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공개한 한국의 첫 쇄빙선 ‘아라온호’. 남극과 북극에서 1m 두께 얼음을 3노트 속력으로 연속 쇄빙할 수 있는 이 과학탐사선은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됐다.
해빙 지역과 기간이 늘어나면서 북극 자원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여기에 국제유가가 강세를 유지하면서 경쟁력이 높아지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 나선 북극 연안국과 글로벌 기업들의 개발 사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북극이 뜨거워진 또 다른 이유다.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러시아는 바렌츠 해와 카라 해 연안에 가스 파이프라인을 연이어 설치했다. 미국은 북극탐사 예산을 40% 증액했고, 캐나다는 글로벌 자원기업에 북극 해상광구에 대한 개발권을 부여했다. 쉘, 엑슨모빌,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등 글로벌 자원기업의 각축전도 한창이다. 쉘은 극지를 운항할 수 있는 원유 굴착용 선박을 2012년부터 알래스카 자원개발에 투입했고, 노르웨이의 스탯오일은 바렌츠 해와 캐나다, 알래스카, 그린란드 등에서 자원개발을 추진 중이다.
한국에 여러모로 유리한 기회
우리라고 뒤처질 수만은 없다. 최근에는 5월 한국이 북극평의회(Arctic Council)의 영구옵저버로 승격할 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나왔다. 북극권에 영토를 가진 8개국이 구성한 협력체인 북극평의회는 관련 사업을 결정하고 진행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영구옵저버에겐 북극평의회 정기회의에서의 발언권을 제외한 모든 권한이 부여된다. 향후 한국 정부와 기업이 북극 개발에 참여할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특히 자원, 플랜트, 해상운송, 조선, 수산업 등에서 상당한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북극 바닷길에 어떤 장점이 있기에 이렇듯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일까. 최근 이용량이 급증하는 북극항로는 동아시아와 북대서양 양안 지역을 잇는 최단거리 해상경로다. 기존 최단 해상경로는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항로로, 북극항로는 그에 비해 거리는 30%, 시간은 6일 이상 단축된다. 더욱이 해적의 위험이 없어 보험료 부담이 줄어드는 장점도 있다. 해운업계 처지에선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한 예로 2010년 러시아 유조선 발티카호와 노르웨이 철광석 벌크선 노르딕 바렌츠호가 시험운항에 성공한 바 있는데, 특히 노르딕 바렌츠호는 경비를 26만 달러나 절감했다. 2011년 6월 이후 러시아가 원자력 쇄빙선 이용료를 인하하자 북동항로를 이용하는 화물은 2010년 11만t에서 2012년 102만t으로 9배나 증가한 바 있다. 경제성이 확보되면 고객은 넘쳐날 것이다. 이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어서 2030년에는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필리핀, 홍콩 등 동아시아의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 6억3900만TEU(보통의 20피트 컨테이너 한 량) 가운데 7%가 수에즈 항로에서 북동항로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북극항로가 조기에 열리면 한국은 여러모로 기회를 맞게 된다. 먼저 조선·플랜트 산업이 신규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 극지용 선박 제조기술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한국 기업은 이미 북극 운항용 쇄빙 유조선이나 내빙 LNG선 등을 러시아나 북유럽 선사들로부터 주문받아놓은 상태다.
한국 항구에도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 북극항로에서 한국이 위치적으로 유리한 데다 세계 수준의 항만 인프라도 구비한 덕에 향후 동북아 해상물류의 허브로 성장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러시아와 북유럽에서 생산한 자원이 아시아에 수출될 때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생산한 석유화학 제품이 유럽으로 수출될 때도 모두 마찬가지다. 이 경로 위에 위치한 부산항, 울산항, 여수항 등 우리 항만은 연료유나 선용품 공급, 선원 교체 승선 같은 최적의 운항지원 서비스를 갖췄다. 뛰어난 입지와 정시성,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부산항은 이미 2012년 컨테이너 물량 세계 5위, 환적량 세계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북극항로의 최대 수혜자가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뭐니 뭐니 해도 북극의 최대 잠재가치는 지하자원이다. 북극지역에는 전 세계 미발견 석유와 가스 자원량의 22%에 해당하는 4120억 배럴(석유 환산 배럴)이 매장돼 있다. 러시아, 캐나다, 노르웨이 등 연안국을 중심으로 61개 대형 매장지를 이미 개발했으며, 그중 46개가 생산단계에 진입했다. 화석연료 외에도 2조 달러 상당의 철광석, 구리, 니켈 등이 잠들어 있으며 금, 다이아몬드, 은, 아연, 납, 우라늄 같은 고부가가치 광물자원도 풍부하게 분포해 있다. 그뿐이 아니다. 한류성 어류의 지속적인 증가로 2020년경에는 세계 수산물 생산량의 37%를 북극 주변 어장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자원개발을 위한 우리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미 그린란드와 자원개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데다, 한국가스공사가 2011년 1월 캐나다 MGM에너지의 우미악(Umiak) 가스전 지분 20%를 매입함으로써 북극권 자원개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은 영하 40도에서도 견디는 극저온·고강도 강재, 극지용 드릴십,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 등 자원개발에 필수적인 해양플랜트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일에 박차를 가한다.
‘남는 장사’는 따로 있다
이렇게만 보면 온통 장밋빛 일색이지만, 걸림돌도 만만찮다. 북극개발이 현실화하면서 오히려 경쟁도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2009년 러시아가 북극 해저에 깃발을 꽂은 뒤, 해양경계 획정 과정에서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을 확장해 좀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려는 연안 5개국의 영유권 분쟁도 뜨겁게 달아오른다. 더욱이 북극 지역의 혹독한 날씨 탓에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플랜트나 운송설비를 만드는 데 막대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개발이 가속화하면서 환경보호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함께 증가하자 국제적으로 북극개발 반대 여론이 확산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로 인해 최근 BP, 스탯오일, 쉘, 토탈 등 글로벌 자원메이저들이 이미 착수했던 북극해 자원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북극 자원개발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면서 셰일가스 같은 다른 경로의 에너지원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도 적지 않다.
이처럼 엄청난 기회와 녹록지 않은 걸림돌이 혼재한 북극은 경제적 매력에 앞서 무엇보다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동시에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투트랙(Two-Track)’ 전략이 절실한 것이다. 연안국이 북극 해역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을 견제하면서 북극을 보호하려면, 한국이 확보하게 될 북극평의회 영구옵저버 구실을 강화하는 동시에 북극조약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를 유도해내야 한다.
또한 걸림돌이 곳곳에 숨은 자원개발보다 상업적 활용이 임박한 북극항로 부분에 역량을 먼저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안정적 운항을 지원할 컨트롤타워를 마련하고 우리 항만의 허브 항구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작업을 준비해나갈 필요가 있다. 모두가 자원개발에 뛰어든다고 덩달아 섣부르게 참여하기보다, 우리가 비교우위를 점하는 자원개발용 플랜트에서 기술 격차를 벌려 각 나라에 판매하는 게 훨씬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 물류상 유리한 입지를 십분 활용해 러시아나 노르웨이 같은 연안국과 자원 물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자원개발 틀을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는 장기 플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