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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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권력자 위선에 똥침

  • 현수정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08-08-20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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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으로 권력자 위선에 똥침

    한자리에 모인 도둑과 그의 아내, 최종구, 김가영 등은 저마다의 거짓말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애쓴다.

    희극에서 ‘도둑’을 소재로 사회 풍자를 담은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부유한 집에 들어가 한바탕 해프닝을 일으키는 도둑의 말과 행위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더 큰 도둑들’을 비아냥거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연극 ‘도덕적 도둑’ 역시 도둑이 연출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내비친다.

    연극의 배경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국회의원 최종구의 집. 경비업체에 근무하는 아내 덕에 마음 놓고 ‘밤일’을 해온 도둑은 여느 때처럼 잠입한 집에 전화를 걸어 남편의 위치를 파악하는 의심 많은 아내의 감시를 받으며 훔칠 물건을 둘러본다. 그러던 중 최종구가 예기치 않게 자신의 애인과 함께 등장하고, 도둑은 급한 김에 옷장에 숨는다. 마침 도둑의 아내는 다시금 남편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전화를 거는데, 이때 수화기를 든 것은 바로 최종구의 애인 김가영이다. 그 전화 때문에 최종구는 자신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안절부절못하고, 도둑의 아내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만난다고 생각하며 분노한다.

    한편 최종구는 옷장에 숨어 있던 도둑이 제 발로 튀어나오자 자신의 불륜 현장을 본 그를 입막음할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나 곧 최종구의 아내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점점 복잡해진다. 이때부터 무대는 거짓말로 점철돼간다.

    최종구는 아내에게 도둑과 김가영이 부부라고 거짓말을 해대는데, 그때 거구를 자랑하는 도둑의 아내가 등장한다. 도둑의 아내가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힘으로 집 안을 휘젓고 다니는 가운데, 최종구 아내의 애인까지 나타난다. 게다가 알고 보니 ‘최종구 아내의 애인’은 김가영의 남편이다.

    역설적 상황 통해 우리 사회 모순 지적



    이 말도 안 되게 난감한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하는 것은 진짜 경찰이 방문하면서부터다. 도둑이 총대를 메고 자신은 국가정보원의 비밀조직에 속한 요원이며 재벌그룹의 비자금과 관련된 그림을 찾으러 왔다는 둥 둘러대고, ‘구린’ 구석을 남에게 감추고 싶다는 점에서 일치하는 이들은 도둑의 말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90%를 채우고 있는 것은 가벼운 웃음이지만 여운을 장식하는 것은 씁쓸한 페이소스라는 점이다. 엉뚱한 상황과 인물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익숙하기 그지없는 우리 사회의 이슈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 페이소스의 핵심은 이 작품의 묘미인 ‘사건의 재구성’에 있다. 경찰에게 도둑이 해명하는 바를 들어보면, 사건이 일어난 순서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그 해석은 180도 다르다. ‘사실’보다 ‘꾸며진 사실’이 우세하다는 데서, 각종 사건으로 기소되지만 언제나 마술처럼 풀려나는 고위급 인사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는 ‘도덕적 도둑’이라는 제목이 담고 있는 역설적인 의미와 풍자성이기도 하다.

    억지로 짜맞춘 느낌 있지만 관객들 공감

    웃음으로 권력자 위선에 똥침
    연극은 대놓고 권력자들의 위선을 비판한다. 도둑이 꾸며낸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도둑의 아내와 경찰뿐이다. 즉, 외도를 저지른 두 커플은 서로 이번 사건에 대해 발설하지 않겠다는 동의로 모든 소란을 무마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상이 아닌 ‘남들의 눈’이기 때문이다.

