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 대부분은 색(色)에 대해 한마디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골프 자체가 십팔 구멍에 공알 넣기 아닌가. 유식하게 말하기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더 짜릿하기에 글로 쓰기엔 조금 뭣한 말도 골프장에서는 통한다.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분출되는 것이다. 무엇이 색이고 무엇이 ‘섹(SEX)’인가? 만들어진 만물을 불가(佛家)에서는 색으로 표현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示空 空卽示色)이란 드러난 만물은 그저 하나의 빛이 여러 색깔로 자신을 표현한다는 뜻이고, 섹은 자신을 표현하는 만물이 영속성을 가지기 위해 암수로 나뉘어 합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자손이 번성하고 자기 유전자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뚫린 구멍과 작대기로 상징화한 놀이가 바로 골프다. 그래서 골프장에서는 야한 농담이 그냥 야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 행위를 표현하기에 사실성을 지닌다.
북한 금강산 골프장이 개장했을 때다. 김정일에 대한 농담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올 때 골프와 색도에 관한 이야기도 한몫했다. 동반 라운딩을 하던 정주영 현대 회장이 김정일에게 물었다.
“북한 말로 골프는 뭐라 합니까?”
“허허. 십팔 구멍에 공알 넣기지요”
“그럼 클럽은 뭐라 하지요?”
“그야 구멍 넣는 작대기이지요”
“페어웨이는요?”
“넓은 털밭입네다.”
“재미있네요. 스윙은요?
“작대기 돌리기지요.”
“아하. 그럼 골프놀이란 게 결국 작대기를 들고 돌리면서 털밭을 헤매다 구멍에 작대기로 쑤시기군요?”
“당연한 걸 왜 묻고 그러십네까? 남한 사람들은 웃깁네다.”
김정일 위원장의 골프실력이야 우리는 웃지만, 북한에서는 전설이다. 골프채 잡은 첫날 56타, 무조건 버디와 파로 쳤으니 ‘골신’이 따로 없다. 권력이 곧 골프의 신을 만들었다. 하기야 미국 클린턴 대통령도 원래 보기 실력인데 동반자들이 무조건 멀리건을 줘 스스로는 80대 초반 실력이라고 알았다고 하니, 골프 실력이 권력과 상통한다는 것을 말해 무엇 하랴. 갑으로 접대받는 골퍼들은 잘 알 것이다. 힘이 곧 골프 실력이란 것을.
색도를 논할 때 먼저 기본을 알 필요가 있다. 무릇 모든 남성은 여성에게 구애할 때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모든 여성은 선택권이 자기한테 있음을 알리려고 혼신의 힘으로 치장한다. 호르몬을 풍기든 외모를 가꾸든 방식은 자유지만 과정은 동일하다. 즉, 만나고 접촉하고 애무하고 넣는 과정이다. 이 네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넣기도 하나, 그것이 정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넣음에 있어 목적을 분명히 한다면 그에 따른 노력도 배가된다. 자손 번창이냐 쾌락 추구냐. 하여간 필사의 노력, 다른 말로 하면 연습을 많이 해야 성공한다. 색도든 골도든.
네 과정을 진행하는 법칙을 살펴보면 골도와 색도가 그 맥을 같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만남에선 무조건 환심을 사야 한다. 남성 처지에서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강한 힘을 가졌으니 내 후손도 당연히 강하게 살아남을 것이오’ 하고 유전자 능력을 과시한다. 이 힘이 바로 드라이버다. 많은 골퍼의 로망이 장타라는 사실을 내면 의식 측면에서 살펴보면 수컷 본능의 과시가 자리 잡고 있음을 어찌 부인하랴. 그래서 드라이버를 ‘보여준다’라고 한다. 드라이버 이즈 쇼!
