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건축계 노벨상이라 부르는 프리츠커(Pritzker)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세계적 호텔 체인 하얏트재단의 전 회장 프리츠커 부부가 만든 프리츠커상은 1975년 시작해 올해로 35회째다. 이 상은 지금까지 건축가 총 38명이 수상했다(공동 수상자 포함). 올해 수상 영예를 얻은 이는 일본 건축가 이토 토요(72).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의 출생 국적을 기준으로 보면, 이번 수상으로 일본은 최다 수상자를 배출했다. 총 5회에 걸쳐 일본인 건축가 6명이 수상한 것이다.
반면 한국인 건축가 가운데 프리츠커상을 받은 이는 없다. 그 이유는 뭘까. 필자는 일본이 건축문화 강국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물론 프리츠커상 수상은 국가별 경쟁을 의미하기보다 상을 수상한 건축가 개인 역량과 건축 이념, 사회적 기여도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우수한 건축가가 잇따라 탄생한 배경에는 분명 뛰어난 건축문화가 있었다.
일본 건축만 소개하는 건축 잡지
필자가 일본 유학길에 오른 1990년대 초반 일본 건축문화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해외 유명 건축가의 작품을 일본에 유치해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단계였다면, 그 이후에는 일본 건축이 국제적으로 도약하는 시기였다. 전 세계가 일본 건축의 문화적 정체성에 주목하면서 일본 건축가들이 세계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선봉에 1995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안도 타다오라는 건축가가 있었다.
건축은 한 사회의 포괄적 문화 가치를 보여주는 통합적 척도이자 가치 기준이다. 다소 거창한 전제일 수 있으나 그만큼 한 사회의 건축문화는 단기간에 형성될 수 없으며, 건축가 개인 역량과 노력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일본 사회의 건축문화 성숙도는 결코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이 건축문화 또한 철저한 준비와 사회 인식을 토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성숙한 건축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일본은 오래전부터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며 그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알리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문화 교류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일본국제교류기금과 일본 문부과학성 등 정부 단체는 일본 건축을 알리는 해외 전시를 주최하거나 외부 인사를 일본에 초청해 일본 건축을 홍보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지원했는데, 이는 결국 국제적 건축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가교가 됐다.
반면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일본 건축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가까스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건축가들도 해외 전시 등을 통해 국제사회와 교류하고 있다. 필자 또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지원받아 한국 현대건축 아시아전에 참가한 바 있다. 하지만 재정적 지원이 미약해 결국 자비를 들여 전시 준비를 해야 했다. 이런 기회가 우리나라에서 흔한 것이 아니지만, 전시 참여자에 대한 기준이 명확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다행인 것은 이후 선배들 도움으로 젊은 건축가들이 한일 현대건축교류전을 여는 등 움직임이 점차 확산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건축을 통해 다양한 문화 교류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건축 저널리즘이 발달하면서 대중과의 문화 소통이 활발해지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다양한 건축 잡지가 있고 각 잡지마다 다른 구실과 목적을 지닌다. 그중 자국 건축문화만 소개하는 ‘신건축’이라는 잡지가 돋보인다. 물론 국제화 시대에 걸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잡지를 통해 기성 건축가는 물론 젊은 건축가가 대중, 더 나아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다.
건축가, 특히 젊은 건축가는 소개될 기회조차 줄어드는 국내 현실을 생각한다면 일본 건축문화가 새삼 부럽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자국 건축만 소개하는 잡지가 없다. 젊은 건축가들이 건축물을 짓기도 어렵지만, 자신의 존재 자체를 알릴 수 없는 구조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신인 건축가 지원
한편 일본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공공시설물 등 지역 개발 계획에 지역 전문 건축가, 주민, 건축전공 학생이 폭넓게 참여한다. 지역 개발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진 사람은 개발 주체가 아닌 지역 주민이며, 이를 통해 건축가와 주민 간 소통이 이뤄지고 건축문화도 만든다. 이는 건축을 문화적 바탕에서 바라보기보다 부동산 논리로 바라보는 우리 현실과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 우리의 지역 개발 주체는 사기업이나 정부이며, 결국 경제 논리에 따라 무분별한 개발이 이뤄진다. 그 안에서 건축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젊은 건축가들에 대한 기회 창출은 미래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다. 일본은 모든 분야에서 그러하듯, 건축에서도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 건축가들의 지원이 시스템화돼 있다. 기성 건축가들의 전시회에 젊은 건축가를 참여시키거나, 그들과의 협업을 통해 젊은 건축가에게 좋은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명맥을 이어간다. 이러한 노력과 제도적, 국가적 뒷받침이 오늘날 일본 건축문화의 높은 성숙도를 이룬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성숙한 건축문화는 결코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러한 면에서 일본 건축의 도약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겨 여왕이라 부르는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 개인에 대한 열광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척박한 환경에서 거두는 의외의 성과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나라의 문화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을 그러한 우연 속에서 기대한다면 좀 무모하지 않을까.
