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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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물’ 마시고 죽어가는 문학산 주민들

미군 저유탱크 이전 후 27년간 ‘기름 범벅’ 우물 식수로 사용…학골 윗마을 암환자만 13명

  • 입력2005-05-30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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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름물’ 마시고 죽어가는 문학산 주민들
    “냄새가 심하고 기름이 떠도 어쩝니까. 상수도 들여놓을 돈이 없는데…기름물이 죄겠습니까, 가난이 죄지….”

    인천시 남구 문학산 기슭 학골마을 권영희씨(60·학익1동)는 요즘 남편 장충식씨(68)의 죽음에 강한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11월3일 식도암으로 숨을 거둔 남편의 뒤를 이어 이웃집의 위영길씨(48)가 똑같은 증세를 호소하다 6일 인천대학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위씨의 병명도 다름아닌 식도암. 두 집 건너 김재규씨(67)가 지난 1월 위암 판정을 받고 남편 장씨와 함께 투병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모두 가난하고 못 먹어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위씨까지 이 지경에 이르자 생각이 달라졌다.

    ‘지척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시기에 이렇게 암에 걸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던 권씨는 세 사람 모두 같은 우물물을 먹었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내고 깜짝 놀랐다. 권씨의 이런 추측은 마을 전체의 공포로 엄습해왔고, ‘먹고 사는 데 바빠’ 신경도 못 썼던 이웃 옥골마을(옥련동)의 ‘미군 저유소 기름 유출 토양오염 사건’(10월23일 인천녹색연합 기자회견)이 이제 학골 주민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물엔 기름냄새 악취가 진동

    학골과 옥골은 문학산 정상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 사실 학골마을 주민들은 옥골의 토양오염이 시민단체의 발표 이후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미군 저유탱크에 의한 학골의 토양오염이 옥골보다 더하면 더 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기 때문. 이때부터 학골마을 주민들은 ‘기름 범벅’의 문학산과 암의 관계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우리 마을에는 왜 검사하러 안 오는지 몰라요. 옥골에만 미군 저유탱크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동네에도 10기가 있었어요.”

    이 마을 30년 토박이인 16통 통장 박연수씨(50)는 죽은 장씨의 집 바로 위를 저유탱크가 있던 곳으로 지목했다. 실제 박씨가 지목한 그 장소에는 농구장만한 평지가 조성돼 있어 어떤 시설물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를 보십시오. 아직도 기름이 이렇게 흘러나오고 있어요” 통장 박씨가 가리킨 곳은 다름아닌, 장씨 부부가 20년 동안 먹어왔고 현재도 먹고 있는 우물이었다. 우물 뚜껑을 여는 순간 기름냄새와 악취가 진동했고, 고무 두레박에 물을 퍼올리자 무지개 빛 기름이 표면에 가득 떠올랐다.

    “옥련동만 그런 게 아니에요. 콘크리트로 포장이 돼서 그렇지 학골도 조금만 파면 모두 기름입니다.” 박씨는 인천시와 정부가 옥련동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것이 못마땅한 듯 불편한 심사를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가 무허가촌 사람이라고 괄시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미군 저유탱크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 많이 알아요.” 박씨는 16통 1반에서 4반까지 30여 세대는 지난 71년 미군 저유탱크가 이전하면서 그 공터 부지에 생긴 무허가촌이기 때문에 기름 유출의 실질적 피해자도 자신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이런 물을 어떻게 먹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권씨는 “훅 불어서 기름기를 날려보낸 뒤 마셨죠. 이 물도 귀해서 갈수기에는 3만∼4만원에 타지역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며 태연스레 답했다. 주변에 있던 마을 주민들은 ‘심할 경우 트림을 하면 기름냄새가 날 지경이었다’고 전했다.

    학골에 상수도가 들어온 것은 지난 98년 12월. 그 이전에는 16통 전체 180 가구가 5개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고 있었다. 27년 동안 기름이 떠 있는 우물물을 먹은 셈이다. 4개의 우물은 지난해 폐쇄됐으나 장씨 집 앞의 우물은 아직도 8가구 40여명의 주민이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주민은 가옥내 상수도 인입선 공사비 100만원이 없어 상수도를 들여놓지 못할 만큼 어려운 살림을 엮어가고 있었다. 이에 반해 산너머 옥골의 경우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가는 상수도가 이 마을을 지나는 관계로 60년대 후반부터 우물물을 먹은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지난 79년 이후 올해까지 30여 가구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학골 윗마을)에 암에 걸려 죽은 사람들이 11명에 달한다는 점이다. 투병중인 위씨와 김씨를 합치면 암에 걸린 사람만 13명이다. 가구수로 따져도 10여 가구에서 암이 발생한 셈. 79년에 대장암과 간암으로 고근호씨(당시 39세)가 사망한 이후, 80년 김천만씨(41·위암), 83년 박수영씨(68·간암·박통장의 아버지), 85년 장대규씨(50·위암), 97년 고평화씨(53·위암·고근호씨의 동생)와 양영도씨(64·위암) 등이 암으로 숨을 거뒀다.

    이 밖에도 사망한 뒤 이사하는 바람에 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90년 초반쯤 엄종국씨 부부(대장암)와 엄씨의 아들 엄기하씨(56·간암) 일가족이 차례로 사망한 것을 비롯해 이종구씨가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게 주민들의 기억이다. 사망한 주민들은 대부분 70~81년 이곳에 들어와 10~20년 이상 우물물을 식수로 사용해 왔으며, 모두 암 말기 상태에서 발견돼 손도 쓰지 못하고 죽은 경우가 많다.

    30년째 이곳에 살며 아직도 우물물을 마시고 있는 오정자씨(여·63·은혜수퍼 주인)는 “주민들 중 배가 불편하거나 아픈 사람들이 많아 왜 이런가 했더니… 결국, 기름물 때문이었던 같다”며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라며 한숨만 내뱉었다.

    “아들애가 배에 복수가 차고 목이 부어올라 죽을 뻔한 적도 있다” “지금도 누가 암에 걸려 있는지 모른다. 검사할 돈이 없으니까 모를 따름이지.” 주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기자가 이런 사례에 대해 문의하자 조수원 교수(서울대 의대·환경의학)는 신속한 역학조사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이렇게 말했다. “거기가 도대체 어딥니까. 지금까지 그처럼 암 발생률이 높은 곳은 들어본 적도 없고 보고사례도 없습니다. 당장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름과 암과의 직접적 연관성도 조사를 해봐야 알 겁니다. 기름이 만약 암을 유발했다면 엄청난 양의 기름이 몸 속에 누적되고 축적되어야 합니다.”

    서울보건환경연구원 음용용수팀 김익수씨는 “일반적으로 석유 속에 포함된 벤젠과 톨루엔은 발암성 물질로 구분돼 음용수 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다”며 “그렇지만 암 발생 기간이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는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암과의 연관성을 찾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미군측이 저유탱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줘야 오염원인 제공자를 상대로 복원 명령을 내리든지 손해배상을 신청하든지 할 텐데 환경부와 국방부의 계속된 질의에도 미군측은 문서 보존 연한이 지나 모르겠다고 일관하는 모양입니다. 오염 기초조사야 하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학골마을의 암 발생 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인천시 환경보전과 직원들은 미군측에 아무 말도 못하는 환경부와 국방부가 야속하기만 한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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