이 힘에 넘어가 연애가 진전되면, 아니 궁극적인 목표인 넣음을 완성하려면 두 번째 과정을 힘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바로 부드러움이다. 암컷은 보살피고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야 문을 열 준비를 한다. 그것도 느낌이 확실해야 한다. 부드러움을 보여주는 방법은 힘 빼고 고개를 딴 데로 돌리지 않으면서 오로지 하나만 응시하는 집중력이다. 그녀가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리지 않는지 감시하고 구속하면 절대 문을 열지 않는다. 바로 아이언을 다루는 방법이다. 드라이버같이 파워풀한 느낌으로 다루면 안 된다. 그저 바람같이, 물결같이 흘러가는 대로 다루되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지 마라. 아이언의 법칙이고 문을 여는 비법이다. 그래서 아이언을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린에 올라가는 능력, 예술의 능력, 바로 벗기는 능력이다. 아이언 이즈 아트!
세 번째 과정, 다가감은 섬세함이 핵심이다. 만나서 아무리 힘을 보여주고 부드럽게 다뤄도 결정적인 과정을 생략한다면 넣음에서 실수가 생긴다. 오로지 구멍만을 탐닉하려고 중간 과정, 즉 살살 쓰다듬는 애무 능력이 없으면 토라지게 돼 있다. 구도자의 말로 표현하면, 혈자리를 열어야 한다. 굳은 몸은 주변에 오라를 발산하지 못하고 에너지의 나눔도 공유하지 못한다는 철칙이 있다. 손끝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능력은 살살 집중해야 극대화된다. 어프로치 또는 홀에 다가가는 능력이다. 압력 3kg 법칙으로. 3kg 법칙은 무엇인가.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술(術)의 영역이다. 바로 어프로치와 퍼트 영역이다. 퍼팅 기술이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느낌 고감도 측면에서는 논하기 어렵다. 색도를 알아야 가능하다. 그저 섬세함으로, 오로지 쓰다듬는 초정밀 집중력으로. 숏 게임 이즈 무드!
네 번째 과정은 밀어라이다. ‘때려라’도 아니고 ‘박아라’도 아니다. 그저 밀어라이다. 어떻게 미느냐의 능력도 술의 영역이다. 자신만의 퍼트 기술에 따라 미는 힘과 느낌은 다르다. 긴 퍼트로 밑을 공략하든, 짧은 퍼트로 씩씩하게 밀든 자신만의 느낌으로 밀 때 구멍은 소리를 낸다. 땡그랑. 교성과 괴성이 합하는 소리다. 그 소리를 들을 때까지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지 마라. 오로지 한 구멍에 집중하라. 가는 길을 상상하라. 천지가 뒤집혀도 오직 한 순간, 지금 여기, 내 느낌만으로! 이걸 잘해야 행복이 기다린다. 퍼트 이즈 머니!
골프의 네 가지 법칙을 골도라고 부른다. 모든 골프장은 파4가 기준이다. 남녀 운우지정(雲雨之情)의 네 가지 법칙은 색도라고 한다. 주역에서는 우주의 네 가지 순환법칙을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고 한다. 이는 삶의 관점에서 바라본 ‘있음’의 법칙이다. 죽음까지를 포함하는 ‘없음’의 관점에서는 논하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하늘의 도라 일컫는 바, 죽음까지를 포함하는 깨우침은 색도를 알아야만 초월적 관점에서 알 수 있다. 하늘의 도를 설명하는 데는 음양의 법칙이 필요하고, 이 법칙의 완성을 알면 초월을 안다. 바로 교접을 통해. 교접의 끝자락은 쾌감과 허무가 늘 같이한다.
생사의 법칙도 예외는 아니다. 삶의 과정에서 고통도 내가 만들어 즐기고, 죽음도 내가 만들어 즐긴다. 질병도 내가 만들고, 인연도 내가 만든다. 교접 상대도 내가 만들고, 초월의식도 내가 만든다. 선택과 집중의 과정일 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이 내 우주고, 내 삶이고, 내 인생이다.
색도와 골도가 어찌 다르랴. 모든 짝을 내가 선택하고 모든 방향과 목적은 내가 선택한다. 그 어떤 절대자가 이리하라, 저리하라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인드라의 그물이 있어 비치는 그 상태로 인해 내가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일 뿐, 대상이 되는 그것은 절대 자유다. 펼쳐진 자유의식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은 에너지가 되고 하나의 생명이 된다. 자체의 생명이 되면 대상이 되고, 이를 나와의 관계로 설정하면 인연이 되는 것이다. 그 인연과의 교감이 바로 도다. 도를 실천하는 방법이 도리다. 골도든 색도든 이 도리를 지켜나갈 때 상승곡선을 그린다. 골도의 실력이 상승한다. 만들어진 개체로서 자신을 인식하지 말고 만든 주인으로서 나를 인식하라. 바로 골도를 통해, 그리고 색도를 통해!
