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희(39)를 처음 만난 때는 1999년 봄이다. 당시에도 그는 잘나가는 배우이자 MC였다. 1994년 드라마 ‘서울의 달’이 출세작. 한석규를 비롯해 걸출한 스타를 배출한 이 드라마에서 최민식을 짝사랑하는 배역 호순이로 나왔다.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어눌한 충청도 사투리에 통통 튀는 이미지로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 MBC 21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된 지 2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특유의 예능감도 이때부터 발현했다.
요즘은 배우보다 예능계 안방마님으로 주가를 올린다. 탈세 혐의로 구설에 올라 휴식을 선택한 강호동 이후의 개그 본색으로 그가 꼽힌다.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이하 ‘놀러와’)’와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이하 ‘자기야’)’가 바로 그의 일터다. 두 프로그램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그는 올해 백상예술대상 TV 부문에서 여자 예능상을 받았다. 수상 이후에도 인터뷰를 일절 자제해온 그가 모처럼 기자와 만났다.
▼ 예전에는 예능 MC로 상 타는 걸 부담스러워했는데 이번에는 어땠나요.
“가문의 영광이죠. 올해는 기분 좋았어요. 책임감이 생겨서 그런가 봐요.”
▼ 프로그램 준비를 어떤 방식으로 하나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본 후 궁금한 걸 주로 물어봐요. ‘놀러와’는 궁금한 사람이 나오니까 즐기면서 재미있게 해요. ‘자기야’를 진행할 땐 끼어들기보단 열심히 들어요. 부부간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라 치유 효과가 있거든요. 집에서는 결론 안 나는 문제를 다른 부부가 객관적으로 정리해주죠. MC로서 진행한다기보다 맥을 짚어주는 구실을 하고자 해요.”
▼ 예능과 배우 중 어느 쪽이 더 애착이 가나요.
“딱 반반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연기를 띄엄띄엄 했어도 예능에 다걸기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예능에 대한 애착이 커요.”
연기는 2008년 OCN에서 방송한 ‘과거를 묻지 마세요’가 마지막이다.
▼ 드라마나 영화는 일부러 안 하는 건가요.
“할 시간이 없어요. 드라마 하려면 시간을 통째로 비워놓아야 하거든요. 그 대신 영화는 시간 조절이 가능해요. 기회가 오면 해야죠.”
남자 MC는 강호동, 유재석이 양강 구도를 다져왔지만 여자 MC는 김원희의 존재감이 단연 돋보인다. 김원희가 진행하는 예능프로그램은 대부분 롱런한다. 비결이 뭘까.
“어쩌다 보니 프로그램이 장수하네요. 파트너 복이 많아요. 일에 욕심을 내지 않은 것도 한몫했죠. 일이 들어온다고 다 하진 않았거든요.”
▼ ‘놀러와’를 진행하면서 실수한 적은 없나요.
“방송은 한 시간밖에 나오지 않지만 실제로는 대여섯 시간씩 찍어요. 실수해도 편집자가 덮어주니 굳이 실수담이랄 게 없어요.”
▼ 녹화 도중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싶을 땐 어쩌나요.
“잘 참아요. 고충이라고 한다면 얼굴이 빨개지는 거예요. 감추지 못해서 난처하고, 민망해요.”
친구로 편한 유재석, 인간미 넘치는 김용만
▼ ‘놀러와’는 팀워크가 좋다고 소문났던데….
“팀워크가 최고예요. 작가 한 명이 보통 3~4년씩 가요. ‘놀러와’를 위한 전문 팀 같아요. 방송 끝나고 집에 바로 간 적이 없어요. 남아서 얘기하고, 밥 먹고, 뒤풀이 비슷하게 해요. 그래서 팀워크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 모두가 뒤풀이를 함께 하나요.
“PD랑 작가랑 고정 식구만 해요. 가족 같아요. 그게 ‘놀러와’를 끌고 가는 힘이다 싶어요.”
