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바람이 지나갔다. 9월 중순부터 한 달 가까이 시장을 떠돈 중국 경제 경착륙 논쟁 얘기다. 이번에는 중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함께 급등했다. 사실 꼼꼼히 살펴보면 중국 경제에 콕 집어 문제 삼을 만한 악재는 없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주요 국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면서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도 올해 9.6%에서 9.5%로, 내년 9.5%에서 9%로 내렸다는 것이나(9월 21일), HSBC은행이 조사해 발표하는 9월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협회지수(PMI) 예비수치가 8월 확정치 49.9보다 낮은 49.4였다(9월 22일)는 정도다.
이렇듯 최근 국내 언론과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중국 경제 경착륙 문제에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다. 먼저 해묵은 단골 이슈라는 점이다. 중국 경제가 처음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전야(前夜) 이래 지금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2년의 간격을 두고 이 이슈는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다시 등장하곤 했다. 또 하나는 논란의 양 진영, 즉 비관론과 낙관론이 둘 다 번번이 틀렸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중국 경제는 경착륙이든, 연착륙이든 단 한 차례도 양측이 예상한 수준의 ‘착륙’을 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렇듯 중국 경착륙 문제가 ‘단골 핫 이슈’가 된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일단 중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구실이 커졌다. 자연히 중국 경제의 동향과 전망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감시해야 할 대상이 됐고, 특히 발언 강도가 영향력은 물론 몸값과도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는 자본시장 분석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주제로 떠올랐다. 또한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간 중국 경제가 거둔 성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누구나 조만간 연료를 재급유 받지 않으면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너무 오래, 너무 높이 날아온 것이다.
100% 공개 안 해 단골 핫 이슈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분석자들의 심리도 영향을 미친다. 주지하다시피 중국 경제는 지구상 유일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다. 이 나라에서 정부는 경제와 관련한 모든 문제에서 최종적,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최상위 주체(플레이어+코치+심판+경기감독관)다. 이는 또한 강력한 정보 독점이 뒷받침한다. 당국이 자국 경제 동향에 대한 정보를 100%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소비든, 투자든, 가계소득이든 중국 정부가 공개하는 데이터는 늘 2%가 부족하다. 서구 거시경제학의 분석틀로는 이 정도 데이터만으로 중국 경제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공개된 데이터를 아무리 뒤집고 비틀어봐도 ‘좋아진다’ 혹은 ‘나빠질 것이다’라는 대략의 방향만 감지할 수 있을 뿐, 똑 부러진 전망치나 추정치를 낼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분석심리상의 왜곡이 발생한다. 서구 경제학자들은 ‘중국 경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명제를 ‘중국 경제에 매우 문제가 많다’는 명제로 ‘인식론적 바꿔치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정부의 정보 독점과 인색한 정보 공개는 이 바꿔치기에 정당성이나 불가피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이러한 인식은 ‘중국 경제의 주요 문제는 이미 한참 전에 터졌어야 하는 문제고, 지금까지 안 불거졌다면 조만간 빵 터지고야 말 문제’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최근 중국 경제 경착륙론이 다시 고개를 든 배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먼저 대외적으로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와 미국 경제의 회복 부진으로 중국 경제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진 시점이었다. 안으로는 9월 중순 발표된 3분기 경제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밑돈 데다, 부동산시장의 본격 조정 조짐과 중소기업의 자금난 심화,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 악화 같은 구조적 문제가 엇비슷한 시기에 잇따라 불거져 나왔다.
그러나 경착륙론자들이 근거로 내세운 이러한 재료는 지난 2년간 줄곧 거론돼왔던 것이다. 재료로 치자면 오히려 9월 22일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와 이튿날 개최된 IMF·세계은행 공동연차총회에서 세계 주요국이 유럽 위기 해결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사건이 더 컸다. 유럽 문제가 한 고비를 넘자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이슈 제기를 업(業)으로 삼는 이들’이 중국을 다시 도마에 올려 잠시 ‘플레이’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대도시와 기타 지역 집값 목표 달라
경착륙의 핵심 요인, 즉 위기 촉발 우려에 가장 크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흔히 부동산 버블 붕괴를 지목한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 부동산시장에서는 최근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났다. 민간 건설업체가 지어 판매하는 상품방(일반 분양주택 및 건물)의 가격이 지난봄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져온 상승 추세에서 벗어났고, 9월에는 마침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문제는 집값의 하락세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지 하는 점이다.
