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잊게 하는 흰색 튜브톱 드레스 차림의 조수미(49)가 먼저 다가와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기분 좋게 울리는 맑은 목소리는 세계적인 소프라노와 마주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상대의 눈을 응시했다. 목소리처럼 인터뷰 자세에서도 기품과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음악 여정을 정리하면서 ‘리베라’라는 새 음반을 냈다. 리베라(Libera)는 이탈리아어로 ‘자유’라는 뜻. 조수미는 자신을 음악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보헤미안에 비유했다. 음반에는 ‘달의 아들’ ‘나는 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었네’ ‘어머니가 알려주신 노래’ ‘통일의 노래’ 등 13곡을 수록했다.
올해는 그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데뷔한 지 25년 되는 해다. 데뷔 당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 역에 동양 여성이 캐스팅되자 음악계가 떠들썩했다. 새로운 프리마돈나의 탄생을 응원하는 사람보다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고 벼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날 그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환상적인 가창력을 선보였고, 이후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영국 코벤트 가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등 세계 정상급 오페라하우스에서 펼쳐진 공연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믿어지지가 않아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한국에서 온 작은 소녀에 불과하던 제가 음악하는 후배들에게 영감과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기도 하고요(웃음). 지금 반쯤 온 것 같아요. 앞으로 다가올 25년도, 지금까지와 똑같은 열정과 호기심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1986년 조수미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데뷔할 때 객석에는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의 비서도 앉아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카라얀에게서 당장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카라얀 앞에 선 그는 고난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오페라 ‘마술피리’의 아리아 ‘밤의 여왕’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2년 뒤 조수미는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카라얀의 오페라 ‘가면무도회’의 주연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공연을 앞두고 카라얀이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바람에 게오르그 솔티 경이 카라얀을 대신해 지휘봉을 잡았다. 어쨌든 이 공연을 계기로 조수미는 세계적인 지휘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무대 안팎 철저히 구분 극한의 절제
“대단한 행운이었죠. 물론 화려한 기교와 소녀 같은 감성이 바탕이 되긴 했지만 카라얀 선생님 덕분에 제 음악 인생이 이렇게 이어질 수 있었거든요. 그날 ‘밤의 여왕’ 아리아로 카라얀 선생님의 눈에 들었는데 이후로도 그 노래를 불러야 할 땐 잠을 설치곤 했어요. 기교와 감정 컨트롤, 배역이 갖는 긴장감과 무게 등 모든 면에서 실수나 여유가 용납되지 않는 곡이거든요.”
성악가는 나이가 들면 목소리와 가량에도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다. 조수미는 현재가 자신의 최고 절정기라고 자신 있게 단언한다. 고음은 화려하고 중저음은 풍성해졌다는 것. 요즘도 연습할 때 종종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부른다는데 만족스러운 수준인가 보다. 아직 한국 팬 앞에서는 ‘밤의 여왕’을 라이브로 부른 적이 없지만 곧 그런 날이 올 것 같다고 했다.
조수미의 음악 인생은 3기로 나뉜다. 초반은 화려한 고음과 기교를 바탕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시기. 두 번째는 알져지지 않은 곡을 찾아 녹음하며 엘리트 음악을 추구하던 시기다. 한동안 그런 일에 열을 올리던 어느 날,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며 ‘엘리트를 위한 음악도 좋지만 좀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나인스 게이트’, 미국 드라마 ‘밀드레드 피어스’의 주제가를 부른 것도 대중과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가 주제가를 부른 영화와 드라마는 모두 흥행에 성공했고, ‘밀드레드 피어스’의 여자 주인공 케이트 윈즐릿도 최근 에미상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조수미에게 작품 복이 있는 건 확실한 듯하다.
그는 “목소리로 음악을 표현한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내 목소리를 잘 알고 현명하게 보호해왔다”고 말한다. 이는 곧 극한의 절제를 의미한다. 그는 종종 “목소리는 갓난아기처럼 변덕이 심해 24시간 눈을 떼지 말고 돌봐줘야 한다”고 말한다. 먹고 마시고 놀고, 심지어 우는 일까지, 보통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그에게는 늘 도전이고 시험이다. 그는 4년 전 자궁근종 수술 후 임신을 할 수 없게 됐다. 신은 어쩌면 그에게 목소리라는 아이를 선물했는지도 모른다.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세계 어디를 가든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요. 날씨가 춥거나 더우면 관광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다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일, 예를 들어 마음껏 우는 일이 저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어 실컷 울지도 못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몸을 참 많이 사리는구나 싶을 거예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하도 연습에 찌들어 살아서인지 저는 별로 불편하다거나 힘들지 않아요. 보통사람들이 매일 시장 가고 밥 하고 하는 것처럼 저도 매일 연습할 뿐이죠. 그 대신 휴가 때 스트레스 풀고 여행도 다니고 봉사도 하면서 여유를 가져요. 음악이라는 울타리가 너무 높고 단단해 때론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에 작은 구멍이라도 내서 평범한 일상으로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해요.”