▼ 유재석 씨와 동갑내기고 워낙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서 ‘오피스 커플’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 게 있어요. 유재석 씨에게 흑염소를 해준 적이 있어요(웃음).”
▼ 남편에게도 흑염소를 해줬나요.
“남편은 흑염소 안 먹어요. 냄새 난다고 싫어해요.”
▼ 유재석 씨 반응은 어땠나요.
“고맙게 받았죠. 스스럼없이 선물도 자주 하고 그래요. 가족 같으니까.”
▼ 그래서 호흡이 잘 맞는군요.
“유재석 씨와는 친구 같은 우정이 있고, 인간미 넘치는 건 김용만 씨예요. 김용만 씨가 참 좋더라고요. 누가 더 좋고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김용만)은 양보할 줄도 알고 인간적이에요. ‘자기야’ 할 때는 녹화가 빨리 끝나요. 예전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도 함께 했는데, 오래된 사이라 스스럼없어요. 진행을 워낙 잘해서 누구든 흔쾌히 받쳐주는 그런 사람이에요.”
▼ 공동 진행할 때는 서로 멘트를 더 많이 하려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잖아요.
“보이지 않게 그런 일이 벌어지죠. 말을 더 많이 하려고 욕심내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전 그런 게 너무 싫어요. 상대가 욕심내면 그냥 너 해라 그러고 말아요. 인정사정없이 치열한 건 체질에 맞지 않아요. 분위기가 뜨거우면 그만두는 스타일이에요. 내심 상처받거든요. 연예계에서는 누구를 밟고 일어서는 일이 흔하다는데, 전 눈과 귀가 꽉 닫혀서 그런 걸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다 최근에 이곳이 치열한 곳이라는 걸 느꼈죠. 그때 겁이 확 나더라고요.”
▼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라기보다 눈을 좀 떴다고나 할까요. 나이도 있고 여러 가지 남 일에도 참견하고, 그러다 보니 눈이 떠지더라고요.”
▼ 데뷔한 지 20년 다 된 사람이 이제야 속성을 알았다니 놀랍네요.
“전 방송국에서 누가 높은 사람인지도 몰랐어요. 누가 인사시켜줘야 알 정도예요. 기를 쓰고 다걸기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런가 봐요. 연예계 속성을 뒤늦게 알았다는 사실이 좀 슬프긴 하지만 영원히 몰랐으면 더 좋았을 뻔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즐겼을 테니까요.”
▼ 이성보다 동성끼리 진행할 때 더 치열할 것 같아요.
“어차피 프로의 세계라 남자랑 진행하든, 여자랑 진행하든 늘 치열하죠. 연예계가 아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돌아보면, 아, 그게 견제였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죠. 예전에는 그걸 전혀 몰랐어요. 한마디로 눈치가 없었던 거죠.”
원래 꿈은 연예인이 아니었다. 고교시절엔 스튜어디스나 아나운서가 되고자 했고, 더 어릴 적엔 선생님을 꿈꿨다.
“다른 사람을 바른길로 이끄는, 훈장 같은 면이 있어요. 선생님 해도 좋았을 것 같아요.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이 분명하거든요. 피곤한 스타일이죠. 바른길로 안 가는 사람에게는 지적을 하니까. 저한테 그런 면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제가 곱게 늙고 있는지 신중하게 생각할 정도니까요.”
▼ 어쩌다 연예인이 됐나요.
“친구가 혼자 배우 시험 보러 가기 민망하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어요. 근데 말도 안 되게 나만 붙었어요.”
연예인 안 했다면 선생님이나 승무원
▼ 그 친구와 지금도 연락하나요.
“친구가…, 천국 갔어요. 교통사고 나서. 성품도 착하고 얼굴도 참 예뻤어요. 혼혈아같이 생겼거든요. 재능 많은 광고 모델이었는데 20대 초반에 그렇게 됐어요. 광고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었는데, 아마 그 친구 살아 있었으면 굉장한 스타가 됐을 거예요. 친구가 저를 이 길로 인도해준 셈이에요.”
