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단상 맨 앞)은 새 정부 국무위원 1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 대통령 왼쪽이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 내정자.
십수명의 후보자가 치열하게 경합했던 총리직은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 이후 줄곧 ‘교수 출신 장관’의 대표격으로 알려진 한승수 씨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휘황찬란한 경력에 걸맞지 않은 몇몇 미심쩍은 이력으로 도덕적 시비를 낳았다.
곧이어 지명된 15명의 장관 후보자 가운데 3명은 아예 국회 인사청문회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정쟁의 불씨가 됐다. ‘야당의 새 정부 발목잡기’라는 평도 있었지만, 이는 높아진 국민의 의식수준을 고려하지 못한 안일한 처사였다.
낙마한 인사들을 둘러싼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동산 투기, 가족의 이중국적과 병역면제, 건강보험 무임승차, 심지어 논문표절 의혹까지 받았다. 한 야당 대변인이 이들을 향해 쏟아낸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치 땅을 머리에 이고 사는 분들 같다”는 논평을 과장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처럼 치밀하지 못한 장관급 인사로 당선 직후 70%대까지 올랐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지지도는 몇 주 사이 40%대로 급전직하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청와대가 4·9 총선을 망치고 있다”는 불만을 쏟아내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연출됐다.
YS정권 이후 교수 출신 장관 50명 넘어
논란에 휘말린 장관 후보자 가운데 특히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이들은 바로 ‘교수 출신 장관’이다. 이번 논란의 대상이 된 거의 모든 장관 후보자들(한승수 남주홍 김성이 이영희 유인촌 박은경 등)의 공통분모는 이들이 한때 대학 교수였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교수 내각’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왔다.
‘교수 출신 장관’이 구설수에 오른 건 물론 이번만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십명의 교수들이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에 낙점됐다. 한때 정통성이 부족하고 이른바 ‘가방끈’이 짧았던 군사정부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교수 출신 장관’의 역사는 오히려 문민정부 이후 그 정도를 더해왔다. 심지어 “교수 출신은 당연히 장관급으로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까지 생겼을 정도다.
개중엔 능력을 인정받아 자리를 지키고 업적을 남긴 명재상도 있지만 그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되레 불명예 퇴진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취임 직후 낙마해 정권에 부담을 준 인사의 태반이 바로 ‘교수 출신 장관’이었다. 정치권 일각에서 ‘(검증 불가능한) 교수 출신 불가론’이 대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수 출신 장관’에 대한 인사시스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치권에 줄을 대는 속칭 ‘폴리페서(polifessor)’ 문제가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린다.
여론에 밀려 자진 사퇴한 남주홍 통일부 장관 내정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진 부동산 투기 논란에 대해 “부부 교수 25년에 30억원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양반”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재산이 아니라 ‘교수’라는 직위에 덩달아 따라온 ‘학자적 권위’일지 모른다. 남 내정자는 교수 생활 25년간 학술진흥재단(학진)에 등록된 논문이 9편뿐이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세간의 빈축을 샀다. 그는 대선 전에 한 정치지향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았기 때문에 ‘교수’라기보다 정치권을 기웃거린 ‘폴리페서’라는 평가가 합당해 보인다.
‘주간동아’가 김영삼 정부 이래 현재까지 직업교수 출신으로 장관직에 오른 인물을 확인해본 결과 해당 인사가 50명이 넘었다. 교수로 일하다 곧장 장관에 오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관료-교수-관료’의 길을 밟은 경우도 상당수였다. 특히 교육부(현 교육과학기술부), 노동부, 환경부, 여성부 등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부처에서 ‘교수 출신 장관’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교수 출신 장관’은 대체 어떤 경로를 통했기에 엘리트 공무원이 평생을 바쳐도 감히 다가서지 못하는 ‘장관’이란 감투를 단숨에 움켜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졌을까. 한국 사회 특유의 무임승차 시스템인 ‘교수 출신 장관’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