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용 지시로 기자들 눈 피해 전북 부안으로 피신
● “사업가 L씨와 경찰청 간부가 내 취직자리 알아봐줘”
● 김기용 “강 전 과장 주장은 사실무근, 사업가 L씨는 모르는 사람”
2007년 한화 김승연 회장 폭행 사건 수사 과정에 대해 브리핑하는 서울 남대문경찰서 강대원 당시 수사과장.
당시 김 청장의 인사청탁 의혹을 ‘주간동아’에 폭로했던 강대원 전 서울 용산경찰서 형사과장은 최근 주간동아와 여러 차례 가진 인터뷰에서 “김 청장의 인사청탁 의혹을 다룬 주간동아 835호가 발매된 4월 27일 오후,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와 가까운 L씨 사무실에서 L씨가 전화로 김 내정자의 구술을 받아 적은 것을 바탕으로 반박자료를 작성했다. 김 내정자는 반박자료를 팩스로 받아본 뒤 ‘이 정도면 됐다’고 L씨에게 전했고, 이후 이 해명자료를 서울지방경찰청(서울청) 기자실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강 전 과장은 또 “L씨는 나에게 ‘김 청장이 무사히 청장이 될 수 있게 돕자. 그러면 강 전 과장의 평생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잘못이라는 점을 알았지만, 외면하지 못했다. 후회한다”고 말했다.
김기용 부탁받은 사업가가 평생 보장 약속
당시 김 내정자가 L씨를 통해 요구한 것은 반박자료만이 아니었다. 강 전 과장은 “L씨가 처음에는 ‘외국에 한 사나흘 갔다 오자’고 했다. 그러나 내가 당시 여권이 없어 외국에 나가지 못했다. L씨는 김 내정자로부터 ‘청문회 전까지 강 전 과장을 잘 관리하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내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내정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5월 1일 열렸다.
강 전 과장의 주장에 대해 김기용 경찰청장은 서면답변을 통해 “L씨와는 일면식도 없다. 강 전 과장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상자기사 참조). L씨도 “나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 전 과장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일면식도 없다는 사람(김기용)과 관련된 일에 L씨가 왜 나섰겠나. 대화 내용을 듣고 L씨가 김 내정자와 통화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L씨도 당시 통화 당사자가 김 내정자라고 분명히 말했다. 심지어 ‘김 내정자가 휴대전화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반박했다.
경찰청 주변에서도 “김 청장과 사업가 L씨가 가깝다. 전화통화도 자주 한다”는 등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오토바이업계 한 관계자도 “L씨는 경찰에 발이 넓다. 김 청장과도 잘 아는 사이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강 전 과장은 “L씨는 ‘강희락 전 경찰청장 소개로 김 청장을 알았다. 여러 번 골프도 같이 쳤다’고 나에게 수차례 말했다”고 증언했다.
한 중견 변호사는 “강 전 과장의 증언대로라면, 강 전 과장이 허위사실을 담은 해명자료를 유포해 다른 언론사가 이를 보도한 만큼 주간동아 명예를 훼손한 것이 된다. 김 청장이나 L씨가 이를 사주하고 회유했다면 명예훼손의 공동정범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4월 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간동아 835호는 이날 “김기용 경찰청장 내정자가 2005년 12월 서울 용산경찰서장으로 근무할 때 최재천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집에 찾아가 함께 양주를 마시며 인사청탁을 했다”는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보도했다. 당시 김기용 서장의 직속 부하직원이던 강 전 과장은 김 서장의 지시로 양주를 사들고 최 의원 집에 가서 동석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6시경, 강 전 과장은 주간동아 내용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간동아 기사와 관련한 진실 답변’(반박문)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서울청 기자실에 보냈다. 강 전 과장의 반박문이 공개되면서 김 내정자의 인사청탁 의혹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보도 나흘 후인 5월 1일 열린 김기용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 반박문 등을 근거로 삼아 주간동아를 상대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 청장, 허위문서 본 뒤 “그 정도면 됐다”
강대원 전 서울 용산경찰서 형사과장이 허위반박문을 작성했다고 밝힌 사업가 L씨의 서울 충무로 사업장 전경.
김기용 경찰청장의 인사청탁 의혹을 담은 주간동아가 발매된 당일(4월 27일) 오후 1시경, 강 전 과장은 가까운 경찰 후배인 A씨(경감)에게 전화를 받았다. A씨는 강 전 과장에게 “김기용 내정자를 도와달라. 안 그러면 나도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A씨는 2007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폭행사건을 수사할 당시 강 전 과장의 부하직원이었다. A씨는 당시 이 사건과 관련해 직위해제를 당하기도 했다.