    또한 권력층을 상징하는 ‘최종구 의원’의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식적이다. 벽에 걸린 그의 ‘기호 1번’ 포스터는 포토샵으로 작업한 것이다. 그는 비례대표로 선출됐기 때문이다. 불륜 사실을 들킬까 노심초사하는 그는 ‘간통보다 살인이 더 낫다’고 말하는데, 그에게 도덕의 기준이란 정치가로서 자신의 명예를 얼마나 덜 실추시키느냐는 데 있다. 그러면서 그는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점 하나만 찍혀 있는 고가의 그림)을 바라보며 윤동주의 ‘서시’를 읊는다. 비자금과 관련된 그림, ‘팔성 그룹’이라는 이름, 비례대표로 선출된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점 등이 모두 실제 상황을 연상케 한다.

    이 같은 사회비판적 내용은 과장된 상황과 인물들의 바보스런 언행이 주는 웃음으로 포장돼 있다. 또한 풍자가 너무 직접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공격적이기보다는 혀를 차며 웃어 넘길 수 있는 정도로 부담 없이 느껴진다. 개연성이 치밀한 플롯보다는 상황을 통해 떠들썩한 웃음을 선사하는 것은 전통적인 소극(笑劇)의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세 커플이 본의 아니게 짝을 바꿔가며 소동을 벌이고, 오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며, 그 난감한 상황이 한 번에 일축되는 점에서 현대에 맞게 활용된 코메디아 델 아르테의 웃음 코드를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의 작가 다리오 포의 원작 희곡을 연출가 왕용범이 무대화했는데, 자칫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각색했다. 반면 도둑이 둘러대는 이야기와 또 다른 도둑이 출현하는 타이밍 등, 국내 상황에 대입하다 보니 다소 억지스럽게 짜맞춰진 느낌도 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움직임, 무대 사용, 플롯 진행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고,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이슈들을 재치 있게 담아냈다. 배우들 또한 인물의 캐릭터를 개성 있게 살렸다(9월12일까지, 대학로 허밍스 아트홀, 문의 02-764-8760).

    예술과 과학

    적나라한 웃음의 향연

    소극(笑劇)은 민중의 해우소


    웃음으로 권력자 위선에 똥침

    ‘도덕적 도둑’의 원작자이자 소극의 대가인 극작가 다리오 포.

    어느 음식점에 5초가 멀다 하고 구수하고 음탕한 욕을 섞어가면서 ‘나라님’에 대해 비판하는 우스꽝스러운 욕쟁이 할머니가 있다고 하자. 너무나 직접적이라 수위가 아슬아슬할지라도 그녀의 말에 논쟁을 걸 손님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개연성 있는 플롯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 전개를 통해 왁자지껄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소극(farce)’에서의 풍자 역시 일차원적이면서도 신랄하지만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리오 포의 많은 소극들이 그렇듯 ‘도덕적 도둑’도 가벼운 웃음을 통해 지배계층의 위선과 사회 부조리를 폭로하고 있다.

    소극이란 무엇일까. 오래전 종교의식 중에 삽입됐고, 고대 그리스 희극에서도 공통적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소극이 독립적인 희극 장르로 자리잡게 된 것은 중세부터다. 17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이후의 희극에 큰 영향을 끼친 소극 전문극단이 활동했는데, 이들의 공연을 ‘코메디아 델 아르테’라고 불렀다. 이들은 유형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상황 희극을 주로 상연했다. 즉흥성이 강했고 말장난과 몸으로 부리는 익살 등을 보였다.

    몰리에르,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스토리텔링이 강화된 소극들을 볼 수 있고, 이후 부조리극 작가들에게도 무의미한 말장난으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소극의 코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의 코미디를 비롯해 현대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장르다.

    보통 전통적인 소극에 대한 정의를 보면 ‘단순한 웃음 유발을 목적으로 한다’고 쓰여 있지만, 오히려 민중의 질긴 생명력을 담은 소극의 ‘저급한’ 웃음이야말로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는 전복성을 감추고 있다. 한 시간 남짓 한바탕 적나라한 웃음의 향연을 벌이고 나서 가슴이 후련해짐을 느낀다면, 관객 처지에서는 진지한 공연을 본 것만큼이나 공연장을 찾은 보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수정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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