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가운데)을 비롯해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는 주부들의 욕망을 반영한다.
첫 회가 방영된 뒤 뜻밖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최진실이 “내 드라마치고 한 자릿수 시청률인 건 난생처음이라 당황스럽다”라고 했다나. 그러나 회를 거듭하며 상승세를 보이더니 10회에 이르러 20%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제대로 탄력받기 시작했다. 방영 시간이 ‘환상의 커플’ ‘하얀거탑’조차 20% 초반밖에 안 나왔을 정도로 ‘마의 시간대’인 터라 대박 시청률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지금 같은 추세라면 30%도 너끈하지 싶다.
그런데 시청률이 기대 이하였을 때는 ‘최진실 파워 이전만 못하다’ ‘아줌마용 판타지, 이젠 식상하다’ 식의 기사가 나오더니 드라마가 좀 된다 싶으니 ‘천하일색 박정금’ 등과 묶어 이렇게 현실을 무시한 아줌마용 신데렐라 스토리가 난무해도 되는 것이냐고 난리다. 아줌마용 판타지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설마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어리석을까?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허황된 얘기일 뿐이라는 걸 아줌마들은 이미 너무나 잘 안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을 보며 나에게도 인기 연예인과의 사랑 같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저 동화 같은, 순정만화 같은 이야기에 가슴 설렐 뿐이다. 주인공 홍선희가 맞닥뜨린 상황이 워낙 최악 아닌가. 팍팍한 삶에 휘둘려 외모에 신경 끄고 산 지 오래, 돈에 쪼들려 남의 집 도우미로 나선 처지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능한 남편은 바람까지 났으니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있을까. 그런 최악의 상황에 첫사랑이, 그것도 미혼인 첫사랑이 나타나 홍선희의 흑기사를 자청하고 나섰으니. 게다가 그 첫사랑이 인기 절정의 톱스타라니 그야말로 현실성 0%가 아니겠나.
돈에 쪼들려 도우미하다 톱스타와 로맨스
그러나 사실 이런 식의 아줌마용 신데렐라 스토리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중년의 신데렐라’는 ‘불륜’과 함께 아침드라마 전용 소재이니 말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아줌마용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위기(남편의 바람)를 두 가지 방식으로 헤쳐나간다. 어려움을 뚫고 일으킨 사업 대박(일에서의 성공)과 멋진 남성과의 새로운 사랑이 그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사업 대박보다 새로운 사랑에 더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하희라 주연의 MBC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가 그런 드라마의 대표격이다. 못된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며 가족에게 헌신해온 순애(하희라 분)를 인간적으로 무시하는 남편 동규(김윤석 분)는 영조(지수원 분)와 불륜에 빠져 결국 이혼을 요구하고, 이에 주인공 순애를 구원해줄 인물이 나타나니 바로 진우(변우민 분)다. 그것도 의사에다 총각이기까지 하니 ‘아줌마용 신데렐라’ 공식에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시청률이 꽤 높았음에도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주인공과 같은 나이대의 주부들에게서,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는 이유로.
SBS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도 비슷한 경우다. 주인공 나화신(오현경 분)은 순애를 그대로 복제한 듯 너무도 닮았다. 불륜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기 짝이 없는 화신의 남편 한원수(안내상 분)는 순애의 남편 동규와 닮은꼴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내연녀들도 어쩜 한 쌍의 바퀴벌레처럼 닮았는지. 그나마 다른 한 가지는 순애의 흑기사 진우는 같은 연배인 반면, 화신을 구원해주러 투입된 의류업체 본부장 구세주(이상우 분)는 대여섯 살 연하라는 점이다. 연하가 대세인 터라 연하 설정을 더한 모양이지만 오히려 현실성은 더 떨어졌다.
멀쩡한 연하남이 애 딸린 아줌마, 그것도 머리 질끈 묶은 추레한 차림의 아줌마에게 꽂힌다? 최근 아줌마들이 ‘누나부대’나 ‘이모부대’를 형성하며 연하의 꽃미남들에게 열광한다고는 하지만, 이들 드라마는 마치 인형을 컬렉션하는 것 같은 개념으로 보인다. 사실 주부를 타깃으로 한 아침드라마의 경우 연하남 대세는 이미 정석처럼 돼버렸다. 하지만 대다수 아줌마들은 그들과 마냥 이성적인 사랑을 꿈꿀 정도로 몰염치하지만은 않다. 한 예로 아줌마 타깃 드라마에서 연하남으로 등장한 배우들은 굉장히 멋진 ‘조건’에도 그다지 ‘뜨진’ 못했다(사실 개인적으론 ‘조강지처 클럽’에서 화신에게 구애하는 본부장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어야 할 텐데 그러기는커녕 코웃음만 나온다. 작가가 시청자를 바보로 아나 싶어서).
‘연민이 사랑으로’ 그럴듯한 설정에 주부들 공감
그렇다면 어째서 똑같이 현실성 제로인 드라마이거늘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주부들에게서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는 걸까. 멋모르는 이들은 꽃미남 첫사랑과의 스킨십만 있으면 만사 통하려니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차고 넘치게 많은 아줌마용 신데렐라 스토리 중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낸 건 바로 흑기사 역의 송재빈이 망가진 아줌마 홍선희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다. 아름다운 추억 속의 첫사랑 선희가 추레한 아줌마로 전락한 것에 실망해 매몰차게 대하지만, 그녀가 처한 안타까운 상황에 연민을 느끼며 도와주다 보니 예전 감정이 되살아난다는 설정이 그럴듯하지 않은가.
아줌마 시청자 처지에서 볼 때 단순히 연하의 생면부지 꽃미남과 엮이는 것보다는 훨씬 현실성이 있다. 누구나 가슴 한쪽에 숨겨둔 첫사랑은 있을 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지루한 일상의 나를 구해주지는 않을까 상상해보는 일, 그게 바로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 중 하나일 게다.
그러나 여기서 절대 좌시해서는 안 될 것 한 가지! 계속 그렇게 추레하다면 그 누가 연민을 느끼리. 신데렐라 스토리라면 빠지지 않는 변신 장면에서 확실한 ‘비포 · 애프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면 적어도 55 사이즈는 기본이고 최진실처럼 가녀린 팔뚝에 안아주고 싶도록 애처로운 몸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걸 보면 ‘아줌마용 신데렐라 스토리’는 공감이 되든 안 되든 어쩔 수 없는 ‘판타지’임을 부정할 수 없겠다. 하지만 판타지인들 어떤가. 드라마가 시작해서 끝나는 그 시간만큼은 정준호와 정웅인에게 위로받는 최진실이 되고 싶은 것을. 아줌마들은 ‘아줌마용 판타지’ 속에서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는 게 아니다. 그저 작은 위로를 얻고 싶은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