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2층 기자실. 김중권 대표 주재로 열린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전용학 대변인은 각 위원들의 발언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하고 있었다. 전대변인의 브리핑이 끝날 즈음 한 기자가 물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무슨 발언을 했습니까.”
전대변인은 한동안 자신의 메모수첩을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내 수첩에 정위원의 발언은 한마디도 적혀 있지 않다”고 답했다.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동교동계 한 인사는 “국정쇄신보다 더 큰 개혁(언론 세무조사)에 정위원은 왜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라며 비아냥거렸다.
동교동계 이 인사의 비아냥거림에는 정위원을 비롯한 정풍파 인사들의 곤혹스러운 요즘 처지가 그대로 녹아 있다. ‘언론과의 전쟁’ 이후 정풍파 인사들의 입지는 매우 어렵다. 당내에서 정풍파는 당력 결집 방해세력으로 치부된다. 동교동 일부 인사들은 “정풍파 인사들이 언론에 이용당했다”는 말로 그들을 공격한다. 언론 장단에 춤추며 괜한 풍파만 일으켰다는 힐난이다. 거의 ‘왕따’ 수준에, 눈길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정풍파 내부의 혼선과 갈등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정위원을 비롯해 신기남`-`천정배 의원 등 정풍파 인사들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반면 그들에게 일격을 당한 동교동계 인사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오히려 정풍파를 압박하고 있다. 조직적으로 정풍파를 와해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정풍파와 거짓말 시비를 벌이며 맞선 김민석 의원이 최근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위원이 오히려 개혁대상”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한 것에 대해 소장파 한 인사는 이를 “정풍파의 마지막 기를 꺾어놓겠다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했다.
김민석 의원의 강력한 ‘도발’에도 정풍파 인사들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그들의 설 자리가 그만큼 좁아졌음을 암시한다. 옆에서 지켜본 한나라당은 7월1일 “(여권이) 야당과 언론 등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 결속을 도모하고 정풍파의 손과 발을 묶어버렸다”는 이색적인 분석 내용을 공개했다.
정풍파의 위축은 필연적으로 국정쇄신론의 설 자리 위축으로 이어진다. 정풍과 국정쇄신론은 일종의 동전의 양면이다. 국정쇄신책이 물 건너갔다는 징후는 이미 여러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당 분위기를 주도하는 범동교동계 한 인사는 “(언론)개혁을 하는 데 무슨 (국정)쇄신이냐”며 언론전쟁 이후 달라진 당내 분위기를 설명한다. 소장파 소속 한 인사도 “지금 그 문제(국정쇄신)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언론전쟁에 당력을 모아야 하는 현실을 부정하는 해당 행위자나 역적으로 몰릴 수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언론전쟁, 북한상선의 NLL 침범 문제 등으로 김대통령의 국정쇄신 입장 표명이 늦어질 것이며 시기는 대략 8·15 경축사 발표 시점일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은 지난 6월13일 국정쇄신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로 했으나 가뭄을 이유로 연기한 바 있다. 이처럼 계속 미뤄지는 대통령의 국정쇄신 입장 표명은 결국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으로 귀결할 가능성이 높다. 개혁 성향의 한 중진의원은 “가뭄이라 못하고, 이번에는 홍수라 못하고, 또 무슨 일 때문에 못하고…”라고 말을 흐리면서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지난해 말 김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출국하면서 “국민이 원하는 바의 국정쇄신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그 후에 ‘국민이 원하는 바’의 쇄신책은 나오지 않았다. 야당에서는 이번에도 김대통령이 국정쇄신에 대한 확실한 입장 발표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한나라당 기획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식언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물론 ‘언론과의 전쟁’에 당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정치 현실을 이유로 내세울 수도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전쟁중에 전략 참모를 교체하는 어리석은 사령관도 있나”라고 반문한다. “7월은 사정 정국”이라는 한나라당의 전망에서도 국정쇄신책이 설 자리가 그리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원천적으로 ‘국정쇄신 불가론’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정풍파가 요구한 국정쇄신의 핵심은 이른바 동교동 구파를 중심으로 한 비선조직의 2선 후퇴다. 그러나 동교동계는 김대통령의 임기 후반은 물론 퇴임 이후까지 함께할 정치 동반자로 이미 임무를 결정한 상태인 듯하다. 동교동계 인사들이 “비선 배제 주장은 김대통령의 권력운영 틀을 흐트린다”며 반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적 쇄신 요구를 수용한다는 것은 결국 후반기 통치구도의 변화를 뜻하며, 김대통령으로서는 이런 변화에 대한 부담을 감수하기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다.
