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업도 연평산 등산로에서 바라본 목기미 북쪽 해안.
인천 남서쪽 90km 해상에 자리한 굴업도는 덕적군도의 8개 유인도 중 리(里) 단위 섬으로는 규모가 가장 작다. 그래서일까. 굴업도와 처음 마주하자 ‘천생 섬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을 두고 섬이라고 하는 게 우습지만, 섬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섬과 굴업도가 그만큼 많이 닮았다. 두 팔을 벌리면 품에 폭 안겨올 것만 같은 작은 섬 굴업도. 그곳에서의 하루는 꿈결같이 흘러간다.
덕적도를 떠나온 해양호는 1시간여 만에 굴업도 선착장에 닿았다. 굴업도 선착장에는 자그마한 트럭 한 대가 나와 있다. 굴업도에 있는 두 대의 트럭 중 하나. 이 트럭은 하루에 한 번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고, 떠나온 사람을 마중하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온다. 섬을 떠날 사람은 배에 오르고, 육지를 떠나온 사람은 트럭에 오른다. 이렇게 섬마을에선 사람이 사람의 빈자리를 메운다.
굴업도에 자동차가 들어온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사실 굴업도에선 자동차가 크게 필요치 않다. 도로라고 해봐야 큰말과 선착장을 잇는 500m 남짓이 전부이고, 자동차가 하는 일 역시 이 도로를 오가는 게 전부이니 경운기로도 트럭을 대신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사실 큰 짐을 나를 일이 없다면 경운기도 필요 없다. 선착장에서 큰말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20분. 선착장 인근 오솔길을 타고 넘으면 5분은 더 단축할 수 있다.
큰말 해변과 개머리 억새군락 트레킹선착장에서 언덕 하나를 넘으면 큰말이다. 굴업도 주민은 모두 이곳에 모여 산다. ‘모두’라고 해봐야 13가구 21명. 하지만 뭍으로 들고 나는 이들이 워낙 많아 섬에 상주하는 주민은 10여 명에 그친다.
굴업도 선착장에 들어선 해양호.
아담한 마을을 지나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과 해변은 닿을 듯 가깝다. 주민들은 이 해변을 큰말 해변이라 부른다.
큰말 해변으로 들어서면 저 멀리 왕관처럼 생긴 선단여가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백아도와 지도, 울도 등 덕적군도의 섬이 신기루처럼 가물거린다. 굴업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답게 해변 입구에는 화장실과 개수대가 정비돼 있다.
600m에 이르는 넓은 큰말 해변은 그 규모 못지않게 다져놓은 듯 다부진 백사장이 인상적이다. 이는 분말처럼 고운 모래 덕분인데, 입자가 얼마나 고운지 한 움큼 집어 쏟아내면 바람에 훌훌 날릴 정도다. 모래가 고운 만큼 해변을 걷는 느낌도 여느 해변과는 다르다.
특히 물기를 가득 머금은 모래 위를 걸을 때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득뽀득, 예쁘게 내린 눈밭을 걷는 듯한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큰말 해변 왼쪽에는 토끼섬이 자리한다. 큰말 해변에서 토끼섬까지는 물때가 맞으면 걸어서 들어갈 수도 있다.
큰말 해변에서 굴업도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개머리까지는 트레킹 코스로 그만이다. 억새군락을 따라 길게 이어진 이 길은 제주도 해안 올레길이나 울릉도 옛길에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 풍광을 뽐낸다. 큰말 해변에서 개머리까지는 거리가 제법 멀지만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큰 힘 들이지 않고 다녀올 수 있다. 굴업도에선 트레킹이나 산행 중 흑염소, 사슴과 마주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넓은 초지를 이용해 흑염소와 사슴을 방목하기 때문. 20년 넘게 방목한 사슴은 그 수가 250여 마리에 이른다.
목기미 해변은 굴업도에서 가장 큰 해변이다. 본섬인 동섬과 부속섬인 서섬을 이어준다고 해서 ‘연육사빈(聯陸沙濱)’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착장 쪽에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덕물산 쪽으로 돌아나간다. 관광안내도에는 이곳을 ‘굴업도 해수욕장’으로 표기해 놓았지만 사실 목기미 해변은 큰말 해변보다 해수욕장으로서의 매력은 떨어진다.
주변에 화장실과 개수대 등 편의시설이 없고 지형적으로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람 덕에 양면이 바다와 접한 목기미 해변이 만들어지고, 그 주위로 크고 작은 해안사구가 발달할 수 있었다. 바람이 만들어놓은 목기미 해변은 지금도 해수면이 높아지는 사리 때면 1시간 남짓 물에 잠긴다. 굴업도의 명물 코끼리바위는 목기미 해변 북쪽 해안가에 있다.
