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는 ‘섹시하고 솔직한 여자’를 넘어 ‘쿨하다’ ‘강하고 용감하다’는 이미지를 덧입는 데 성공했다.
“왜 요즘 이효리가 뜨는 거냐”는 우문(愚問)에 대한, 한 스포츠신문 연예부 기자의 현답(賢答)이다. ‘선수’들이 감탄할 정도의 재목인데 인기가 없을 리 있겠냐는 뜻이다.
그의 말대로 요즘 가수 이효리(25)의 인기는 ‘신드롬’이라는 말이 무색치 않을 정도다. ‘다음’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 1, 2위를 다투고 있음은 물론, 각종 스포츠신문의 1면을 도맡아 장식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이효리의 소속사인 DSP엔터테인먼트 길종화 팀장은 “매니저 생활 10년에 이런 광풍은 처음”이라며 “신문사마다 담당기자가 따로 있어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스포츠신문 판매 담당자는 “이효리가 1면에 등장하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신문 판매부수가 확 달라진다. 마치 과거의 박찬호를 보는 듯하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몸값’ 또한 천정부지다. 올 3월 ‘산사춘’ CF를 찍을 당시 6개월 단발에 1억8000만원이던 광고 출연료는 2억원을 넘어섰다. 행사 출연료는 1회 2000만원 선. 8월13일 발매한 첫 솔로 음반은 하루 5000~8000장씩 팔려나가며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효리가 방송에 입고 나온 옷은 며칠 지나지 않아 품절이 되고, 그가 광고 모델로 나선 상품들은 눈에 띄는 매출 신장 효과를 보고 있다. MBC TV ‘타임머신’은 그가 MC로 활동하는 동안 2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효리 이펙트(effect·효과)’. 요즘 방송·광고업계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신문 판매부수 좌우하는 인물
그렇다면 대중을 흡입하는 이효리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연예 관계자들이 첫번째로 꼽는 그의 장점은 단연 ‘섹시함’이다. 여기에 KBS 2TV ‘해피투게더’ 등에서 보여준 털털함과 솔직함, 순발력 등이 어우러져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속을 잘 들여다보면 ‘섹시함과 청순함이 엇갈리는 이중적 이미지’란 표현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이상적 여성상에 대한 어떤 ‘시대적 함의’를 엿볼 수 있다.
이효리는 1998년 데뷔한 여성 4인조 그룹 ‘핑클’의 리더다. ‘핑클’은 일본 걸(girl) 그룹의 특징을 그대로 빼다 박은 듯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이효리 역시 그룹 색깔에 맞춰 ‘눈웃음치는 내숭녀’의 겉옷을 좀처럼 벗지 않았다.
변화가 온 것은 지난해 4월부터였다. ‘핑클’ 멤버들이 개별활동을 선언한 것. 몇몇 오락프로그램의 MC를 맡게 된 이효리는 비로소 자기만의 색깔을 펼치기 시작했다. 소녀적 감수성을 표현하는 대신, 가슴이 깊게 파이고 몸에 착 달라붙는 의상으로 특유의 볼륨감 넘치는 몸매를 한껏 강조했다. 잘 짜여진 방송용 멘트보다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어투로 감춰졌던 보이시(boyish)한 매력을 거리낌 없이 발산했다.
여자 연예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언행도 서슴지 않았다. 상상력 발휘 코너에서 김을 코털, 겨드랑이털로 묘사하거나, ‘미리 써본 유언장’ 코너에서 ‘원빈과 사귀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돼 안타깝다’는 말을 하는 등. 이렇게 털털함을 넘어 터프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모습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열광하는 요즘의 정서와 꼭 맞아떨어졌다. 더군다나 그는 영화 속 이미지가 아닌 ‘본래 그런 성격임이 분명한’ 현실의 여성 아닌가.
이효리는 ‘섹시하고 솔직한 여자’를 넘어 ‘쿨하다’ ‘강하고 용감하다’는 이미지까지를 덧입는 데 성공했다. 올 3월 이후 몇몇 인터넷사이트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들을 살펴보면 그의 이미지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먼저 3월, 이효리는 ‘마이클럽’이 조사한 ‘멋진 가슴을 가진 연예인’ 설문에서 김혜수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인터넷방송국 NGTV가 조사한 설문에선 ‘화이트데이 최고의 연인’으로, ‘CF 모델 교체 후 호감도가 가장 높아진 제품의 모델’로도 선정됐다. 4월에는 ‘블랙 데이’(애인 없는 사람끼리 자장면을 먹으며 마음을 달래는 날) 최고의 데이트 상대로 뽑혔으며, 5월에는 ‘어린이날 행사에 어린이들이 가장 초대하고 싶어할 것 같은 연예인’이 됐다.
6월 말, 이효리는 영화 ‘미녀삼총사’의 ‘딜런’(드류 베리모어 분) 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연예인으로 선정됐다. 극 중 ‘딜런’은 엉뚱하고 힘이 넘치면서도 멋진 남자가 나타나면 무조건 몸을 던지는 여성으로 묘사돼 있다.
7월, 여론조사 전문지 ‘월간 복스’의 설문조사에서 이효리는 ‘이별을 가장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여자가수’ 1위에 랭크됐다. 같은 달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조사에선 ‘피서지에서 헌팅을 가장 잘할 것 같은 여자 연예인’이 됐으며, 연이어 ‘수영복 모델로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연예인’ ‘영화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 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자리까지 꿰찼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이효리의 이미지는 복합적이다. 섹시하지만 야하지 않고, 강하면서도 애교스럽다. 재치 있지만 부담스러울 만큼 똑똑하진 않으며, 순정적이나 돌아설 때는 쿨할 것 같다. 요컨대 남성들이 꿈꾸는 ‘남에겐 거칠지만 나에게는 수줍은’ ‘낮에는 소녀, 밤에는 요부’ 팬터지의 2003년형 버전인 셈이다.
이효리의 복합적 이미지가 잘 살아 있는 망고주스 CF.
영화평론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심영섭씨는 “모 망고주스 CF는 2000년대형 섹스 아이콘인 이효리의 이미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순진하거나 고급스러워 뵈지 않는다. 오히려 적당히 세속적이며 자유분방하고 서민적이다. 이것이 ‘쉽다’ ‘편하다’는 이미지로 연결되면서 남성 팬을 폭넓게 끌어 모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효리를 모델로 CF를 찍은 한 광고회사 간부 또한 “이효리는 친근한 이미지에 표정이 살아 있어 대중상품 홍보에 제격이다. 그러나 고급·고품격 지향 광고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높은 인기에도 황신혜, 이영애, 김희선 등처럼 (6개월에) 3억원 이상의 모델료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효리는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섹시·활달’ 이미지를 고수할 듯하다. 그를 영화 ‘삼수생의 사랑이야기’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한 황우현 튜브픽처스 대표는 “섹스 어필하면서도 소박함이 묻어나는 눈웃음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코믹멜로 영화의 헤로인으로 더할 나위 없다”고 말했다. 이효리의 기존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소속사 또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점에 만족한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이효리는 생명 긴 연예인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런 의미에서 이효리의 섹시함에만 포커스를 맞춘 듯한 최근의 언론 보도들은 그에게 ‘독’이 될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이효리는 과연 그를 ‘핀업 걸(벽에 핀으로 꽂아놓는 사진의 모델)’의 박제된 이미지 속에 가두려는 대중의 관음증적 시선을 뛰어넘어 세상과 능동적으로 소통하는 진정한 엔터테이너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인가. ‘이효리 효과’는 잠깐이나 ‘이효리다움’은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