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보수야, 진보야?”
직장인 최준성(29) 씨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어느 한쪽이라고 명쾌하게 대답할 만큼 자신의 이념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수구꼴통’으로 낙인찍힌 씁쓸한 경험도 한몫한다.
최씨는 지난해 친구, 선후배들과 촛불집회에 참가한 뒤 맥줏집에 둘러앉아 땀을 식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정부에 대한 매서운 비판으로 이어졌다. 최씨 역시 이명박(MB) 정권에 대한 실망이 컸다.
예를 들어, 안보를 우선한다는 보수정권이 제2롯데월드의 건립 허가를 내준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2007년 대통령선거 때 이명박 후보를 찍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재벌들에게만 살길을 터주는 것 같고 경제는 계속 어려워지다 보니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도 여러 번이다.
한 후배가 MB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한 톤으로 비난하자 최씨는 “일방적으로 북한에 퍼주기만 한 게 잘못이다. 그런 면에서 이 정부가 잘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되받아쳤다. 순간 분위기가 돌변했다. 최씨는 표정이 싹 바뀐 후배들에게서 “선배는 생각보다 훨씬 보수적이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러 촛불집회에 나왔으면서 왜 딴소리냐. 왜 그렇게 줏대 없이 오락가락하냐”는 선배의 핀잔을 듣자 분통이 터졌다. “그러는 선배는 자식들 조기유학 보내려고 난리치면서 진보라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술자리는 어색하게 파했다.
사실 최씨는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살아가는 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보수와 진보의 정확한 개념도 모르고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학창시절 정치학 시간에 언뜻 들은 것도 같지만, 책을 찾아봐야 기억이 날까. 그래서 사람들이 이념성향을 물으면 “저는 중도입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보수-진보 나누는 이분법 잣대에 불만
그는 이분법적으로 보수-진보를 나누는 것이 불만스럽다. 그가 보기에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도 서울광장에 나가 정부를 비판하면 진보로 분류되는 것 같다. 반대로 지난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해 한마디라도 토를 달면 진보적인 사람도 한순간에 보수주의자가 된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자신이 정말 줏대 없는 사람인지 혼란스럽다.
최씨와는 대조적으로 상당수 386세대는 “지금은 비록 보수에 투항했지만 마음만은 진보”라며 당당히 ‘커밍아웃’한다.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데 대해서는 “머리는 보수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진보”라며 정당화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떠오른 386세대는 젊은 시절 누구보다도 뜨거운 진보였다. 공무원 엄모(44) 씨는 대학생 시절 민주화 운동에 열심이었다. 매일처럼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최루탄을 마셨다. 하지만 1987년 야당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하고 어부지리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 군사정권이 연장되자 이른바 진보세력에 크게 실망했다.
당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의 잇따른 몰락도 이념적 충격이었다. 그는 ‘변절자’ 소리를 들으며 공무원시험 공부를 시작했고 합격과 함께 진보와 이별했다. 그 후에는 스스로 보수로 변절했다고 인정할 만큼 현실에 순응하며 살았다. 그러나 마음속 진보에 대한 짝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2002년 대선에서 노풍(盧風)이 거세게 불자 그는 누구보다 열렬하게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그가 당선된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도 우리가 바라는 바를 다 이뤄줄 수는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저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엄씨는 세습체제를 영위하는 북한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직장이 안정적이고 아이들도 학교에 잘 다니고 있어서 사회가 더 이상 혼란스러워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그는 광장으로 나섰다. 지난해에는 촛불을 들었고, 올해는 덕수궁 앞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았다. 그는 경제 측면에서는 개인적, 자본주의적 삶을 살면서 의식 측면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갈망한다.
“물론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에 투항한 부채의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보수냐 진보냐고 묻는다면 확답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여건에서 제가 진보라고 한다면 위선이라고 욕먹을까요?”
386세대들이 진보에 대한 부채의식의 발로에서 보수-진보를 넘나든다면, 386 이후 세대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좀더 솔직하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얽혀 있느냐에 따라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진보적 태도를 보이다가도 다른 사안에서는 보수 성향을 드러낸다. 자칭 보수인 은행원 박재선(32) 씨는 “보수라고 해서 반드시 기득권을 지키고 변화를 거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의 정치적 지지는 보수와 진보를 넘나든다. 2004년 다수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과거사법, 사학법, 국가보안법 등 4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강행 처리할 때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스스로도 보수에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열린우리당이 들고 나온 법안이 모두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국가보안법은 필요하다고 봤기에 일부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조문들이 개정돼야 하지만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학재단의 비리가 심한 만큼 사학법은 적극 지지했습니다.”
