졌던 남영비비안의 소통 워크숍 모습.
갑을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명칭을 바꾸는 일보다 함께 좋은 길로 나아가자는 상생의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차피 주제 하나를 가지고 협력해야 하는 갑과 을 사이에서 상생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함께 발전해가는 파트너
상생을 이루려면 역시 역지사지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갑을관계가 완벽히 평행을 이루는 수평적 구조가 될 수 없다면 서로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역지사지는 직장생활 초년기를 거쳐 지금의 경영자 위치에 오르기까지 내가 현장에서 체득한 가장 값진 교훈이기도 하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당시엔 제품을 납품한 후 대금을 받으려면 제품을 납품한 해당 유통사를 직접 방문해야 했다. 한 번은 판매대금을 받으려고 유통사 담당자를 찾아갔는데 그때 황당한 경험을 했다. 30분 이상 기다려도 담당자는 오지 않았고, 급기야 그 담당자가 점심을 먹으려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끝내 허탕을 치고 돌아와야 했다.
그 씁쓸한 경험이 변화의 계기가 됐다. 이후 우리 회사와 거래하는 모든 협력사의 납품대금을 통장으로 지급하기 시작했고, 물품대금 지급방식을 개선해 협력사의 자금운용이 원활해지도록 했다. 또한 우리 회사 담당자를 만나려고 방문하는 협력사 담당자들이 좀 더 편하게 일할 수 있게 상담실을 마련했으며, 각 자리에 무선인터넷을 설치해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 또한 음료수를 마련해놓는 등 사소한 데도 신경 씀으로써 협력사 담당자들의 부담감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요즘에야 사소하고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역지사지는 거창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부터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려면 상대 처지가 돼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는 만큼 좀 더 많은 대화를 통해 진정한 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소통의 기회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남영비비안은 전문점 대표나 협력사와 함께 하는 워크숍 또는 간담회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기회를 주기적으로 갖는다.
단, 소통 기회를 갖는다고 해도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새겨듣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상대방 의견을 귀담아듣는 자세에서 가장 기본은 상대방을 나와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인정하는 마음가짐이다. 위아래로 나누기보다 함께 노력해 발전해나갈 상대로 바라보는 것, 갑을관계 문제의 해결은 바로 이런 근본적인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김진형은
1955년 강원 원주생. 78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2002년 7월 대표이사에 오른 이후 12년째 현직을 유지하는 의류업계의 대표적인 장수 최고경영자(CEO). 영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브랜드를 다양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