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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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고 우아한 욕망의 드라마

우디 앨런 감독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09-04-29 16: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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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 깊고 우아한 욕망의 드라마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왼쪽)와 마리아 엘레나(페넬로페 크루즈·오른쪽 뒤)는 후안 안토니오 (하비에르 바르템)를 동시에 사랑하면서 서로를 채워준다.

    여행은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제공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미결정성이 여행의 긴장과 쾌감을 선사한다. 무릇 여행지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영화들은 이 미결정성에서 시작한다. 원제가 ‘Vicky Cristina Barcelona’인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감독 우디 앨런)는 이 야릇한 긴장감에서 출발한다.

    미국인 비키와 크리스티나는 여름휴가를 보내려고 바르셀로나에 온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누군지 불분명한 ‘목소리’는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상반된 성격의 인물이라는 것을 설명해준다. 비키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여성이다. 반면 크리스티나는 직관과 운명의 힘에 기대는 충동적인 여성이다. 서로 성격이 다르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는 듯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다.

    비키와 크리스티나는 우연히 바르셀로나 사교계의 스캔들 메이커인 화가 후안 안토니오를 만나게 된다. 야생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안토니오를 본 두 사람의 반응은 성격처럼 분명히 나뉜다. 크리스티나는 노골적으로 그를 쳐다보며 시선을 유인한다. 이에 비키는 크리스티나의 대담함을 경고한다. 안토니오가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소문을 들려주며 비키는 그의 접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안토니오는 두 사람에게 운명처럼 다가와 ‘오비에도’라는 낯선 곳에 함께 가자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안토니오에게 먼저 빠진 사람이 다름 아닌 비키라는 사실. 비키는 안토니오에 대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굴복하고 만다. 설상가상 친구 크리스티나는 안토니오와 동거를 시작한다. 평생 충동적인 행동을 해본 적 없는 비키는 당혹감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녀는 약혼자와의 결혼을 서두르면서 자신의 욕망을 실수로 덮어버린다.

    크리스티나가 철로의 레일 위를 걸어간다면 비키는 안전하게 보도 위를 걷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티나가 여행 중에 만나는 상황을 매력적인 유혹으로 받아들인다면, 안전선 안에 서 있는 비키는 유혹에 겁을 먹는 식이다. 사랑과 인생에 대해 다른 이상을 지닌 두 여성에게 안토니오는 그들의 욕망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거울로 다가온다. 안토니오는 격정적 사랑을 꿈꾸는 크리스티나에게는 유혹이 돼주고, 일탈을 꿈꾸는 비키에겐 짜릿한 추억을 선사한다. 안토니오는 여자들을 소유하지 않고 그들의 욕망을 실현시켜줌으로써 절대적인 이름이 된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 중반 이후 안토니오의 전처 마리아 엘레나까지 이 삼각관계에 끼어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늘어난 등장인물만큼 다양한 경우의 수로 확장된다. 그들은 상식과 윤리를 깨고 ‘3’이라는 숫자가 내포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실험한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결합이 세 사람 사이에서 완성된다. 그들은 서로를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결점을 채워준다. 이 희한한 사랑의 드라마는 “성관계는 없다”라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의 유명한 선언을 배반한다. 두 사람 사이에 불가능한 성적 욕망이 셋이 되자 완성되니 말이다.

    갑작스레 등장한 엘레나는 우디 앨런 감독의 뮤즈이자 영화적 욕망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엘레나는 충동적이며 난폭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변덕스럽고 직관적이기에 매혹적이다. 앨런 감독은 이 기이하고 유머러스한 욕망의 드라마를 통해 예술이란 일상 너머의 무엇이며, 상식을 넘어서는 조화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영화란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사이에서 생기는 의외성인 셈이다.

    안전선 안에 있고 싶은 세속적 욕망 비키, 그것을 뛰어넘고 싶은 직관적 열정 크리스티나, 그리고 앨런 감독의 뉴욕이 아닌 일탈의 공간 바르셀로나. 인생은 이 3가지 요소의 긴장 속에서 지나간다. 안정과 일탈, 낯선 경이감 속에서 예술은 빚어지고 또 사라진다.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영화 미학에 대한 앨런 감독의 속 깊고 우아한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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