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와 성별이 어떻든, 회사에서 긴 밤 보내는 데 인터넷 쇼핑만한 것이 없죠. 덕분에 인터넷 쇼핑몰은 심야에 인파로 북적댑니다. 새벽까지 깨어 있어야 했던 지난 몇 주의 야근 동안 저도 인터넷 쇼핑몰을 빙빙 돌았죠. 쇼핑은 미지근한 커피보다 더 강력한 각성 효과를 보이니까요. 자고로 쇼핑이란 묵직한 매장 문의 무게를 느낀 뒤―연약함을 과장함으로써 당황스러워하는 꽃미남 도어맨의 미소를 받는 순간―바닥이 하얀 대리석인지 줄무늬 타일인지 감상하며 또각또각 걸어들어가, 조명과 상품의 디스플레이에 몇 점을 줄지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평소 주장에서 완전히 벗어난 행동이긴 했어요. 윈도쇼핑도 부담스런 불경기에 시간과 수면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겹쳐 인터넷 쇼핑몰과 실재를 구분할 수 없었던 거죠. 현실과 사이버공간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는 미래학자의 예언은 은유가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면 클릭 한 번으로 제가 구입한 상품을 볼까요. 만병통치약급의 복합비타민 한 병. 이렇게 많은 비타민과 무기질이 매일 필요한지 조사 중입니다. 인기 일본만화 ‘은혼’ 캐릭터가 아침잠을 시원하게 깨워줄 것 같아 주문한 자명종. 화면상 우람했던 이 시계는 손목시계보다 더 작고 알람 소리도 가냘프네요. ‘할리우드 스타의 비밀’이라는 카피에 낚여 산 속옷 세트는 그럭저럭 입을 만한데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고요. 복고풍의 빨간색 지갑은 재고물량이 없다며 거래를 취소한다는 싸늘한 문자메시지로 돌아왔습니다. 왜 검은색 지갑을 권해주지 않나요? 또 ‘장바구니’에 담은 물건들이 자꾸만 없어져 불만 e메일도 한 통 보냈더니 컴퓨터에 뭔가를 새로 깔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왠지 잘하지 못한 쇼핑의 기록 같아요.
보도에 따르면 요즘은 인터넷 쇼핑몰도 단골고객만을 우대한다고 합니다. 다양한 고객이 돈을 벌게 해준다는 ‘롱테일의 법칙’이 여기서도 깨졌다고 해요. 저처럼 여기서 하나, 저기서 하나를 사면 푸대접을 각오하라는 거죠.
야근할 때 커피와 인터넷 쇼핑만한 동료도 없죠. 그런데 배송 박스에 구입 물건을 구체적으로 써서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자 동료가 “어이, 여기 줄무늬 빤스 배달 왔어요!”라고 말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선물할 일이 많은 5월입니다. 인터넷 쇼핑몰은 의무방어용 선물 증여에 최적의 환경을 구현하죠. 5월 배송일에 맞춰 오늘 야근 때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인터넷 쇼핑을 해볼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