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4년 전 소프라노 김영미씨(47·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가 녹음한 ‘자장 자장’ 2집을 듣고 있다. 기교를 앞세우지 않는 따뜻하고 평온한 목소리에 절로 미소짓게 된다. 음반 재킷에 적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말이 상투적인 광고 문구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김영미씨는 두 차례에 걸쳐 자장가를 녹음했다. 지난 95년 발표한 ‘자장 자장’ 1집은 김씨가 결혼 8년 만에 딸 서영이를 얻고 아이의 두 돌 기념으로 낸 것인데, 워낙 반응이 좋아(7만 장) 3년 뒤 2집을 냈다.
음악평론가 홍승찬씨는 김영미씨의 결혼과 출산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성연주가, 특히 체력적인 바탕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성악부문 여류들에게는 결혼과 출산이 연주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개 연주생활과 결혼생활을 병행하는 것에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지만, 더러는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한층 더 성숙한 음악세계로 이끌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결혼과 출산이 연주생활에 공백을 가져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공백을 극복하고 최고의 경지를 성취하는 연주자야말로 대가 중의 대가라고 말할 수 있다. 김영미가 바로 그런 드문 경우에 속하는 연주자다.”
비슷한 점에서 대가를 꼽으면 소프라노 홍혜경씨(42)가 있다. 198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한 이래 항상 이름 앞에 메트 최초의 한국인 프라마 돈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홍혜경씨는 하나도 아니고 세 아이의 엄마다. 하지만 홍씨는 두 딸에 이어 10년 만에 늦둥이 셋째아들을 낳고 목소리가 더 윤기 있다는 평을 들을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그의 뒤를 이어 메트 무대에 데뷔한 후배성악가이며 미혼인 조수미(89년), 신영옥씨(90년)와 굳이 비교한다면 홍혜경씨의 노래에는 가정과 커리어를 완벽하게 조화시킨 삶의 ‘여유’가 배어나온다.
홍혜경과 김영미, 두 소프라노가 5월12일(홍혜경, 예술의전당), 14일(김영미, LG아트센터)에 잇달아 독창회를 갖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두 사람 모두 퍽 오랜 만에 마련한 고국 독창회인데다(김씨는 4년 만에, 홍씨는 6년 만이다), 앞뒤로 갈리나 고르차코바(3월3일), 제시 노먼(4월28일), 바바라 헨드릭스(5월22일) 등 세계적인 소프라노들의 무대가 이어져 어쩔 수 없이 비교대상이 된다. 특히 팬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끝난 제시 노먼의 연주 직후라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방송으로 노먼이 피아노를 치면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것을 들었어요. 관객들도 따라 불렀다고 하더군요. 그 상황이 눈에 선한데 정말 멋진 성악가예요.”
어느 새 자신의 인터뷰라는 것도 잊은 채 노먼 칭찬에 바쁜 김영미씨의 모습에서 넉넉함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서정적인 목소리(리릭)”라고 대답했다. 본인은 “절대 드라마틱한 소리가 아니다”고 부정하지만 그의 아리아에 대해 사람들은 리릭과 드라마틱의 중간쯤을 헤아린다. 그냥 예쁘게만 부르는 성악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연주 후 한 신문은 “김영미의 목소리는 테발디와 같은 달콤한 소리는 아니다. 그는 마리아 칼라스적인 특징을 가졌으며 실제로 마리아 칼라스 국제콩쿠르 우승자이기도 하다(80년)”고 평했다. 그만큼 김영미씨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강하다.
“리릭이 제 성격상 맞기 때문에 오페라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라보엠’ ‘나비부인’ ‘라 트라비아타’까지로 제한하고 있어요. 이영조 선생님의 오페라 ‘황진이’에서 황진이 역은 전형적인 리릭이죠. 매우 만족스러운 역할이었어요. 그동안 오페라단에게서 이것저것 제안도 많이 왔는데 제가 소화할 수 없는 역할은 모두 거절했어요. 만약 제 키가 170cm 이상 되고 체구도 노먼 정도로 풍만해서 소리를 쫙쫙 끌어낼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무대야 많죠. ‘마농레스코’ ‘토스카’ ‘돈 카를로’ ‘아이다’ 등 너무너무 멋진 오페라들이죠. 하지만 제가 저를 잘 알기 때문에 욕심은 내지 않아요.”
