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북에 두고 온 아내를 데려오겠다며 중국에 간 뒤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탈북자 유태준씨의 공개처형 파문이 탈북자 인권 전반의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처형 여부의 진위는 차치하고 탈북자인 유씨의 중국 입북 사실을 당국이 왜 모르고 있었으며, 한국 국적을 가진 그가 납치될 때까지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은 그저 곤혹스러워할 뿐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법적으로 어디든 여행할 수 있는 탈북자 1300여 명을 일일이 감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나 출국 금지는 오히려 탈북자가 인권침해로 여길 수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는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 셈.
문제는 유씨처럼 가족이나 친지를 데려오기 위해 목숨을 거는 탈북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미 국내 탈북자 사회에서 가족을 데리러 중국과 북한 접경을 찾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탈북자 가정 중 몇 집 건너 한 집은 중국을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왔다고 할 정도다. 다만 정부 당국은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다가올 외교적 파장을 의식해 이를 쉬쉬하며 숨겨왔을 따름이다.
예를 들어 탈북자 정착을 위한 임대 아파트인 서울시 양천구 모 아파트의 경우 탈북자 100여 세대 중 지난 95년 이후 탈북자가 중국에 들어가 자신의 가족과 친지를 데려온 세대는 10여 세대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지난해와 올해 가족을 데려온 탈북자 세대만 6세대. 탈북자들은 이외에도 서로 몰라 그렇지 공식적으로 확인하면 훨씬 더 많은 수의 탈북자들이 가족을 데려왔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또 이런 실태는 서울지역 4개 탈북자 임대 아파트 전체에서 일어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지난 6월27일과 28일 이 아파트에서 목숨을 걸고 가족을 데려온 탈북자들을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유씨 파동 이후 관계기관의 함구령이 있은 듯, 이들 탈북자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불이익을 우려해 매우 조심스럽게 취재에 응했다.
올 3월 장모와 먼 친척을 모시고 들어온 P씨(32)는 북한의 탈북자에 대한 추적이 지난해부터 강화되어 귀순 탈북자들에게도 현상금이 붙어 있다고 전했다. 인민위원회 출신이나 안전부 소속 탈북자의 경우 1만 달러 이상을 호가하고, 일반 탈북 귀순자도 수천 달러를 준다는 것. 따라서 가족을 데려오려는 귀순 탈북자의 경우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어도 섣불리 조선족을 만나거나 탈북자를 도울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심지어 불법체류 북한 탈북자를 색출해 온 중국 공안들이 요즈음은 귀순 탈북자에 대한 신상을 연변이나 북경 입국시 은근히 북한 공안당국에 흘려주고 대가를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 그는 납치된 것으로 보이는 유씨도 이런 경로를 통해 그를 만나러 나온 부인의 행적을 추적한 북한 당국에 의해 두 사람 모두 붙잡힌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변지역에는 유씨말고도 행방불명된 귀순 탈북자 소식이 간간이 들려옵니다. 성분이 나쁜 사람은 바로 처형당했을 겁니다.” 그의 말은 익명을 요구한 국회 관계자에게서도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씨 외에도 관계기관이 파악하고 있는, 중국에서 행방불명된 귀순 탈북자가 2~3명 더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P씨는 이런 위험 속에서도 지난해 연말 갖은 고초 끝에 어머니를 북한에서 빼내는 데 성공했으나 어머니가 연변에서 중풍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시신만 수습해 들어와야 했다. 올 1월 다시 중국으로 들어간 그는 조-중 경계지역의 조선족을 통해 장모를 중국으로 모셔 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한국행을 망설이는 장모를 설득하느라 두 달을 보내야 했다. 이 사이 장모는 세 번이나 북한과 중국을 넘나들었고, 그때마다 그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지난해부터 귀순 탈북자 체포령이 떨어진 것은 그만큼 귀순 탈북자들이 북조선에서 빼내가는 가족의 숫자가 계속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열 받은 거죠.” 그는 98년까지 1인당 1400만~1500만 원에 지나지 않는 정착 지원금이 4000만 원선까지 오르면서 탈북 귀순자들의 ‘북한 잔류 가족 데려오기’에 불이 붙었다고 전했다. 즉 돈이 있고 위험을 감수할 자신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족과 친지들을 빼내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탈북자들은 지난 99년 이전에는 북한을 빠져 나온 가족을 밀항시키거나 제3국을 통해 들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귀순자 가족들이 김포공항(현재 인천공항)이나 인천 국제여객선 터미널을 통해 직접 가족을 데리고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증언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만 있으면 귀순은 쉽다”는 말이 바로 이해가 된다. 탈북자들이 말하는 북한 가족 데려오기는 이런 식으로 정형화해 있다.