이념이 아니라 정책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하는 정치적 태도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장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거리로 나앉게 되는 만큼 비정규직법안을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디어관계법의 경우 큰 틀에는 찬성하지만 워낙 갈등이 깊은 만큼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려는 노력이 좀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이념의 순수성을 강조해왔다. 우파는 우파대로, 좌파는 좌파대로 뚜렷한 색깔을 요구하면서 ‘중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중간은 양쪽으로부터 “이해관계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정치색을 바꾸는 기회주의자”라고 비난받았다. 하나부터 백까지 모두 동일한 이념에 따라 판단해야지, 단 하나라도 이념과 배치되는 판단을 하면 배신자로 매도됐다.
그런데 과거 같았으면 배신자라는 말을 들을 법한,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정치적 선택이 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념 성향을 잘 몰라서든, 이념 전향을 해서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을 해서든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처럼 시시각각 급변하는 대중의 정치적 선택에 좌우 진영 모두 아전인수 격의 해석만 내놓는다.
보수는 “좌파 방송의 조작과 선동에 속아서…”라고 주장하지만 이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진보의 처지도 편하지만은 않다. 대중이 늘 진보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이 이념적 정체성 혼란을 내비치며 이렇게 오락가락한 정치적 선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대중의 ‘오락가락 선택’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이 일관적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장동진 교수는 이를 ‘판단의 부담’이라고 표현한다. 장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는 자신의 이념을 고수한다는 게 불편한 일이 됐다. 이념에 따른 나의 판단이 도덕적으로 불확실할뿐더러 사안에 따라 각자의 편의를 근거로 판단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부연했다.
복잡한 사회 현실도 빼놓을 수 없다. 한양대 역사철학부 임지현 교수는 “19세기 노동운동이 자본과 노동만으로 분석 가능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 문제를 보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등 복합적 고려가 필요하다. 그만큼 이념에 따른 일관성 있는 정치적 선택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대중의 정치적 선택을 보수-진보로 나누는 단선적 시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학계에서 보수-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흔히 국가와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우월성을 강조하면 보수, 반면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면 진보로 평가받았다. 여기에 영·호남의 지역 연고와 통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해진 것이 한국에서 보수-진보를 나누는 기준이었다.
반면 대중이 인식하는 보수-진보의 개념은 ‘강단 개념’과 다르다.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은 “대중은 반칙·특권·기회주의로 대변되는 구악(舊惡)을 타파하고, 비정규직 문제와 소득 불평등 등 신악(新惡)을 해소하는 개혁을 참다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이 바라는 것은 변화와 개혁”이라고 분석했다.
“2002년에는 노무현이 대중이 바라는 변화를 대변했고, 2007년에는 이명박이 어떤 의미에서 개혁이자 변화였어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버스 중앙차선제를 실시하고 청계천을 되살린 일은 대중이 바라는 변화의 가치를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죠. 강단에서는 이명박 정부를 보수로 평가하겠지만 대중이 이명박 정부에게 바란 것은 변화였어요.”
다시 말해 대중의 선택에는 이념을 떠나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바람이 내재돼 있었던 것이다. 변화가 진보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변화를 원하는 세력은 진보로 분류됐다. 그래서 지금까지 변화는 진보의 전유물이었다.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변화를 요구하고, 개혁적 선택을 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가 ‘사회 변화와 발전의 원동력’이라면 변화는 결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강정인 교수는 “보수주의자들이 얘기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변화를 본질로 한다. 즉, 시장경제에 내재하는 본질적 혁신과 최고 권력까지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 제도의 공통점은 바로 변화”라면서 “좌파가 진보의 개념을 독점하려 들지만 모든 보수세력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수 또한 역사의 퇴보에 반대하며 바른 방향으로의 사회 변화를 원하는 세력이라는 얘기다. 단, 보수가 자연스럽게 체제 내에서의 변화를 원하는 반면, 진보는 특정 방향으로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박정희 시대가 ‘진보와 개혁의 시대’였다는 역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단지 그 방향이 진보 정권이 추구하는 방향과 달랐을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서울광장에서 열광한 대중과 2008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대중, 그리고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바라보는 지금의 대중은 결코 다르다고만 볼 수 없다. 사안에 따라 보수-진보를 넘나들지만 2002, 2008, 2009년의 대중은 모두 변화를 갈망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변화를 바라는 대중에게 보수-진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대중의 정치적 선택을 단지 이념적 정체성의 혼란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보수-진보의 진영론적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보수-진보를 떠나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그들에게 “당신은 보수냐, 아니면 진보냐”고 묻는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손호철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치의 핵심 화두는 개혁이었지만, 개혁이란 단어를 사회과학적으로 분류하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에 혼란에 부딪혔다”고 지적했다.
