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오른쪽).
청중은 연주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숨을 죽인다. 그래도 환절기라 기침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팸플릿 떨어뜨리는 소리와 휴대전화 벨소리가 느닷없이 콘서트장을 점령하기도 하지만 거개의 사람들은 귀갑(龜甲) 그 자체다.
그럼에도 음악에 빠져들면 거북 등껍데기 같은 갑갑함도 별것 아니다. 그 자세로도 마음은 얼마든지 환상적인 여행을 떠났다 돌아올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청중이 조용히 객석에 앉아 제례의식 치르듯 음악을 듣는 형태의 클래식 음악회가 등장한 것은 겨우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전에는 공연장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썩하게 보내는 일도 많았다.
청중이 그런 과거를 그리워하듯, 연주자들도 과거의 영화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른바 원전(原典)연주 운동이다. 작품이 작곡되고 연주된 당시의 취지에 충실하자는 이 운동은 1960년대 시작됐고, 지금까지 그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옛날의 습관이나 음색, 공간을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다 해도 옛 형태를 모방한 악기로 과거의 음악적 영감을 찾으려는 노력은 21세기 관객들에게서도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10월29일 저녁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연주를 갖는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노 카르미뇰라 ·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이하 VBO)도 원전 연주로 정평이 나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비르투오소 연주자인 카르미뇰라는 특히 비발디 음악의 아름다움을 다채롭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데 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VBO와 같이 녹음한 비발디의 ‘사계’ ‘후기 협주곡’ 앨범은 세계적 권위의 황금디아파종 상을 받기도 했다. 손꼽히는 원전 악기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VBO는 바로크 오페라를 발굴, 조명하는 데도 공을 들인다. 이번 연주회에서 이들은 비발디의 ‘사계’와 ‘현악과 콘티누오를 위한 협주곡 나단조’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등을 선보인다(문의 02-586-2722).
● 대표적인 리릭 소프라노 신영옥의 새 앨범 ‘시네마티크’
대표적인 리릭 소프라노 신영옥의 새 앨범 ‘시네마티크’(Cinematique·‘영화적인’ 의미의 영불 합성어)가 나왔다. 그가 직접 선곡하고 제목까지 붙인 이 앨범에는 영화 속에 흐르는 감동적인 클래식 음악과 민요 13곡이 담겼다.
신씨는 영화 ‘미션’의 테마곡 ‘넬라 판타지아’(엔니오 모리코네 곡),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달에게 부치는 노래’(드보르자크 오페라 ‘루살카’ 가운데),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 삽입돼 주인공의 차가운 복수심을 잘 전달했던 ‘왜 나의 슬픔 외에는 원치 않는가’(비발디 칸타타 ‘그만두어라, 이제는 끝났다’ 중 2악장),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나치 감옥의 밤을 아늑하게 휘감은 ‘뱃노래(아름다운 밤)’(오펜바흐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가운데) 등 낯익은 곡들을 우아한 음성으로 들려준다.
신씨는 “음악이 삽입됐던 영화를 모두 보았고, 영화 속 장면을 상상하며 노래를 부르다 나도 모르게 배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태양의 제국’ 삽입곡인 웨일스 민요 ‘수오 간(Suo Gan)’ 을 부를 때는 전쟁의 희생양인 소년 주인공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