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프랑스, 더 말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든 모두가 전쟁터의 성 문제로 여성을 이용하지 않았나.”
물 타기 작전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공동대표 얘기다. 하시모토 대표는 5월 20일 밤 일본유신회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도 나빴다. 전쟁터의 성 문제로 여성을 이용했던 것은 틀림없다”고 말한 뒤 이처럼 발언했다. 근거는 없다.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궤변이다. 일부 병사의 일탈이 있었을지 몰라도 일본처럼 정부와 군이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여성을 강제 동원한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장의성 홍보부장은 “베트남전에 파병한 한국 보병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고지로 곧바로 투입됐다. 민간인은 구경도 하기 힘들었다. 전투지 대부분이 밀림이어서 이동도 헬기로 했다”고 반박했다.
하시모토 대표는 앞서 5월 13일 느닷없이 위안부 관련 발언을 쏟아냈다. “전쟁 때 (군인들에게) 쉴 수 있게 해주는 데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 주일 미군이 병사들의 욕구 해소를 위해 풍속업(매춘업)을 활용하면 좋겠다.” 7월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일본의 우경화 바람에 편승해 ‘한 건’ 하려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격분하고 한국이 반발하자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며 언론에 화풀이했다. “군이 위안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라며 주어도 바꿔치기했다.
“한국군도…” 물귀신 작전
코너에 몰린 하시모토 대표에게 같은 당 소속 중진의원이 결정타를 먹였다.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64·6선) 의원은 5월 17일 당 중의원 의원회의에서 “일본에는 한국인 매춘부가 우글우글하다. 오사카 번화가에서 (한국 여성에게) ‘너 한국인, 위안부지’라고 얘기해도 될 정도”라고 막말을 했다. 하시모토 대표를 지원한답시고 한 발언이었다. 파문이 확산되자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음을 지으며 “내가 한국 매춘부를 직접 세어본 것은 아니니까 발언을 철회한다”고 했다. 일본유신회가 그를 제명 처분했지만 니시무라 의원은 하시모토의 혼네(本音·속마음)를 대변했다고 보는 게 정확할 듯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하시모토 대표의 위안부 관련 발언 이후 “생각이 다르다”며 냉담하게 돌아섰다. 참의원선거 후 헌법 개정을 위한 연대를 생각하지만 위안부 발언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하시모토 대표는 사실 아베 총리에게서 한 수 배운 조역에 불과하다. 최근 사태의 원조는 아베 총리 자신이다.
아베 총리는 4월 23일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침략이라는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 관계에서 어느 측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발언했다. 담화의 근본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 언론까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서자 그는 “학문적으로 여러 논의가 있어 절대적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말했던 것으로, 정치가로서 (이 문제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일단 물러섰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의 ‘치고 빠지기’ ‘대타 투입’ 작전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손발이 착착 맞아 돌아갔다. 5월 12일 집권 자민당의 3역 가운데 한 명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여) 정무조사회장이 “당시는 일본의 생존 자체가 위험해 많은 이가 나라를 지키려고 전쟁에 나갔다. ‘침략’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무라야마 담화가 적절하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읊은 것이다. 13일에는 하시모토 대표가 “침략에 학술적 정의는 없다는 것은 총리가 얘기한 그대로”라고 주장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공동대표는 한 술 더 떠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행적에 대해 아예 “침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침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자학일 뿐이다. 역사에 관해 무지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용기를 얻었는지 아베 총리는 전선을 야스쿠니 신사로 옮겨갔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최신호 인터뷰에서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미국 국민이 전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소인 알링턴 국립묘지를 생각해보라. 미국 대통령도 그곳에 가고, 나도 일본 총리 자격으로 방문했다”며 참배 강행 의사를 밝혔다.
일본 우익 양심 세력 몰락
아베 총리의 주장은 물론 어불성설이다. 알링턴 국립묘지와 달리 야스쿠니 신사는 국제사회가 판정 내린 A급 전범을 합사한 곳이다. 총리의 참배는 과거 침략전쟁에 대해 국가가 면죄부를 주는 동시에 전후 국제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는 사적인 종교시설로 총리의 참배는 정교(政敎)분리를 규정한 일본 헌법 20조에도 위배된다.
불행히도 일본 정치가들의 망언 행렬과 우경화 현상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국민의 저항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익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다시 한 번 ‘국민 길들이기’에 성공했다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른다. 아베 1차 내각 때인 2006년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개인의 존엄보다 공공 정신과 전통 계승을 강화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김후련 한국외대 교수는 지난해 내놓은 저서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에서 일본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전후 일본을 지배해온 것은 ‘과거사에 대한 집단 망각’과 이에 대한 ‘기억의 재프로그래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21세기에 들어선 현재 일본 우익들에 의한 기억의 재프로그래밍은 거의 최종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중략) 마지막 남은 관문은 ‘일본국헌법’을 전면 개정하는 것뿐이다.”
외교관 출신의 외교 평론가로 아베 총리의 ‘외교 가정교사’라고 불리는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는 3월 8일자 ‘산케이신문’ 기고에서 일본 우익의 ‘혼네’를 밝혔다. 그는 “일본 보수주의에 크게 2가지 과제가 있다”며 ‘전후 사관(史觀) 불식’과 ‘전후 체제 탈각’을 거론했다. 전후 사관 불식은 요즘 쏟아지는 망언 릴레이로, 그리고 전후 체제 탈각은 집단적 자위권 확보 및 평화헌법 9조 개정 등 군사대국화 움직임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이 움직임은 속도 조절은 있을지 몰라도 양심 세력이 몰락한 최근 일본의 정치 지형을 보면 후퇴는 없을 것 같다. ‘나쁜 이웃’을 둔 한국의 갈 길이 험난하다.
