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국가지진센터 관계자가 5월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 결과로 보이는 리히터 규모 4.4의 인공지진 파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 외교부의 비난성명은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한 2006년 10월9일의 성명 내용에서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1차 성명의 ‘핵실험을 강행한 데 대해’가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한 데 대해’로 바뀐 것뿐이다.
북-중 전례 없는 이상기류 감지
그러나 중국 관가의 분위기는 1차 핵실험 때와 크게 다르다. 5월27일 량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은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나서는 것을 결단코 반대한다”며 “북한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일절 중단해야 한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중국은 또 6월1일로 예정돼 있던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천즈리(陳至立) 부위원장의 방북을 전격 취소했다. 천 부위원장은 중국의 대표적인 ‘북한통’으로, 올해 초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보다 당내 서열이 높은 부총리급 인사다.
나아가 중국의 차기 최고지도자 1순위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5월27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이상희 국방장관과의 회동에서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중국의 국가 이익에 위배되며, 북한 측에 상황을 더 악화시켜선 안 된다는 확고한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북한 관련 중국 학자들의 대북 자세도 크게 바뀌었다. 과거 대다수 중국 학자들은 “북한의 핵 개발은 핵무기 보유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미국과의 협상용”이라고 주장해왔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제거하고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세계무대로 나오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2차 핵실험으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도가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중국으로서도 용인하기 어렵다.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장롄구이(張璉) 교수는 “동북아의 안정과 관련해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갖는 점은 한반도의 비핵화”라며 “이웃나라(북한을 지칭)의 핵실험은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런민(人民)일보’의 자매지 ‘환추(環球)시보’는 최근 영문판에서 한 학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은 북한에 좀더 강경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북한 제재를 요구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중국 국민 사이에서도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환추시보’가 북한의 2차 핵실험과 관련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북한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보느냐’라는 질문에 66%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중국 국민 사이에 ‘북한에게도 핵개발 권리가 있다.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의 적대 봉쇄정책 때문이다’라는 반응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중국 정부, 학자, 국민 모두 북한의 핵실험을 성토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북한을 강력 제재하는 방안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 양국이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에 제출한 북한 제재 초안에는 △북한에 대한 무기 수출 전면 금지 △화물검사 의무화 △북한의 은행거래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이는 기존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 규정에 비해 상당히 강화된 것이지만,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내용들이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을 자극하거나 고립시키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며 “관련국의 냉정하고도 타당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대북 제재 수위를 낮출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이중적이고 상호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중국의 장기적 이익 때문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한국 미국 일본처럼 중국 정부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다. 하지만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까지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즉 중국의 전략은 북핵 문제가 평화적 외교 교섭을 통해 해결되면 가장 좋겠지만, 이 일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북한을 자극해 전쟁이 발발하게 만들거나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어 붕괴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전면전 발발은 중국의 필연적 개입을 불러온다. 그리고 이는 곧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 지도부가 추구해온 ‘중국의 현대화’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차질을 빚게 된다는 뜻이다. 그럼 미국을 따라잡고 세계 최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중국의 꿈이 무산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현대화 과제가 마무리되는 2050년까지는 한반도의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북한의 붕괴는 또한 남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의미한다. 즉, 북한에서 친(親)중국 정권이 붕괴하는 동시에 친서방 성향을 지닌 남한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중국으로서는 북한 정권이 붕괴하느니 ‘핵을 가진 친중국 정권’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과 관련해 중국의 태도가 1차 핵실험 때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이유도 이런 전략적 고려 때문이다.
“이중적 대북 전략 재고할 시기”
일각에서는 김 국방위원장이 핵 보유를 끝내 고집할 경우 중국 정부가 최후의 카드로 김 위원장의 2선 퇴진과 친중국 성향의 정권 수립을 기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이런 이중적 태도는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한국 국민은 인도적 지원에도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는 북한에 실망한 나머지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경제 지원과 핵 포기 연계를 주장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미국과 일본 역시 한국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나아가 최근 대량살상무기(WMD)의 국제적 확산을 막기 위해 2003년 6월 미국 주도로 발족한 국제 협력체제인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가입했다.
게다가 중국 학자나 국민도 점차 중국 정부의 대북 우호정책에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정책에 긍정적인 나라는 현재 러시아뿐이다. 중국의 이런 정책이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전문가가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콩의 시사평론가 추전하이(邱震海) 씨는 최근 펑황(鳳凰)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더 이상 전통적 우호관계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며 “중국은 이제 대북 전략을 재고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