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차장 이경식(가명·41) 씨는 최근 초등학교 동창들과의 술자리에서 ‘개밥의 도토리’가 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내가 김 이사를 자그마치 10년을 모셨어. 근무시간은 물론 회사 밖에서도 충성을 다했지. 노래방에서도 ‘앉으나 서나 이사님 생각’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 이사님뿐이야’라고 낯간지러운 ‘충성가’를 불렀어.
그때마다 × 씹은 표정을 짓는 후배들을 못 본 척하면서 말이야. 골프 약속이라도 잡히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출발, 우리 집에서 1시간이나 떨어진 이사 댁으로 달려가 픽업을 했지. 주말 아침에 우리 아들 수영장 좀 데려다주라고 마누라가 사정할 때도 자는 척하는 내가 말이야.
근데 곧 사장이 될 거라 생각하고 모셨던 김 이사가 글쎄 최근 라인 다툼에서 튕겨져 ‘아웃’된 거야. 이사가 나가니까 나를 보는 다른 임원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더라. 옮길 만한 자리 있으면 좀 소개해줘.”
중견기업의 ‘엘리트 간부’인 김영수 부장(가명·45) 역시 최근 커다란 딜레마에 빠졌다. 지금껏 회장의 최측근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회장이 잠시 일선에서 물러난 사이, 회장의 둘째아들이 대표를 맡고 있는 계열사로 자리를 옮겼다. 둘째아들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
둘째아들과의 사이도 좋아 신임을 얻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몇 달 뒤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한 회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를 불러들였고, 다른 계열사 대표를 맡고 있는 첫째아들까지 ‘인재’라고 치켜세우며 식사와 술자리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문어발식 줄대기’를 한다고 판단한 둘째아들이 측근에게 “몹시 불쾌하다”고 말한 사실을 알게 된 김 부장은 “지금은 회장, 첫째아들, 둘째아들의 ‘파워’가 팽팽하게 맞선 상황이라 어느 줄에 서야 할지 난처하다”고 털어놨다.
# 대표적인 사내정치, 줄서기
앞의 사례들은 모두 사내정치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꼽히는 ‘줄서기’의 단면이다. ‘줄서기’는 특히 오너가 있는 회사, 그리고 수직적 질서를 중시하는 대기업에서 흔히 나타난다. 김 부장의 사례를 들려준 정치경영컨설팅사 IGM컨설팅의 이종훈 대표는 “특히 창립자인 회장이 혼자 집권할 때는 단순하던 사내 권력구조가 권력을 후대에 이양하는 단계에 이르면 엄청나게 복잡해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헤드헌팅업체 커리어케어의 신현만 대표는 저서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에서 국내 대기업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라인 문화’를 소개했다. 노동조합뿐 아니라 동문회와 향우회 결성까지 꺼리는 삼성에서는 옛 전략기획실 출신들이 대거 핵심계열사 사장 자리에 오르면서 특정 라인을 형성했고, 현대자동차에서는 특정 라인에 들지 못하고 밀리면 그 아래 차장과 부장까지 영향을 받으며, LG 역시 비서실과 구조조정본부가 공공연히 ‘노른자위’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도 수직적 질서가 엄격한 대기업에서 ‘라인 문화’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전한다. 온라인 리크루팅업체 잡코리아가 지난 1월, 남녀 직장인 198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대기업 직장인 중 82.2%가 ‘사내 라인’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중견기업 직장인의 78.7%, 공기업 직장인 77.1%도 ‘사내 라인’의 실체를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중소기업과 외국계 기업 직장인들은 각각 67.8%, 58.1%만이 ‘사내 라인이 있다’고 답해 대조적이었다. ‘사내 라인으로 불이익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체의 75.8%가 ‘그렇다’고 답했고, 이러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직장인도 전체의 86.8%에 달했다(표 참조).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가 2007년에 조사한 사내정치 실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인 2108명 중 73.7%가 ‘대립, 갈등 조장, 줄서기 등의 사내정치가 만연하다’고 답한 것. 사내정치의 유형으로는 줄서기, 같은 편 밀어주기, 목적 달성을 위해 회사 고위층과 직접 접촉하기, 여러 편에 발 걸치고 줄타기 등이 꼽혔다.
