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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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냥 사랑…참 어렵다”

현행법상 불법 ‘쉬쉬’ 결혼식…생활하며 온갖 차별 말도 못 해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3-06-03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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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그냥 사랑…참 어렵다”

    5월 15일 서울 동작구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에서 동성 공개 결혼식을 발표한 김조광수(왼쪽), 김승환 커플.

    “결혼식을 한 뒤 혼인신고를 할 것이다. 반려될 공산이 크지만 그땐 헌법 소원을 제기하겠다. 동성애 결혼은 불법이 아니다. 합법이 아닐 뿐이다. 이성애자들은 당연히 누리는 권리인데 동성애자들에겐 합법이 아니란 점이 문제다.”

    5월 15일 서울 동작구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에서 김조광수(48) 영화감독은 연인 김승환(29) 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동성 공개 결혼식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2004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만나 2005년부터 8년째 교제한 사이로 양가 부모의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9월 7일 서울에서 올리는 공개 결혼식엔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초청할 예정이다. 또한 축의금은 성적소수자를 위한 센터 건립에 사용할 생각이다.

    이들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개 동성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이다. 하지만 결혼식을 치른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행법상 두 사람은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법에 혼인할 때 ‘남녀 간에 혼인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 남녀가 아닌 남남, 여여 커플은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다. 앞으로 김조 감독은 헌법 소원을 제기하는 한편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동성결혼 관련법을 입법화할 계획이다.

    물론 이전에도 동성결혼을 택한 사람들은 있었다(상자기사 참조). ‘친구사이’의 한 활동가는 “2004년 동성결혼한 분(게이)이 있는데 동사무소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법적 조치는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 “그 외 개별 동성결혼 사례는 취합하지 않아서 대략적인 추세도 알기 어렵다”고 밝혔다.

    헌법소원 제기된 적 없어



    지난해 ‘경향신문’에는 2010년 결혼한 레즈비언 커플 사연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세상은 동성의 부부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신혼부부 아파트 분양을 신청하려다 포기했다. 2년 전 갑상샘 수술을 한 뒤 통원치료를 받았지만 다시 입원한다면 내 배우자는 보호자가 될 수 없다. 바쁜 배우자 대신 부동산 계약을 하려고 해도 ‘내가 부인(혹은 남편)이니까 대신할게요’란 말을 꺼낼 수도 없다. 입양이 가능하긴 하지만 한 명은 아이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 된다. 세상은 엄마가 두 명인 집을 인정하지 않는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기 위해 헌법소원 등 애를 써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법적으로 동성결혼을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경우는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 자체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됐지만 이마저도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됐다. 김한길 민주당 의원이 2월 12일 같은 당 소속 의원 51명과 함께 발의한 이 법안은 성별, 나이와 정치적 견해, 성적 지향, 학력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성적 지향’이란 조항이다.

    김한길 의원은 법안을 공동 발의한 의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법안 발의 이후 기독교 일부 교단을 중심으로 법 제정 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됐다. ‘주체사상 찬양법’ ‘동성애 합법화법’이라는 비방과 ‘종북 게이 의원’이라는 낙인찍기까지 횡행했다. 발의한 법안을 철회하고 재논의를 통한 단일안을 추진하고자 한다”며 법안 철회 배경을 밝혔다. 실제로 김 의원을 포함한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실에는 3월부터 항의전화가 하루에 수백 통씩 쏟아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동성결혼이 이슈가 된 적도 없다. 이화여대 레즈비언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하늘을 날다’에서 펴낸 레즈비언 문화제 자료집은 “2011년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 진영에서 관련 논의가 있었다”고 지적하지만 이 또한 활동가마다 견해가 다르다.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보장을 위한 연구모임’(‘가족구성권연구모임’) 간사이자 ‘친구사이’ 사무국장인 기즈베 씨는 “가족구성권에 관한 연구에서 동성결혼이 이슈가 돼 활발히 논의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비정상가족으로 사는 고충

    “우리 그냥 사랑…참 어렵다”

    4월 27일 서울역 광장에서 시민들이 동성애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차별금지 법안’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은 2006년 만들어져 동성 파트너를 포함한 다양한 생활동반자관계 가족공동체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법률을 연구하고 있다. 모임이 발간한 ‘대안적 가족제도 마련을 위한 기초 자료집 2008’에는 성소수자가 가족을 구성할 때 겪는 차별과 함께 해결책으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다양한 가족구성권 형성’을 제시한 바 있다.

    김조 감독의 결혼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동성결혼에 관한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동성애자가 결혼이란 법적 제도에 편입하지 못해 겪는 불편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성결혼 자체에 대한 호불호를 판단하기 전 그들의 생각부터 들어보는 건 어떨까. 다음은 기즈베 씨가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 ‘너, 나, 우리‘랑’’ 인터뷰 기사에서 밝힌 고충이다.

    “기존의 가족제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이성애 가족을 제외하면 모두 ‘비정상가족’으로 규정하고 차별한다. 동성애 가족, 트랜스젠더 가족, 장애인 가족, 기혼 이주여성 가족 등 다양한 소수자 가족은 사회적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가족을 이루고 있더라도 직장 내에서 가족 수당도 받을 수 없고, 보험에서는 수혜자로 등록할 수도 없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SH(SH공사)에서 운영하는 주택의 입주권에서도 차별이 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차별이 있다.”

    2000년 결혼한 동성커플의 고백

    “결혼해도 친권, 법적 혜택 전혀 없어”


    다음은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2004 토론회’에서 ‘한국에서 동성결혼은 가능한가’란 주제로 자신의 동성결혼 경험담을 들려준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여기동 씨의 사연이다. 여씨 커플은 2000년 6월 25일 친구 5명을 집에 초대해 정한수를 떠놓고 결혼식을 올렸다.

    ● 가족적 측면 우리는 남들처럼 부모형제로부터 축복받는 결혼식을 할 수 없었다. 양가 상견례도 못 했다. 어머니에게는 파트너를 친구라고 소개했고, 결혼식 후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하다 1년 뒤 커밍아웃했다. 어머니는 매우 놀랐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누나와 조카들은 암묵적으로 인정하지만 막내누나는 외부에 사실을 드러내지 말라고 강요한다.

    ● 사회적 차별

    국민연금 내가 월급에서 매월 불입하는 연금액은 한 달에 약 10만 원이다. 우리가 게이 부부임을 밝히고 상속관계를 문의하자 국민연금 담당자는 “당사자가 법적으로 싱글로 사망하면 국가에서 환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의료보험 우리는 의료보험료를 각각 납부한다. 내 직장의료보험에 파트너 이름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4년간 월 3만 원씩 총 140만 원을 낭비했다.

    가족의 경조사 휴가 직장에서 배우자의 부모형제 장례, 결혼, 환갑 등 각종 경조사 휴가를 받을 수 없다. 또한 배우자 부모가 아플 때 가족간병 휴직제도(최장 1년)를 신청할 수 없다. 한편 결혼휴가를 받을 수 없어 결혼식 그다음 주 주말에 2박3일로 다녀와야 했다.

    보험금 상속 각자 생명보험, 암보험, 건강보험 등에 가입했다. 결혼 후 사망 시 수익자를 배우자로 변경하려고 하자 법적 배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변경할 수 없었다. 결국 친구관계로 서명해 일일이 전환했다. ㄷ생명은 사망 시 수익자를 친구로 변경할 수조차 없어 해당 연금보험 가입을 포기했다. 1년마다 재가입해야 하는 자동차보험은 사망 시 수익자를 친구관계로 지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부부한정 특약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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