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저녁 7시 일본 도쿄 아카사카(赤坂)의 한 음식점. 지한파 일본인 기자 A씨의 해외 부임을 축하하는 송별회가 열렸다. 평소 면식이 있던 한국과 일본인 기자들, 일본인 공무원까지 8명이 모여 갖가지 음식을 시켜 먹고 술도 꽤 마셨다. 여기에 다른 일정 때문에 인사만 하고 30분 정도 앉았다가 돌아간 사람이 1명 더 있었다.
모임이 끝날 무렵 주인이 가져다준 계산서에는 4만9800엔이라 적혀 있다. 셈이 빠른 사람이 계산한다. “주인공인 A를 빼면 7명이니까 7000엔씩, 먼저 간 B가 800엔을 내면 되겠다.” 즉시 현장에서 7000엔씩 걷어 지불했다. 너도나도 1만 엔(약 10만9590원) 지폐를 내다 보니 거스름돈은 음식점에서 바꿔준다.
환영회, 환송회는 회식이 열리는 대표적인 경우. 미리 회비를 걷기도 하고 현장에서 계산해 내기도 하는데, 대개 주인공은 n분의 1에서 제외된다. 나머지 사람들이 추렴해 비용을 대는 게 주인공 대접인 셈이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12년 전 일본 연수 시절만 해도 여러 차례 문화충격을 겪었다. 한번은 업무관계로 일본인 기자를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초면이었고 만날 장소를 그가 지정해 찾아갔다. 그는 주문부터 하자고 계산대로 가더니 자기 커피만 주문하고는 돈을 내고 자리로 가 앉는다. 나도 허겁지겁 내 커피를 사서 자리로 따라갔다.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잠시 당황했던 경우다.
다른 날, 국회 의원회관 식당에서 정치부 기자 4명과 점심을 먹었다. 대개 1000엔 이내 메뉴에서 각자 취향대로 주문했다. 난 짜장밥, 난 카레라이스, 난 돈가스 하는 식이다. 팀장과 팀원들이 함께 밥을 먹었지만 식사가 끝난 뒤 모두 계산대 앞에 줄을 서 각자 1000엔씩 내밀며 자신이 먹은 메뉴를 말한다. 주인도 당연한 듯 각자에게 영수증을 준다.
처음에는 깜짝깜짝 놀랐지만 익숙해지면 이처럼 편한 일이 없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밥값, 술값이 비싸서 한 사람이 몰아 내기엔 부담이 큰데, 각자 내는 게 당연시되면 부담 없이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가 내 비용을 대신 내주는 것도 공짜가 없는 일본 풍토를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와리캉’ 문화는 맺고 끊는 게 확실하고 남에게 신세 지는 걸 극력으로 피하는 문화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일본인은 남으로부터 뭔가를 받으면 그걸 갚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치 않아 한다. 가끔 한국식으로 일본인에게 밥을 사겠다고 우겨서 계산을 하면 며칠 뒤 작은 선물이라도 돌아온다. 말 그대로 ‘공짜밥’이란 없다!
물론 일본에도 접대문화는 있다. 이는 철저히 공식적으로 행해진다. 초청이라는 걸 명확히 밝히고 초청자는 예약부터 자리 배치, 음식 주문 등 모든 것에서 호스트 노릇을 하고 손님을 음식점에서 배웅한 뒤 남아 결제를 진행하는 게 관례다.
밥값, 술값을 내는 방식은 사적 모임이냐 공적 모임이냐에 따라서 갈라지기도 한다. 사적 모임은 대개 ‘와리캉’, 즉 더치페이다. 공적 모임은 사전에 회비가 있다면 미리 고지된다. 주최자가 있는 공식 모임의 경우 주최자가 부담할 때도 물론 있다. 가령 회사에서 열리는 부서 회식이라면 부서에 할당된 회식비 등을 사용한다. 회사에 필요한 접대라면 역시 예산에서 비용처리한다.
칼 같은 더치페이는 버블경기가 붕괴한 것과도 관련이 깊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버블경기 중에는 많은 회사가 공금을 물 쓰듯 했다. 이때 일본 접대문화도 정점을 찍었다. 그 황금시대를 기억하는 일본인은 온갖 핑계로 공금을 풀어 먹고 마시기에 바빴던 시절을 회고하곤 한다. 당시 심야시간대 도쿄 번화가는 택시를 타려는 승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요즘은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장사진을 친다).