설혹 변화를 선택하려 해도 그들을 대신할 인재풀이 마땅치 않은 점도 거론된다. 김대통령이 뒷걸음질친 배경에는 이같은 현실적 한계가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동교동의 충성심을 따라갈 조직은 아직 여권 내에서 찾기 힘들고 이미 그들은 발을 빼기 어려울 정도로 깊숙한 곳에 서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풍파가 핵심으로 지목한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경우 김대통령의 후반기 정국운영 전략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여전한 듯하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권 전 위원이 빠질 경우 당내 힘의 균형이 무너져 더욱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최근 ‘친권파’ 인사들이 “김대통령의 집권 후반기를 안정시키기 위해 동교동계를 제외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여권 핵심부에 올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친권파’의 한 인사에 따르면 지난 6월 중순 정풍 파동 와중에 김대통령은 권 전 위원에게 “마포 사무실을 계속 유지하되 이권과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가이드 라인을 전달했다고 한다. 정풍 파동이 있음에도 권 전 위원의 신상에 큰 변화가 없음을 읽을 수 있는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바로 이같은 정황에 따라 김대통령이 언론과 여론을 의식해 8·15 경축사에 국정쇄신에 대한 입장을 담더라도 정풍파가 주장한 본질적인 문제에 손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직을 없애는 것보다 눈에 띄는 몇몇 동교동계 인사들을 2선으로 후퇴시켜 국정쇄신으로 포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개각 요인도 발생한 상황이고 보면 이 역시 본질에서 비켜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인사권을 쥔 김대통령의 의중도 대략 그런 듯하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경제가 회복되고 남북문제가 예정대로 굴러가고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면 김대통령이 굳이 대대적인 시스템을 바꿔 혼란을 초래하겠느냐”고 쇄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8월 정국은 김정일 답방 등 남북문제와 관련한 빅이벤트가 정치를 압도할 것”이라 전망한다. 내부 시스템에 변화를 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장성민 의원은 “지금은 국정쇄신을 거론할 분위기도 아니고, 할 이유도 없지 않느냐”며 “(국정쇄신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정풍파 인사들은 이런 분위기가 곤혹스럽다. 정풍파 한 인사는 “(김대통령이) 한다고 했으니 지켜보겠다”며 더 이상의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또 다른 인사도 “몇 명의 장관과 한두 명의 보좌진을 정리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국정쇄신과 거리가 멀다”고 잘라 말한다. 한 소장파 의원은 “만일 이번에도 본질을 빼고 수사(修辭)로만 적당히 넘어간다면 그냥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3차, 4차 정풍 운동을 예고했다.
연기냐, 유보냐, 무산이냐. 요즘 여권 내부에서는 국정쇄신과 관련해 이같은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무슨 발언을 했습니까.”
전대변인은 한동안 자신의 메모수첩을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내 수첩에 정위원의 발언은 한마디도 적혀 있지 않다”고 답했다.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동교동계 한 인사는 “국정쇄신보다 더 큰 개혁(언론 세무조사)에 정위원은 왜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라며 비아냥거렸다.
동교동계 이 인사의 비아냥거림에는 정위원을 비롯한 정풍파 인사들의 곤혹스러운 요즘 처지가 그대로 녹아 있다. ‘언론과의 전쟁’ 이후 정풍파 인사들의 입지는 매우 어렵다. 당내에서 정풍파는 당력 결집 방해세력으로 치부된다. 동교동 일부 인사들은 “정풍파 인사들이 언론에 이용당했다”는 말로 그들을 공격한다. 언론 장단에 춤추며 괜한 풍파만 일으켰다는 힐난이다. 거의 ‘왕따’ 수준에, 눈길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정풍파 내부의 혼선과 갈등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정위원을 비롯해 신기남`-`천정배 의원 등 정풍파 인사들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반면 그들에게 일격을 당한 동교동계 인사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오히려 정풍파를 압박하고 있다. 조직적으로 정풍파를 와해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정풍파와 거짓말 시비를 벌이며 맞선 김민석 의원이 최근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위원이 오히려 개혁대상”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한 것에 대해 소장파 한 인사는 이를 “정풍파의 마지막 기를 꺾어놓겠다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했다.
김민석 의원의 강력한 ‘도발’에도 정풍파 인사들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그들의 설 자리가 그만큼 좁아졌음을 암시한다. 옆에서 지켜본 한나라당은 7월1일 “(여권이) 야당과 언론 등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 결속을 도모하고 정풍파의 손과 발을 묶어버렸다”는 이색적인 분석 내용을 공개했다.
