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프로야구 최대의 영웅처럼 살면 안 된다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9월 14일 53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최동원의 삶을 돌아보면 그 말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신화로 만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1984년 한국시리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롯데가 믿을 데라곤 ‘최동원’밖에 없었다. “1, 3, 5, 7차전에 최동원을 내세워 우승하겠다”는 강병철 당시 롯데 감독의 말은 어이가 없었지만 딱히 대안도 없었다. 당시 강 감독이 “동원아 우야겠노, 여기까지 왔는데…”라고 말하자, 최동원이 “알았심더. 한번 해보입시더”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은 ‘가을의 전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5번 출장해 4승을 만들어냈으며, 40이닝을 혼자 던졌다. ‘최동원의, 최동원에 의한, 최동원을 위한’ 경기를 펼치면서 장렬히 산화해 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다.

‘바보 최동원’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끝없는 탐욕으로 선수의 고혈을 빼먹으려 한 구단, 그럼에도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던 최동원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그토록 원하던 고향팀 감독을 맡지도 못한 채 떠난 최동원이 하늘에서나마 편히 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