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선수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도 많다. ‘명예의 전당’ 후보자로 거론되는 투수 마이크 무시나(44)가 대표적이다. 그는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야구 실력도 출중했다. 메이저리그에서 1991년부터 2008년까지 18시즌을 뛰며 536번 선발 등판했고, 통산 270승, 평균자책점 3.68을 기록했다. 이는 그의 실력과 철저한 자기관리를 방증한다.
비단 무시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은 UCLA 출신이며,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강타자 루 게릭은 컬럼비아대학을 나왔다. 이처럼 미국에서 ‘공부하는 운동선수’는 오래전부터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전시와 평시로 구분한 학교생활
반면 한국에서 ‘공부해 대학 가는 야구선수’는 거의 없다. 많은 선수가 대학에 진학하지만 체육특기생 자격이기에 공부와는 별 상관이 없다. 즉, ‘공부하는 야구선수’는 예외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덕수고 3학년 이정호(19) 군은 ‘공부’라는 눈밭에 첫 발자국을 남긴 ‘야구선수’다. 2013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일반 수시전형으로 체육교육학과에 당당히 합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는 결승타를 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기쁘다는 말밖에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군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대 합격이라는 기쁨은 오로지 노력의 대가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군의 내신성적은 9등급 중 7등급에 머물렀다. 야구와 학업을 병행하기 힘들었다. 그 와중에 야구부 부장교사의 조언이 길잡이 구실을 했다. 이군은 “야구부장 선생님이 내 중학교 성적이 좋았던 걸 알고는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자고 제안하셨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 2학년 때부터 내신성적을 평균 2등급으로 끌어올리며 서울대 수시 지원자격인 4등급에 ‘세이프’했다.
“특별한 비법은 없고 우직한 노력이 통했다”는 그는 전시(戰時)와 평시(平時)를 구분해 학교생활을 했다. 야구선수이기 전에 학생으로서 시험기간은 전시였다. 이 시기엔 일반 학생과 마찬가지로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다. 시험기간이 아닐 땐 평시였다. 이때는 수업 외 시간을 야구부 야간훈련을 하는 데 대부분 썼다. 야구는 공부로 받은 스트레스를 덜어주기도 했다. 상황에 맞게 시간을 배분할 정도로 관리에 철저했다. 게다가 2012년 창원에서 열린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때는 버스 안이 정말 좋았다. 차를 타고 창원까지 가는 5시간 동안 오롯이 책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대회와 시험기간이 겹칠 때였다. 야구선수와 학생이라는 신분이 충돌하는 시기였기에 그때는 원칙을 세웠다. 시합 전 버스 안에서는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공부를 안 하는 대신, 경기를 마치고 오는 버스 안에서는 미친 듯이 책을 봤다. 그런 그에게 동료들은 힘이 됐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미움이나 질시를 받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오히려 친구들이 ‘정호, 수고하네’ 하며 격려해줬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정윤진 덕수고 야구부 감독 역시 공부할 수 있게 배려해주며 이군을 지원했다. 정 감독은 야구실력 이전에 늘 인성을 강조했고, 이군의 야간자율학습 참석도 허락했다. 단체생활을 관리하는 처지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이에 이군은 “감독님도 공부에 대한 꿈이 있어서인지 잘 이해하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군은 2011년부터 시행한 주말리그 제도 덕을 크게 봤다. 개인의 노력, 주위의 배려라는 씨앗은 대한야구협회(협회)의 주말리그 제도 토대 위에서 서울대 합격이라는 싹을 틔웠다. 협회는 선수 학습권을 확보하기 위해 주말리그 제도를 시행했다. 이상현 협회 사무처장은 “개인의 피나는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라며 이군의 노력에 박수를 보냈다. 또한 “많은 반대에도 2년간 진행한 주말리그가 긍정적 선례를 남겼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제까지 야구선수들은 야구에만 ‘올인(다걸기)’한 나머지 기본 소양과 상식을 쌓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도자들이 짬짬이 전달하는 한자, 영어, 성교육 정도가 전부였다. 이러한 현실에서 일부 선수들은 프로팀 혹은 대학 진출 후에도 여러 가지 문제에 연루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고자 시행한 주말리그 제도가 성과를 낸 것이다.
‘주말리그’ ‘실력과 집중’의 효과
이군도 주말리그 제도 혜택을 봤다며 협회에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제도의 발전을 기대했다. 체육 행정가를 꿈꾸는 그는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로까지 확대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저는 중학생 때 공부를 했기 때문에 주말리그가 좋았어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도 공부를 해야 했기에 주말리그 제도 덕을 많이 봤죠. 하지만 야구만 하던 친구들한테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혼란스러운 점도 있었죠.”