내 말이 아니고 부처의 아들 라훌라가 한 말이다. 탄트라교를 만든 라훌라가 법문한 진리의 말씀이다.
북한 금강산 골프장이 개장했을 때다. 김정일에 대한 농담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올 때 골프와 색도에 관한 이야기도 한몫했다. 동반 라운딩을 하던 정주영 현대 회장이 김정일에게 물었다.
“북한 말로 골프는 뭐라 합니까?”
“허허. 십팔 구멍에 공알 넣기지요”
“그럼 클럽은 뭐라 하지요?”
“그야 구멍 넣는 작대기이지요”
“페어웨이는요?”
“넓은 털밭입네다.”
“재미있네요. 스윙은요?
“작대기 돌리기지요.”
“아하. 그럼 골프놀이란 게 결국 작대기를 들고 돌리면서 털밭을 헤매다 구멍에 작대기로 쑤시기군요?”
“당연한 걸 왜 묻고 그러십네까? 남한 사람들은 웃깁네다.”
김정일 위원장의 골프실력이야 우리는 웃지만, 북한에서는 전설이다. 골프채 잡은 첫날 56타, 무조건 버디와 파로 쳤으니 ‘골신’이 따로 없다. 권력이 곧 골프의 신을 만들었다. 하기야 미국 클린턴 대통령도 원래 보기 실력인데 동반자들이 무조건 멀리건을 줘 스스로는 80대 초반 실력이라고 알았다고 하니, 골프 실력이 권력과 상통한다는 것을 말해 무엇 하랴. 갑으로 접대받는 골퍼들은 잘 알 것이다. 힘이 곧 골프 실력이란 것을.
색도를 논할 때 먼저 기본을 알 필요가 있다. 무릇 모든 남성은 여성에게 구애할 때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모든 여성은 선택권이 자기한테 있음을 알리려고 혼신의 힘으로 치장한다. 호르몬을 풍기든 외모를 가꾸든 방식은 자유지만 과정은 동일하다. 즉, 만나고 접촉하고 애무하고 넣는 과정이다. 이 네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넣기도 하나, 그것이 정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넣음에 있어 목적을 분명히 한다면 그에 따른 노력도 배가된다. 자손 번창이냐 쾌락 추구냐. 하여간 필사의 노력, 다른 말로 하면 연습을 많이 해야 성공한다. 색도든 골도든.
네 과정을 진행하는 법칙을 살펴보면 골도와 색도가 그 맥을 같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만남에선 무조건 환심을 사야 한다. 남성 처지에서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강한 힘을 가졌으니 내 후손도 당연히 강하게 살아남을 것이오’ 하고 유전자 능력을 과시한다. 이 힘이 바로 드라이버다. 많은 골퍼의 로망이 장타라는 사실을 내면 의식 측면에서 살펴보면 수컷 본능의 과시가 자리 잡고 있음을 어찌 부인하랴. 그래서 드라이버를 ‘보여준다’라고 한다. 드라이버 이즈 쇼!
이 힘에 넘어가 연애가 진전되면, 아니 궁극적인 목표인 넣음을 완성하려면 두 번째 과정을 힘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바로 부드러움이다. 암컷은 보살피고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야 문을 열 준비를 한다. 그것도 느낌이 확실해야 한다. 부드러움을 보여주는 방법은 힘 빼고 고개를 딴 데로 돌리지 않으면서 오로지 하나만 응시하는 집중력이다. 그녀가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리지 않는지 감시하고 구속하면 절대 문을 열지 않는다. 바로 아이언을 다루는 방법이다. 드라이버같이 파워풀한 느낌으로 다루면 안 된다. 그저 바람같이, 물결같이 흘러가는 대로 다루되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지 마라. 아이언의 법칙이고 문을 여는 비법이다. 그래서 아이언을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린에 올라가는 능력, 예술의 능력, 바로 벗기는 능력이다. 아이언 이즈 아트!