서섬 최고봉 덕물산 연평산 산행 도전해볼 만굴업도에서 도전해볼 만한 산으로는 덕물산(138.5m)과 연평산(128.4m)이 있다. 두 산 모두 목기미 해변 너머 서섬에 자리한다.
귀마개처럼 생긴 서섬의 북쪽 최고봉이 연평산이고 남쪽 최고봉이 덕물산. 연평산과 덕물산 산행은 목기미 해변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 터에서 시작한다. 작은 마을 터까지는 목기미 해변에 띄엄띄엄 박힌 전봇대를 따라가면 된다. 1980년대까지 7가구가 살던 이곳에는 아직도 당시 사용하던 건물이 몇 채 남아 있는데, 전봇대 행렬이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낡은 창고 건물도 그중 하나다.
창고 건물을 오른쪽에 두고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 왼쪽 길섶으로 화장실로 사용하던 건물이 나온다. 소변기 하나 달랑 남은 이 건물의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건물이 자리해 있다. 이곳에서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본격적인 산행 들머리다. 왼쪽이 연평산, 오른쪽이 덕물산 방면이다. 이정표는 없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든 잡풀 사이로 남은 길의 흔적에 의존해 산행해야 한다. 굴업도 산행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이처럼 등산로와 산행 이정표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산행시간은 두 방향 모두 2시간 남짓 소요된다.
굴업도의 명물인 붉은 모래 해변(좌).굴업도를 대표하는 큰말 해수욕장(우).
연평산은 굴업도의 명물인 해식절벽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제주도의 주상절리에 비견되는 굴업도 해식절벽의 대부분이 섬의 북쪽 해안에 분포하기 때문이다. 굴업도에선 해상유람을 위한 별도의 배편이 없어 해식절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연평산에 오르는 게 가장 좋다. 굴업도의 남쪽 해안을 한눈에 담고 싶다면 덕물산이 제격이다. 거대한 덕물산 암봉 위에 서면 시원스레 펼쳐진 굴업도 남쪽 해안과 작은 섬들이 멋스럽게 어우러진다. 연평산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아기자기하지는 않지만 가슴 탁 트이는 전망을 마주하고 싶다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Tip!
굴업도 가는 길
| ● 대중교통과 승용차를 이용해 인천항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 다음 선박 이용 ● 인천→덕적도 고려고속훼리(1577-2891) 스마트호와 씨프렌드호가 평일 2회, 주말 4회 왕복 운항, 대부해운(032-887-0602)의 대부고속훼리5호 1일 1회 왕복 운항. 소요시간은 스마트·씨프렌드호가 55분, 대부고속훼리5호가 2시간30분. ● 덕적도→굴업도 에이치엘해운(032-888-8901)의 해양호가 평일 1일 1회, 주말·휴일 1일 2회 운항. 해양호는 평일에는 11시, 토요일에는 10시40분과 15시, 일요일·휴일에는 07시와 11시20분에 각각 덕적도 도우선착장을 출발, 문갑도~굴업도~백아도~울도~지도~문갑도를 거쳐 다시 덕적도 도우선착장에 도착. 운항 방향은 물때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 사전에 선사에 문의. 소요시간은 굴업도 방향일 경우 50분, 지도 방향은 3시간~3시간30분(해양호는 성수기인 7월과 8월에는 평일·주말·휴일 상관없이 1일 2회 운항. 출항시간은 평일·토요일 11시와 15시30분, 일요일·휴일 07시와 11시20분). 인천시민은 인천지역 14개 항로 연안여객선 운임의 50% 할인. | |
종합해양관광단지로 다시 태어나는 굴업도
| 2014년 여름 어느 토요일, 서울에 사는 직장인 K씨는 오전 11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인천시 영종도의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처가 식구와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5년 전인 2009년 완공된 세계 5대 사장교인 인천대교를 이용했더니 가는 시간은 서울에서 1시간 남짓. 해수욕장에서 3~4시간을 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배가 고프단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고 주변을 산책하던 일행은 근처 을왕리 선착장에서 쾌속선을 탔다.
