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라카미는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파블로 피카소 등 대가들을 벤치마킹한 후 경쟁력이 있으면서 자신을 상징할 수 있는 아이콘, 즉 분신을 만들고자 하죠. 무라카미는 조수들과 토론한 끝에 여러 캐릭터의 특징을 혼용한 ‘미스터 도브(DOB)’를 만들어냅니다. 앙증맞게 분홍색으로 채색된 캐릭터 도브는 미국의 대표적 캐릭터인 미키마우스에 일본의 ‘도라에몽’과 ‘소닉 더 헤지호그’를 합친 모습입니다. 왼쪽 귀에는 D, 오른쪽 귀에는 B라는 글자를 넣고, 얼굴은 O를 형상화해 도브(DOB)라는 분신이 탄생합니다. 세 갈래 속눈썹이 독특한 미스터 도브는 워홀의 마릴린 먼로처럼 색상만 달리해 여러 모습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작가는 미스터 도브를 창안한 후 일본 전통 회화 속 모티프에서 또 다른 주제를 찾기 시작합니다. 특히 1995년부터 전통 문양에 자주 등장하는 코스모스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발표하는데, 무라카미의 코스모스는 12개 꽃잎을 한 가지 색이나 농도를 달리한 두 가지 색으로 칠한 것이 특징입니다. 크기를 달리한 도식적 패턴과 중첩된 구성, 꽃 중앙에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은 마치 새롭게 창안된 워홀의 플라워(Flower) 시리즈를 연상케 합니다. 코스모스는 꽃이지만 우주를 상징하기도 하며, 이 꽃들에 나타난 표정은 진심으로 웃기 힘든 현대인의 초상을 담고 있습니다.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같은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손수 그렸습니다. 그러나 최근 화가들은 조수나 스태프의 힘을 빌려 대형 작품을 대량생산하고 있습니다. 무라카미는 아예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라는 회사를 설립해 워홀의 팩토리(factory) 시스템에서 한 단계 진일보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제프 쿤스, 매슈 바니 등 세계적 작가들도 함께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들은 글로벌 아티스틱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해가고, 현대미술의 새로운 추세로도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