▼ 연예인이 안 됐다면 뭐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나 승무원요. 선생님은 하고 싶었던 것이고, 승무원은 사람들이 어울릴 것 같다고 했거든요. 신체 조건은 딱 맞잖아요. 근데 승무원이 됐더라도 오래 못했을 것 같아요. 비위에 안 맞아서요.”
인기 좀 있다 싶은 연예인 중에는 스타랍시고 목에 힘주고 다니면서 함께 일하는 매니저나 코디네이터를 종 부리듯 하는 사람이 왕왕 있다. 그런데 김원희는 다르다. 먼저 결혼한 매니저를 신혼여행 보내주려고 웨딩촬영을 일부러 해외에서 했다.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매니저에게 잘못하면, 큰일이 나거나 일을 쉬어야 할 때 누가 옆에 있어주겠어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격식을 차리지 않아요. 한 식구니까요. 지혜롭게 살려면 편협한 생각을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세상과 연예계에 적당히 양다리를 걸쳐요. 교회 아줌마들이랑 한 달에 한 번씩 모임도 갖고 자주 만나거든요(웃음).”
김원희는 연예활동 외에도 화장품 사업과 쇼핑몰 운영을 병행한다. 그가 기획과 디자인에 참여한 화장품에는 ‘김원희’라는 이름이 제품명에 들어간다. 패션 잡화를 파는 쇼핑몰 키미쇼(www.kimmyshow.com)는 그를 비롯해 네 자매가 함께 만들었다. 봉사도 열심이다. 연예인 봉사단체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 부회장 겸 총무. 따사모를 2003년 4월 결성했다. 정준호, 장동건, 차태현 등 10여 명의 연예인이 뜻을 모았다. 처음엔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동료를 돕다가 활동 영역을 넓혀 소외된 이웃을 살피고 있다.
“따사모 연예인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길 원해요. 2004년 12월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가 반납한 것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멤버가 소수 정예로 매달 한 번씩 모이고 봉사는 ‘번개’로 해요. 운영 경비는 회원들이 갹출하고요. CF 출연료의 일부를 내놓기도 해요. 외부 도움을 받은 적은 없어요. 300여 명의 초중고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어요. 앞으로 더 늘려가야죠.”
요즘은 배우보다 예능계 안방마님으로 주가를 올린다. 탈세 혐의로 구설에 올라 휴식을 선택한 강호동 이후의 개그 본색으로 그가 꼽힌다.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이하 ‘놀러와’)’와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이하 ‘자기야’)’가 바로 그의 일터다. 두 프로그램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그는 올해 백상예술대상 TV 부문에서 여자 예능상을 받았다. 수상 이후에도 인터뷰를 일절 자제해온 그가 모처럼 기자와 만났다.
▼ 예전에는 예능 MC로 상 타는 걸 부담스러워했는데 이번에는 어땠나요.
“가문의 영광이죠. 올해는 기분 좋았어요. 책임감이 생겨서 그런가 봐요.”
▼ 프로그램 준비를 어떤 방식으로 하나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본 후 궁금한 걸 주로 물어봐요. ‘놀러와’는 궁금한 사람이 나오니까 즐기면서 재미있게 해요. ‘자기야’를 진행할 땐 끼어들기보단 열심히 들어요. 부부간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라 치유 효과가 있거든요. 집에서는 결론 안 나는 문제를 다른 부부가 객관적으로 정리해주죠. MC로서 진행한다기보다 맥을 짚어주는 구실을 하고자 해요.”
▼ 예능과 배우 중 어느 쪽이 더 애착이 가나요.
“딱 반반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연기를 띄엄띄엄 했어도 예능에 다걸기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예능에 대한 애착이 커요.”
연기는 2008년 OCN에서 방송한 ‘과거를 묻지 마세요’가 마지막이다.
▼ 드라마나 영화는 일부러 안 하는 건가요.
“할 시간이 없어요. 드라마 하려면 시간을 통째로 비워놓아야 하거든요. 그 대신 영화는 시간 조절이 가능해요. 기회가 오면 해야죠.”
