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내년 대선 경선에 도전해 승리하면 ‘직’을 내려놓고 대선 본선에 나서야 해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일은 없다. 하지만 대선 경선에 나섰다 낙선한 이들 가운데 2018년 지방선거에 다시 도전하는 후보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2014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 4년 동안 지방정부 수장으로서 얼마나 살림을 잘 꾸려왔는지를 심판받으려 하기보다,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 번 선택받으면 2022년 20대 대선에 도전할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할 공산이 크다. 재선인 박원순 시장과 안희정 지사는 내년 대선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 2018년 지방선거에 다시 나서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일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할 개연성이 크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단체장은 3번 연임하면 더는 출마할 수 없다.
제2의 이명박 꿈꾸는 단체장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에 처음 당선한 남경필 지사와 원희룡 지사는 2018년 지방선거는 재선에 도전하는 선거다. 이들이 연임에 성공하면 20대 대선을 치르는 2022년 임기를 마치게 된다. 즉 단체장으로 8년 임기를 마친 뒤 그 성과를 바탕으로 20대 대선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개헌 등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조정하는 급격한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얘기다.단체장의 대선 도전 성공 사례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시장 재임중 내놓은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시스템 개편’ 등 가시적이고 실효적인 성과가 국민에게 높은 호응을 얻었다. 대선을 1년 반 앞두고 시장직에서 물러났지만, 2007년 국민 여론에 힘입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했고, 그해 말 대선에서도 낙승을 거뒀다. 이 전 대통령은 시장직 임기를 마친 뒤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다는 점과 재임 중 치적에 대한 높은 국민적 평가가 유력 대선주자로 발돋움한 배경이 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단체장이 대선에 도전했다 실패한 사례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다. 김 전 지사는 현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2012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고, 경선 패배 이후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임기를 마쳤다. 다른 사례는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김 전 지사는 대선에 전념하겠다며 임기 2년 만인 2012년 7월 지사직을 벗어던진 뒤 ‘배수의 진’을 치고 대선 경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경선에서 낙선해 본선 진출도 못한 그는 한동안 ‘지사직 사퇴’에 대한 비난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최정묵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김문수 전 지사는 임기를 마쳤지만 현직을 유지한 채 대선 경선에 나서 ‘진정성’에 의심을 받았고, 김두관 전 지사는 지사직 사퇴로 대선에 대한 진정성은 인정받았지만 자신을 도지사로 뽑아준 유권자와 약속을 개인적 야심 때문에 이행치 못했다는 비난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며 “정치적 내상으로 보면 김두관 전 지사가 더 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대선 도전을 저울질하는 단체장의 대권 행보가 눈에 띄게 늘었다. ‘시민’과 ‘도민’보다 ‘국민’을 입에 올리는 경우가 더 많다. 박원순 시장은 9월 24일 도올 김용옥과 대담한 책을 매개로 토크콘서트를 연다. ‘국가를 말하다’라는 토크쇼 제목은 박 시장의 마음이 이미 서울시정보다 대권에 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김문수의 길 vs 김두관의 길
안희정 지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자 충청권에서 불고 있는 ‘반기문 대망론’을 잠재울 대항마는 자신이라고 어필하고 있다. 원희룡 지사는 아직 대선 도전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그 역시 언제든 상황에 따라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잠재후보로 분류된다. 원 지사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든 경험이 있다.
이들 단체장이 대선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여야 어느 쪽에서도 확실한 대선주자가 떠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심판받으면서 대선 지형이 그 어느 때보다 유동적인 상태로 변했다. 더욱이 여야 모두 대세론이라 할 만한 높은 지지를 받는 유력 주자가 없어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현행법상 현역 단체장들은 대선 90일 전까지 직에서 물러나면 대선 본선에 나설 수 있다. 여야는 내년 6월, 늦어도 8월 이전까지 대선후보를 확정 짓겠다는 계획이다. 단체장이 직을 유지한 채 대선 경선에 뛰어들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충분한 셈. 이들 단체장이 대선 경선에 나서는 것은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의미가 있다. 대선 경선에서 승리하면 본선으로 직행할 수 있어 정치적 고속성장의 기회가 열리는 것이고, 만약 경선에서 패하더라도 전국을 돌며 끌어올린 높은 인지도가 대선 이듬해 치를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단체장의 대선 경선 도전을 해당 지방자치단체 유권자들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질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하고 ‘하고 싶은 일’만 했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 오히려 대선 경선 도전이 이듬해 지방선거의 패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는 “단체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않고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권자와 한 약속을 깨는 행위다. 단체장은 정치 경험을 쌓는 경로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정책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위해 임기를 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