집값을 비롯한 부동산가격의 하락세는 지난해 초부터 집값 안정에 골몰해온 중국 정부로서는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빠른 하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정부의 재정 부실 심화와 건설업체 대량 도산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중국 정부가 바라는 집값 조정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동안 중국 정부는 전반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으나 일부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투기적 집값 상승이 문제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즉, 대도시와 기타 지역에서 집값 안정에 대한 목표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3월 말 각 지방정부가 중앙에 보고한 집값 억제 목표를 살펴보면, 베이징의 경우 ‘안정 속의 일부 하락’이었고, 충칭(重慶)이나 창춘(長春) 같은 도시는 ‘PIR(연간 평균소득 대비 집값 비율) 6배 안팎’이었으며, 기타 대부분 도시는 ‘가처분소득 증가율 이내’였다. 이를 감안하면 중국 정부는 PIR가 15~20배에 달하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일부 대도시 지역에서는 집값 하락세를 유도하고, PIR가 6~10배, 평균적으로는 8배에 해당하는 기타 지역에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나 가처분소득 증가율 이내로 집값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주택시장을 관리하는 데 성공할 경우 2~3년 뒤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PIR는 서울 같은 이웃나라 대도시 수준으로, 기타 도시는 PIR 6배 안팎으로 안정화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경제 위기에 대한 내성 강화
물론 이 과정이 간단치는 않다. 집값 억제에 올인할 경우 또 다른 경착륙 요인인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 문제가 걸리기 때문이다. 중국 지방정부는 자기 명의로 채권을 발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로 ‘도시개발(투자)공사’ 같은 회사를 세운 뒤 이를 통해 은행융자를 받아 투자 사업을 해왔다. 지방정부 부채는 2010년 말 현재 10조7000억 위안으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7%에 달한다. 한국의 감사원에 해당하는 중국 심계서(審計署)의 조사 결과 부채의 80%는 은행융자고, 전체 지방정부의 40%는 이미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100%를 넘어섰다. 대출금리가 6%라면 매년 예산 수입의 27%를 이자로 내야 하는 갑갑한 실정인 것이다. 더욱이 지방정부 총수입의 25~33%가 토지사용권 경매 수입에서 나온다. 지방정부 재정 문제만 생각하면 오히려 부동산 경기를 띄워 지가를 올리는 게 상책이다. 집값 안정과 지방정부 재정건전화가 모순 관계에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두 가지 목표 가운데 집값 안정에 더 무게를 둔다. 지방정부의 GDP 대비 부채비율이 외국에 비해 높지 않은 데다, 부채 만기가 2016년에 집중돼 재정위기가 화급한 현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10월 말 17년 동안 금지해왔던 지방정부의 직접 채권 발행을 허용키로 결정한 것 또한 사정이 어려운 일부 지방정부로 하여금 자구책을 강구하도록 길을 열어준 조치라 할 수 있다.
만일 부동산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조정 국면에 돌입한다면 어떤 대응책이 있을까. 이 경우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인수해 직접 지방재정을 챙겨가면서, 자산담보부증권(ABS)을 발행해 중앙정부 재정을 이용한 부채 상환 등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중앙이나 지방정부의 보유자산 일부를 매각해 부채를 상환할 수도 있다. 상장기업 국유주식의 시가총액이 GDP의 35%에 이르는 중국 경제구조 특성상 문제를 해결할 여력이 충분한 것이다. 물론 이는 큰 틀에서의 제도 변화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사리 선택할 수 없는 대안이긴 하다. 현실적으로는 이렇듯 체제 위기 수준의 폭락 국면에 이르기 전에 부동산 경기를 재차 부양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경착륙 요인으로 거론되는 기업 자금난과 비(非)제도권 금융의 창궐, 은행 부실화 같은 문제는 통화긴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달렸다. 10월 이후 중국 소비자물가는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세 둔화와 농산물 작황 호조로 8월 이후의 하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글로벌 유동성이 여전히 풍부하고 중국 내 임금이 빠르게 오르는 등 불안 요인이 남았기 때문에 올해 중국 정부의 억제 목표치인 4%에 근접하는 시점까지는 통화긴축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로 인한 부작용 또한 강력한 창구지도나 정부의 담보지원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웃복서의 풋워크와 클린치
물론 선진국 경제가 악화할 경우, 중국의 수출 또한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줄어드는 데다, 수출지역 다변화 흐름도 지속돼 선진국 경제위기에 대한 내성 역시 커졌다. 중국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2006년 35.9%에서 2010년 25.2%로 줄었고, 전체 수출에서 G3(미국, 유로권, 일본)에 대한 수출 비중 역시 지난해 3분기 46%에서 올해 3분기 44.5%로 감소했다. 또한 중국 내 가계소득이 꾸준히 늘어 소비 증가가 수출 감소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워가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출이 1억 위안 줄어드는 대신 소비가 1억 위안 증가하면 중국 GDP는 1170만 위안가량 상승한다. 결론적으로 수출 감소가 곧 중국 경제 연착륙에 결정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경착륙 요인은 모두 중국 정부가 ‘구조전환기 정책과제’로 설정해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과제 해결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근본적으로는 금융이나 토지 소유 같은 과거의 제도가 급변하는 현실 요구에 부합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이니만큼, 오랜 기간에 걸쳐 제도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무릇 경제 정책은 대부분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 상황에서 결정되고 추진된다. 2011년 중국은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가운데 성장이 빠르게 둔화하는 상황에 처했다. 물가를 확실히 잡자니 경기 급랭을 각오해야 하고, 경기를 살리자니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글자 그대로의 정책 딜레마 상황이다.