A씨와 통화를 끝낸 직후 강 전 과장은 서울 충무로에서 오토바이 사업을 하는 사업가 L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강 전 과장과 수년 전부터 알고 지냈던 L씨는 “김기용 내정자에게 내용을 들었다. 일단 만나자”고 말했다. 오후 4시경, 강 전 과장은 A씨와 함께 L씨 사무실로 갔다. L씨는 강 전 과장에게 “평생을 보장할 테니 김기용 내정자를 도와달라. 김 내정자는 (강 전 과장이) 반박 기자회견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 전 과장은 “솔직히 흔들렸다. 친한 후배 부탁도 외면할 수 없었다. 또 옛날 일을 언론에 알려 평생 몸담은 조직에 누를 끼쳤다는 후회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김 내정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내 반박문 때문에 피해를 본 주간동아에는 내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기용이 반박문 내용까지 불러줘
L씨는 강 전 과장의 결심을 김 내정자에게 전화로 알렸다. 반박문은 L씨 사무실에서 L씨 사위가 작성했다. L씨와 김 내정자는 여러 차례 전화하면서 반박문에 들어갈 내용을 정리해나갔다.
경찰에 발이 넓은 사람으로 알려진 L씨는 현재 오토바이 관련 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오토바이 관련 사업을 하기 때문인지 L씨는 경찰과 가깝게 지낸다”고 말했다. 강 전 과장은 “강희락 전 경찰청장 소개로 오래전부터 김기용 경찰청장과 알고 지냈다고 L씨가 내게 여러 번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강 전 과장과 L씨 사무실에 같이 갔던 경찰 간부 A씨는 최근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그날(4월 27일) 강 전 과장과 L씨 사무실에 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차 한 잔만 마시고 바로 나왔다. 두 사람이 이후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고 밝혔다.
강 전 과장에 따르면, 김 내정자는 L씨에게 전화로 반박문에 들어갈 구체적인 내용까지 불러줬다. L씨는 이를 사무실에서 쓰던 노란색 종이에 받아 적었다. L씨는 이 노란종이를 강 전 과장에게 건네며 “(김 내정자가) 이렇게 써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강 전 과장은 “내가 받은 노란종이에는 ‘김 내정자가 (2005년 용산경찰서장 당시) 최재천 의원 집에 간 것은 사실이지만 인사청탁을 하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다’는 내용도 있었고, ‘(김 내정자가 강 전 과장에게) 술을 사오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반박문 내용을 완성한 뒤 강 전 과장과 L씨는 반박문을 팩스를 이용해 김 내정자에게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김 내정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김 내정자는 L씨에게 “그 정도면 됐다”고 말했다. 이후 팩스로 반박문을 서울청 기자실에 보냈다. 강 전 과장은 “김 내정자에게 보낼 때는 L씨 사무실에 있는 팩스를 썼고, 기자실에 보낼 때는 L씨 사무실 옆 가게에 있는 팩스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 왜 팩스를 바꿨나.
“(반박문 작성 경위가 들통 나는 경우 등) 만약을 대비해서.”
▼ 왜 서울청 기자실로 보냈나.
“나는 수사를 오래한 사람이다. 서울청 기자실에 언론사 시경캡(경찰팀장)이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내가 ‘서울청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반박문 작성 과정에서 L씨와 김 내정자는 계속 전화통화를 했다. 강 전 과장의 말이다.
“4, 5차례 이상 통화한 것 같다. 전화할 때마다 김 내정자가 ‘이쪽으로 해라, 저쪽으로 해라’면서 전화번호를 바꿔 불러줬다. L씨가 전화통화를 하면서 ‘김기용 내정자가 전화기를 여러 개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다면 당시 L씨가 전화통화를 한 상대는 정말 김 내정자였을까. 강 전 과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분명하다. 통화내용을 들어보면 안다. L씨도 나에게 김 내정자와 통화한다고 말했다. 당시 L씨와 나는 한배를 탄 몸이었다. L씨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김 내정자의 직접 부탁이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 그런 식의 허위반박문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통화 명세를 확인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 당시 L씨나 김 내정자로부터 금품 제공 등 다른 제안은 없었나.