일단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자신이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중국에 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국경무역을 하는 한족이나 조선족 브로커를 200만~300만 원에 고용한다. 북한에 들어간 브로커들이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면 압록강이 얼어붙은 겨울이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 등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가족들이 중국으로 넘어오고, 곧바로 그들에게는 위조한 한국인 여권이 주어진다. 여권을 위조하는 데는 중국인인 한족 위조단이나 조선족 위조단 모두 1000여 만 원의 공정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중국 각 공항과 여객선 터미널의 관리들을 끼고 있는 위조단(브로커)은 탈북자들을 비행기나 배에 태워 한국으로 보내고 이들이 공항이나 항구에 도착해 곧바로 국내 공안당국에 자수하면 그들의 귀순은 완료되는 것이다. 즉 1인당 1300만 원만 들이면 빠르면 일주일 안에 ‘북한 사람을 한국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P씨는 조선족 브로커와 위조단을 통해 이 모든 과정을 해결했지만 장모가 한국행을 망설여 몇 번씩 북한을 들락거리는 바람에 2000만 원 가량이 들어갔다.
올 1월 친척 3명을 김포공항으로 데리고 들어온 K씨는 지난 97년에 일찌감치 중국에 나와 있던 친척들을 데리고 들어온 경우. 이들은 중국에서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신분의 위협이 없는 상태였고, K씨가 북경에 들어가 한족 여권 위조단의 도움으로 이들을 무사히 귀순 시킬 수 있었다. 그는 “친척 3명보다 내가 더 위험을 느꼈다”며 “97년 귀순 후 중국에 세 번이나 나갔지만 이처럼 북한 공안들의 감시가 심한 것은 보지 못했다”고 전한다. 그는 “북한 당국의 주목을 받는 귀순자의 경우 중국에서 조금만 처신을 잘못해도 고발당할 위험을 피부로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유씨 사건이 터진 후 사업차 일본을 방문할 일이 생겼지만 국정원이 여권을 내주지 않아 이를 포기해야 했다. 그는 “국정원이 유씨 사건 이후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국내 공안당국이 이런 현실을 공개할 수 없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권 위조에 한국 범죄조직이 깊숙이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K씨에 따르면 보통 중국에서 ‘여행사’로 통하는 이들은 한국의 노숙자나 저소득층에게 중국 여행을 시켜준다며 여권을 만들어 중국으로 데려간 뒤 대사관에 이들의 여권 분실신고를 낸 다음 그 여권을 위조단에게 넘긴다는 것. 귀순 탈북자가 곧바로 접촉하면 이들은 직접 그 여권을 위조하고 탈북자를 한국에 데려오는 전문 브로커 노릇을 하기도 한다는 게 K씨의 전언이다. 그는 “귀순을 알선하는 중국인·조선족·한국인 위조단은 옌볜·베이징·산둥·옌타이·웨이하이·칭다오·다롄 등 한국으로 가는 교통편이 좋은 어느 곳에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며 “이들 중에는 사기꾼도 많아 돈만 날리고 가족을 데려오지 못하는 피해자도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순하면 받을 정착금을 생각하고 돈을 빌려 가족을 데려오다 보니 부작용도 일어났다. 지난해 초 아내를 데려오고 올해 어머니와 여동생의 아들을 다시 데려온 A씨(37)는 그들의 귀순에 든 비용 때문에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를 잘 아는 탈북자 J씨는 “솔직히 한 명을 데려오면 비용 1300만 원을 제하고도 1인당 2700만~2800만 원이 남으니, 이런 불화가 생기는 것 같다”며 “탈북자 중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의식 때문에 사선(死線)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돈 때문에 그러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동향 파악이나 신변 보호의 책임을 지고 있는 국정원과 경찰은 이런 탈북 귀순자들의 가족 데려오기 실태에 대해 “보안사항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통일부도 입장은 마찬가지. 통일부 정착지원과의 한 관계자는 “이런 현황이나 실태를 공개하면 중국과의 외교 마찰이 우려되는데다 탈북자에 대한 중국과 북한의 감시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실태 공개를 꺼렸다.
“귀순하면 얼마 후에 여권이 나오는 탈북 귀순자들에게 중국을 나가지 못하게 하자니 인권 침해고, 그냥 놓아두자니 사고가 일어나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사안의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탈북자 김형덕씨는 사견임을 전제로 “탈북자의 북한 가족 데려오기는 근본적으로 탈북자의 한국 적응 실패의 부산물로 바라보는 것이 옳다”며 “탈북자 지원 특별법을 만들어 현재의 일시불 정착금을 연금 형식으로 수년간에 나누어 지급하고 5년 동안은 출국을 금지하는 대신, 취업과 사회 적응을 위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은 그저 곤혹스러워할 뿐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법적으로 어디든 여행할 수 있는 탈북자 1300여 명을 일일이 감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나 출국 금지는 오히려 탈북자가 인권침해로 여길 수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는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 셈.
