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독설가 지휘자 강마에 역을 맡은 김명민.‘불멸의 이순신’(왼쪽)과 ‘하얀 거탑’ 출연 당시 모습.
안주하지 않은 덕분일까, 뒤늦게 행운은 따랐다. 큰 욕심과 그것을 채울 실력까지 갖춘 김명민은 냉철한 형사로 분한 영화 ‘무방비 도시’에 이어, 독설가 지휘자로 나선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 또 한 번 ‘일’을 내고 있다.
‘하얀 거탑’의 장준혁,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그리고 배우 김명민은 ‘노력형 천재’라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이들은 영리하게 ‘타고난 재능도 노력 없이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훌륭한 운동선수와 음악가는 90%의 재능에 10%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데, 10%의 노력이 없다면 90%의 재능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믿는 김명민은 자신이 지닌 재능과 노력을 대중 앞에 낱낱이 보여주는 법을 아는 배우다.
재능과 노력에 대한 김명민의 생각은 성장기와 데뷔 초기를 거치면서 확고해진 듯하다. 어린 시절 집안 분위기에 대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표현한 김명민은 “피아노를 전공한 누나는 집안 기둥까지 뽑아 지원받은 반면 나는 ‘딴따라’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1996년 SBS 공채 6기로 데뷔해 연기를 시작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 영화 ‘소름’으로 조금 연기력을 인정받긴 했지만 2004년 사극 ‘불멸의 이순신’에 출연하기 전까지 김명민은 대중에게 낯선 존재였다.
한때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연기자의 길을 포기하고 뉴질랜드 이민까지 고려했다는 그는 ‘불멸의 이순신’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고, 이어 ‘하얀 거탑’으로 그 존재를 각인시켰다. “노력은 절박함에서 나온다”는 그의 말처럼 가장 다급한 순간 만난 이 드라마들로 김명민은 그 존재를 드러냈고 대중은 걸출한 배우를 만났다.
작품성 추구하는 고집스런 행보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을 시작하기 전 김명민은 꼬박 5개월을 클래식 음악을 익히는 데 쏟아부었다. 악기별 소리를 알아야 능숙한 지휘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클래식 명곡을 모조리 외웠다. 혹독한 노력은 독특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극 중 강마에가 구사하는 이색적인 말투는 김명민이 고안해낸 것. ‘똥, 덩, 어, 리’라는 한 단어를 내뱉으면서도 발음마다 바뀌는 억양과 얼굴 표정은 어떤 배우에게서도 기대할 수 없는 김명민만의 매력이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김명민뿐은 아니지만 대중이 유난히 그를 반기는 이유는 ‘노력형 인간’에 대한 호감이 작용한 까닭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을 요하는 역할이 주어져도 뚝딱 몸에 익히고 마는 그에게는 저절로 믿음이 간다.
안주하지 않는 것은 김명민의 강점이자 경쟁력. “작품성을 좇으면 언젠가 흥행작을 만날 거라 믿는다”는 그는 “주변에서는 흥행할 만한 영화나 드라마를 택하라고 충고하지만 주관을 믿고 작품을 선택하는 방식은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배우가 대박을 따르면 곧 한계에 부딪힌다”는 ‘진리’에 대한 그의 고집스런 행보는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