결국 중국 정부로선 대내외 경제여건이 호전되기를 기다리면서 국면에 따라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에 입각해 정책 조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는 부동산시장 안정이 최우선 과제였지만, 국면이 바뀌어 지방정부 재정위기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될 경우 중국 정부는 재정 정책을 중립으로, 화폐 정책을 확장적으로 가져가는 정책 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사각 링에서 수비형 복서가 복싱경기를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방이 막힌 링에서 강펀치를 휘두르는 상대에 쫓긴다 해서 반드시 경기 초반에 KO를 당하리라는 법은 없다. 빠른 풋워크와 적절한 클린치로 요령껏 버텨내다가 상대가 힘을 잃었을 때 한두 방의 펀치로 역전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 경착륙에 관한 논쟁은 근본적으로 중국 정부, 특히 중앙정부의 경제 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 문제로 귀착되게 마련이다. 거론되는 경착륙 요인이 모두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구조에서 비롯했고, 압도적인 비중과 영향력을 가진 중국 정부가 이미 해결 노력을 기울여온 문제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을 단기간에 해결하리라 장담할 수 없지만, 오랜 기간 문제를 묵혀가면서 그 크기(GDP 대비 비율)를 줄여나가는 식의 대응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음을 중국 정부는 이미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경제 운영 스타일과 정책 역량을 고려한다면 중국 경제의 경착륙 위험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최근 국내 언론과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중국 경제 경착륙 문제에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다. 먼저 해묵은 단골 이슈라는 점이다. 중국 경제가 처음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전야(前夜) 이래 지금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2년의 간격을 두고 이 이슈는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다시 등장하곤 했다. 또 하나는 논란의 양 진영, 즉 비관론과 낙관론이 둘 다 번번이 틀렸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중국 경제는 경착륙이든, 연착륙이든 단 한 차례도 양측이 예상한 수준의 ‘착륙’을 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렇듯 중국 경착륙 문제가 ‘단골 핫 이슈’가 된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일단 중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구실이 커졌다. 자연히 중국 경제의 동향과 전망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감시해야 할 대상이 됐고, 특히 발언 강도가 영향력은 물론 몸값과도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는 자본시장 분석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주제로 떠올랐다. 또한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간 중국 경제가 거둔 성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누구나 조만간 연료를 재급유 받지 않으면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너무 오래, 너무 높이 날아온 것이다.
