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김무성, 안철수 무소속 의원(왼쪽부터)이 당선 축하 화환을 목에 걸고 활짝 웃고 있다.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재보선)에서 안철수(서울 노원병), 김무성(부산 영도), 이완구(충남 부여·청양) 후보가 당선되면서 정치판이 태풍 전야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새 정치 실험은 야권 재편과 직결돼 있고, 5선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당장 여권 차기 당권구도 변화의 핵으로 떠올랐다. 3선인 이완구 새누리당 의원은 정우택 최고위원(전 충북지사), 박성효 의원(전 대전시장)과 ‘충청 블록’을 형성해 충청권 지분을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됐다.
# 안철수 새 정치 밑그림은?
당장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안 의원은 현실 정치인으로 ‘부활’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로 뜰 때 그의 지지율은 5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지난해 9월 대통령선거(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양자대결에서 앞서나가기도 했지만, 과반을 훌쩍 넘는 성적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에서는 득표율 60.5%를 보여줬다. 그로서는 가장 좋은 결과다. 단순히 ‘안철수 현상’의 ‘현상’ 인물에서 ‘실제’ 인물로 탈바꿈한 것이다.
안 의원의 재보선 결과는 여전히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가 얻은 60.5%라는 득표율은 최근 10년간 노원병 지역 선거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19대 총선에서 야권 단일후보였던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의 57.21% 득표율도 뛰어넘었다.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가 30%대 초반 득표에 그친 것을 보면 새누리당 지지층 일부가 안 의원을 지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전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새누리당 지지층의 20% 정도는 안 의원을 지지한 것으로 나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인위적인 후보 단일화나 야권연대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사표 방지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안 의원에게 범야권 표심이 결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권과 야권 모두의 표심을 끌어들인 것은 여전히 ‘안철수 현상’이 유효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와 동시에 이번 선거는 안철수 현상의 ‘한계’도 보여줬다. 투표 전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여전히 그의 지지층은 20~40대에 집중됐다. 50대 이상 유권자로부터 외면당하는 한계가 이번 선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보수나 진보 성향 유권자로부터 일정 부분 지지를 받으면서 이념적 한계는 어느 정도 극복했다 하더라도 특정 세대에만 집중된 지지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는 숙제를 떠안았다.
또한 여의도에 입성한 만큼 그가 표방한 새 정치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보여줘야 한다. 안 의원은 4월 8일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치는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것이고, 서민 중산층을 위한 민생정치”라며 “당선되면 새 정치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그가 밝힌 의원정수 축소나 세비 삭감 주장은 새 정치에 대한 국민 욕구에 미치지 못한다. 새 정치 구상을 구체적 법안이나 정책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 친박 좌장의 화려한 귀환
따라서 안 의원은 새 정치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을 하면서 정치세력을 넓혀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5월 초부터 야권 심장부인 광주 방문을 계획하는 것도 독자 세력화 행보로 보는 시각이 많다. 향후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대선 등을 고려하면 호남의 정치지형을 흔들어야 하고, 장기적으로 민주통합당과의 연대냐, 통합이냐의 ‘샅바싸움’을 위해서라도 입지를 다져야 한다.
