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전셋값을 올려달라는데 돈이 있어야죠. 불편하더라도 장모님과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모 대기업 입사 8년 차인 윤영준 씨는 급등하는 전셋값을 마련하지 못해 장모와 함께 사는 쪽을 선택했다. 장모가 사는 집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오른 전셋값을 충당하겠다는 생각이다. 홀로 사는 장모도 적적해하던 차에 “그렇게 하자”며 흔쾌히 동의했다. 지금 사는 곳에서 외곽으로 좀 더 나가면 그럭저럭 전셋값을 맞출 수도 있지만, 출퇴근 시간과 자녀 교육 환경이 문제였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전세대란으로 전셋값을 마련하지 못한 이들이 윤씨처럼 부모와 합가(合家)하거나, 아예 부모 집에 얹혀사는 예가 늘었다. 2년 전 결혼한 전유성 씨도 집주인이 전셋값을 7000만 원 올려달라고 하자 “부모에게 돌아갈지, 처가로 들어갈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자식을 시집, 장가보내고 한숨 돌리던 부모세대 처지에선 ‘자녀의 귀환’이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전셋값 폭등이 근로자의 삶에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전셋값 상승은 결혼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자녀의 결혼 시기가 부모의 은퇴 시기에 맞닿아 있어, 노후생활비로 준비해둔 자금 가운데 상당 금액을 자녀 결혼비용으로 지출해야 할 형편이다. 얼마 전 서울지방법원은 결혼비용을 대주지 않는 부모에게 제초제를 뿌린 한모(42) 씨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막대한 결혼비용으로 자녀가 차일피일 결혼을 미루는 것도 문제다. 성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 ‘캥거루 족’ 자녀 탓에 ‘자녀부양’(?)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가 늘었다.
자녀 세대라고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거주지를 옮기면 당장 출퇴근 시간이 문제다. 조금이라도 출퇴근 시간을 줄이려면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는 수밖에 없다. 자연히 가족과 얘기할 시간이 줄어든다. ‘전세 난민’이 ‘출퇴근 난민’이 되는 것이다.
전셋값 급등은 자녀교육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시작한 전셋값 급등 현상이 외곽으로 퍼져 나가는 ‘풍선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교육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은 주목해볼 만하다.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 강북이나 다른 지역에 있는 주택을 다른 사람에게 전세 주고, 강남에 전세를 얻어 이주한 사람이 문제라는 것. 강남지역 전셋값이 오르자, 이를 감당하려고 자기가 소유한 주택의 전셋값을 올려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해 보유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는 경우도 많다. 기존 주택을 담보로 한 생활자금 대출 증가가 이를 증명해준다. 대출을 받아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면 노후를 위해 저축해야 할 자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셋값 상승 행진은 언제쯤 멈출까. 일부 전문가는 전세시장이 안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세제도가 한국에 정착한 배경과도 관련 있다. 경제개발과 핵가족화가 한창이던 1960~80년대에는 주택 공급이 수요에 비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주택을 사두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소매금융이 활성화하지 않았던 터라 주택을 구입하려고 개인에게서 자금을 빌리곤 했다.
전세는 일종의 사금융(私金融) 제도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하고, 빌린 돈에 대한 대가로 세입자에게 주택 사용권을 주는 것이다. 세입자는 적은 돈으로 주택사용권을 갖고, 집주인은 별도의 이자 비용 없이 집을 사서 값이 오르면 차익을 얻는다. 채권자, 채무자 모두에게 이득이 됐기에 전세 제도가 급속히 확산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이 고도성장하는 과정에서 주택은 거주 대상이 아닌, 투자 대상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집값 상승이 멈추거나 하락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준다. 그리고 주택 구입에 들어간 자본을 회수하고자 전셋값을 인상하거나 월세로 전환하고자 할 것이다. 최근 서울 강남지역에서 나타난 전셋값 급등과 월세 전환 붐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아파트값과 전셋값을 비교해보자. 서울 송파지역의 33평형대 아파트값은 9억5000만 원 전후인 데 반해, 전셋값은 5억 원 정도다. 집주인이 전세자금을 투자해 세후 4% 정도의 수익을 얻는다면 연간 2000만 원을 번다. 본인 자금 4억5000만 원을 투자해 연간 2000만 원 수익을 얻었으니 수익률은 4.4%가량이다. 주택을 보유하는 데 따른 세금과 각종 비용을 감안한다면 만족할 만한 수익은 아니다. 일부 전문가가 전셋값 안정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내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세입자가 보유한 자산이나 대출 능력에 한계가 있기에 전셋값을 계속 올려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전세자금 가운데 일부를 빼내 월세로 전환하는 반월세가 등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월세보다 전세가 유리하다는 세입자의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집주인은 전셋값을 올리거나 월세 전환을 요구할 것이다. 월급 받아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 대기도 바쁜 직장인이 월세까지 납부한다면 노후 준비는 언제 하란 말인가. ‘전세 난민’이 미래에 ‘은퇴 난민’이 되지 않을까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월세를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월세가 정착하면 주택시장 거품이 사라진다. 