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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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현상과 트림의 윤리

  • 장석만/ 옥랑문화연구소장

    입력2005-06-30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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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리 현상과 트림의 윤리
    캘빈은 음식에 관해서도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권하는 영양가 높은 음식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남들이 역겨워하는 것을 즐겨 먹는다. 그래서 캘빈에게 음식을 먹게 하려면 캘빈을 자극하는 일이 필요하다. 예컨대 “이 음식에는 변신(變身)할 수 있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하면, 캘빈은 순식간에 먹어치워 버린다. 오늘 캘빈의 식욕은 왕성하다. 아마도 엄마가 캘빈의 구미에 맞는 괴상한 음식을 마련했거나, 아니면 보통 음식을 캘빈이 괴상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음식을 허겁지겁 먹으면, 음식과 함께 공기도 따라 들어가는 법. 그렇게 들어간 공기는 종종 트림으로 우리 몸을 빠져나온다. 이럴 경우, 캘빈의 눈동자는 생생한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자기 몸이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현상을 캘빈은 절대 그냥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위장에 있던 공기가 위로 빠져나올 때는 발성기관을 지나기 때문에 괴상한 소리가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연적인 생리현상으로 여겨지는 그런 소리도 캘빈에게는 문화적인 필터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다. 그래서 우리의 트림 소리는 ‘꺼억’인 데 비해, 캘빈의 트림은 ‘부어릅’ 하는 소리로 나타난다. 트림할 때 캘빈의 눈은 그 신기함에 놀라서 야구공만 해지고, 초점을 잃고 있다. 몸이 자기에게 선사하는 이 묘한 순간을 충분히 음미하고 있는 표정이다.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저절로 이루어지는 이런 몸의 작용을 통해 캘빈은 세상의 오묘함을 깨닫기 시작하는 듯하다.

    하지만 엄마는 캘빈이 걱정스럽다. 캘빈이 이처럼 자기에게 몰두하느라고, 다른 사람을 위한 예절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엄마는 캘빈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려면, 밥 먹을 때 가능하면 트림하지 말거나, 할 수 없이 트림할 경우에라도 사과하는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와 달리 캘빈 동네에서는 밥 먹으면서 코를 푸는 것은 실례가 아니라고 여긴다. 하지만 트림하는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에티켓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트림하게 되면 사과를 해야 한다. 어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법이므로, 아이가 좋은 예절 습관을 지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엄마는 캘빈에게 예절 교육을 한다.



    하지만 캘빈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도 자신의 몸에 지대한 흥미가 있다. 그래서 ‘트림의 예절’에 몰두해 있는 엄마와 달리, 트림이 자기 몸에 준 생생한 감각을 음미하는 중이다. 그것은 유람선이 ‘스르륵’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몸속에서 뭔가 위로 올라가며 만들어주는 묘한 맛이기도 하다. 온몸으로 다가오는 이 새로운 감각을 되새기는 것은 캘빈에게 아주 색다른 경험이다.

    하지만 엄마는 캘빈의 ‘나르시시즘’에 대해 되풀이해 경고한다. 엄마의 강요에 못 이긴 캘빈은 드디어 “실례했다”는 말을 한다. 한 번만 더 버티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엄한 표정을 짓는 엄마 앞에서 천하의 캘빈도 일단 후퇴하지 않을 수 없다. 타자에 대한 배려를 공식화해놓은 이른바 예절에 캘빈도 일단 존경심을 표시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캘빈은 어쩔 수 없이 사과하면서도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이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눈 끝에 달린 눈동자가 그것을 보여준다. 왜 엄마는 밥 먹으면서 트림하는 것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 것일까? 어째서 입을 크게 벌리며 재미있는 생리현상을 즐기던 캘빈이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사과해야 하는 것일까?

    트림으로 인해 생겨난 이런 물음은 캘빈에게 또 다른 세상을 깨닫게 한다. 앞의 깨달음이 자기 몸 내부의 오묘한 작용을 느끼면서 나타나는 것이라면, 뒤의 깨달음은 자기 몸 외부에서 다른 몸과 부딪치며 느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고려하면서 캘빈의 천방지축 에너지는 어느 정도 재갈이 물려지겠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몸의 안팎을 다 살펴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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