세 번째 과정, 다가감은 섬세함이 핵심이다. 만나서 아무리 힘을 보여주고 부드럽게 다뤄도 결정적인 과정을 생략한다면 넣음에서 실수가 생긴다. 오로지 구멍만을 탐닉하려고 중간 과정, 즉 살살 쓰다듬는 애무 능력이 없으면 토라지게 돼 있다. 구도자의 말로 표현하면, 혈자리를 열어야 한다. 굳은 몸은 주변에 오라를 발산하지 못하고 에너지의 나눔도 공유하지 못한다는 철칙이 있다. 손끝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능력은 살살 집중해야 극대화된다. 어프로치 또는 홀에 다가가는 능력이다. 압력 3kg 법칙으로. 3kg 법칙은 무엇인가.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술(術)의 영역이다. 바로 어프로치와 퍼트 영역이다. 퍼팅 기술이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느낌 고감도 측면에서는 논하기 어렵다. 색도를 알아야 가능하다. 그저 섬세함으로, 오로지 쓰다듬는 초정밀 집중력으로. 숏 게임 이즈 무드!
네 번째 과정은 밀어라이다. ‘때려라’도 아니고 ‘박아라’도 아니다. 그저 밀어라이다. 어떻게 미느냐의 능력도 술의 영역이다. 자신만의 퍼트 기술에 따라 미는 힘과 느낌은 다르다. 긴 퍼트로 밑을 공략하든, 짧은 퍼트로 씩씩하게 밀든 자신만의 느낌으로 밀 때 구멍은 소리를 낸다. 땡그랑. 교성과 괴성이 합하는 소리다. 그 소리를 들을 때까지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지 마라. 오로지 한 구멍에 집중하라. 가는 길을 상상하라. 천지가 뒤집혀도 오직 한 순간, 지금 여기, 내 느낌만으로! 이걸 잘해야 행복이 기다린다. 퍼트 이즈 머니!
골프의 네 가지 법칙을 골도라고 부른다. 모든 골프장은 파4가 기준이다. 남녀 운우지정(雲雨之情)의 네 가지 법칙은 색도라고 한다. 주역에서는 우주의 네 가지 순환법칙을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고 한다. 이는 삶의 관점에서 바라본 ‘있음’의 법칙이다. 죽음까지를 포함하는 ‘없음’의 관점에서는 논하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하늘의 도라 일컫는 바, 죽음까지를 포함하는 깨우침은 색도를 알아야만 초월적 관점에서 알 수 있다. 하늘의 도를 설명하는 데는 음양의 법칙이 필요하고, 이 법칙의 완성을 알면 초월을 안다. 바로 교접을 통해. 교접의 끝자락은 쾌감과 허무가 늘 같이한다.
생사의 법칙도 예외는 아니다. 삶의 과정에서 고통도 내가 만들어 즐기고, 죽음도 내가 만들어 즐긴다. 질병도 내가 만들고, 인연도 내가 만든다. 교접 상대도 내가 만들고, 초월의식도 내가 만든다. 선택과 집중의 과정일 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이 내 우주고, 내 삶이고, 내 인생이다.
색도와 골도가 어찌 다르랴. 모든 짝을 내가 선택하고 모든 방향과 목적은 내가 선택한다. 그 어떤 절대자가 이리하라, 저리하라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인드라의 그물이 있어 비치는 그 상태로 인해 내가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일 뿐, 대상이 되는 그것은 절대 자유다. 펼쳐진 자유의식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은 에너지가 되고 하나의 생명이 된다. 자체의 생명이 되면 대상이 되고, 이를 나와의 관계로 설정하면 인연이 되는 것이다. 그 인연과의 교감이 바로 도다. 도를 실천하는 방법이 도리다. 골도든 색도든 이 도리를 지켜나갈 때 상승곡선을 그린다. 골도의 실력이 상승한다. 만들어진 개체로서 자신을 인식하지 말고 만든 주인으로서 나를 인식하라. 바로 골도를 통해, 그리고 색도를 통해!
내 말이 아니고 부처의 아들 라훌라가 한 말이다. 탄트라교를 만든 라훌라가 법문한 진리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