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완성은 음악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과 커피가 있고 인테리어에 많이 신경 쓴 곳이라도 흐르는 음악에 성의가 없다면 공간의 가치가 떨어진다.
‘멜론’의 실시간 차트만 열심히 돌리는 곳에서는 한 잔의 술조차 아깝다. 어쿠스틱 기타와 나긋나긋한 보컬로 대변되는 카페 뮤직만 주야장천 나오는 곳에서는 아무리 정성스레 커피를 내린다 해도 이어폰을 끼기 마련이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욱 괴롭다. 이어폰을 낀 채 대화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재료와 인테리어에 돈을 쏟아 붓고도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매칭하지 않는 주인을 나는 신뢰할 수 없다.
최신 유행곡만 지겹도록 틀어대는 공간보다는 아무 음악도 흐르지 않는 시장통 술집에서 밤이 더욱 즐겁게 취해간다.
서울의 청년 문화사에서 가장 색다른 음악을 틀던 지역은 홍대 앞이다. 신촌, 대학로, 이태원에 이어 새롭게 청년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홍대 앞 문화를 규정하는 건 곧 음악이었다.
얼터너티브, 펑크, 모던록 등 동시대 음악을 트는 술집들이 문을 열었고, 단골들은 밴드를 결성해 그곳에서 공연했다. 그게 홍대 앞 인디의 시작이자 라이브 클럽의 발원이었다. 라이브 클럽만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한 카페도 모던하거나 허름한 인테리어, 그리고 인디부터 월드 뮤직까지 아우르는 음악으로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이른바 ‘홍대 앞 카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2010년 이후 홍대 앞은 신촌, 이대 앞처럼 문화의 사막화를 겪었다. 신촌에서 홍대 앞이 갈라져 나왔듯, 연남동과 상수동이 파생 상권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홍대 앞처럼 연남동과 상수동도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다. 홍대 앞 문화를 만들었던 예술가와 자영업자들이 연남동과 상수동을 거쳐 다른 곳으로 쫓겨나야 했다.
그들이 새롭게 둥지를 틀고 있는 동네가 망원동이다. 몇 년 전부터 망원동으로 이사했다는 뮤지션들의 소식이 들렸다. 연남동과 상수동에서 좋았는데 사라진 업소들이 조용히 망원동에 둥지 트는 걸 목격했다. 얼마 전 여자친구가 망원동으로 이사하면서 어쩌다 가끔 가던 망원동에 매우 자주 머물게 됐다. 이 동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예전의 홍대 앞이 많이 떠올랐다.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음악이다.
꽤 좋은 스피커에서 흐르는 엘리엇 스미스, 벨 앤 세바스찬을 들으며 커피를 기다리고 샘 쿡과 캐럴 킹을 들으며 일본식 곱창전골을 먹는다. 맛있어 보여 들어간 곳이 대부분 그렇다. 이제 홍대 앞의 어지간한 가게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미각과 시각, 청각의 삼위일체를 의외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연남동과 상수동에서는 느낄 수 없던 분위기다.
그 이유는 아마 두 동네가 맛집 전성시대의 도래와 함께 붐을 이룬 반면, 망원동은 예술가와 소규모 자영업자의 강제 디아스포라(diaspora)로 조금씩 개척된 동네이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동네는 산책하는 맛이 있다. 발견의 재미가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곳만 안 가면 된다.
돼지껍데기에 소주나 한잔하려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돼지부속고깃집에 갔다. 간판은 깔끔했고 인테리어는 무던했으며 맛은 괜찮았다. 이런 유의 업소에서 기대하기 힘든 음악도 흘렀다. 재즈부터 브릿팝까지, 돼지껍데기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음악에 우리는 “역시 망원동 가게는 음악에 공을 참 많이 들인다”고 감탄했다.
너무나 우울한 피아노 솔로곡이 연거푸 나올 때까지는. 뭐랄까, 그건 너무 정숙하고 우울해 불타오르기 시작한 연인마저도 왠지 이별을 앞둔 듯 코스프레를 해야 할 것 같은 음악이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돼지껍데기만 집어 먹었다.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정적을 압도하는 이름 모를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잔조차 부딪히기 조심스러웠다. 그 위화감마저 정겨웠다. 헤비메탈이 연거푸 흐르곤 하던, 1990년대 후반의 홍대 앞 카페가 떠올랐다. 슬레이어를 들으며 마시던 헤이즐넛은 참 맛있고 향기로웠다. ‘취향’이라는 단어가 만개하던 90년대의 아이러니한 추억이, 돼지껍데기가 타닥거리는 소리에는 섞여들지 않는 피아노 연주 속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