보수-진보의 낡은 이분법에서 벗어나 ‘변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중을 바라볼 때, 광장으로 나온 이들도 단순히 보수-진보가 아닌, 변화를 갈구하는 세력으로 탈바꿈한다.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회사원 신영욱(29) 씨는 “나 스스로는 보수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사회가 변화 없이 정체돼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며 “기회주의적 수구세력과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 보수세력은 구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낡은 패러다임의 종말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공화당 매케인 후보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변화라는 시대흐름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화당 부시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변화도 함께 약속함으로써 민주당뿐 아니라 중도 및 일부 공화당 세력의 지지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주의는 ‘변화와 혁신’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내재적 어젠다마저 진보진영에 빼앗겼다.
경북대 철학과 김석수 교수는 ‘한국 현대 철학사에 등장하는 기형적 보수주의 측면에 대한 반성적 고찰’에서 “한국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보수주의는 전통성을 유지하면서도 개혁성을 수용할 태세가 돼 있는 서구의 보수주의와 달리 냉전적인 반공주의에 안착해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더 많은 권력을 유지, 확보하려는 면이 강했다”면서 “우리의 보수주의는 수구 반동세력에 가까웠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변화를 원하는 대중 앞에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대중이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이유는 이념 정체성의 혼란 때문이라기보다 정권이 대중의 변화 욕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데 따른 실망감의 표출로 봐야 할 것이다.
직장인 최준성(29) 씨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어느 한쪽이라고 명쾌하게 대답할 만큼 자신의 이념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수구꼴통’으로 낙인찍힌 씁쓸한 경험도 한몫한다.
최씨는 지난해 친구, 선후배들과 촛불집회에 참가한 뒤 맥줏집에 둘러앉아 땀을 식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정부에 대한 매서운 비판으로 이어졌다. 최씨 역시 이명박(MB) 정권에 대한 실망이 컸다.
예를 들어, 안보를 우선한다는 보수정권이 제2롯데월드의 건립 허가를 내준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2007년 대통령선거 때 이명박 후보를 찍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재벌들에게만 살길을 터주는 것 같고 경제는 계속 어려워지다 보니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도 여러 번이다.
한 후배가 MB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한 톤으로 비난하자 최씨는 “일방적으로 북한에 퍼주기만 한 게 잘못이다. 그런 면에서 이 정부가 잘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되받아쳤다. 순간 분위기가 돌변했다. 최씨는 표정이 싹 바뀐 후배들에게서 “선배는 생각보다 훨씬 보수적이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러 촛불집회에 나왔으면서 왜 딴소리냐. 왜 그렇게 줏대 없이 오락가락하냐”는 선배의 핀잔을 듣자 분통이 터졌다. “그러는 선배는 자식들 조기유학 보내려고 난리치면서 진보라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술자리는 어색하게 파했다.
사실 최씨는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살아가는 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보수와 진보의 정확한 개념도 모르고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학창시절 정치학 시간에 언뜻 들은 것도 같지만, 책을 찾아봐야 기억이 날까. 그래서 사람들이 이념성향을 물으면 “저는 중도입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보수-진보 나누는 이분법 잣대에 불만
그는 이분법적으로 보수-진보를 나누는 것이 불만스럽다. 그가 보기에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도 서울광장에 나가 정부를 비판하면 진보로 분류되는 것 같다. 반대로 지난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해 한마디라도 토를 달면 진보적인 사람도 한순간에 보수주의자가 된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자신이 정말 줏대 없는 사람인지 혼란스럽다.