정풍파의 위축은 필연적으로 국정쇄신론의 설 자리 위축으로 이어진다. 정풍과 국정쇄신론은 일종의 동전의 양면이다. 국정쇄신책이 물 건너갔다는 징후는 이미 여러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당 분위기를 주도하는 범동교동계 한 인사는 “(언론)개혁을 하는 데 무슨 (국정)쇄신이냐”며 언론전쟁 이후 달라진 당내 분위기를 설명한다. 소장파 소속 한 인사도 “지금 그 문제(국정쇄신)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언론전쟁에 당력을 모아야 하는 현실을 부정하는 해당 행위자나 역적으로 몰릴 수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언론전쟁, 북한상선의 NLL 침범 문제 등으로 김대통령의 국정쇄신 입장 표명이 늦어질 것이며 시기는 대략 8·15 경축사 발표 시점일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은 지난 6월13일 국정쇄신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로 했으나 가뭄을 이유로 연기한 바 있다. 이처럼 계속 미뤄지는 대통령의 국정쇄신 입장 표명은 결국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으로 귀결할 가능성이 높다. 개혁 성향의 한 중진의원은 “가뭄이라 못하고, 이번에는 홍수라 못하고, 또 무슨 일 때문에 못하고…”라고 말을 흐리면서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지난해 말 김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출국하면서 “국민이 원하는 바의 국정쇄신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그 후에 ‘국민이 원하는 바’의 쇄신책은 나오지 않았다. 야당에서는 이번에도 김대통령이 국정쇄신에 대한 확실한 입장 발표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한나라당 기획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식언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물론 ‘언론과의 전쟁’에 당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정치 현실을 이유로 내세울 수도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전쟁중에 전략 참모를 교체하는 어리석은 사령관도 있나”라고 반문한다. “7월은 사정 정국”이라는 한나라당의 전망에서도 국정쇄신책이 설 자리가 그리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원천적으로 ‘국정쇄신 불가론’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정풍파가 요구한 국정쇄신의 핵심은 이른바 동교동 구파를 중심으로 한 비선조직의 2선 후퇴다. 그러나 동교동계는 김대통령의 임기 후반은 물론 퇴임 이후까지 함께할 정치 동반자로 이미 임무를 결정한 상태인 듯하다. 동교동계 인사들이 “비선 배제 주장은 김대통령의 권력운영 틀을 흐트린다”며 반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적 쇄신 요구를 수용한다는 것은 결국 후반기 통치구도의 변화를 뜻하며, 김대통령으로서는 이런 변화에 대한 부담을 감수하기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다.
설혹 변화를 선택하려 해도 그들을 대신할 인재풀이 마땅치 않은 점도 거론된다. 김대통령이 뒷걸음질친 배경에는 이같은 현실적 한계가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동교동의 충성심을 따라갈 조직은 아직 여권 내에서 찾기 힘들고 이미 그들은 발을 빼기 어려울 정도로 깊숙한 곳에 서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풍파가 핵심으로 지목한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경우 김대통령의 후반기 정국운영 전략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여전한 듯하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권 전 위원이 빠질 경우 당내 힘의 균형이 무너져 더욱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최근 ‘친권파’ 인사들이 “김대통령의 집권 후반기를 안정시키기 위해 동교동계를 제외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여권 핵심부에 올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친권파’의 한 인사에 따르면 지난 6월 중순 정풍 파동 와중에 김대통령은 권 전 위원에게 “마포 사무실을 계속 유지하되 이권과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가이드 라인을 전달했다고 한다. 정풍 파동이 있음에도 권 전 위원의 신상에 큰 변화가 없음을 읽을 수 있는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바로 이같은 정황에 따라 김대통령이 언론과 여론을 의식해 8·15 경축사에 국정쇄신에 대한 입장을 담더라도 정풍파가 주장한 본질적인 문제에 손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직을 없애는 것보다 눈에 띄는 몇몇 동교동계 인사들을 2선으로 후퇴시켜 국정쇄신으로 포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개각 요인도 발생한 상황이고 보면 이 역시 본질에서 비켜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인사권을 쥔 김대통령의 의중도 대략 그런 듯하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경제가 회복되고 남북문제가 예정대로 굴러가고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면 김대통령이 굳이 대대적인 시스템을 바꿔 혼란을 초래하겠느냐”고 쇄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8월 정국은 김정일 답방 등 남북문제와 관련한 빅이벤트가 정치를 압도할 것”이라 전망한다. 내부 시스템에 변화를 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장성민 의원은 “지금은 국정쇄신을 거론할 분위기도 아니고, 할 이유도 없지 않느냐”며 “(국정쇄신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정풍파 인사들은 이런 분위기가 곤혹스럽다. 정풍파 한 인사는 “(김대통령이) 한다고 했으니 지켜보겠다”며 더 이상의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또 다른 인사도 “몇 명의 장관과 한두 명의 보좌진을 정리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국정쇄신과 거리가 멀다”고 잘라 말한다. 한 소장파 의원은 “만일 이번에도 본질을 빼고 수사(修辭)로만 적당히 넘어간다면 그냥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3차, 4차 정풍 운동을 예고했다.
연기냐, 유보냐, 무산이냐. 요즘 여권 내부에서는 국정쇄신과 관련해 이같은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