남자 MC는 강호동, 유재석이 양강 구도를 다져왔지만 여자 MC는 김원희의 존재감이 단연 돋보인다. 김원희가 진행하는 예능프로그램은 대부분 롱런한다. 비결이 뭘까.
“어쩌다 보니 프로그램이 장수하네요. 파트너 복이 많아요. 일에 욕심을 내지 않은 것도 한몫했죠. 일이 들어온다고 다 하진 않았거든요.”
▼ ‘놀러와’를 진행하면서 실수한 적은 없나요.
“방송은 한 시간밖에 나오지 않지만 실제로는 대여섯 시간씩 찍어요. 실수해도 편집자가 덮어주니 굳이 실수담이랄 게 없어요.”
▼ 녹화 도중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싶을 땐 어쩌나요.
“잘 참아요. 고충이라고 한다면 얼굴이 빨개지는 거예요. 감추지 못해서 난처하고, 민망해요.”
친구로 편한 유재석, 인간미 넘치는 김용만
▼ ‘놀러와’는 팀워크가 좋다고 소문났던데….
“팀워크가 최고예요. 작가 한 명이 보통 3~4년씩 가요. ‘놀러와’를 위한 전문 팀 같아요. 방송 끝나고 집에 바로 간 적이 없어요. 남아서 얘기하고, 밥 먹고, 뒤풀이 비슷하게 해요. 그래서 팀워크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 모두가 뒤풀이를 함께 하나요.
“PD랑 작가랑 고정 식구만 해요. 가족 같아요. 그게 ‘놀러와’를 끌고 가는 힘이다 싶어요.”
▼ 유재석 씨와 동갑내기고 워낙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서 ‘오피스 커플’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 게 있어요. 유재석 씨에게 흑염소를 해준 적이 있어요(웃음).”
▼ 남편에게도 흑염소를 해줬나요.
“남편은 흑염소 안 먹어요. 냄새 난다고 싫어해요.”
▼ 유재석 씨 반응은 어땠나요.
“고맙게 받았죠. 스스럼없이 선물도 자주 하고 그래요. 가족 같으니까.”
▼ 그래서 호흡이 잘 맞는군요.
“유재석 씨와는 친구 같은 우정이 있고, 인간미 넘치는 건 김용만 씨예요. 김용만 씨가 참 좋더라고요. 누가 더 좋고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김용만)은 양보할 줄도 알고 인간적이에요. ‘자기야’ 할 때는 녹화가 빨리 끝나요. 예전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도 함께 했는데, 오래된 사이라 스스럼없어요. 진행을 워낙 잘해서 누구든 흔쾌히 받쳐주는 그런 사람이에요.”
▼ 공동 진행할 때는 서로 멘트를 더 많이 하려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잖아요.
“보이지 않게 그런 일이 벌어지죠. 말을 더 많이 하려고 욕심내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전 그런 게 너무 싫어요. 상대가 욕심내면 그냥 너 해라 그러고 말아요. 인정사정없이 치열한 건 체질에 맞지 않아요. 분위기가 뜨거우면 그만두는 스타일이에요. 내심 상처받거든요. 연예계에서는 누구를 밟고 일어서는 일이 흔하다는데, 전 눈과 귀가 꽉 닫혀서 그런 걸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다 최근에 이곳이 치열한 곳이라는 걸 느꼈죠. 그때 겁이 확 나더라고요.”
▼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라기보다 눈을 좀 떴다고나 할까요. 나이도 있고 여러 가지 남 일에도 참견하고, 그러다 보니 눈이 떠지더라고요.”
▼ 데뷔한 지 20년 다 된 사람이 이제야 속성을 알았다니 놀랍네요.
“전 방송국에서 누가 높은 사람인지도 몰랐어요. 누가 인사시켜줘야 알 정도예요. 기를 쓰고 다걸기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런가 봐요. 연예계 속성을 뒤늦게 알았다는 사실이 좀 슬프긴 하지만 영원히 몰랐으면 더 좋았을 뻔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즐겼을 테니까요.”