흥미로운 점은 사내정치를 가장 활발히 하는 직급으로 과장급(28.5%)이 꼽혔다는 것. 인크루트의 이광석 대표는 “중간관리층인 과장 시기에 간부로 진입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판가름 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치적 성향이 높게 나타난다”라고 분석했다.
수평적 조직이라면 사내정치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헤드헌팅업체 HR코리아의 황소영 마케팅이사는 “수평적 조직에서는 한 부서 내에서 맡겨진 일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 내 다양한 조직의 구성원들과 직접 접촉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 만큼 친화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되는 또 다른 차원의 사내정치가 필요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종훈 대표는 “이렇게 긍정적 의미의 사내정치는 프로젝트별 팀장제가 국내 기업문화로 확산되면서 더욱 중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미국에서는 약 15년 전부터 비즈니스계의 화두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오피스 폴리틱스(office politics)’ 과정을 도입, 인사담당자와 중간 매니저 등을 대상으로 워크숍과 특강을 시작한 이 대표는 “부정적, 긍정적 의미의 사내정치 유형을 짚어보고 이것이 기업문화에 미치는 영향과 각각의 대처요령을 입체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목표”라면서 “사내정치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여겨 터부시하던 기업들이 이제는 ‘회사 내 불가피한 정치행위’로 규정, 이에 따른 영향력과 효과를 면밀히 따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 기업 규모, 성격에 따른 사내정치 실전편
‘줄서기’ 못지않게 흔한 사내정치의 한 유형은 아부다. 그러나 아부는 인내심과 지구력을 갖고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
중소기업 마케팅부 차장 B씨가 여러 차례 몰아닥친 구조조정에도 살아남은 이유는 타고난 아부 능력 때문이다. 일도 못하는 그를 특별히 총애하는 사장을 보고 회사 동료들은 “B의 ‘아부테라피’ 없이는 못 사나보다”고 수군거렸다. 그런데 B씨는 사장의 총애를 믿은 나머지 크고 작은 비리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절대적으로 B씨를 신임하는 사장에게 그간의 비리를 보고할 시점으로 B씨가 ‘아부의 권태기’를 맞을 무렵을 택했다.
이종훈 대표는 “누구나 아부를 가끔, 한두 차례 할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다. 권태기를 맞아 아부의 ‘약발’이 떨어지면 그때까지의 아부는 소용없게 된다”고 말했다. 마침 그 ‘약발’이 떨어질 무렵 B씨의 만행이 사장에게 보고됐고, 노발대발한 사장은 B씨를 퇴사시켰다. 아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내정치를 잘하는 방법은 뭘까. 가장 중요한 항목은 분위기 파악이다. 황소영 이사는 “위계질서가 강한 수직적 문화의 조직이라면 ‘튀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소한 예지만, 상사와 동행한 식사 자리에서 모두가 ‘자장면’으로 통일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짬뽕’이라고 외치는 것 또한 튀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수평적 문화에서는 회사 내에서 핵심 구실을 하는 ‘키맨(key man)’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 이사는 “이런 조직에서는 실제 조직도에 나와 있지 않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이너서클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기에 숨겨진 실세를 찾아 공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회사 규모나 성격에 따라 사내정치에서 중시되는 덕목도 달라진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문지영 홍보팀장은 “특히 대기업 또는 공기업에서는 상사의 처지를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채워줄 수 있는 ‘팔로어십(followership)’을 기르는 것이 필수”라고 말한다. 이종훈 대표는 같은 맥락에서 “최고경영자(CEO)적 마인드를 갖고 사장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매니저급이라면 ‘기상학’에 ‘천문학’까지 알아야