100% 공개 안 해 단골 핫 이슈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분석자들의 심리도 영향을 미친다. 주지하다시피 중국 경제는 지구상 유일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다. 이 나라에서 정부는 경제와 관련한 모든 문제에서 최종적,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최상위 주체(플레이어+코치+심판+경기감독관)다. 이는 또한 강력한 정보 독점이 뒷받침한다. 당국이 자국 경제 동향에 대한 정보를 100%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소비든, 투자든, 가계소득이든 중국 정부가 공개하는 데이터는 늘 2%가 부족하다. 서구 거시경제학의 분석틀로는 이 정도 데이터만으로 중국 경제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공개된 데이터를 아무리 뒤집고 비틀어봐도 ‘좋아진다’ 혹은 ‘나빠질 것이다’라는 대략의 방향만 감지할 수 있을 뿐, 똑 부러진 전망치나 추정치를 낼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분석심리상의 왜곡이 발생한다. 서구 경제학자들은 ‘중국 경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명제를 ‘중국 경제에 매우 문제가 많다’는 명제로 ‘인식론적 바꿔치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정부의 정보 독점과 인색한 정보 공개는 이 바꿔치기에 정당성이나 불가피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이러한 인식은 ‘중국 경제의 주요 문제는 이미 한참 전에 터졌어야 하는 문제고, 지금까지 안 불거졌다면 조만간 빵 터지고야 말 문제’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최근 중국 경제 경착륙론이 다시 고개를 든 배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먼저 대외적으로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와 미국 경제의 회복 부진으로 중국 경제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진 시점이었다. 안으로는 9월 중순 발표된 3분기 경제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밑돈 데다, 부동산시장의 본격 조정 조짐과 중소기업의 자금난 심화,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 악화 같은 구조적 문제가 엇비슷한 시기에 잇따라 불거져 나왔다.
그러나 경착륙론자들이 근거로 내세운 이러한 재료는 지난 2년간 줄곧 거론돼왔던 것이다. 재료로 치자면 오히려 9월 22일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와 이튿날 개최된 IMF·세계은행 공동연차총회에서 세계 주요국이 유럽 위기 해결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사건이 더 컸다. 유럽 문제가 한 고비를 넘자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이슈 제기를 업(業)으로 삼는 이들’이 중국을 다시 도마에 올려 잠시 ‘플레이’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대도시와 기타 지역 집값 목표 달라
경착륙의 핵심 요인, 즉 위기 촉발 우려에 가장 크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흔히 부동산 버블 붕괴를 지목한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 부동산시장에서는 최근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났다. 민간 건설업체가 지어 판매하는 상품방(일반 분양주택 및 건물)의 가격이 지난봄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져온 상승 추세에서 벗어났고, 9월에는 마침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문제는 집값의 하락세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지 하는 점이다.
집값을 비롯한 부동산가격의 하락세는 지난해 초부터 집값 안정에 골몰해온 중국 정부로서는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빠른 하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정부의 재정 부실 심화와 건설업체 대량 도산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중국 정부가 바라는 집값 조정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동안 중국 정부는 전반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으나 일부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투기적 집값 상승이 문제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즉, 대도시와 기타 지역에서 집값 안정에 대한 목표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3월 말 각 지방정부가 중앙에 보고한 집값 억제 목표를 살펴보면, 베이징의 경우 ‘안정 속의 일부 하락’이었고, 충칭(重慶)이나 창춘(長春) 같은 도시는 ‘PIR(연간 평균소득 대비 집값 비율) 6배 안팎’이었으며, 기타 대부분 도시는 ‘가처분소득 증가율 이내’였다. 이를 감안하면 중국 정부는 PIR가 15~20배에 달하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일부 대도시 지역에서는 집값 하락세를 유도하고, PIR가 6~10배, 평균적으로는 8배에 해당하는 기타 지역에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나 가처분소득 증가율 이내로 집값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주택시장을 관리하는 데 성공할 경우 2~3년 뒤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PIR는 서울 같은 이웃나라 대도시 수준으로, 기타 도시는 PIR 6배 안팎으로 안정화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경제 위기에 대한 내성 강화
물론 이 과정이 간단치는 않다. 집값 억제에 올인할 경우 또 다른 경착륙 요인인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 문제가 걸리기 때문이다. 중국 지방정부는 자기 명의로 채권을 발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로 ‘도시개발(투자)공사’ 같은 회사를 세운 뒤 이를 통해 은행융자를 받아 투자 사업을 해왔다. 지방정부 부채는 2010년 말 현재 10조7000억 위안으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7%에 달한다. 한국의 감사원에 해당하는 중국 심계서(審計署)의 조사 결과 부채의 80%는 은행융자고, 전체 지방정부의 40%는 이미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100%를 넘어섰다. 대출금리가 6%라면 매년 예산 수입의 27%를 이자로 내야 하는 갑갑한 실정인 것이다. 더욱이 지방정부 총수입의 25~33%가 토지사용권 경매 수입에서 나온다. 지방정부 재정 문제만 생각하면 오히려 부동산 경기를 띄워 지가를 올리는 게 상책이다. 집값 안정과 지방정부 재정건전화가 모순 관계에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두 가지 목표 가운데 집값 안정에 더 무게를 둔다. 지방정부의 GDP 대비 부채비율이 외국에 비해 높지 않은 데다, 부채 만기가 2016년에 집중돼 재정위기가 화급한 현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10월 말 17년 동안 금지해왔던 지방정부의 직접 채권 발행을 허용키로 결정한 것 또한 사정이 어려운 일부 지방정부로 하여금 자구책을 강구하도록 길을 열어준 조치라 할 수 있다.