반면 한국인 건축가 가운데 프리츠커상을 받은 이는 없다. 그 이유는 뭘까. 필자는 일본이 건축문화 강국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물론 프리츠커상 수상은 국가별 경쟁을 의미하기보다 상을 수상한 건축가 개인 역량과 건축 이념, 사회적 기여도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우수한 건축가가 잇따라 탄생한 배경에는 분명 뛰어난 건축문화가 있었다.
일본 건축만 소개하는 건축 잡지
필자가 일본 유학길에 오른 1990년대 초반 일본 건축문화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해외 유명 건축가의 작품을 일본에 유치해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단계였다면, 그 이후에는 일본 건축이 국제적으로 도약하는 시기였다. 전 세계가 일본 건축의 문화적 정체성에 주목하면서 일본 건축가들이 세계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선봉에 1995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안도 타다오라는 건축가가 있었다.
건축은 한 사회의 포괄적 문화 가치를 보여주는 통합적 척도이자 가치 기준이다. 다소 거창한 전제일 수 있으나 그만큼 한 사회의 건축문화는 단기간에 형성될 수 없으며, 건축가 개인 역량과 노력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일본 사회의 건축문화 성숙도는 결코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이 건축문화 또한 철저한 준비와 사회 인식을 토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성숙한 건축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일본은 오래전부터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며 그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알리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문화 교류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일본국제교류기금과 일본 문부과학성 등 정부 단체는 일본 건축을 알리는 해외 전시를 주최하거나 외부 인사를 일본에 초청해 일본 건축을 홍보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지원했는데, 이는 결국 국제적 건축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가교가 됐다.
반면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일본 건축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가까스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건축가들도 해외 전시 등을 통해 국제사회와 교류하고 있다. 필자 또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지원받아 한국 현대건축 아시아전에 참가한 바 있다. 하지만 재정적 지원이 미약해 결국 자비를 들여 전시 준비를 해야 했다. 이런 기회가 우리나라에서 흔한 것이 아니지만, 전시 참여자에 대한 기준이 명확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다행인 것은 이후 선배들 도움으로 젊은 건축가들이 한일 현대건축교류전을 여는 등 움직임이 점차 확산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건축을 통해 다양한 문화 교류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건축 저널리즘이 발달하면서 대중과의 문화 소통이 활발해지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다양한 건축 잡지가 있고 각 잡지마다 다른 구실과 목적을 지닌다. 그중 자국 건축문화만 소개하는 ‘신건축’이라는 잡지가 돋보인다. 물론 국제화 시대에 걸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잡지를 통해 기성 건축가는 물론 젊은 건축가가 대중, 더 나아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다.
건축가, 특히 젊은 건축가는 소개될 기회조차 줄어드는 국내 현실을 생각한다면 일본 건축문화가 새삼 부럽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자국 건축만 소개하는 잡지가 없다. 젊은 건축가들이 건축물을 짓기도 어렵지만, 자신의 존재 자체를 알릴 수 없는 구조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신인 건축가 지원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이토 토요 씨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물’로 꼽은 센다이시 ‘미디어테크’.
젊은 건축가들에 대한 기회 창출은 미래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다. 일본은 모든 분야에서 그러하듯, 건축에서도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 건축가들의 지원이 시스템화돼 있다. 기성 건축가들의 전시회에 젊은 건축가를 참여시키거나, 그들과의 협업을 통해 젊은 건축가에게 좋은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명맥을 이어간다. 이러한 노력과 제도적, 국가적 뒷받침이 오늘날 일본 건축문화의 높은 성숙도를 이룬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성숙한 건축문화는 결코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러한 면에서 일본 건축의 도약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겨 여왕이라 부르는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 개인에 대한 열광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척박한 환경에서 거두는 의외의 성과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나라의 문화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을 그러한 우연 속에서 기대한다면 좀 무모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