“중간 매니저가 되면 회사 돌아가는 판을 보는 능력, 즉 회사 내 하부조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파악하는 ‘기상학’과 임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시적 움직임을 읽을 줄 아는 ‘천문학’에 모두 정통해야 합니다. 초년병 시절부터 ‘내가 부장이라면, 또는 사장이라면 이 문제를 이렇게 볼 텐데…’라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상사에게 사랑받고 관리자로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이종훈 대표)
중소기업 등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가져야 할 ‘몸가짐’으로 황 이사는 “사내 행사와 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회사에 대한 애정을 ‘오버’해서 보여주는 센스”를 꼽았다. 문지영 팀장은 “특히 조직 내에서 개개인의 발언, 행동 등이 쉽게 노출되는 중소기업에서는 절대로 회사 내에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승진 등 결정적 순간에 한 명이라도 ‘딴죽’을 걸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
사내정치가 횡행해 원치 않는데도 어떤 ‘라인’에 들어갈 것을 은근히 강요당하는 조직에서는 미리 생각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이광석 대표는 “특정 라인에 속할지 말지의 문제는 위험은 낮지만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상품에 투자할지, 고위험이지만 고수입을 보장할 수 있는 곳에 ‘올인’할지를 판단하는 투자 심리와 비슷하다”며 “여러 파벌에 두루 발을 걸치고 ‘줄타기’를 하거나, 무당파로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사내정치의 정석에 대해 다루면서 ‘회사 내 역할관계를 파악할 것’ ‘비공식적 조직 가운데 오너, 경영자, 잠재적 사장 후보가 가장 신경 쓰는 조직을 찾아낼 것’ ‘그들에게 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부단히 신경 쓸 것’을 꼽았다.
그러나 각 기업 인사담당자와 헤드헌팅 업체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진정한 ‘사내정치의 정석’은 단 하나 ‘실력을 쌓을 것’이다. 헤드헌팅 업체 나우베스트의 차윤선 이사는 “국내, 외국계 회사를 막론하고 막강한 실력을 갖추는 것만이 험난한 사내정치 복마전에서 굳건히 살아남는 방패”라고 말했다.
“내가 김 이사를 자그마치 10년을 모셨어. 근무시간은 물론 회사 밖에서도 충성을 다했지. 노래방에서도 ‘앉으나 서나 이사님 생각’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 이사님뿐이야’라고 낯간지러운 ‘충성가’를 불렀어.
그때마다 × 씹은 표정을 짓는 후배들을 못 본 척하면서 말이야. 골프 약속이라도 잡히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출발, 우리 집에서 1시간이나 떨어진 이사 댁으로 달려가 픽업을 했지. 주말 아침에 우리 아들 수영장 좀 데려다주라고 마누라가 사정할 때도 자는 척하는 내가 말이야.
근데 곧 사장이 될 거라 생각하고 모셨던 김 이사가 글쎄 최근 라인 다툼에서 튕겨져 ‘아웃’된 거야. 이사가 나가니까 나를 보는 다른 임원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더라. 옮길 만한 자리 있으면 좀 소개해줘.”
중견기업의 ‘엘리트 간부’인 김영수 부장(가명·45) 역시 최근 커다란 딜레마에 빠졌다. 지금껏 회장의 최측근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회장이 잠시 일선에서 물러난 사이, 회장의 둘째아들이 대표를 맡고 있는 계열사로 자리를 옮겼다. 둘째아들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
둘째아들과의 사이도 좋아 신임을 얻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몇 달 뒤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한 회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를 불러들였고, 다른 계열사 대표를 맡고 있는 첫째아들까지 ‘인재’라고 치켜세우며 식사와 술자리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문어발식 줄대기’를 한다고 판단한 둘째아들이 측근에게 “몹시 불쾌하다”고 말한 사실을 알게 된 김 부장은 “지금은 회장, 첫째아들, 둘째아들의 ‘파워’가 팽팽하게 맞선 상황이라 어느 줄에 서야 할지 난처하다”고 털어놨다.