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저처럼 무대 안팎 모습이 완벽하게 다른 사람도 흔치 않을 거예요(웃음). 무대는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연습과 훈련으로 빚어진 완벽한 프로덕트예요. 항상 무섭고 떨리는 공간이죠. 그곳에서는 음악적으로나 시각적으로 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해요. 무대 에서는 그런 걸 철저히 잘 지키는 편이지만, 일을 떠나서는 평범한 여자예요. 아니, ‘파렴치(?)’할 정도로 나이보다 순수하게 살려고 노력하죠. 금방 눈물짓고 쉽게 감동받고 속상해하고 사람을 그리워하고…. 평소에는 화장도 짙게 안 해요. 시장 갈 때 앙드레 김 선생님의 드레스를 입고 나가는 일은 더더욱 없고요(웃음). 그냥 반바지에 모자 푹 눌러쓰고 나가죠. 길에서 저를 보면 수수한 모습에 당황해서 ‘어머, 이런 모습 처음이에요’라고 할걸요.”
한국 공연은 우리 집에서 여는 잔치
사람들이 그에게 가장 궁금해하는 점 가운데 하나는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것. 이에 대한 대답은 명확했다. 결혼이나 사랑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는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 더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이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사랑도 만나고 함께 인생을 꿈꿀 남자도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길을 가는 동안 때로는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줘야 하고, 때로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는 2006년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도 공연을 계속 한 적이 있다. ‘인간’ 조수미와 ‘예술가’ 조수미를 완벽하게 구분하는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세계적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8월 중순 예술의전당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다 무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중간에 퇴장한 사건에 대해 물었다.
“두 가지 관점에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인간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분은 거장이고 연세가 많아요. 지나치게 덥거나 추운 환경에서는 불편할 수 있었을 거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둘째 예술가적 관점에서 말씀드리자면, 제 노래를 들으러 오시는 분은 제게는 신적인 존재예요. 개인적 사정이나 감정을 무대에 담아선 안 되죠.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요. 마에스트로 바렌보임을 비판할 생각도 없고, 그럴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그날 퇴장 장면은 제게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조수미는 9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잔디마당에서 파크콘서트를 열었다. 격식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가족, 연인끼리 자유롭게 도시락을 까먹으며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조수미는 한국 공연에 특별히 공을 많이 들인다. 야외 콘서트 때는 의자에 먼지가 앉지 않았는지를 일일이 살필 정도다.
“외국에서는 다 갖춰진 무대에 올라 노래만 하는데 한국에서는 공연 순서는 물론, 음향과 조명까지 꼼꼼히 확인해요. 외국 공연은 손님으로서 예쁘게 단장하고 가는 기분이고, 한국 공연은 우리 집에서 여는 잔치에 앞치마 두르고 나가 손님을 맞는 기분이랄까요. 관객에게 좀 더 기억에 남는 멋진 공연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올해는 그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데뷔한 지 25년 되는 해다. 데뷔 당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 역에 동양 여성이 캐스팅되자 음악계가 떠들썩했다. 새로운 프리마돈나의 탄생을 응원하는 사람보다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고 벼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날 그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환상적인 가창력을 선보였고, 이후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영국 코벤트 가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등 세계 정상급 오페라하우스에서 펼쳐진 공연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믿어지지가 않아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한국에서 온 작은 소녀에 불과하던 제가 음악하는 후배들에게 영감과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기도 하고요(웃음). 지금 반쯤 온 것 같아요. 앞으로 다가올 25년도, 지금까지와 똑같은 열정과 호기심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1986년 조수미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데뷔할 때 객석에는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의 비서도 앉아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카라얀에게서 당장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카라얀 앞에 선 그는 고난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오페라 ‘마술피리’의 아리아 ‘밤의 여왕’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2년 뒤 조수미는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카라얀의 오페라 ‘가면무도회’의 주연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공연을 앞두고 카라얀이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바람에 게오르그 솔티 경이 카라얀을 대신해 지휘봉을 잡았다. 어쨌든 이 공연을 계기로 조수미는 세계적인 지휘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무대 안팎 철저히 구분 극한의 절제
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 헤르베르트 폴 카라얀.
성악가는 나이가 들면 목소리와 가량에도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다. 조수미는 현재가 자신의 최고 절정기라고 자신 있게 단언한다. 고음은 화려하고 중저음은 풍성해졌다는 것. 요즘도 연습할 때 종종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부른다는데 만족스러운 수준인가 보다. 아직 한국 팬 앞에서는 ‘밤의 여왕’을 라이브로 부른 적이 없지만 곧 그런 날이 올 것 같다고 했다.
