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차티드 플레이’의 주요 구성원들. 맨 앞에 앉은 이가 제시카 매튜스, 두 번째 줄 왼쪽이 줄리아 실버만이다.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필자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왜 노동자의 스포츠라는 축구에서마저 부유한 국가가 강국이 돼버렸을까. 시장 크기, 과학의 힘, 그리고 방송의 위력.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축구공조차 자본의 힘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런 축구공의 오늘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당찬 여대생 최고경영자(CEO)들이 있다.
“나는 사회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야. 이 수업은 실험 때문에 다들 꺼리지만 그래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하버드대에 다니던 여대생 줄리아 실버만이 친구인 제시카 매튜스에게 건넨 첫 마디에서 모든 것은 시작됐다. 당시 제시카는 그 나름의 계획을 갖고 공대 수업을 들었다. 친환경 제품을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겠다는 게 그의 꿈이었다. 둘 다 3학년생으로 공대 수업이 전공과목이 아니었음에도 흥미를 갖고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같이 지내는 동안 관심이 겹치는 아이템이 떠올랐다. 수업시간에 배운 동력 에너지를 일상의 움직임에서 지속가능하도록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다. 운동장에서 공을 갖고 노는 학생들을 보며 떠오른 영감이었다.
“저 많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한데 모을 수 없을까?”
“그럼 어디에 모으지?”
“축구공 자체에 모으면 어떨까?”
“축구공에 에너지를 모은다고?”
“그래. 축구공에 동력기를 집어넣으면 공을 차고 튀기고 던지는 과정에서 동력을 충전할 수 있을 거야.”
30분 공놀이로 3시간 전구 사용
축구공 전력기로 켠 불빛으로 공부하는 제3세계 국가 어린이.
이들은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 축구공의 탄력과 마찰에 견딜 수 있도록 내부구조를 입체화하고 다듬었다. 놀라운 건 이들의 노력이 축구공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취업 준비에 바쁜 4학년생이 되고 난 후에도 이들은 축구공을 판매하려고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처음 염두에 둔 개발도상국 아이들과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려고 자신들의 소켓 축구공을 판매할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을 오픈했다. 물론 두 여대생의 비즈니스 투자에 대해 주변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세계 최고 명문대를 졸업하고 겨우 사회적기업을 한다고? 그것도 축구공을 팔아 전력을 공급한다? 그 땅값 비싼 미국 뉴욕에 로드숍을 만들어서?”
핀잔과 조롱이 이어졌지만 두 창업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빈민촌에 부족한 기름을 보충하는 차원에서 전등과 물 정화기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의지로 자금 모으기에 나섰고, 결국 2008년 뉴욕 로드숍에서 당당히 판매를 시작했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지금도 전 세계 25% 이상, 4명 가운데 1명이 해가 진 이후 전기를 사용하지 못해 침침한 초롱불만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들 가운데 등유를 활용해 불을 켜는 160만 명이 등유에서 나오는 해로운 연기로 매년 목숨을 잃는다.”
등유가 어린아이에게 특히 치명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한 이 두 20대 CEO는 건강에 도움이 되면서도 끊임없이 재미를 추구한다는 미션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회사 이름을 만들었다. ‘언차티드 플레이(Uncharted Play·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놀이)’가 바로 그것이다. 독특한 이름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했고, 특히 그들의 모교인 하버드대 후배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이름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팀이 만들어지자 이들이 주목한 것은 ‘재미’와 ‘유익’이다.
“더는 화석연료가 필요 없도록 ‘소켓’을 더욱 업그레이드해야겠어.”
‘소켓’에 모인 전력으로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모습.
‘낮에는 공놀이를, 밤에는 공부를’이라는 간명한 캐치프레이즈는 학부모와 선생님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제3세계 국가 판로를 개척하려고 최대한 많은 현지 비정부기구(NGO)와 손잡았고, 학교를 중심으로 ‘소켓’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했다. 먼저 도입한 학교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자, 두 CEO가 만든 축구공은 순식간에 메가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럭비공·배구공·농구공에도 적용 고심
제시카와 줄리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들의 비즈니스가 대단한 것은 프로그램을 철저히 사후 관리했다는 점이다. 미국 내 사용자뿐 아니라 보급된 지역 주민과 아이들의 사용률, 만족도, 개선사항을 표로 만들어 지금도 꾸준히 점검하는 것. 이들은 자신들의 경영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믿는다. 해결책이란 단순히 부족한 것을 떠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살아 있는 상품, 서비스, 이벤트로 재미를 불러일으키고 변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실제 행동을 극대화할 때 놀이는 단순한 즐거움을 뛰어넘어 세상 변화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2009년부터 시행한 프로그램은 2011년 ‘소켓’ 100만 개 보급으로 이어졌고, 결국 지구촌 각국에서 수많은 특허상과 아이디어 상품대회 극찬으로 돌아왔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두 CEO에게 “혁신가가 있다면 바로 이들이 혁신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미국 특허청장은 “‘소켓’이야말로 미국이 진정 원하는 발명품이며, 전 세계 어린이에게 보급해 ‘진정한 혁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두 CEO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같은 아이디어를 축구공뿐 아니라 럭비공, 배구공, 농구공, 심지어 탁구공에도 적용할 수 없을까 고심 중이다. 비록 이뤄지기 힘든 꿈일지라도 오지의 한 아이가 밝은 빛을 보며 꿈을 키울 수 있다면, 우리의 작은 기술로 그 꿈을 비춰주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놀이’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