물 타기 작전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공동대표 얘기다. 하시모토 대표는 5월 20일 밤 일본유신회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도 나빴다. 전쟁터의 성 문제로 여성을 이용했던 것은 틀림없다”고 말한 뒤 이처럼 발언했다. 근거는 없다.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궤변이다. 일부 병사의 일탈이 있었을지 몰라도 일본처럼 정부와 군이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여성을 강제 동원한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장의성 홍보부장은 “베트남전에 파병한 한국 보병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고지로 곧바로 투입됐다. 민간인은 구경도 하기 힘들었다. 전투지 대부분이 밀림이어서 이동도 헬기로 했다”고 반박했다.
하시모토 대표는 앞서 5월 13일 느닷없이 위안부 관련 발언을 쏟아냈다. “전쟁 때 (군인들에게) 쉴 수 있게 해주는 데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 주일 미군이 병사들의 욕구 해소를 위해 풍속업(매춘업)을 활용하면 좋겠다.” 7월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일본의 우경화 바람에 편승해 ‘한 건’ 하려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격분하고 한국이 반발하자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며 언론에 화풀이했다. “군이 위안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라며 주어도 바꿔치기했다.
“한국군도…” 물귀신 작전
코너에 몰린 하시모토 대표에게 같은 당 소속 중진의원이 결정타를 먹였다.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64·6선) 의원은 5월 17일 당 중의원 의원회의에서 “일본에는 한국인 매춘부가 우글우글하다. 오사카 번화가에서 (한국 여성에게) ‘너 한국인, 위안부지’라고 얘기해도 될 정도”라고 막말을 했다. 하시모토 대표를 지원한답시고 한 발언이었다. 파문이 확산되자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음을 지으며 “내가 한국 매춘부를 직접 세어본 것은 아니니까 발언을 철회한다”고 했다. 일본유신회가 그를 제명 처분했지만 니시무라 의원은 하시모토의 혼네(本音·속마음)를 대변했다고 보는 게 정확할 듯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하시모토 대표의 위안부 관련 발언 이후 “생각이 다르다”며 냉담하게 돌아섰다. 참의원선거 후 헌법 개정을 위한 연대를 생각하지만 위안부 발언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하시모토 대표는 사실 아베 총리에게서 한 수 배운 조역에 불과하다. 최근 사태의 원조는 아베 총리 자신이다.
아베 총리는 4월 23일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침략이라는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 관계에서 어느 측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발언했다. 담화의 근본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 언론까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서자 그는 “학문적으로 여러 논의가 있어 절대적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말했던 것으로, 정치가로서 (이 문제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일단 물러섰다.
4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용기를 얻었는지 아베 총리는 전선을 야스쿠니 신사로 옮겨갔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최신호 인터뷰에서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미국 국민이 전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소인 알링턴 국립묘지를 생각해보라. 미국 대통령도 그곳에 가고, 나도 일본 총리 자격으로 방문했다”며 참배 강행 의사를 밝혔다.
일본 우익 양심 세력 몰락
아베 총리의 주장은 물론 어불성설이다. 알링턴 국립묘지와 달리 야스쿠니 신사는 국제사회가 판정 내린 A급 전범을 합사한 곳이다. 총리의 참배는 과거 침략전쟁에 대해 국가가 면죄부를 주는 동시에 전후 국제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는 사적인 종교시설로 총리의 참배는 정교(政敎)분리를 규정한 일본 헌법 20조에도 위배된다.
불행히도 일본 정치가들의 망언 행렬과 우경화 현상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국민의 저항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익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다시 한 번 ‘국민 길들이기’에 성공했다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른다. 아베 1차 내각 때인 2006년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개인의 존엄보다 공공 정신과 전통 계승을 강화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김후련 한국외대 교수는 지난해 내놓은 저서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에서 일본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전후 일본을 지배해온 것은 ‘과거사에 대한 집단 망각’과 이에 대한 ‘기억의 재프로그래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21세기에 들어선 현재 일본 우익들에 의한 기억의 재프로그래밍은 거의 최종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중략) 마지막 남은 관문은 ‘일본국헌법’을 전면 개정하는 것뿐이다.”
외교관 출신의 외교 평론가로 아베 총리의 ‘외교 가정교사’라고 불리는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는 3월 8일자 ‘산케이신문’ 기고에서 일본 우익의 ‘혼네’를 밝혔다. 그는 “일본 보수주의에 크게 2가지 과제가 있다”며 ‘전후 사관(史觀) 불식’과 ‘전후 체제 탈각’을 거론했다. 전후 사관 불식은 요즘 쏟아지는 망언 릴레이로, 그리고 전후 체제 탈각은 집단적 자위권 확보 및 평화헌법 9조 개정 등 군사대국화 움직임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이 움직임은 속도 조절은 있을지 몰라도 양심 세력이 몰락한 최근 일본의 정치 지형을 보면 후퇴는 없을 것 같다. ‘나쁜 이웃’을 둔 한국의 갈 길이 험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