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과 떼놓을 수 없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스트레스일 것이다. 하루 종일 업무에 치여 살다 보면, 문득 왜 이렇게 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 몇 년 전만 해도 정신질환이라는 말이 금기어에 가까웠지만, 이제 더는 이상하거나 낯선 말이 아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500만 명으로 추산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대인에게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은 이미 감기나 다름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스페인의 낙농업 사업가 크리스토발 콜론(Cristobal Colon)은 이에 관해 전혀 다른 고민을 한 인물이다. 현대인의 우울증과 정신질환을 치유하는 대안으로 목가적 자연과 의미 있는 노동을 떠올린 게 고민의 시작이었다. 낙농업과 정신질환 치료를 연계하는 시도를 세계 최초로 구상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유제품 브랜드’를 만들기로 마음먹은 그는 정신질환의 근본 치료법인 마음의 평안을 위해 목가적 자연환경을 이용하는 방법을 구체화하는 데 골몰한다.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리는 발상
흔히 ‘정신병원’ 하면 ‘언덕 위 하얀 집’을 먼저 떠올린다. 공포영화 소재로 등장하는 괴기한 정신병동에는 울부짖는 환자와 뾰족하고 긴 바늘을 든 간호사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러나 콜론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정신질환 환자는 폭력적이지도, 과격하지도 않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 눈높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들의 병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의사와 간호사가 그들을 가둬둔 채 노동 가치를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콜론은 넓은 잔디밭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많은 정신질환 환자에게 마음의 평안을 찾아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다양한 장소를 물색한 끝에 그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우람한 소들이 마음껏 거닐 수 있는 대형 목장을 골랐다. 정신질환자가 가축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기 일에 열중한다면 병이 조금씩 치유될 수 있을 테고, 또 사회 일원으로서 노동 대가를 지급받는다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환자가 무언가에 계속 열중할 수 있게 하자”는 모토가 만들어졌고, 정신질환자를 종업원으로 고용한 목장 라파제다(La Fageda)가 처음 문을 열었다.
하지만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먼저 환자가 작업하면서 치료를 받는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환자들이 제 나름대로 몰두해 뭔가를 만들어냈지만 대부분은 시장가치가 전혀 없는 무의미한 물건이었다. 알려주는 대로 일하는 환자도 극히 적었고, 대부분 자신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즉흥적으로 뭔가를 저질렀다. 경영자 시각에서 보면 제품은 불량품에 불과했다. 콜론은 자신이 구상한 대로 제품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다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환자는 우리가 보기에 미쳤을지 모르지만 어리석진 않다. 아직 일을 제대로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지 못할 뿐이다. 조금씩 흥미를 붙여 간다면 분명 가치 있는 제품이 나올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환자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출발점을 재구성했다. 환자 자신이 중요한 일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낙농목장을 스스로 꾸려가게 한 것이다. 이후 환자들은 소와 놀고 자연과 벗 삼으면서 조금씩 자유를 만끽했다. 과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디긴 해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목장이 점차 확장되자 이를 염려한 지역주민들이 우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회적 인식’이라는 벽에 맞닥뜨린 셈이다. 한마디로 정신병자를 고용해 사업한다는 그의 아이디어를 웃기는 소리 정도로 치부하는 냉소였다.
목장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이도 없었다. 콜론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콜론은 굴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대로 일을 추진해나갔다. 친지와 친구들로부터 조금씩 후원받아 목장을 넓혔고, 품질을 강화해 제품 평판을 쌓아갔다. 이러한 노력이 꾸준히 축적되면서 3년 뒤 라파제다는 스페인 농무부로부터 낙농목장 인증을 받아 비로소 고객에게 유제품을 팔 수 있게 됐다.
스페인 유제품 업계 3위에 올라
제품 라인이 우유, 치즈, 요구르트 등으로 확대되면서 매출은 순식간에 급격히 늘어났다. 재미있는 것은 소비자 대부분이 이들 제품의 생산과정에 정신질환자가 참여하고 사실상 전 과정을 책임진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고객이 라파제다 제품을 구매하는 일은 자선 행위가 아니다. 맛과 품질이 좋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콜론은 직원들이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을 이용해 동정심이나 ‘착한 소비’ 욕구를 자극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적당히 만들어도 고객이 눈감아주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소비자가 윤리적 소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승부해야 회사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품질 중시, 디자인 중시’라는 그의 마케팅 전략을 발판 삼아 매출은 급성장했고, 창립 10년이 지난 지금 라파제다는 스페인 유제품업계에서 3위 업체로 발돋움하기에 이르렀다.