50분 정도 서해의 낙조를 감상하며 항해를 했을까. 도착한 곳은 천혜의 모래사장과 해식절벽으로 유명한 덕적군도의 굴업도. 저녁은 그곳에 만들어진 해양관광단지 오션파크 내 시푸드 스트리트의 해산물로 정했다. 해물은 역시 신선도가 관건. 배를 채운 K씨 일행은 오션파크 내 콘도로 향했다. 호텔과 콘도가 함께 있지만 일행이 많다 보니 K씨는 3층에 있는 전망 좋은 콘도를 예약해둔 터였다. 일요일 아침, K씨는 장인과 함께 단지 안의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즐겼다. 제주도를 빼고는 섬에서 라운드해보기는 처음이라 K씨의 마음은 며칠 전부터 꿈에 부풀었다. 아이들은 장모와 함께 해양관광단지 내의 자연생태학습장과 자생화 단지를 둘러본 뒤 눈부시게 아름다운 큰말 해수욕장에서 어제 다 못한 수영을 즐겼다. 모험심 강한 처제와 집사람은 2시간 코스의 요트 체험에 나섰다. 일요일 오후 3시, 아쉽지만 1박2일의 달콤한 휴식을 마무리하고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K씨와 처가 식구는 다음번 굴업도에서의 크루저 요트와 낚시여행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2013년까지 52만평 규모 ‘오션파크’ 건설
시뮬레이션으로 꾸며본 K씨 가족의 ‘상상여행’은 4년이 지나면 곧바로 현실이 될 전망이다. 서해의 ‘진주’ 굴업도(인천시 옹진군 덕적면)에 2013년까지 호텔, 콘도, 요트장, 골프장, 자연생태학습장, 시푸드 스트리트 등 위락시설을 갖춘 대단위 종합해양관광단지 ‘오션파크(Ocean Park)’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C&I레저산업(대표 이성남)은 군도 일원을 관광명소로 개발해달라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이 같은 프로젝트를 수년 전부터 추진했다.
이와 관련 C&I레저산업은 지난해 7월 ‘사전 환경성 검토 주민 설명회’를 마쳤으며, 2010년까지 인·허가 관련 절차를 마무리한 뒤 2013년까지 3900억원을 투입해 오션파크를 완공할 예정이다. 172만6912㎡(약 52만평) 규모인 굴업도는 인근의 해양관광자원 개발 계획과 결합돼 이미 오래전부터 체제형 해양 휴양관광단지로의 가능성이 점쳐진 곳. 수도권과의 인접성으로 가족 단위 관광객의 휴양, 위락 공간으로 제격이다.
더욱이 2013년 완공 예정인 인천 국제여객터미널과 연안여객터미널, 인천공항 등과도 인접해 수도권 해양관광의 핵심 지역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크다. 경기도에서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경기만 요트산업, 인천경제자유구역 등과도 연계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세계 최대 관광 송출국으로 떠오른 중국 관광객의 유입도 크게 늘 전망. C&I레저산업 측은 “휴양과 문화, 공공편익 시설까지 갖춘 종합관광 휴양지로 굴업도를 개발해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특히 보존 가치가 높은 파식 지형이나 야생 동식물 보호를 위해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각종 친환경 개발 공법을 적용해 섬 개발의 모범 사례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션파크 관광단지는 섬 중앙에 각각 150실 규모의 휴양콘도미니엄과 관광호텔이 들어서며, 섬 왼쪽으로는 골프장, 오른쪽으로는 요트장과 생태학습장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특히 도서지역 생태환경에 대한 교육 및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생태학습장과 자생화 단지를 만들어 관광과 환경이 공존하는 자연친화적 개발을 한다는 게 C&I레저산업 측의 복안. 심지어 섬 전체의 상당 부분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거나 녹지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기도 하다. 일반 리조트나 관광단지와 달리 굴업도 오션파크의 녹지비율은 약 70%(약 119만㎡, 52% 원형녹지, 18% 시설녹지) 수준.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 균형개발에도 크게 기여 오션파크 관광단지에는 시푸드 스트리트, 전망대, 체육시설, 조각공원 같은 휴양, 문화시설뿐 아니라 열병합발전소, 담수화 플랜트 등의 공공 편익시설까지 들어선다. C&I레저산업 측은 “오션파크 관광단지가 완공되면 낙후한 도서지역의 이미지를 지닌 굴업도가 선진형 해양관광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1차산업 중심인 도서 경제활동이 3차 산업인 서비스업까지 확대되면서 다양한 산업구조로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2013년 굴업도에 들어설 종합해양관광단지 ‘오션파크’ 조감도. 한편 인천시 옹진군은 오션파크 관광단지 조성이 덕적도 및 옹진군 일대 지역경제 활성화와 균형 개발을 이끌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 더해 오션파크 관광단지는 생산 유발효과 6620억원, 소득 유발효과 1300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3120억원, 직ㆍ간접 고용효과 1만7000명이 예상되는 등 지역경제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완공 이후에는 상근 고용 인구가 약 140명, 옹진군 지방세 수입 연간 약 15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