문제는 유씨처럼 가족이나 친지를 데려오기 위해 목숨을 거는 탈북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미 국내 탈북자 사회에서 가족을 데리러 중국과 북한 접경을 찾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탈북자 가정 중 몇 집 건너 한 집은 중국을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왔다고 할 정도다. 다만 정부 당국은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다가올 외교적 파장을 의식해 이를 쉬쉬하며 숨겨왔을 따름이다.
예를 들어 탈북자 정착을 위한 임대 아파트인 서울시 양천구 모 아파트의 경우 탈북자 100여 세대 중 지난 95년 이후 탈북자가 중국에 들어가 자신의 가족과 친지를 데려온 세대는 10여 세대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지난해와 올해 가족을 데려온 탈북자 세대만 6세대. 탈북자들은 이외에도 서로 몰라 그렇지 공식적으로 확인하면 훨씬 더 많은 수의 탈북자들이 가족을 데려왔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또 이런 실태는 서울지역 4개 탈북자 임대 아파트 전체에서 일어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지난 6월27일과 28일 이 아파트에서 목숨을 걸고 가족을 데려온 탈북자들을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유씨 파동 이후 관계기관의 함구령이 있은 듯, 이들 탈북자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불이익을 우려해 매우 조심스럽게 취재에 응했다.
올 3월 장모와 먼 친척을 모시고 들어온 P씨(32)는 북한의 탈북자에 대한 추적이 지난해부터 강화되어 귀순 탈북자들에게도 현상금이 붙어 있다고 전했다. 인민위원회 출신이나 안전부 소속 탈북자의 경우 1만 달러 이상을 호가하고, 일반 탈북 귀순자도 수천 달러를 준다는 것. 따라서 가족을 데려오려는 귀순 탈북자의 경우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어도 섣불리 조선족을 만나거나 탈북자를 도울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심지어 불법체류 북한 탈북자를 색출해 온 중국 공안들이 요즈음은 귀순 탈북자에 대한 신상을 연변이나 북경 입국시 은근히 북한 공안당국에 흘려주고 대가를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 그는 납치된 것으로 보이는 유씨도 이런 경로를 통해 그를 만나러 나온 부인의 행적을 추적한 북한 당국에 의해 두 사람 모두 붙잡힌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변지역에는 유씨말고도 행방불명된 귀순 탈북자 소식이 간간이 들려옵니다. 성분이 나쁜 사람은 바로 처형당했을 겁니다.” 그의 말은 익명을 요구한 국회 관계자에게서도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씨 외에도 관계기관이 파악하고 있는, 중국에서 행방불명된 귀순 탈북자가 2~3명 더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P씨는 이런 위험 속에서도 지난해 연말 갖은 고초 끝에 어머니를 북한에서 빼내는 데 성공했으나 어머니가 연변에서 중풍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시신만 수습해 들어와야 했다. 올 1월 다시 중국으로 들어간 그는 조-중 경계지역의 조선족을 통해 장모를 중국으로 모셔 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한국행을 망설이는 장모를 설득하느라 두 달을 보내야 했다. 이 사이 장모는 세 번이나 북한과 중국을 넘나들었고, 그때마다 그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지난해부터 귀순 탈북자 체포령이 떨어진 것은 그만큼 귀순 탈북자들이 북조선에서 빼내가는 가족의 숫자가 계속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열 받은 거죠.” 그는 98년까지 1인당 1400만~1500만 원에 지나지 않는 정착 지원금이 4000만 원선까지 오르면서 탈북 귀순자들의 ‘북한 잔류 가족 데려오기’에 불이 붙었다고 전했다. 즉 돈이 있고 위험을 감수할 자신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족과 친지들을 빼내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탈북자들은 지난 99년 이전에는 북한을 빠져 나온 가족을 밀항시키거나 제3국을 통해 들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귀순자 가족들이 김포공항(현재 인천공항)이나 인천 국제여객선 터미널을 통해 직접 가족을 데리고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증언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만 있으면 귀순은 쉽다”는 말이 바로 이해가 된다. 탈북자들이 말하는 북한 가족 데려오기는 이런 식으로 정형화해 있다.