최근 이군은 서울대 합격 소식을 접한 전국 각지의 야구 후배들에게서 자주 연락을 받는다고 한다. ‘야구와 학업’을 동시에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서다. 그럴 때마다 뿌듯함과 사명감을 동시에 느낀다는 그는 노력이 기본임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노력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다 노력을 했다.’ 저는 그래서 계속 노력했어요. 후배들이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했으면 좋겠어요.”이군은 자신의 공부 전략이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다. 고교 진학 후 처음으로 치른 시험에서 전체 계열 80명 중 60등에 그치며 큰 좌절을 겪었다. 같은 반 25명 중에서는 23등에 해당하는 저조한 성적이었다. 자신감은 떨어졌고 공부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그때부터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구분해 전략을 세웠다. 내신에서는 특히 수학과 영어에 집중했다.
“수학은 채점할 때 동그라미 치는 그 쾌감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개념정리에 집중했죠.”
영어는 본문을 통째로 암기했다. 그러기 위해서 영어 선생님을 귀찮게 했다. 선생님을 찾아가 외운 내용을 일주일 내내 집요하게 확인받았다. 그 덕분에 고교 1학년 2학기 석차는 전체 계열 80명 중 9등으로 올라갔다. 반에서는 3등 정도 수준이었다. 이군은 “학원은 근처에도 안 갔다”며 “무엇보다 내신은 수업시간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택과 집중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은 수능에서였다. 지원자격을 갖추려고 외국어와 수리탐구를 집중 공략했다. 특히 많은 수험생이 수리를 어려워한다는 점을 되레 기회로 삼았다. 외국어는 어휘 대신 듣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서울대 지원자격을 충족하며 수능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이군에겐 이미 다음 목표가 있다. 가장 가깝게는 이종욱(34), 정수빈(24)(이상 두산) 같은 근성과 투지 있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면 그는 서울대 출신 1호 프로야구 선수가 될 것이다. 그다음은 야구행정가다. 유학을 통해 일본, 미국 등을 경험하고 그들의 선진제도와 문화를 한국에 접목시키고 싶다고 한다.
“전남 강진에 허구연 필드가 있잖아요. 그분처럼 저도 ‘이정호 필드’를 한 면 지어서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비단 무시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은 UCLA 출신이며,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강타자 루 게릭은 컬럼비아대학을 나왔다. 이처럼 미국에서 ‘공부하는 운동선수’는 오래전부터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전시와 평시로 구분한 학교생활
반면 한국에서 ‘공부해 대학 가는 야구선수’는 거의 없다. 많은 선수가 대학에 진학하지만 체육특기생 자격이기에 공부와는 별 상관이 없다. 즉, ‘공부하는 야구선수’는 예외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덕수고 3학년 이정호(19) 군은 ‘공부’라는 눈밭에 첫 발자국을 남긴 ‘야구선수’다. 2013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일반 수시전형으로 체육교육학과에 당당히 합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는 결승타를 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기쁘다는 말밖에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군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대 합격이라는 기쁨은 오로지 노력의 대가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군의 내신성적은 9등급 중 7등급에 머물렀다. 야구와 학업을 병행하기 힘들었다. 그 와중에 야구부 부장교사의 조언이 길잡이 구실을 했다. 이군은 “야구부장 선생님이 내 중학교 성적이 좋았던 걸 알고는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자고 제안하셨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 2학년 때부터 내신성적을 평균 2등급으로 끌어올리며 서울대 수시 지원자격인 4등급에 ‘세이프’했다.
