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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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피드 화살 ‘핑크빛 감동’에 명중

‘신궁 커플’ 오진혁-기보배

  • 유재영 채널A 사회부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12-08-27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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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올림픽을 취재하면서 한국 양궁 스토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계 최강으로 금메달 3개를 따냈지만, 모두 피를 말리는 극적인 승부여서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은 더 컸다.

    여자단체전에 나선 최현주가 컨디션 난조 속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해준 ‘깜짝 쇼’도 잊을 수 없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눈물까지 흘리고 치아까지 빠진 코칭스태프 이야기는 지금 떠올려도 웃음이 난다.

    한국 양궁 역사상 남자개인전 첫 금메달을 획득해 애국가가 울리는 순간엔 ‘신궁’ 남녀의 핑크빛 열애까지 터졌다. 그 소식이 삽시간에 퍼져 한국이 난리가 난 시간 ‘신궁 커플’과 같은 버스를 타고 있던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다.

    ‘교제가 결혼으로’ 두 사람 곤혹

    런던 시간으로 8월 3일. 올림픽 양궁 남자개인전 결승 직후 대한양궁협회 관계자들은 대놓고 환호하질 못했다. 오진혁이 양궁 역사상 남자개인전 첫 금메달을 따냈고, 전체 4개 금메달 가운데 3개를 가져오면서 세계 최강임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신궁 커플의 열애 기사가 터졌기 때문이다.



    오진혁이 시상대에 서 있는 그 시간. 한 방송사는 오진혁과 여자개인 및 단체전 2관왕인 기보배가 열애 중이며 결혼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보도가 나가자 경기장에서도 난리가 났다.

    열애 사실이 알려진 것이 그리 부담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올림픽 전에 두 사람이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몇몇 기자가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을 약속했다는 내용 때문에 당사자들이 곤혹스러워한다는 반응이 전해졌다. 경기장 인근 양궁선수단 숙소인 다누비우스 호텔에서 오진혁을 만나기로 했던 기자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 자칫 인터뷰를 거부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7시, 시상식을 마치고 호텔 로비로 들어온 장영술 양궁대표팀 총감독은 기자를 보자마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보배 아버지가 난리 났어. 전화도 안 받아부러”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오진혁이나 기보배도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일단 대한양궁협회와 장 감독에게 민감한 질문을 하지 않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 만찬자리로 가는 선수단 버스에 올라탔다.

    조심스럽게 오진혁과 버스 뒷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금메달을 받은 감격과 결혼 보도로 인한 ‘충격’으로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그러나 기보배에 대한 감정을 털어놓으면서 평온을 되찾았다.

    “결혼에 대해선 아직 확실한 계획이 없어요. 잘 만나다 보면 좋은 일이 있겠죠. 거기까지입니다.”

    결혼설에 대해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연인 기보배의 꿈을 지켜주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저야 결혼 마음이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아직 보배도 젊고…. 보란 듯이 2관왕을 했잖아요. 앞으로 이뤄야 할 것도 많고, 올림픽 챔피언이니까. 이제 보배는 국제무대를 호령해야 해요(웃음).”

    오진혁의 웃음소리에 버스 중간 좌석에 앉은 기보배가 살며시 이쪽을 응시하더니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연인이라면 연애 시작이 궁금하다. 그런데 오진혁은 자연스럽게 사랑을 키워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다. 연인으로 발전한 건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이후라고 했다. 여느 커플처럼 사귄 지 100일, 1년을 챙겼을지도 의문이다.

    평소 기보배의 배려에 마음을 빼앗긴 그였다.

    “제가 하는 이야기를 무척 잘 들어줬어요. 운동이 안 될 때는 나이답지 않게 조언도 해주고요. 작년 세계선수권,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보배가 많이 도와줬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때 늘 보배가 있었죠.”

    양궁 대표선수 커플로 올림픽 출전. 성적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분명 둘 가운데 하나는 처질 수밖에 없어요. 부담이 있었죠. 교제하는 건 문제가 안 되지만 둘 가운데 한 명이 성적이 나쁘면 팀이나 저나 보배 모두 손실이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주말에 운동을 더 많이 하고 서로 좋은 결과를 내자고 다짐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둘 다 성적이 처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남자개인전 결승 전날에는 여자개인전 결승이 있었다. 기보배는 결승전에서 멕시코 로만과 접전을 벌였다. 세트스코어 5대 5에서 마지막 연장전 슛오프 한 발. 극도의 긴장감에 기보배는 8점을 쏘는 실수를 범했다. 로만이 9점만 맞히면 금메달을 놓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로만도 8점을 맞히면서 결국 중앙에서 좀 더 가까운 8점 자리를 맞힌 기보배가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연인의 피 말리는 경기를 뒤에서 본 느낌은 어땠을까.

    “8점을 쐈을 때 ‘아! 졌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지면 너무 슬프겠구나. 어떻게 위로하지, 뭐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더라고요. 그런데 금메달을 땄잖아요. 무척 기뻤고….”

    “평범한 커플로 봐주세요”

    큐피드 화살 ‘핑크빛 감동’에 명중

    금메달을 딴 직후 인터뷰에 응한 오진혁. 오른쪽은 유재영 기자.

    기보배의 금메달 기운은 곧바로 오진혁에게 옮겨갔다. 연인 아니랄까 봐 오진혁도 준결승에서 중국 선수와 슛오프까지 가는 진땀 승부를 벌였다.

    “슛오프 전 5앤드에서 첫 발을 잘못 쐈는데 10점에 들어갔어요. 그대로 쏘면 되겠다 싶어 슛오프에 들어갔는데 9점이 나와 금메달을 못 따겠다 싶었죠. 그날 중국 선수 컨디션이 워낙 좋았거든요. 그런데 중국 선수의 마지막 화살이 출발할 때 바람이 뒤로 부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그때 ‘됐다’ 싶었어요.”

    이제 남부럽지 않은 금메달 커플. 올림픽 이후엔 세기의 커플로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다. 원래 데이트하면서 사람이 북적대는 곳에는 가지 않았는데, 심히 걱정이다.

    “그냥 평범한 커플이 사귀면 이슈가 안 되잖아요. 쉽지 않지만 일반인처럼 생각해주고 편하게 봐줬으면 해요. 앞으로 쇼나 예능프로그램에 나가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도 않고요. 본분은 선수니까 보배나 저나 운동에 충실할 거예요. 한국에서도 똑같은 대답을 할걸요.”

    현대자동차 부회장인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이 영국 런던 중심부 한인식당에 마련한 축하 만찬. 여기저기에서 축하 잔을 받은 오진혁 얼굴이 다시 상기됐다. 연인 기보배와 다정하게 눈을 마주쳤다. 그에게는 기보배가 진정한 금메달인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한 잔 하셨어요? 더 취하기 전에 인터뷰를 마무리해야겠어요.”

    오랜만에 맛있는 한국 음식에 취한 기자를 오진혁이 식당 밖으로 잡아끈다.

    “아, 보배. 어려울 때도 많았고 많이 바빴을 텐데, 금메달 따서 무척 고맙고 멋있습니다.”

    8월 3일 오후 9시 런던. 연인을 향한 아름다운 세레나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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