만일 부동산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조정 국면에 돌입한다면 어떤 대응책이 있을까. 이 경우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인수해 직접 지방재정을 챙겨가면서, 자산담보부증권(ABS)을 발행해 중앙정부 재정을 이용한 부채 상환 등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중앙이나 지방정부의 보유자산 일부를 매각해 부채를 상환할 수도 있다. 상장기업 국유주식의 시가총액이 GDP의 35%에 이르는 중국 경제구조 특성상 문제를 해결할 여력이 충분한 것이다. 물론 이는 큰 틀에서의 제도 변화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사리 선택할 수 없는 대안이긴 하다. 현실적으로는 이렇듯 체제 위기 수준의 폭락 국면에 이르기 전에 부동산 경기를 재차 부양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경착륙 요인으로 거론되는 기업 자금난과 비(非)제도권 금융의 창궐, 은행 부실화 같은 문제는 통화긴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달렸다. 10월 이후 중국 소비자물가는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세 둔화와 농산물 작황 호조로 8월 이후의 하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글로벌 유동성이 여전히 풍부하고 중국 내 임금이 빠르게 오르는 등 불안 요인이 남았기 때문에 올해 중국 정부의 억제 목표치인 4%에 근접하는 시점까지는 통화긴축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로 인한 부작용 또한 강력한 창구지도나 정부의 담보지원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웃복서의 풋워크와 클린치
물론 선진국 경제가 악화할 경우, 중국의 수출 또한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줄어드는 데다, 수출지역 다변화 흐름도 지속돼 선진국 경제위기에 대한 내성 역시 커졌다. 중국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2006년 35.9%에서 2010년 25.2%로 줄었고, 전체 수출에서 G3(미국, 유로권, 일본)에 대한 수출 비중 역시 지난해 3분기 46%에서 올해 3분기 44.5%로 감소했다. 또한 중국 내 가계소득이 꾸준히 늘어 소비 증가가 수출 감소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워가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출이 1억 위안 줄어드는 대신 소비가 1억 위안 증가하면 중국 GDP는 1170만 위안가량 상승한다. 결론적으로 수출 감소가 곧 중국 경제 연착륙에 결정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경착륙 요인은 모두 중국 정부가 ‘구조전환기 정책과제’로 설정해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과제 해결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근본적으로는 금융이나 토지 소유 같은 과거의 제도가 급변하는 현실 요구에 부합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이니만큼, 오랜 기간에 걸쳐 제도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무릇 경제 정책은 대부분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 상황에서 결정되고 추진된다. 2011년 중국은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가운데 성장이 빠르게 둔화하는 상황에 처했다. 물가를 확실히 잡자니 경기 급랭을 각오해야 하고, 경기를 살리자니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글자 그대로의 정책 딜레마 상황이다.
결국 중국 정부로선 대내외 경제여건이 호전되기를 기다리면서 국면에 따라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에 입각해 정책 조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는 부동산시장 안정이 최우선 과제였지만, 국면이 바뀌어 지방정부 재정위기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될 경우 중국 정부는 재정 정책을 중립으로, 화폐 정책을 확장적으로 가져가는 정책 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사각 링에서 수비형 복서가 복싱경기를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방이 막힌 링에서 강펀치를 휘두르는 상대에 쫓긴다 해서 반드시 경기 초반에 KO를 당하리라는 법은 없다. 빠른 풋워크와 적절한 클린치로 요령껏 버텨내다가 상대가 힘을 잃었을 때 한두 방의 펀치로 역전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 경착륙에 관한 논쟁은 근본적으로 중국 정부, 특히 중앙정부의 경제 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 문제로 귀착되게 마련이다. 거론되는 경착륙 요인이 모두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구조에서 비롯했고, 압도적인 비중과 영향력을 가진 중국 정부가 이미 해결 노력을 기울여온 문제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을 단기간에 해결하리라 장담할 수 없지만, 오랜 기간 문제를 묵혀가면서 그 크기(GDP 대비 비율)를 줄여나가는 식의 대응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음을 중국 정부는 이미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경제 운영 스타일과 정책 역량을 고려한다면 중국 경제의 경착륙 위험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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