# 대표적인 사내정치, 줄서기
앞의 사례들은 모두 사내정치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꼽히는 ‘줄서기’의 단면이다. ‘줄서기’는 특히 오너가 있는 회사, 그리고 수직적 질서를 중시하는 대기업에서 흔히 나타난다. 김 부장의 사례를 들려준 정치경영컨설팅사 IGM컨설팅의 이종훈 대표는 “특히 창립자인 회장이 혼자 집권할 때는 단순하던 사내 권력구조가 권력을 후대에 이양하는 단계에 이르면 엄청나게 복잡해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헤드헌팅업체 커리어케어의 신현만 대표는 저서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에서 국내 대기업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라인 문화’를 소개했다. 노동조합뿐 아니라 동문회와 향우회 결성까지 꺼리는 삼성에서는 옛 전략기획실 출신들이 대거 핵심계열사 사장 자리에 오르면서 특정 라인을 형성했고, 현대자동차에서는 특정 라인에 들지 못하고 밀리면 그 아래 차장과 부장까지 영향을 받으며, LG 역시 비서실과 구조조정본부가 공공연히 ‘노른자위’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도 수직적 질서가 엄격한 대기업에서 ‘라인 문화’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전한다. 온라인 리크루팅업체 잡코리아가 지난 1월, 남녀 직장인 198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대기업 직장인 중 82.2%가 ‘사내 라인’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중견기업 직장인의 78.7%, 공기업 직장인 77.1%도 ‘사내 라인’의 실체를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중소기업과 외국계 기업 직장인들은 각각 67.8%, 58.1%만이 ‘사내 라인이 있다’고 답해 대조적이었다. ‘사내 라인으로 불이익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체의 75.8%가 ‘그렇다’고 답했고, 이러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직장인도 전체의 86.8%에 달했다(표 참조).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가 2007년에 조사한 사내정치 실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인 2108명 중 73.7%가 ‘대립, 갈등 조장, 줄서기 등의 사내정치가 만연하다’고 답한 것. 사내정치의 유형으로는 줄서기, 같은 편 밀어주기, 목적 달성을 위해 회사 고위층과 직접 접촉하기, 여러 편에 발 걸치고 줄타기 등이 꼽혔다.
흥미로운 점은 사내정치를 가장 활발히 하는 직급으로 과장급(28.5%)이 꼽혔다는 것. 인크루트의 이광석 대표는 “중간관리층인 과장 시기에 간부로 진입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판가름 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치적 성향이 높게 나타난다”라고 분석했다.
수평적 조직이라면 사내정치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헤드헌팅업체 HR코리아의 황소영 마케팅이사는 “수평적 조직에서는 한 부서 내에서 맡겨진 일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 내 다양한 조직의 구성원들과 직접 접촉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 만큼 친화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되는 또 다른 차원의 사내정치가 필요한 셈”이라고 말했다.
사내정치 노하우는 기업 문화 및 규모 등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흔들림에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바로 실력이다.
지난 4월, 미국에서는 약 15년 전부터 비즈니스계의 화두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오피스 폴리틱스(office politics)’ 과정을 도입, 인사담당자와 중간 매니저 등을 대상으로 워크숍과 특강을 시작한 이 대표는 “부정적, 긍정적 의미의 사내정치 유형을 짚어보고 이것이 기업문화에 미치는 영향과 각각의 대처요령을 입체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목표”라면서 “사내정치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여겨 터부시하던 기업들이 이제는 ‘회사 내 불가피한 정치행위’로 규정, 이에 따른 영향력과 효과를 면밀히 따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 기업 규모, 성격에 따른 사내정치 실전편
‘줄서기’ 못지않게 흔한 사내정치의 한 유형은 아부다. 그러나 아부는 인내심과 지구력을 갖고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
중소기업 마케팅부 차장 B씨가 여러 차례 몰아닥친 구조조정에도 살아남은 이유는 타고난 아부 능력 때문이다. 일도 못하는 그를 특별히 총애하는 사장을 보고 회사 동료들은 “B의 ‘아부테라피’ 없이는 못 사나보다”고 수군거렸다. 그런데 B씨는 사장의 총애를 믿은 나머지 크고 작은 비리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절대적으로 B씨를 신임하는 사장에게 그간의 비리를 보고할 시점으로 B씨가 ‘아부의 권태기’를 맞을 무렵을 택했다.