“특별한 비법은 없고 우직한 노력이 통했다”는 그는 전시(戰時)와 평시(平時)를 구분해 학교생활을 했다. 야구선수이기 전에 학생으로서 시험기간은 전시였다. 이 시기엔 일반 학생과 마찬가지로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다. 시험기간이 아닐 땐 평시였다. 이때는 수업 외 시간을 야구부 야간훈련을 하는 데 대부분 썼다. 야구는 공부로 받은 스트레스를 덜어주기도 했다. 상황에 맞게 시간을 배분할 정도로 관리에 철저했다. 게다가 2012년 창원에서 열린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때는 버스 안이 정말 좋았다. 차를 타고 창원까지 가는 5시간 동안 오롯이 책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대회와 시험기간이 겹칠 때였다. 야구선수와 학생이라는 신분이 충돌하는 시기였기에 그때는 원칙을 세웠다. 시합 전 버스 안에서는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공부를 안 하는 대신, 경기를 마치고 오는 버스 안에서는 미친 듯이 책을 봤다. 그런 그에게 동료들은 힘이 됐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미움이나 질시를 받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오히려 친구들이 ‘정호, 수고하네’ 하며 격려해줬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정윤진 덕수고 야구부 감독 역시 공부할 수 있게 배려해주며 이군을 지원했다. 정 감독은 야구실력 이전에 늘 인성을 강조했고, 이군의 야간자율학습 참석도 허락했다. 단체생활을 관리하는 처지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이에 이군은 “감독님도 공부에 대한 꿈이 있어서인지 잘 이해하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군은 2011년부터 시행한 주말리그 제도 덕을 크게 봤다. 개인의 노력, 주위의 배려라는 씨앗은 대한야구협회(협회)의 주말리그 제도 토대 위에서 서울대 합격이라는 싹을 틔웠다. 협회는 선수 학습권을 확보하기 위해 주말리그 제도를 시행했다. 이상현 협회 사무처장은 “개인의 피나는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라며 이군의 노력에 박수를 보냈다. 또한 “많은 반대에도 2년간 진행한 주말리그가 긍정적 선례를 남겼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제까지 야구선수들은 야구에만 ‘올인(다걸기)’한 나머지 기본 소양과 상식을 쌓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도자들이 짬짬이 전달하는 한자, 영어, 성교육 정도가 전부였다. 이러한 현실에서 일부 선수들은 프로팀 혹은 대학 진출 후에도 여러 가지 문제에 연루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고자 시행한 주말리그 제도가 성과를 낸 것이다.
‘주말리그’ ‘실력과 집중’의 효과
이군도 주말리그 제도 혜택을 봤다며 협회에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제도의 발전을 기대했다. 체육 행정가를 꿈꾸는 그는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로까지 확대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저는 중학생 때 공부를 했기 때문에 주말리그가 좋았어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도 공부를 해야 했기에 주말리그 제도 덕을 많이 봤죠. 하지만 야구만 하던 친구들한테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혼란스러운 점도 있었죠.”
최근 이군은 서울대 합격 소식을 접한 전국 각지의 야구 후배들에게서 자주 연락을 받는다고 한다. ‘야구와 학업’을 동시에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서다. 그럴 때마다 뿌듯함과 사명감을 동시에 느낀다는 그는 노력이 기본임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노력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다 노력을 했다.’ 저는 그래서 계속 노력했어요. 후배들이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했으면 좋겠어요.”이군은 자신의 공부 전략이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다. 고교 진학 후 처음으로 치른 시험에서 전체 계열 80명 중 60등에 그치며 큰 좌절을 겪었다. 같은 반 25명 중에서는 23등에 해당하는 저조한 성적이었다. 자신감은 떨어졌고 공부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그때부터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구분해 전략을 세웠다. 내신에서는 특히 수학과 영어에 집중했다.
“수학은 채점할 때 동그라미 치는 그 쾌감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개념정리에 집중했죠.”
영어는 본문을 통째로 암기했다. 그러기 위해서 영어 선생님을 귀찮게 했다. 선생님을 찾아가 외운 내용을 일주일 내내 집요하게 확인받았다. 그 덕분에 고교 1학년 2학기 석차는 전체 계열 80명 중 9등으로 올라갔다. 반에서는 3등 정도 수준이었다. 이군은 “학원은 근처에도 안 갔다”며 “무엇보다 내신은 수업시간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택과 집중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은 수능에서였다. 지원자격을 갖추려고 외국어와 수리탐구를 집중 공략했다. 특히 많은 수험생이 수리를 어려워한다는 점을 되레 기회로 삼았다. 외국어는 어휘 대신 듣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서울대 지원자격을 충족하며 수능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이군에겐 이미 다음 목표가 있다. 가장 가깝게는 이종욱(34), 정수빈(24)(이상 두산) 같은 근성과 투지 있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면 그는 서울대 출신 1호 프로야구 선수가 될 것이다. 그다음은 야구행정가다. 유학을 통해 일본, 미국 등을 경험하고 그들의 선진제도와 문화를 한국에 접목시키고 싶다고 한다.
“전남 강진에 허구연 필드가 있잖아요. 그분처럼 저도 ‘이정호 필드’를 한 면 지어서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