라파제다 구성원들은 앞으로도 자신들처럼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을 새 직원으로 채용하길 원한다. 특히 그들은 정부 지원금 없이도 직접 생계를 꾸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자랑스러워한다. 쉽게 무시와 멸시를 당하던 이들이 이제는 누구보다 당당한 회사원이 돼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콜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점도 이 부분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직접 한다. 우리 손으로 젖소를 보살피고, 우리 손으로 밭을 일구며, 우리 손으로 목장을 가꾼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위해 맛있는 요구르트를 만들고, 우유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 행복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힘을 합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곳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이렇듯 스페인 굴지 낙농회사를 만든 콜론의 이야기에는 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현대인에게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을 찾고 자존감을 키워갈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콜론의 라파제다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일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스페인의 낙농업 사업가 크리스토발 콜론(Cristobal Colon)은 이에 관해 전혀 다른 고민을 한 인물이다. 현대인의 우울증과 정신질환을 치유하는 대안으로 목가적 자연과 의미 있는 노동을 떠올린 게 고민의 시작이었다. 낙농업과 정신질환 치료를 연계하는 시도를 세계 최초로 구상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유제품 브랜드’를 만들기로 마음먹은 그는 정신질환의 근본 치료법인 마음의 평안을 위해 목가적 자연환경을 이용하는 방법을 구체화하는 데 골몰한다.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리는 발상
흔히 ‘정신병원’ 하면 ‘언덕 위 하얀 집’을 먼저 떠올린다. 공포영화 소재로 등장하는 괴기한 정신병동에는 울부짖는 환자와 뾰족하고 긴 바늘을 든 간호사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러나 콜론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정신질환 환자는 폭력적이지도, 과격하지도 않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 눈높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들의 병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의사와 간호사가 그들을 가둬둔 채 노동 가치를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콜론은 넓은 잔디밭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많은 정신질환 환자에게 마음의 평안을 찾아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다양한 장소를 물색한 끝에 그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우람한 소들이 마음껏 거닐 수 있는 대형 목장을 골랐다. 정신질환자가 가축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기 일에 열중한다면 병이 조금씩 치유될 수 있을 테고, 또 사회 일원으로서 노동 대가를 지급받는다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환자가 무언가에 계속 열중할 수 있게 하자”는 모토가 만들어졌고, 정신질환자를 종업원으로 고용한 목장 라파제다(La Fageda)가 처음 문을 열었다.
하지만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먼저 환자가 작업하면서 치료를 받는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환자들이 제 나름대로 몰두해 뭔가를 만들어냈지만 대부분은 시장가치가 전혀 없는 무의미한 물건이었다. 알려주는 대로 일하는 환자도 극히 적었고, 대부분 자신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즉흥적으로 뭔가를 저질렀다. 경영자 시각에서 보면 제품은 불량품에 불과했다. 콜론은 자신이 구상한 대로 제품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다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환자는 우리가 보기에 미쳤을지 모르지만 어리석진 않다. 아직 일을 제대로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지 못할 뿐이다. 조금씩 흥미를 붙여 간다면 분명 가치 있는 제품이 나올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환자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출발점을 재구성했다. 환자 자신이 중요한 일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낙농목장을 스스로 꾸려가게 한 것이다. 이후 환자들은 소와 놀고 자연과 벗 삼으면서 조금씩 자유를 만끽했다. 과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디긴 해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파제다 창업자 크리스토발 콜론.
목장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이도 없었다. 콜론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콜론은 굴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대로 일을 추진해나갔다. 친지와 친구들로부터 조금씩 후원받아 목장을 넓혔고, 품질을 강화해 제품 평판을 쌓아갔다. 이러한 노력이 꾸준히 축적되면서 3년 뒤 라파제다는 스페인 농무부로부터 낙농목장 인증을 받아 비로소 고객에게 유제품을 팔 수 있게 됐다.
스페인 유제품 업계 3위에 올라
제품 라인이 우유, 치즈, 요구르트 등으로 확대되면서 매출은 순식간에 급격히 늘어났다. 재미있는 것은 소비자 대부분이 이들 제품의 생산과정에 정신질환자가 참여하고 사실상 전 과정을 책임진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고객이 라파제다 제품을 구매하는 일은 자선 행위가 아니다. 맛과 품질이 좋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콜론은 직원들이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을 이용해 동정심이나 ‘착한 소비’ 욕구를 자극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적당히 만들어도 고객이 눈감아주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소비자가 윤리적 소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승부해야 회사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품질 중시, 디자인 중시’라는 그의 마케팅 전략을 발판 삼아 매출은 급성장했고, 창립 10년이 지난 지금 라파제다는 스페인 유제품업계에서 3위 업체로 발돋움하기에 이르렀다.
라파제다 구성원들은 앞으로도 자신들처럼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을 새 직원으로 채용하길 원한다. 특히 그들은 정부 지원금 없이도 직접 생계를 꾸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자랑스러워한다. 쉽게 무시와 멸시를 당하던 이들이 이제는 누구보다 당당한 회사원이 돼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콜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점도 이 부분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직접 한다. 우리 손으로 젖소를 보살피고, 우리 손으로 밭을 일구며, 우리 손으로 목장을 가꾼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위해 맛있는 요구르트를 만들고, 우유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 행복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힘을 합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곳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이렇듯 스페인 굴지 낙농회사를 만든 콜론의 이야기에는 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현대인에게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을 찾고 자존감을 키워갈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콜론의 라파제다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