이종훈 대표는 “누구나 아부를 가끔, 한두 차례 할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다. 권태기를 맞아 아부의 ‘약발’이 떨어지면 그때까지의 아부는 소용없게 된다”고 말했다. 마침 그 ‘약발’이 떨어질 무렵 B씨의 만행이 사장에게 보고됐고, 노발대발한 사장은 B씨를 퇴사시켰다. 아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내정치를 잘하는 방법은 뭘까. 가장 중요한 항목은 분위기 파악이다. 황소영 이사는 “위계질서가 강한 수직적 문화의 조직이라면 ‘튀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소한 예지만, 상사와 동행한 식사 자리에서 모두가 ‘자장면’으로 통일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짬뽕’이라고 외치는 것 또한 튀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수평적 문화에서는 회사 내에서 핵심 구실을 하는 ‘키맨(key man)’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 이사는 “이런 조직에서는 실제 조직도에 나와 있지 않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이너서클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기에 숨겨진 실세를 찾아 공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회사 규모나 성격에 따라 사내정치에서 중시되는 덕목도 달라진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문지영 홍보팀장은 “특히 대기업 또는 공기업에서는 상사의 처지를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채워줄 수 있는 ‘팔로어십(followership)’을 기르는 것이 필수”라고 말한다. 이종훈 대표는 같은 맥락에서 “최고경영자(CEO)적 마인드를 갖고 사장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매니저급이라면 ‘기상학’에 ‘천문학’까지 알아야
“중간 매니저가 되면 회사 돌아가는 판을 보는 능력, 즉 회사 내 하부조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파악하는 ‘기상학’과 임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시적 움직임을 읽을 줄 아는 ‘천문학’에 모두 정통해야 합니다. 초년병 시절부터 ‘내가 부장이라면, 또는 사장이라면 이 문제를 이렇게 볼 텐데…’라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상사에게 사랑받고 관리자로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이종훈 대표)
중소기업 등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가져야 할 ‘몸가짐’으로 황 이사는 “사내 행사와 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회사에 대한 애정을 ‘오버’해서 보여주는 센스”를 꼽았다. 문지영 팀장은 “특히 조직 내에서 개개인의 발언, 행동 등이 쉽게 노출되는 중소기업에서는 절대로 회사 내에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승진 등 결정적 순간에 한 명이라도 ‘딴죽’을 걸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
사내정치가 횡행해 원치 않는데도 어떤 ‘라인’에 들어갈 것을 은근히 강요당하는 조직에서는 미리 생각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이광석 대표는 “특정 라인에 속할지 말지의 문제는 위험은 낮지만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상품에 투자할지, 고위험이지만 고수입을 보장할 수 있는 곳에 ‘올인’할지를 판단하는 투자 심리와 비슷하다”며 “여러 파벌에 두루 발을 걸치고 ‘줄타기’를 하거나, 무당파로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사내정치의 정석에 대해 다루면서 ‘회사 내 역할관계를 파악할 것’ ‘비공식적 조직 가운데 오너, 경영자, 잠재적 사장 후보가 가장 신경 쓰는 조직을 찾아낼 것’ ‘그들에게 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부단히 신경 쓸 것’을 꼽았다.
그러나 각 기업 인사담당자와 헤드헌팅 업체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진정한 ‘사내정치의 정석’은 단 하나 ‘실력을 쌓을 것’이다. 헤드헌팅 업체 나우베스트의 차윤선 이사는 “국내, 외국계 회사를 막론하고 막강한 실력을 갖추는 것만이 험난한 사내정치 복마전에서 굳건히 살아남는 방패”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