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비에의 둘째 딸 호들(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페르칙(왼쪽에서 두 번째)이 결혼식날 하객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테비에는 러시아에서 강제 이주 명령을 받아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유대인 특유의 낙천적인 태도와 가족애를 지키면서 또 다른 곳에서 행복한 일상을 꿈꾼다.
이 소설은 1957년 연극 ‘테비에와 그 딸들’로 각색됐다가 1964년에는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으로 옷을 갈아입고, 때로는 구슬프고 때로는 경쾌한 음악이 어울리는 명작이 됐다.
이 명작이 한국에서 새롭게 선보인다. 이 작품에선 무엇보다 2008년 한국 공연계를 통틀어 최고의 무대 디자인을 엿볼 수 있다. 하늘을 향해 무성한 가지를 뻗은 떡갈나무들과 수북이 쌓인 낙엽이 아나테프카 마을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준다. 실존하는 역사를 무대에 불러오기 위해 사실주의 대신 모더니즘 방식을 선택한 무대는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이다. 초연 후 40여 년이 흘렀지만 모던하게 해석한 이번 리바이벌 공연은 한 폭의 그림 같은 디자인에 적절한 무대 기술을 도입해 내면의 슬픔을 머금은 격조 높은 비주얼을 선보였다.
처음에 반대하던 세 딸의 결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갈등은 극적인 효과를 준다. 첫째인 자이들(방진의 분)과 모들(김재범 분) 커플의 교훈은 결혼의 첫 번째 조건이 돈이 아니라 사랑과 행복이라는 것이다. 둘째 호들(해이 분)과 페르칙(신성록/이경수 분)을 통해서는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꿈꾼다. 셋째인 하바(김정미 분)와 피에드카(정현철 분)에 이르러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이 지역, 피부색, 성 정체성 등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위해 어려운 걸음을 뗀 것이다.
‘선라이즈, 선셋’을 비롯해 ‘내가 부자라면’ 등의 친근한 선율을 들려주며 가슴 뭉클한 스토리를 이끄는 속 깊은 아버지 역으로 탤런트 노주현과 1985년 한국 공연에서 이미 테비에를 맡았던 김진태가 번갈아 출연 중이다. 노주현은 생애 첫 뮤지컬 도전으로 다소 힘겨운 음정 처리를 보여주지만 ‘국민 아버지’다운 편안한 연기로 따스한 부정(父情)을 객석까지 훈훈하게 전달한다. 관록의 김진태는 무뚝뚝함에 가려진 테비에의 내면을 섬세하게 처리해 사랑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아내인 골데 역은 중견배우 이미라가 맡았다(12월2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문의 02-501-7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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