“금품 제공 제안은 없었다. 했어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특정 자리를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나는 자동차 사고처리 전문회사에서 고문으로 일하면서 월급을 받고 있었다. 더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정도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L씨는 나에게 ‘일이 잘 마무리되면 평생을 보장하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김 청장, “강대원 집에 보내지 마라” 지시
5월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는 김기용 경찰청장.
강 전 과장은 “L씨가 처음에는 ‘외국에 한 사나흘 갔다 오자’고 했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 여권이 없어 불가능했기 때문에 부안으로 갔다. L씨는 김 내정자로부터 ‘청문회 전까지 강 전 과장을 잘 관리하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내게 말했다. 다음 날 아침 L씨 부부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서 아내를 태운 뒤 부안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날 밤 12시가 넘어서 서울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강 전 과장 후배인 A씨는 “당시 강 전 과장이 L씨와 함께 부안에 간 것은 사실이다. 부안에서 내게 여러 번 전화했다”고 증언했다.
강 전 과장은 김 내정자의 인사청탁 의혹 기사가 보도된 직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강 전 과장은 L씨를 여러 번 찾아갔다. L씨가 ‘평생 보장’을 약속했던 터라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나 실직 상태가 한 달 이상 이어지자, 점점 초조해진 강 전 과장은 7월 말 경찰청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청장 비서실장에게 “김 청장을 도와줬는데, 나는 회사도 못 다닌다. 뭔가 대책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비서실장은 “조만간 경찰청 인사과장이 연락할 것”이라며 강 전 과장을 달랬다. 며칠 후 인사과장 윤모 총경이 강 전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제안했다. 강 전 과장의 말이다.
“전화하고 얼마 있다가 L씨, 윤 과장과 함께 서울 명동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에서 저녁을 한 번 먹었다. 그 자리에서도 나는 불만을 말했다. 윤 과장은 내게 ‘L씨와 (강 전 과장 거취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좀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L씨는 강 전 과장에게 “내가 김기용 경찰청장을 그렇게까지 도왔는데, 나에게 인사도 한 번 안 한다. 전화해도 사무적으로 받는다. (김 청장이) 성격이 좀 소극적”이라며 김 청장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10월 17일 최재천 의원이 주간동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강 전 과장이 증인으로 참석한 뒤부터 이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강 전 과장은 당시 법정에서 “반박문은 사실 허위 내용이다. 주간동아 보도내용이 내가 아는 진실이다”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날 이후 L씨와 윤 과장은 강 전 과장 집까지 찾아오며 회유했다고 강 전 과장은 전했다. 심지어 직장을 알선해주겠다는 얘기까지 했다는 것. 강 전 과장은 “11월 2일 L씨와 윤 과장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윤 과장은 못 만났고, L씨는 만났다. L씨는 ‘수입오토바이 관련 협회에 고문자리를 알아봐주겠다. 300만 원 정도 월급을 받는 자리’라고 얘기했다. 속이 들여다보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간동아는 강 전 과장의 주장에 대한 해명을 들으려고 11월 9일 L씨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났다. 그러나 L씨는 강씨 주장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괴롭히지 마라”고 말한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그는 “며칠 전 강 전 과장 집에 간 것은 사실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간 것은 맞다”고 시인했다. 주간동아는 이후 여러 차례 L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나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이라며 끝내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김기용, “선배님, 과거는 잊고 소주나 한잔…”
윤 과장이 다녀간 다음 날(11월 3일) 오전 10시경, 김기용 경찰청장이 윤 과장의 휴대전화를 통해 강 전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김 청장은 뭐라고 하던가.
“별다른 얘기는 없었다. 내가 ‘김 청장을 도와줬는데 지금 나는 직업도 없고 아주 상황이 어렵다’고 얘기했더니, 김 청장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선배님, 지나간 일은 모두 잊으시고 조만간 소주나 한 잔 하시죠’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11월 5일 강 전 과장은 L씨와 함께 서울 봉천동에 있는 수입오토바이 관련 협회를 찾아가 협회장을 만났다. 사실상 면접 자리였다. 그러나 협회장은 강 전 과장에게 “지금은 자리가 없다. 내년 1~2월 이후에나 자리를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강 전 과장의 후배 A씨는 “그날 강 전 과장과 L씨가 ‘봉천동에 있는 무슨 협회에서 면접을 봤다’면서 나에게 잠시 들렀다. 그런데 강 전 과장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내년 1~2월이 지나야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강 전 과장은 “내가 법정에서 증언한 뒤 관련자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는 거짓말을 하고 살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사실관계를 모두 밝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증언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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