조수미의 음악 인생은 3기로 나뉜다. 초반은 화려한 고음과 기교를 바탕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시기. 두 번째는 알져지지 않은 곡을 찾아 녹음하며 엘리트 음악을 추구하던 시기다. 한동안 그런 일에 열을 올리던 어느 날,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며 ‘엘리트를 위한 음악도 좋지만 좀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나인스 게이트’, 미국 드라마 ‘밀드레드 피어스’의 주제가를 부른 것도 대중과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가 주제가를 부른 영화와 드라마는 모두 흥행에 성공했고, ‘밀드레드 피어스’의 여자 주인공 케이트 윈즐릿도 최근 에미상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조수미에게 작품 복이 있는 건 확실한 듯하다.
그는 “목소리로 음악을 표현한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내 목소리를 잘 알고 현명하게 보호해왔다”고 말한다. 이는 곧 극한의 절제를 의미한다. 그는 종종 “목소리는 갓난아기처럼 변덕이 심해 24시간 눈을 떼지 말고 돌봐줘야 한다”고 말한다. 먹고 마시고 놀고, 심지어 우는 일까지, 보통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그에게는 늘 도전이고 시험이다. 그는 4년 전 자궁근종 수술 후 임신을 할 수 없게 됐다. 신은 어쩌면 그에게 목소리라는 아이를 선물했는지도 모른다.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세계 어디를 가든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요. 날씨가 춥거나 더우면 관광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다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일, 예를 들어 마음껏 우는 일이 저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어 실컷 울지도 못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몸을 참 많이 사리는구나 싶을 거예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하도 연습에 찌들어 살아서인지 저는 별로 불편하다거나 힘들지 않아요. 보통사람들이 매일 시장 가고 밥 하고 하는 것처럼 저도 매일 연습할 뿐이죠. 그 대신 휴가 때 스트레스 풀고 여행도 다니고 봉사도 하면서 여유를 가져요. 음악이라는 울타리가 너무 높고 단단해 때론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에 작은 구멍이라도 내서 평범한 일상으로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해요.”
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저처럼 무대 안팎 모습이 완벽하게 다른 사람도 흔치 않을 거예요(웃음). 무대는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연습과 훈련으로 빚어진 완벽한 프로덕트예요. 항상 무섭고 떨리는 공간이죠. 그곳에서는 음악적으로나 시각적으로 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해요. 무대 에서는 그런 걸 철저히 잘 지키는 편이지만, 일을 떠나서는 평범한 여자예요. 아니, ‘파렴치(?)’할 정도로 나이보다 순수하게 살려고 노력하죠. 금방 눈물짓고 쉽게 감동받고 속상해하고 사람을 그리워하고…. 평소에는 화장도 짙게 안 해요. 시장 갈 때 앙드레 김 선생님의 드레스를 입고 나가는 일은 더더욱 없고요(웃음). 그냥 반바지에 모자 푹 눌러쓰고 나가죠. 길에서 저를 보면 수수한 모습에 당황해서 ‘어머, 이런 모습 처음이에요’라고 할걸요.”
한국 공연은 우리 집에서 여는 잔치
사람들이 그에게 가장 궁금해하는 점 가운데 하나는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것. 이에 대한 대답은 명확했다. 결혼이나 사랑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는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 더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이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사랑도 만나고 함께 인생을 꿈꿀 남자도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길을 가는 동안 때로는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줘야 하고, 때로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는 2006년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도 공연을 계속 한 적이 있다. ‘인간’ 조수미와 ‘예술가’ 조수미를 완벽하게 구분하는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세계적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8월 중순 예술의전당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다 무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중간에 퇴장한 사건에 대해 물었다.
“두 가지 관점에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인간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분은 거장이고 연세가 많아요. 지나치게 덥거나 추운 환경에서는 불편할 수 있었을 거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둘째 예술가적 관점에서 말씀드리자면, 제 노래를 들으러 오시는 분은 제게는 신적인 존재예요. 개인적 사정이나 감정을 무대에 담아선 안 되죠.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요. 마에스트로 바렌보임을 비판할 생각도 없고, 그럴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그날 퇴장 장면은 제게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조수미는 9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잔디마당에서 파크콘서트를 열었다. 격식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가족, 연인끼리 자유롭게 도시락을 까먹으며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조수미는 한국 공연에 특별히 공을 많이 들인다. 야외 콘서트 때는 의자에 먼지가 앉지 않았는지를 일일이 살필 정도다.
“외국에서는 다 갖춰진 무대에 올라 노래만 하는데 한국에서는 공연 순서는 물론, 음향과 조명까지 꼼꼼히 확인해요. 외국 공연은 손님으로서 예쁘게 단장하고 가는 기분이고, 한국 공연은 우리 집에서 여는 잔치에 앞치마 두르고 나가 손님을 맞는 기분이랄까요. 관객에게 좀 더 기억에 남는 멋진 공연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