이 시기는 매일같이 회사에 남아 잔업하고 심야까지 삼삼오오 회식에 밤을 지새우는 ‘회사인간’들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잔업수당이 월급보다 많을 정도였고 모두 여유가 있었다. 상사가 부하직원들에게 술 한 잔 사는 문화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결국 버블 붕괴 후 이어진 ‘잃어버린 20년’이 여러 의미에서 회식 문화를 바꿔놓은 셈이다. 동시에 이 기간은 일본인이 ‘회사인간’에서 ‘개인’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요즘 일본에서는 회식이 많지 않다. 이유 없이 모여 밥 먹고 술 마시는 일이 드물다. 사회생활에 동반되는 최소한의 활동, 업무에 필요하거나 도움이 될 만남들만 이어질 뿐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으로부터 피해 입는 것도 싫어하는 일본인에게 일상의 드라이함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일인 듯하다.
1. 정말 돈이 없어서, 2. 당신에게 돈 쓸 이유가 없다는 의사 표시, 3. 경제적인 문제는 확실히 해두고 싶다는 사고방식의 주인공, 4. 상대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1번은 상대방 얘길 들어보면 답이 나오고, 2번도 상대방 태도로 유추할 수 있다. 3번은 그와 사귀는 한 비용은 영원히 분담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4번은 상대가 남자에게 돈 내게 하고 즐기러 나온 유의 여성인지 체크하려는 것이므로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아사히신문’도 바로 이 문제를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취재에 응한 남녀 중 ‘데이트 비용도 와리캉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한 이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여성 응답자 중에는 옷이나 화장, 머리 손질 등 준비에 드는 비용이 있으니 여성이 절반 아닌 일부만 부담하는 정도가 좋겠다는 답도 적잖았다. 남성들의 목소리는 조금 더 적나라하다. “꼭 돈을 낼 필요는 없지만 돈을 내려는 자세라도 보여야 한다”거나 “남성의존적인 여성은 싫다. 함께 즐겼는데 남성에게 비용을 전액 내라면 술집 여자와 뭐가 다르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들린다.
문제는 이런 사회에서 초식남(초식동물처럼 온순하고 착한 남자.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다)이 늘고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지 않는 문화가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9월 16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8~35세 독신남녀 가운데 ‘이성교제 상대가 없다’고 응답한 남성이 70%, 여성이 60%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뭐가 바람직한 일인지, 판단은 각자 몫이다.
모임이 끝날 무렵 주인이 가져다준 계산서에는 4만9800엔이라 적혀 있다. 셈이 빠른 사람이 계산한다. “주인공인 A를 빼면 7명이니까 7000엔씩, 먼저 간 B가 800엔을 내면 되겠다.” 즉시 현장에서 7000엔씩 걷어 지불했다. 너도나도 1만 엔(약 10만9590원) 지폐를 내다 보니 거스름돈은 음식점에서 바꿔준다.
환영회, 환송회는 회식이 열리는 대표적인 경우. 미리 회비를 걷기도 하고 현장에서 계산해 내기도 하는데, 대개 주인공은 n분의 1에서 제외된다. 나머지 사람들이 추렴해 비용을 대는 게 주인공 대접인 셈이다.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와리캉’ 문화
일본에서 ‘와리캉(割り勘)’이라 부르는 더치페이는 당연한 문화처럼 정착돼 있다. 서양의 더치페이와 다른 점은 많이 먹건 조금 먹건 똑같이 나눈다는 정도다. 워낙 많이 하다 보니 스마트폰용 더치페이 애플리케이션이 여러 종류 나와 있어 계산을 도와준다.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12년 전 일본 연수 시절만 해도 여러 차례 문화충격을 겪었다. 한번은 업무관계로 일본인 기자를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초면이었고 만날 장소를 그가 지정해 찾아갔다. 그는 주문부터 하자고 계산대로 가더니 자기 커피만 주문하고는 돈을 내고 자리로 가 앉는다. 나도 허겁지겁 내 커피를 사서 자리로 따라갔다.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잠시 당황했던 경우다.
다른 날, 국회 의원회관 식당에서 정치부 기자 4명과 점심을 먹었다. 대개 1000엔 이내 메뉴에서 각자 취향대로 주문했다. 난 짜장밥, 난 카레라이스, 난 돈가스 하는 식이다. 팀장과 팀원들이 함께 밥을 먹었지만 식사가 끝난 뒤 모두 계산대 앞에 줄을 서 각자 1000엔씩 내밀며 자신이 먹은 메뉴를 말한다. 주인도 당연한 듯 각자에게 영수증을 준다.
