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리에 모인 도둑과 그의 아내, 최종구, 김가영 등은 저마다의 거짓말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애쓴다.
연극의 배경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국회의원 최종구의 집. 경비업체에 근무하는 아내 덕에 마음 놓고 ‘밤일’을 해온 도둑은 여느 때처럼 잠입한 집에 전화를 걸어 남편의 위치를 파악하는 의심 많은 아내의 감시를 받으며 훔칠 물건을 둘러본다. 그러던 중 최종구가 예기치 않게 자신의 애인과 함께 등장하고, 도둑은 급한 김에 옷장에 숨는다. 마침 도둑의 아내는 다시금 남편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전화를 거는데, 이때 수화기를 든 것은 바로 최종구의 애인 김가영이다. 그 전화 때문에 최종구는 자신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안절부절못하고, 도둑의 아내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만난다고 생각하며 분노한다.
한편 최종구는 옷장에 숨어 있던 도둑이 제 발로 튀어나오자 자신의 불륜 현장을 본 그를 입막음할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나 곧 최종구의 아내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점점 복잡해진다. 이때부터 무대는 거짓말로 점철돼간다.
최종구는 아내에게 도둑과 김가영이 부부라고 거짓말을 해대는데, 그때 거구를 자랑하는 도둑의 아내가 등장한다. 도둑의 아내가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힘으로 집 안을 휘젓고 다니는 가운데, 최종구 아내의 애인까지 나타난다. 게다가 알고 보니 ‘최종구 아내의 애인’은 김가영의 남편이다.
역설적 상황 통해 우리 사회 모순 지적
이 말도 안 되게 난감한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하는 것은 진짜 경찰이 방문하면서부터다. 도둑이 총대를 메고 자신은 국가정보원의 비밀조직에 속한 요원이며 재벌그룹의 비자금과 관련된 그림을 찾으러 왔다는 둥 둘러대고, ‘구린’ 구석을 남에게 감추고 싶다는 점에서 일치하는 이들은 도둑의 말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90%를 채우고 있는 것은 가벼운 웃음이지만 여운을 장식하는 것은 씁쓸한 페이소스라는 점이다. 엉뚱한 상황과 인물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익숙하기 그지없는 우리 사회의 이슈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 페이소스의 핵심은 이 작품의 묘미인 ‘사건의 재구성’에 있다. 경찰에게 도둑이 해명하는 바를 들어보면, 사건이 일어난 순서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그 해석은 180도 다르다. ‘사실’보다 ‘꾸며진 사실’이 우세하다는 데서, 각종 사건으로 기소되지만 언제나 마술처럼 풀려나는 고위급 인사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는 ‘도덕적 도둑’이라는 제목이 담고 있는 역설적인 의미와 풍자성이기도 하다.
억지로 짜맞춘 느낌 있지만 관객들 공감
연극은 대놓고 권력자들의 위선을 비판한다. 도둑이 꾸며낸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도둑의 아내와 경찰뿐이다. 즉, 외도를 저지른 두 커플은 서로 이번 사건에 대해 발설하지 않겠다는 동의로 모든 소란을 무마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상이 아닌 ‘남들의 눈’이기 때문이다.
또한 권력층을 상징하는 ‘최종구 의원’의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식적이다. 벽에 걸린 그의 ‘기호 1번’ 포스터는 포토샵으로 작업한 것이다. 그는 비례대표로 선출됐기 때문이다. 불륜 사실을 들킬까 노심초사하는 그는 ‘간통보다 살인이 더 낫다’고 말하는데, 그에게 도덕의 기준이란 정치가로서 자신의 명예를 얼마나 덜 실추시키느냐는 데 있다. 그러면서 그는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점 하나만 찍혀 있는 고가의 그림)을 바라보며 윤동주의 ‘서시’를 읊는다. 비자금과 관련된 그림, ‘팔성 그룹’이라는 이름, 비례대표로 선출된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점 등이 모두 실제 상황을 연상케 한다.
이 같은 사회비판적 내용은 과장된 상황과 인물들의 바보스런 언행이 주는 웃음으로 포장돼 있다. 또한 풍자가 너무 직접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공격적이기보다는 혀를 차며 웃어 넘길 수 있는 정도로 부담 없이 느껴진다. 개연성이 치밀한 플롯보다는 상황을 통해 떠들썩한 웃음을 선사하는 것은 전통적인 소극(笑劇)의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세 커플이 본의 아니게 짝을 바꿔가며 소동을 벌이고, 오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며, 그 난감한 상황이 한 번에 일축되는 점에서 현대에 맞게 활용된 코메디아 델 아르테의 웃음 코드를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의 작가 다리오 포의 원작 희곡을 연출가 왕용범이 무대화했는데, 자칫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각색했다. 반면 도둑이 둘러대는 이야기와 또 다른 도둑이 출현하는 타이밍 등, 국내 상황에 대입하다 보니 다소 억지스럽게 짜맞춰진 느낌도 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움직임, 무대 사용, 플롯 진행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고,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이슈들을 재치 있게 담아냈다. 배우들 또한 인물의 캐릭터를 개성 있게 살렸다(9월12일까지, 대학로 허밍스 아트홀, 문의 02-764-8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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