그는 자신의 약점까지도 주저 없이 드러내는 시원스러운 성격이어서, 애써 ‘신비감’을 조성하려는 스타 기질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영미씨만큼 일찍이 스타성을 발휘한 경우도 드물다. 우리 나라 최초의 미국 음악 유학생(테너, 작곡가)이었던 안기영씨의 외손녀로 타고난 음악성을 발휘하며, 1977년 이탈리아 베로나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79년 푸치니 콩쿠르, 80년 마리아 칼라스 국제콩쿠르, 81년 루치아노 파바로티 국제콩쿠르 등 3개 주요 국제대회를 섭렵하며 ‘세계 무대 진출 1호’로 기록되었다. 실제 한국인 최초로 파바로티와 함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무대에 선 것도 바로 그다(82년 ‘사랑의 묘약’). 이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어 이후 전미 순회공연을 갖기도 했다.
대신 그에게는 남보다 너무 앞서간 까닭에 겪어야 할 좌절이 있었다. 마리아 칼라스 국제 콩쿠르 우승 후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주역은 맡아놓은 것인 줄 알았다가 이방인에게 배타적인 이탈리아 음악계 때문에 분루를 삼켰다.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의 자랑이던 그가 무대를 미국으로 바꾼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후배인 조수미씨는 큰 어려움 없이 유럽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메트는 ‘스폰서’를 요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산타 체칠리아로 떠나 8년 동안 공부만 해온 그에게 너무 벅찬 장벽이었다. 88년 뉴욕시티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주연 초초상으로 출연해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으나, 여전히 가슴 속에는 세계무대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다.
“올해는 꼭 두 가지 일을 하려고 해요. 성가와 오페라 아리아 음반을 녹음하는 것, LA로 근거지를 옮겨 미국무대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 앞으로 딱 10년만 바라보고 노래하려 해요.”
한편 김영미, 조수미, 신영옥 등 세계적인 한국 소프라노 중에서 가장 신체적인 조건이 좋다는 홍혜경씨는 미국 통이다. 그는 예원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줄리아드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82년 메트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84년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에서 세르빌리아 역으로 메트 데뷔 무대를 가진 지 17년 동안 부동의 프리마 돈나로 군림하고 있다.
그는 헌칠한 키에 서양인 못지않게 뚜렷한 이목구비, 따뜻한 목소리와 기품 있는 연기력 등 흠잡을 데 없는 오페라계의 디바다.
리릭형 소프라노로 모차르트 오페라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홍씨에게 굳이 약점이라면 성대가 약하다는 것. 2년 전 급성 후두염으로 독창회 바로 전날 연주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지난해 라모어와 듀오 연주회 때 팬들의 끝없는 환호에도 앙코르에 응하지 않을만큼 철저하게 성대를 보호한다. 심지어 인터뷰조차 필요한 말만 하는 ‘단답형’으로 유명하다. 그런 점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서는 인색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는 프로 중의 프로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번 독창회를 위해 일주일 전에 귀국했으나 황사가 채 걷히지 않은 날씨로 인해 목에 이상이 올까 봐 극도로 조심하는 중이다.
홍씨도 김영미씨와 마찬가지로 오페라 무대를 가리는 편이다. 리릭 소프라노답게 ‘라보엠’의 미미, ‘리골레토’의 질다,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코지 판 투테’의 데스피나 역이 그의 장기. 이번 독창회에서는 레하르 오페라 ‘메리 위도’ 중 ‘빌리아의 노래’, 마스네 ‘마농’ 중 ‘나는 아직도 정신이 없어요’,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좋던 시절은 어디로’ 등 주옥 같은 아리아로만 레퍼토리를 마련해 오랫동안 홍혜경씨의 노래를 기다린 고국 팬들에게 디바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줄 예정이다.