최씨와는 대조적으로 상당수 386세대는 “지금은 비록 보수에 투항했지만 마음만은 진보”라며 당당히 ‘커밍아웃’한다.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데 대해서는 “머리는 보수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진보”라며 정당화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떠오른 386세대는 젊은 시절 누구보다도 뜨거운 진보였다. 공무원 엄모(44) 씨는 대학생 시절 민주화 운동에 열심이었다. 매일처럼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최루탄을 마셨다. 하지만 1987년 야당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하고 어부지리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 군사정권이 연장되자 이른바 진보세력에 크게 실망했다.
당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의 잇따른 몰락도 이념적 충격이었다. 그는 ‘변절자’ 소리를 들으며 공무원시험 공부를 시작했고 합격과 함께 진보와 이별했다. 그 후에는 스스로 보수로 변절했다고 인정할 만큼 현실에 순응하며 살았다. 그러나 마음속 진보에 대한 짝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2002년 대선에서 노풍(盧風)이 거세게 불자 그는 누구보다 열렬하게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그가 당선된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도 우리가 바라는 바를 다 이뤄줄 수는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저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엄씨는 세습체제를 영위하는 북한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직장이 안정적이고 아이들도 학교에 잘 다니고 있어서 사회가 더 이상 혼란스러워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그는 광장으로 나섰다. 지난해에는 촛불을 들었고, 올해는 덕수궁 앞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았다. 그는 경제 측면에서는 개인적, 자본주의적 삶을 살면서 의식 측면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갈망한다.
“물론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에 투항한 부채의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보수냐 진보냐고 묻는다면 확답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여건에서 제가 진보라고 한다면 위선이라고 욕먹을까요?”
386세대들이 진보에 대한 부채의식의 발로에서 보수-진보를 넘나든다면, 386 이후 세대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좀더 솔직하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얽혀 있느냐에 따라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진보적 태도를 보이다가도 다른 사안에서는 보수 성향을 드러낸다. 자칭 보수인 은행원 박재선(32) 씨는 “보수라고 해서 반드시 기득권을 지키고 변화를 거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의 정치적 지지는 보수와 진보를 넘나든다. 2004년 다수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과거사법, 사학법, 국가보안법 등 4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강행 처리할 때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스스로도 보수에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열린우리당이 들고 나온 법안이 모두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국가보안법은 필요하다고 봤기에 일부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조문들이 개정돼야 하지만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학재단의 비리가 심한 만큼 사학법은 적극 지지했습니다.”
이념이 아니라 정책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하는 정치적 태도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장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거리로 나앉게 되는 만큼 비정규직법안을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디어관계법의 경우 큰 틀에는 찬성하지만 워낙 갈등이 깊은 만큼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려는 노력이 좀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이념의 순수성을 강조해왔다. 우파는 우파대로, 좌파는 좌파대로 뚜렷한 색깔을 요구하면서 ‘중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중간은 양쪽으로부터 “이해관계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정치색을 바꾸는 기회주의자”라고 비난받았다. 하나부터 백까지 모두 동일한 이념에 따라 판단해야지, 단 하나라도 이념과 배치되는 판단을 하면 배신자로 매도됐다.
그런데 과거 같았으면 배신자라는 말을 들을 법한,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정치적 선택이 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념 성향을 잘 몰라서든, 이념 전향을 해서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을 해서든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처럼 시시각각 급변하는 대중의 정치적 선택에 좌우 진영 모두 아전인수 격의 해석만 내놓는다.
보수는 “좌파 방송의 조작과 선동에 속아서…”라고 주장하지만 이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진보의 처지도 편하지만은 않다. 대중이 늘 진보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이 이념적 정체성 혼란을 내비치며 이렇게 오락가락한 정치적 선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대중의 ‘오락가락 선택’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이 일관적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장동진 교수는 이를 ‘판단의 부담’이라고 표현한다. 장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는 자신의 이념을 고수한다는 게 불편한 일이 됐다. 이념에 따른 나의 판단이 도덕적으로 불확실할뿐더러 사안에 따라 각자의 편의를 근거로 판단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부연했다.