처음에는 깜짝깜짝 놀랐지만 익숙해지면 이처럼 편한 일이 없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밥값, 술값이 비싸서 한 사람이 몰아 내기엔 부담이 큰데, 각자 내는 게 당연시되면 부담 없이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가 내 비용을 대신 내주는 것도 공짜가 없는 일본 풍토를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와리캉’ 문화는 맺고 끊는 게 확실하고 남에게 신세 지는 걸 극력으로 피하는 문화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일본인은 남으로부터 뭔가를 받으면 그걸 갚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치 않아 한다. 가끔 한국식으로 일본인에게 밥을 사겠다고 우겨서 계산을 하면 며칠 뒤 작은 선물이라도 돌아온다. 말 그대로 ‘공짜밥’이란 없다!
물론 일본에도 접대문화는 있다. 이는 철저히 공식적으로 행해진다. 초청이라는 걸 명확히 밝히고 초청자는 예약부터 자리 배치, 음식 주문 등 모든 것에서 호스트 노릇을 하고 손님을 음식점에서 배웅한 뒤 남아 결제를 진행하는 게 관례다.
밥값, 술값을 내는 방식은 사적 모임이냐 공적 모임이냐에 따라서 갈라지기도 한다. 사적 모임은 대개 ‘와리캉’, 즉 더치페이다. 공적 모임은 사전에 회비가 있다면 미리 고지된다. 주최자가 있는 공식 모임의 경우 주최자가 부담할 때도 물론 있다. 가령 회사에서 열리는 부서 회식이라면 부서에 할당된 회식비 등을 사용한다. 회사에 필요한 접대라면 역시 예산에서 비용처리한다.
칼 같은 더치페이는 버블경기가 붕괴한 것과도 관련이 깊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버블경기 중에는 많은 회사가 공금을 물 쓰듯 했다. 이때 일본 접대문화도 정점을 찍었다. 그 황금시대를 기억하는 일본인은 온갖 핑계로 공금을 풀어 먹고 마시기에 바빴던 시절을 회고하곤 한다. 당시 심야시간대 도쿄 번화가는 택시를 타려는 승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요즘은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장사진을 친다).
이 시기는 매일같이 회사에 남아 잔업하고 심야까지 삼삼오오 회식에 밤을 지새우는 ‘회사인간’들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잔업수당이 월급보다 많을 정도였고 모두 여유가 있었다. 상사가 부하직원들에게 술 한 잔 사는 문화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결국 버블 붕괴 후 이어진 ‘잃어버린 20년’이 여러 의미에서 회식 문화를 바꿔놓은 셈이다. 동시에 이 기간은 일본인이 ‘회사인간’에서 ‘개인’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요즘 일본에서는 회식이 많지 않다. 이유 없이 모여 밥 먹고 술 마시는 일이 드물다. 사회생활에 동반되는 최소한의 활동, 업무에 필요하거나 도움이 될 만남들만 이어질 뿐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으로부터 피해 입는 것도 싫어하는 일본인에게 일상의 드라이함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일인 듯하다.
“남성의존적인 여성은 싫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이니 계산이 칼 같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데이트 비용이다. “요즘 연인들은 호텔 비용도 와리캉한다”는 말이 들려오는 반면, 데이트 비용을 나눠 내자는 남성 측 요청에 당혹감을 느끼는 여성도 적잖다. 일본의 한 여성 고민 상담 사이트는 데이트 비용을 나누자는 남자의 속내를 4가지 유형으로 나눠 제시했다.
1. 정말 돈이 없어서, 2. 당신에게 돈 쓸 이유가 없다는 의사 표시, 3. 경제적인 문제는 확실히 해두고 싶다는 사고방식의 주인공, 4. 상대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1번은 상대방 얘길 들어보면 답이 나오고, 2번도 상대방 태도로 유추할 수 있다. 3번은 그와 사귀는 한 비용은 영원히 분담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4번은 상대가 남자에게 돈 내게 하고 즐기러 나온 유의 여성인지 체크하려는 것이므로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아사히신문’도 바로 이 문제를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취재에 응한 남녀 중 ‘데이트 비용도 와리캉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한 이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여성 응답자 중에는 옷이나 화장, 머리 손질 등 준비에 드는 비용이 있으니 여성이 절반 아닌 일부만 부담하는 정도가 좋겠다는 답도 적잖았다. 남성들의 목소리는 조금 더 적나라하다. “꼭 돈을 낼 필요는 없지만 돈을 내려는 자세라도 보여야 한다”거나 “남성의존적인 여성은 싫다. 함께 즐겼는데 남성에게 비용을 전액 내라면 술집 여자와 뭐가 다르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들린다.
문제는 이런 사회에서 초식남(초식동물처럼 온순하고 착한 남자.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다)이 늘고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지 않는 문화가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9월 16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8~35세 독신남녀 가운데 ‘이성교제 상대가 없다’고 응답한 남성이 70%, 여성이 60%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뭐가 바람직한 일인지, 판단은 각자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