‘안철수 신당’에 대한 호남 민심도 나쁘지 않다. 민주통합당(민주당) 중앙당 전략기획위원회가 3월 광주(700명), 전남(1099명)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표준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p)에서 ‘내년 6월 지방선거 지지 정당 후보’를 묻는 질문에 광주 지역 응답자 37.5%가 안철수 신당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답변은 35.8%였다. 전남 지역은 42.7%가 민주당 후보를, 29.4%가 안철수 신당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인물 영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10월 재보선을 전후해 신당을 창당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여러 사람과 논의해야겠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쯤 해서 광주를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며 “광주뿐 아니라 전국을 돌며 정치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조직화, 세력화 작업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새 정치에 공감하는 의원들과 연구모임을 만들거나 원내세력화를 시도하면서 10월 재보선 후 새롭게 만들어진 정치지형과 여론을 봐가며 내년 6월 지방선거 전후로 결단을 내릴 개연성이 높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관계자는 “10월 재보선에서 안 의원 측 인사가 다수 당선되면 힘의 균형이 안 의원 쪽으로 급격히 쏠리게 돼 민주당 의원의 ‘엑소더스’(집단 탈당)가 일어날 수 있다. 반대의 경우 2007년 대선 당시의 문국현 전 의원처럼 ‘1인 정당화’가 될 수도 있다”며 “10월 재보선은 안 의원 측과 민주당의 야권 재편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경윤호 정치평론가는 “현실정치 무대에 오른 안 의원이 자기희생과 새 정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 오히려 국민은 ‘안철수 거품’을 확인하고 민주당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다”면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안 의원이 말한 소통과 민생을 강조하고 유연한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안 의원의 필요성과 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 중심의 야권 재편을 예상하기도 하지만 현재로선 요원해 보인다. 그가 말한 새 정치와도 맞지 않고, 민주당 정당 지지도(22.3%·리서치 앤 리서치, 전국 1000명 대상, 4월 22일 조사)가 새누리당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민주당 역시 20%대로 추락한 정당 지지도를 10월 재보선 이전에 끌어올려야 하는 정체절명의 과제를 안았다. 여론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대선 평가도 그렇고, 4월 재보선 전패(全敗) 성적표는 당내외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다.
안 의원과 함께 김무성, 이완구 의원의 ‘컴백’이 갖는 의미도 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에서 보듯 새누리당은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협상력과 지도력 있는 정치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김 의원은 4월 24일 당선된 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내년 5월까지인) 당대표 임기는 보장해야 한다”며 몸을 낮췄지만, 당장 5월에 있을 원내대표 선거와 10월 재보선, 그리고 내년 전당대회와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그가 당내 역학구도 변화의 중심이 되리란 관측이 지배적이다(‘주간동아’ 884호 참조). 당내에선 “이젠 김무성 자신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하지만 부산 영도 투표율이 36%에 머문 것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낮은 투표율은 대선 기간 약속한 PK(부산·경남)지역에 대한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는 경고일 수도 있다. 그가 당내 역학구도 변화의 중심이 되면, 동남권 신공항 선정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문제는 현 정부 내내 김 의원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 의원은 ‘충청권 맹주론’에 걸맞게 높은 투표율(44.2%)과 압도적인 득표율(77.4%)을 보이며 향후 새누리당 내 역학구도에서 만만찮은 힘을 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에서 충청권에서 득표율 55%를 넘기지 못했다. 그의 득표율은 13대 총선에서 80.9%를 얻은 김종필(JP) 전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현재 충남·북 도지사가 민주당 소속임을 감안하면 이 의원의 높은 득표율은 분명 정치적 자산이다. 충청권 영향력을 기반으로 원내대표 선거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고 직접 당권 도전을 시도할 수도 있다.
# 충청 큰 인물 행보에 주목
충남도지사를 지낸 이 의원이 정우택 최고위원과 박성효 의원, 6선인 이인제 의원과 손잡고 ‘충청 블록’을 형성한다면 김종필 전 총리처럼 지방선거와 총선, 그리고 대선까지 캐스팅 보트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이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해 충남도지사직을 던졌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는 만큼 당내 운신 폭은 크다. 그가 재보선 과정에서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려고 출마한 건 아니다. 충청 지역 발전을 위해 큰 정치를 하겠다. 큰 정치, 큰 인물론에 걸맞은 정치 행보를 구상하겠다”고 밝힌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Lincoln)’에서 링컨 대통령은 “나침반은 정북 방향을 가리켜준다. 그 길에 있는 늪, 사막, 협곡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화는 수정헌법 13조(노예제 폐지)를 통과시키려고 링컨이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는지를 잘 보여준다. 4·24 재보선을 통해 거물급 정치인 3명이 원내에 진입했다. 이젠 그들이 어떻게 늪을 지나 깊은 협곡과 뜨거운 사막을 건너 자신들의 목표를 이뤄나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