복잡한 사회 현실도 빼놓을 수 없다. 한양대 역사철학부 임지현 교수는 “19세기 노동운동이 자본과 노동만으로 분석 가능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 문제를 보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등 복합적 고려가 필요하다. 그만큼 이념에 따른 일관성 있는 정치적 선택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대중의 정치적 선택을 보수-진보로 나누는 단선적 시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학계에서 보수-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흔히 국가와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우월성을 강조하면 보수, 반면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면 진보로 평가받았다. 여기에 영·호남의 지역 연고와 통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해진 것이 한국에서 보수-진보를 나누는 기준이었다.
반면 대중이 인식하는 보수-진보의 개념은 ‘강단 개념’과 다르다.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은 “대중은 반칙·특권·기회주의로 대변되는 구악(舊惡)을 타파하고, 비정규직 문제와 소득 불평등 등 신악(新惡)을 해소하는 개혁을 참다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이 바라는 것은 변화와 개혁”이라고 분석했다.
“2002년에는 노무현이 대중이 바라는 변화를 대변했고, 2007년에는 이명박이 어떤 의미에서 개혁이자 변화였어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버스 중앙차선제를 실시하고 청계천을 되살린 일은 대중이 바라는 변화의 가치를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죠. 강단에서는 이명박 정부를 보수로 평가하겠지만 대중이 이명박 정부에게 바란 것은 변화였어요.”
다시 말해 대중의 선택에는 이념을 떠나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바람이 내재돼 있었던 것이다. 변화가 진보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변화를 원하는 세력은 진보로 분류됐다. 그래서 지금까지 변화는 진보의 전유물이었다.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변화를 요구하고, 개혁적 선택을 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가 ‘사회 변화와 발전의 원동력’이라면 변화는 결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강정인 교수는 “보수주의자들이 얘기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변화를 본질로 한다. 즉, 시장경제에 내재하는 본질적 혁신과 최고 권력까지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 제도의 공통점은 바로 변화”라면서 “좌파가 진보의 개념을 독점하려 들지만 모든 보수세력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수 또한 역사의 퇴보에 반대하며 바른 방향으로의 사회 변화를 원하는 세력이라는 얘기다. 단, 보수가 자연스럽게 체제 내에서의 변화를 원하는 반면, 진보는 특정 방향으로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박정희 시대가 ‘진보와 개혁의 시대’였다는 역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단지 그 방향이 진보 정권이 추구하는 방향과 달랐을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서울광장에서 열광한 대중과 2008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대중, 그리고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바라보는 지금의 대중은 결코 다르다고만 볼 수 없다. 사안에 따라 보수-진보를 넘나들지만 2002, 2008, 2009년의 대중은 모두 변화를 갈망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변화를 바라는 대중에게 보수-진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대중의 정치적 선택을 단지 이념적 정체성의 혼란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보수-진보의 진영론적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보수-진보를 떠나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그들에게 “당신은 보수냐, 아니면 진보냐”고 묻는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손호철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치의 핵심 화두는 개혁이었지만, 개혁이란 단어를 사회과학적으로 분류하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에 혼란에 부딪혔다”고 지적했다.
보수-진보의 낡은 이분법에서 벗어나 ‘변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중을 바라볼 때, 광장으로 나온 이들도 단순히 보수-진보가 아닌, 변화를 갈구하는 세력으로 탈바꿈한다.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회사원 신영욱(29) 씨는 “나 스스로는 보수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사회가 변화 없이 정체돼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며 “기회주의적 수구세력과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 보수세력은 구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낡은 패러다임의 종말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공화당 매케인 후보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변화라는 시대흐름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화당 부시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변화도 함께 약속함으로써 민주당뿐 아니라 중도 및 일부 공화당 세력의 지지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주의는 ‘변화와 혁신’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내재적 어젠다마저 진보진영에 빼앗겼다.
경북대 철학과 김석수 교수는 ‘한국 현대 철학사에 등장하는 기형적 보수주의 측면에 대한 반성적 고찰’에서 “한국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보수주의는 전통성을 유지하면서도 개혁성을 수용할 태세가 돼 있는 서구의 보수주의와 달리 냉전적인 반공주의에 안착해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더 많은 권력을 유지, 확보하려는 면이 강했다”면서 “우리의 보수주의는 수구 반동세력에 가까웠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변화를 원하는 대중 앞에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대중이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이유는 이념 정체성의 혼란 때문이라기보다 정권이 대중의 변화 욕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데 따른 실망감의 표출로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