일단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자신이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중국에 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국경무역을 하는 한족이나 조선족 브로커를 200만~300만 원에 고용한다. 북한에 들어간 브로커들이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면 압록강이 얼어붙은 겨울이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 등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가족들이 중국으로 넘어오고, 곧바로 그들에게는 위조한 한국인 여권이 주어진다. 여권을 위조하는 데는 중국인인 한족 위조단이나 조선족 위조단 모두 1000여 만 원의 공정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중국 각 공항과 여객선 터미널의 관리들을 끼고 있는 위조단(브로커)은 탈북자들을 비행기나 배에 태워 한국으로 보내고 이들이 공항이나 항구에 도착해 곧바로 국내 공안당국에 자수하면 그들의 귀순은 완료되는 것이다. 즉 1인당 1300만 원만 들이면 빠르면 일주일 안에 ‘북한 사람을 한국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P씨는 조선족 브로커와 위조단을 통해 이 모든 과정을 해결했지만 장모가 한국행을 망설여 몇 번씩 북한을 들락거리는 바람에 2000만 원 가량이 들어갔다.
올 1월 친척 3명을 김포공항으로 데리고 들어온 K씨는 지난 97년에 일찌감치 중국에 나와 있던 친척들을 데리고 들어온 경우. 이들은 중국에서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신분의 위협이 없는 상태였고, K씨가 북경에 들어가 한족 여권 위조단의 도움으로 이들을 무사히 귀순 시킬 수 있었다. 그는 “친척 3명보다 내가 더 위험을 느꼈다”며 “97년 귀순 후 중국에 세 번이나 나갔지만 이처럼 북한 공안들의 감시가 심한 것은 보지 못했다”고 전한다. 그는 “북한 당국의 주목을 받는 귀순자의 경우 중국에서 조금만 처신을 잘못해도 고발당할 위험을 피부로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유씨 사건이 터진 후 사업차 일본을 방문할 일이 생겼지만 국정원이 여권을 내주지 않아 이를 포기해야 했다. 그는 “국정원이 유씨 사건 이후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국내 공안당국이 이런 현실을 공개할 수 없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권 위조에 한국 범죄조직이 깊숙이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K씨에 따르면 보통 중국에서 ‘여행사’로 통하는 이들은 한국의 노숙자나 저소득층에게 중국 여행을 시켜준다며 여권을 만들어 중국으로 데려간 뒤 대사관에 이들의 여권 분실신고를 낸 다음 그 여권을 위조단에게 넘긴다는 것. 귀순 탈북자가 곧바로 접촉하면 이들은 직접 그 여권을 위조하고 탈북자를 한국에 데려오는 전문 브로커 노릇을 하기도 한다는 게 K씨의 전언이다. 그는 “귀순을 알선하는 중국인·조선족·한국인 위조단은 옌볜·베이징·산둥·옌타이·웨이하이·칭다오·다롄 등 한국으로 가는 교통편이 좋은 어느 곳에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며 “이들 중에는 사기꾼도 많아 돈만 날리고 가족을 데려오지 못하는 피해자도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순하면 받을 정착금을 생각하고 돈을 빌려 가족을 데려오다 보니 부작용도 일어났다. 지난해 초 아내를 데려오고 올해 어머니와 여동생의 아들을 다시 데려온 A씨(37)는 그들의 귀순에 든 비용 때문에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를 잘 아는 탈북자 J씨는 “솔직히 한 명을 데려오면 비용 1300만 원을 제하고도 1인당 2700만~2800만 원이 남으니, 이런 불화가 생기는 것 같다”며 “탈북자 중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의식 때문에 사선(死線)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돈 때문에 그러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동향 파악이나 신변 보호의 책임을 지고 있는 국정원과 경찰은 이런 탈북 귀순자들의 가족 데려오기 실태에 대해 “보안사항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통일부도 입장은 마찬가지. 통일부 정착지원과의 한 관계자는 “이런 현황이나 실태를 공개하면 중국과의 외교 마찰이 우려되는데다 탈북자에 대한 중국과 북한의 감시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실태 공개를 꺼렸다.
“귀순하면 얼마 후에 여권이 나오는 탈북 귀순자들에게 중국을 나가지 못하게 하자니 인권 침해고, 그냥 놓아두자니 사고가 일어나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사안의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탈북자 김형덕씨는 사견임을 전제로 “탈북자의 북한 가족 데려오기는 근본적으로 탈북자의 한국 적응 실패의 부산물로 바라보는 것이 옳다”며 “탈북자 지원 특별법을 만들어 현재의 일시불 정착금을 연금 형식으로 수년간에 나누어 지급하고 5년 동안은 출국을 금지하는 대신, 취업과 사회 적응을 위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