월세로 1년간 얻는 수익을 시장이자율을 변수로 넣고 계산할 때 주택값이 나오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전세자금을 마련하느라 결혼을 미루지 않아도 되고, 자녀가 결혼할 때 전셋값을 마련해주고자 부모가 노후자금에 손댈 필요도 없어진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모 대기업 입사 8년 차인 윤영준 씨는 급등하는 전셋값을 마련하지 못해 장모와 함께 사는 쪽을 선택했다. 장모가 사는 집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오른 전셋값을 충당하겠다는 생각이다. 홀로 사는 장모도 적적해하던 차에 “그렇게 하자”며 흔쾌히 동의했다. 지금 사는 곳에서 외곽으로 좀 더 나가면 그럭저럭 전셋값을 맞출 수도 있지만, 출퇴근 시간과 자녀 교육 환경이 문제였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전세대란으로 전셋값을 마련하지 못한 이들이 윤씨처럼 부모와 합가(合家)하거나, 아예 부모 집에 얹혀사는 예가 늘었다. 2년 전 결혼한 전유성 씨도 집주인이 전셋값을 7000만 원 올려달라고 하자 “부모에게 돌아갈지, 처가로 들어갈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자식을 시집, 장가보내고 한숨 돌리던 부모세대 처지에선 ‘자녀의 귀환’이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전셋값 폭등이 근로자의 삶에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전셋값 상승은 결혼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자녀의 결혼 시기가 부모의 은퇴 시기에 맞닿아 있어, 노후생활비로 준비해둔 자금 가운데 상당 금액을 자녀 결혼비용으로 지출해야 할 형편이다. 얼마 전 서울지방법원은 결혼비용을 대주지 않는 부모에게 제초제를 뿌린 한모(42) 씨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막대한 결혼비용으로 자녀가 차일피일 결혼을 미루는 것도 문제다. 성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 ‘캥거루 족’ 자녀 탓에 ‘자녀부양’(?)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가 늘었다.
자녀 세대라고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거주지를 옮기면 당장 출퇴근 시간이 문제다. 조금이라도 출퇴근 시간을 줄이려면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는 수밖에 없다. 자연히 가족과 얘기할 시간이 줄어든다. ‘전세 난민’이 ‘출퇴근 난민’이 되는 것이다.
전셋값 급등은 자녀교육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시작한 전셋값 급등 현상이 외곽으로 퍼져 나가는 ‘풍선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교육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은 주목해볼 만하다.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 강북이나 다른 지역에 있는 주택을 다른 사람에게 전세 주고, 강남에 전세를 얻어 이주한 사람이 문제라는 것. 강남지역 전셋값이 오르자, 이를 감당하려고 자기가 소유한 주택의 전셋값을 올려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해 보유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는 경우도 많다. 기존 주택을 담보로 한 생활자금 대출 증가가 이를 증명해준다. 대출을 받아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면 노후를 위해 저축해야 할 자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셋값 상승 행진은 언제쯤 멈출까. 일부 전문가는 전세시장이 안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세제도가 한국에 정착한 배경과도 관련 있다. 경제개발과 핵가족화가 한창이던 1960~80년대에는 주택 공급이 수요에 비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주택을 사두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소매금융이 활성화하지 않았던 터라 주택을 구입하려고 개인에게서 자금을 빌리곤 했다.
전세는 일종의 사금융(私金融) 제도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하고, 빌린 돈에 대한 대가로 세입자에게 주택 사용권을 주는 것이다. 세입자는 적은 돈으로 주택사용권을 갖고, 집주인은 별도의 이자 비용 없이 집을 사서 값이 오르면 차익을 얻는다. 채권자, 채무자 모두에게 이득이 됐기에 전세 제도가 급속히 확산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이 고도성장하는 과정에서 주택은 거주 대상이 아닌, 투자 대상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집값 상승이 멈추거나 하락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준다. 그리고 주택 구입에 들어간 자본을 회수하고자 전셋값을 인상하거나 월세로 전환하고자 할 것이다. 최근 서울 강남지역에서 나타난 전셋값 급등과 월세 전환 붐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민주당, 민노당 전월세 특위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뒤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대로 된 전세대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세입자가 보유한 자산이나 대출 능력에 한계가 있기에 전셋값을 계속 올려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전세자금 가운데 일부를 빼내 월세로 전환하는 반월세가 등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월세보다 전세가 유리하다는 세입자의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집주인은 전셋값을 올리거나 월세 전환을 요구할 것이다. 월급 받아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 대기도 바쁜 직장인이 월세까지 납부한다면 노후 준비는 언제 하란 말인가. ‘전세 난민’이 미래에 ‘은퇴 난민’이 되지 않을까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월세를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월세가 정착하면 주택시장 거품이 사라진다. 월세로 1년간 얻는 수익을 시장이자율을 변수로 넣고 계산할 때 주택값이 나오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전세자금을 마련하느라 결혼을 미루지 않아도 되고, 자녀가 결혼할 때 전셋값을 마련해주고자 부모가 노후자금에 손댈 필요도 없어진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