우람한 체격에서 끌어올리는 제시 노먼의 드라마틱한 분위기, 우리의 홍혜경과 김영미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목소리, 바바라 헨드릭스의 청아함까지 한 달 사이에 너무 많은 선물이 음악 팬들을 기다리고 있다.
음악평론가 홍승찬씨는 김영미씨의 결혼과 출산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성연주가, 특히 체력적인 바탕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성악부문 여류들에게는 결혼과 출산이 연주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개 연주생활과 결혼생활을 병행하는 것에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지만, 더러는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한층 더 성숙한 음악세계로 이끌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결혼과 출산이 연주생활에 공백을 가져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공백을 극복하고 최고의 경지를 성취하는 연주자야말로 대가 중의 대가라고 말할 수 있다. 김영미가 바로 그런 드문 경우에 속하는 연주자다.”
비슷한 점에서 대가를 꼽으면 소프라노 홍혜경씨(42)가 있다. 198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한 이래 항상 이름 앞에 메트 최초의 한국인 프라마 돈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홍혜경씨는 하나도 아니고 세 아이의 엄마다. 하지만 홍씨는 두 딸에 이어 10년 만에 늦둥이 셋째아들을 낳고 목소리가 더 윤기 있다는 평을 들을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그의 뒤를 이어 메트 무대에 데뷔한 후배성악가이며 미혼인 조수미(89년), 신영옥씨(90년)와 굳이 비교한다면 홍혜경씨의 노래에는 가정과 커리어를 완벽하게 조화시킨 삶의 ‘여유’가 배어나온다.
홍혜경과 김영미, 두 소프라노가 5월12일(홍혜경, 예술의전당), 14일(김영미, LG아트센터)에 잇달아 독창회를 갖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두 사람 모두 퍽 오랜 만에 마련한 고국 독창회인데다(김씨는 4년 만에, 홍씨는 6년 만이다), 앞뒤로 갈리나 고르차코바(3월3일), 제시 노먼(4월28일), 바바라 헨드릭스(5월22일) 등 세계적인 소프라노들의 무대가 이어져 어쩔 수 없이 비교대상이 된다. 특히 팬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끝난 제시 노먼의 연주 직후라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방송으로 노먼이 피아노를 치면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것을 들었어요. 관객들도 따라 불렀다고 하더군요. 그 상황이 눈에 선한데 정말 멋진 성악가예요.”
어느 새 자신의 인터뷰라는 것도 잊은 채 노먼 칭찬에 바쁜 김영미씨의 모습에서 넉넉함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서정적인 목소리(리릭)”라고 대답했다. 본인은 “절대 드라마틱한 소리가 아니다”고 부정하지만 그의 아리아에 대해 사람들은 리릭과 드라마틱의 중간쯤을 헤아린다. 그냥 예쁘게만 부르는 성악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연주 후 한 신문은 “김영미의 목소리는 테발디와 같은 달콤한 소리는 아니다. 그는 마리아 칼라스적인 특징을 가졌으며 실제로 마리아 칼라스 국제콩쿠르 우승자이기도 하다(80년)”고 평했다. 그만큼 김영미씨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강하다.
“리릭이 제 성격상 맞기 때문에 오페라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라보엠’ ‘나비부인’ ‘라 트라비아타’까지로 제한하고 있어요. 이영조 선생님의 오페라 ‘황진이’에서 황진이 역은 전형적인 리릭이죠. 매우 만족스러운 역할이었어요. 그동안 오페라단에게서 이것저것 제안도 많이 왔는데 제가 소화할 수 없는 역할은 모두 거절했어요. 만약 제 키가 170cm 이상 되고 체구도 노먼 정도로 풍만해서 소리를 쫙쫙 끌어낼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무대야 많죠. ‘마농레스코’ ‘토스카’ ‘돈 카를로’ ‘아이다’ 등 너무너무 멋진 오페라들이죠. 하지만 제가 저를 잘 알기 때문에 욕심은 내지 않아요.”