▼ 이성보다 동성끼리 진행할 때 더 치열할 것 같아요.
“어차피 프로의 세계라 남자랑 진행하든, 여자랑 진행하든 늘 치열하죠. 연예계가 아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돌아보면, 아, 그게 견제였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죠. 예전에는 그걸 전혀 몰랐어요. 한마디로 눈치가 없었던 거죠.”
원래 꿈은 연예인이 아니었다. 고교시절엔 스튜어디스나 아나운서가 되고자 했고, 더 어릴 적엔 선생님을 꿈꿨다.
“다른 사람을 바른길로 이끄는, 훈장 같은 면이 있어요. 선생님 해도 좋았을 것 같아요.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이 분명하거든요. 피곤한 스타일이죠. 바른길로 안 가는 사람에게는 지적을 하니까. 저한테 그런 면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제가 곱게 늙고 있는지 신중하게 생각할 정도니까요.”
▼ 어쩌다 연예인이 됐나요.
“친구가 혼자 배우 시험 보러 가기 민망하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어요. 근데 말도 안 되게 나만 붙었어요.”
연예인 안 했다면 선생님이나 승무원
‘놀러와’를 함께 진행하는 유재석(왼쪽)과 김원희.
“친구가…, 천국 갔어요. 교통사고 나서. 성품도 착하고 얼굴도 참 예뻤어요. 혼혈아같이 생겼거든요. 재능 많은 광고 모델이었는데 20대 초반에 그렇게 됐어요. 광고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었는데, 아마 그 친구 살아 있었으면 굉장한 스타가 됐을 거예요. 친구가 저를 이 길로 인도해준 셈이에요.”
▼ 연예인이 안 됐다면 뭐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나 승무원요. 선생님은 하고 싶었던 것이고, 승무원은 사람들이 어울릴 것 같다고 했거든요. 신체 조건은 딱 맞잖아요. 근데 승무원이 됐더라도 오래 못했을 것 같아요. 비위에 안 맞아서요.”
인기 좀 있다 싶은 연예인 중에는 스타랍시고 목에 힘주고 다니면서 함께 일하는 매니저나 코디네이터를 종 부리듯 하는 사람이 왕왕 있다. 그런데 김원희는 다르다. 먼저 결혼한 매니저를 신혼여행 보내주려고 웨딩촬영을 일부러 해외에서 했다.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매니저에게 잘못하면, 큰일이 나거나 일을 쉬어야 할 때 누가 옆에 있어주겠어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격식을 차리지 않아요. 한 식구니까요. 지혜롭게 살려면 편협한 생각을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세상과 연예계에 적당히 양다리를 걸쳐요. 교회 아줌마들이랑 한 달에 한 번씩 모임도 갖고 자주 만나거든요(웃음).”
김원희는 연예활동 외에도 화장품 사업과 쇼핑몰 운영을 병행한다. 그가 기획과 디자인에 참여한 화장품에는 ‘김원희’라는 이름이 제품명에 들어간다. 패션 잡화를 파는 쇼핑몰 키미쇼(www.kimmyshow.com)는 그를 비롯해 네 자매가 함께 만들었다. 봉사도 열심이다. 연예인 봉사단체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 부회장 겸 총무. 따사모를 2003년 4월 결성했다. 정준호, 장동건, 차태현 등 10여 명의 연예인이 뜻을 모았다. 처음엔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동료를 돕다가 활동 영역을 넓혀 소외된 이웃을 살피고 있다.
“따사모 연예인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길 원해요. 2004년 12월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가 반납한 것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멤버가 소수 정예로 매달 한 번씩 모이고 봉사는 ‘번개’로 해요. 운영 경비는 회원들이 갹출하고요. CF 출연료의 일부를 내놓기도 해요. 외부 도움을 받은 적은 없어요. 300여 명의 초중고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어요. 앞으로 더 늘려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