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은 욕설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학생들을 묵인해온 책임이 크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최근 어머니뻘인 환경미화원에게 욕설을 내뱉어 공분을 산 경희대 ‘패륜녀 사건’이 있었다. 해당 미화원의 딸이 사건 내용을 담은 글을 포털사이트에 올리면서 파문이 커졌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년’ ‘×발’이 난무한다. 누구나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발바닥까지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한 여학생의 거침없는 말 탓으로 돌리기에는 교육 관계자들과 기성세대의 잘못이 너무 크다. 한국 교육기관에서 인성교육이랍시고 하는 것은 주(週)당 한두 시간의 도덕·윤리 수업이 전부다. 진정성 없는 윤리 수업을 비웃기라도 하듯 초·중·고교 교실은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욕설이 멈추지 않는 ‘욕설낙원(辱說樂園)’이 됐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온종일 서로에게 욕설을 쏟아낸다.
현재 진행 중인 ‘6·2교육감 선거’도 황폐한 교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후보들의 공약이 온통 교사 잡무 경감, 수능 1위, 학생 학습동기 부여, 학생 개인별 맞춤형·수준별 적성교육, 교육 재정 확충 등 학력 신장에 매달려 있다. 인성교육을 첫째로 제시한 후보는 찾을 수 없다. 시의원 선거도 아닌 교육감 선거가 이 모양이니, 학생들의 인성교육이 제대로 안 된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까.
욕해야 통하는 수능 강사 “이럴 수가”
욕설을 권장하는 곳이 또 있다. 요즘은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욕설을 배 터지게 먹고 고맙다며 프리미엄까지 바쳐야 하는’ 세상이다. 유명 사교육업체가 운영하는 학원과 온라인 강의를 들어보면 반말과 욕설이 난무한다. 집에서 곱게 키운 자녀들이 이곳에서는 강아지 아들, 송아지 딸이 된다. 입시 동물농장이다. 이런 업체의 대표들과 유명 강사들은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해괴한 근거를 댄다. 욕설에 찌든 학생들은 이런 강의를 듣고 환호하고 추종하며 무언가 통한다는 느낌을 갖는다. 욕설을 잘해야 수능 명강사로 등극하는 지경까지 왔다.
아직 이성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이 감성에 치우쳐 욕설의 폭력성을 자각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욕설로 도배한 강의를 ‘명(名)강의’라 포장하는 강사들은 진정 부끄러워해야 한다. 교육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그런 욕설을 정당화할 수 없다.
중·고등학교가 입시 때문에 포기한 인성교육을 대학이 해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요즘 한국 대학들이 목표로 하는 ‘글로벌 인재상’의 허상을 보자. 글로벌 인재를 만든다며 대학들은 ‘전 강의 영어 진행’ ‘외국인 교수 유치’ ‘외국 대학과 학점 교류’ 등을 내걸고 있다. 심지어 어떤 대학은 졸업하려면 어학연수가 필수라고 한다. 높은 학점과 영어에 다걸기(올인)하며, 각종 대회 수상 실적을 글로벌 인재의 조건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인성과 관련된 내용은 하나도 없다. 머리는 채우되 가슴은 텅 빈 ‘기형적 글로벌 인재’를 양산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욕설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패륜녀 사건’을 일으킨 학생의 부모가 사과하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교수들이 머리를 숙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의 지성을 이어 담을 학생들의 그릇이 오염된 채 방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해온 책임은 크다.
이번 ‘패륜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며 또 다른 ‘시리즈’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미 대학 구석구석까지 뿌리내린 욕설과 해이해진 도덕성은 어떤 바이러스보다 강력하게 제2, 제3의 ‘사건’을 몰고 올 것이다.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실력’일지 모르나, 글로벌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인성을 겸비한 ‘제대로 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