그는 자신의 약점까지도 주저 없이 드러내는 시원스러운 성격이어서, 애써 ‘신비감’을 조성하려는 스타 기질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영미씨만큼 일찍이 스타성을 발휘한 경우도 드물다. 우리 나라 최초의 미국 음악 유학생(테너, 작곡가)이었던 안기영씨의 외손녀로 타고난 음악성을 발휘하며, 1977년 이탈리아 베로나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79년 푸치니 콩쿠르, 80년 마리아 칼라스 국제콩쿠르, 81년 루치아노 파바로티 국제콩쿠르 등 3개 주요 국제대회를 섭렵하며 ‘세계 무대 진출 1호’로 기록되었다. 실제 한국인 최초로 파바로티와 함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무대에 선 것도 바로 그다(82년 ‘사랑의 묘약’). 이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어 이후 전미 순회공연을 갖기도 했다.
대신 그에게는 남보다 너무 앞서간 까닭에 겪어야 할 좌절이 있었다. 마리아 칼라스 국제 콩쿠르 우승 후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주역은 맡아놓은 것인 줄 알았다가 이방인에게 배타적인 이탈리아 음악계 때문에 분루를 삼켰다.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의 자랑이던 그가 무대를 미국으로 바꾼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후배인 조수미씨는 큰 어려움 없이 유럽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메트는 ‘스폰서’를 요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산타 체칠리아로 떠나 8년 동안 공부만 해온 그에게 너무 벅찬 장벽이었다. 88년 뉴욕시티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주연 초초상으로 출연해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으나, 여전히 가슴 속에는 세계무대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다.
“올해는 꼭 두 가지 일을 하려고 해요. 성가와 오페라 아리아 음반을 녹음하는 것, LA로 근거지를 옮겨 미국무대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 앞으로 딱 10년만 바라보고 노래하려 해요.”
한편 김영미, 조수미, 신영옥 등 세계적인 한국 소프라노 중에서 가장 신체적인 조건이 좋다는 홍혜경씨는 미국 통이다. 그는 예원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줄리아드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82년 메트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84년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에서 세르빌리아 역으로 메트 데뷔 무대를 가진 지 17년 동안 부동의 프리마 돈나로 군림하고 있다.
그는 헌칠한 키에 서양인 못지않게 뚜렷한 이목구비, 따뜻한 목소리와 기품 있는 연기력 등 흠잡을 데 없는 오페라계의 디바다.
리릭형 소프라노로 모차르트 오페라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홍씨에게 굳이 약점이라면 성대가 약하다는 것. 2년 전 급성 후두염으로 독창회 바로 전날 연주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지난해 라모어와 듀오 연주회 때 팬들의 끝없는 환호에도 앙코르에 응하지 않을만큼 철저하게 성대를 보호한다. 심지어 인터뷰조차 필요한 말만 하는 ‘단답형’으로 유명하다. 그런 점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서는 인색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는 프로 중의 프로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번 독창회를 위해 일주일 전에 귀국했으나 황사가 채 걷히지 않은 날씨로 인해 목에 이상이 올까 봐 극도로 조심하는 중이다.
홍씨도 김영미씨와 마찬가지로 오페라 무대를 가리는 편이다. 리릭 소프라노답게 ‘라보엠’의 미미, ‘리골레토’의 질다,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코지 판 투테’의 데스피나 역이 그의 장기. 이번 독창회에서는 레하르 오페라 ‘메리 위도’ 중 ‘빌리아의 노래’, 마스네 ‘마농’ 중 ‘나는 아직도 정신이 없어요’,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좋던 시절은 어디로’ 등 주옥 같은 아리아로만 레퍼토리를 마련해 오랫동안 홍혜경씨의 노래를 기다린 고국 팬들에게 디바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줄 예정이다.
우람한 체격에서 끌어올리는 제시 노먼의 드라마틱한 분위기, 우리의 홍혜경과 김영미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목소리, 바바라 헨드릭스의 청아함까지 한 달 사이에 너무 많은 선물이 음악 팬들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